영제 - MEMOIR OF A MURDERER, 2016

  원작 -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2013’

  감독 - 원신연

  출연 - 설경구, 김남길, 설현, 오달수







  2013년에 나온 김영하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감독판이다. 극장판과 감독판은 포스터가 다르다. 극장판은 주인공이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감독판은 주인공이 입 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면, 저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병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우연한 접촉사고로 마주친 ‘태주’를 본 순간, 병수는 깨닫는다. 바로 그가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그가 그걸 알 수 있는 건, 17년 전 교통사고가 나기 전까지 병수도 연쇄 살인범이었기 때문이다. 병수는 태주가 살인을 저질렀음을 익명으로 제보하지만, 그가 미처 몰랐던 일이 있었다. 태주가 경찰이라는 것이다. 태주는 병수의 딸 ‘은희’에게 접근하고, 병수는 딸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그의 기억은 오락가락하고, 심지어 무엇이 환상이고 현실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워지는데…….



  처음에는 이 감독판을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극장판과는 결말이 다르다는 말을 듣고, 그럼 ‘어디 한 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이 다소 모호하고 어딘지 모르게 영 애매했던 극장판과 달리, 감독판은 그럭저럭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문득 외국의 어떤 영화가 떠올랐지만, 그걸 적으면 대놓고 스포일러가 되기에 지워버렸다. 음, 그런데 그걸 안 적으니 할 얘기가 없다.



  감독판은 극장판보다 10여분 정도 더 길다. 그만큼 추가된 장면도 있고, 빠진 부분도 있으며, 아예 달라진 곳도 있었다. 그러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인물의 성격이 더 드러나고, 결말의 반전도 더 극적이었다……라지만 중후반부터 추측 가능했고, 외국 영화가 떠올랐다. 그래도 초반부터 주어진 퍼즐들이 결말부분에서 맞아떨어지는 과정은 마음에 들었다. 극장판과 달리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극장판보다는 나았지만, 소설에 비교하면 좀 아쉬웠다. 소설의 결말은 심심하면서도 놀라웠는데, 감독판은 놀라우면서 좀 뻔했다. 그 외국 영화……. 그런데 왜 처음부터 감독판으로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은 걸까? 사람들로 하여금 두 번 보게 해서 VOD 수입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배급사의 노림수인건가!



  그리고 이건 영화 외적인 부분이긴 한데, 포털 영화 소개에서 보면 극장판과 감독판의 구별이 가지 않는다. 포스터도 둘 다 똑같이 감독판이 올라와있고, 작품 설명도 똑같다. 극의 흐름이나 결말이 다르면, 다른 작품으로 구별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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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Happy Death Day, 2017 

   감독 - 크리스토퍼 랜던

   출연 - 제시카 로스, 이스라엘 브루사드, 루비 모다인, 레이첼 매튜스





  ‘트리’는 낯선 곳에서 눈을 뜬다. 자신의 이름을 ‘카터’라 밝힌 남학생은 전날 파티에서 너무 취한 그녀를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데리고 왔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온 트리에게 룸메이트인 ‘로리’가 컵케이크를 주며 생일 축하를 해준다. 하지만 자신과 생일이 똑같았던 엄마가 사망한 후, 트리는 자신의 생일이 싫었다. 그날 저녁, 기숙사 파티에 가던 트리는 학교 마스코트 가면을 쓴 괴한에게 살해당한다. 그런데 눈을 뜨니, 아침에 있었던 일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카터의 자기소개, 카터 룸메이트의 난입, 기숙사 건물 앞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처음에는 데쟈뷰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알게 된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살해당하는 생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트리는 매일을 반복한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범인에게 공격당할 때마다 자신의 몸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침내 그녀는 결정적인 단서를 얻는데…….



  영화는 무척이나 유쾌했다. 살인마가 나오고 주인공이 살해당하니 호러 영화가 맞지만, 고어 장면도 거의 없고 피가 철철 흐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15세 관람가를 받은 이유는 뭘까 궁금했다. 설마 트리를 비롯한 학생들의 광란의 파티와 약간의 노출 장면때문인가? 그 외의 장면을 빼고, 영화는 거의 코믹으로 흘러갔다. 심지어 트리가 살해당하는 장면까지 웃음을 자아냈다. 어떻게 살인마가 트리가 숨어있는 장소를 알아내는지 의아했지만, 그녀가 어디에 있건 꼭 찾아낸다. 이건 뭐 ‘리암 니슨’도 아니고……. ‘네가 어디에 있건 널 찾아내 죽여 버리겠다.’ 이건가?



  또한 영화는 앞에서 슬쩍 언급된 떡밥까지 꼼꼼히 회수해서, 반전을 만들어냈다. 눈치 빠른 호러 마니아라면 중반이후에 짐작 가능한 반전이었지만, 그래도 막상 밝혀질 때는 유쾌한 놀라움을 주었다.



  사람이 괜찮은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여러 번 만나봐야 한다고 말한다. 트리는 같은 하루를 여러 번 반복했기에, 사람의 진실성을 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상대방은 기억못하지만 말이다. 반대로, 같은 날을 반복하면서 트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외면했거나 피하기만 했던 일,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저질렀던 일 등에 대해 반성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시간이 남으면 생각을 한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하여간 처음에는 비호감이었던 트리였는데, 갈수록 호감형으로 바뀌었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발의 여왕벌 또는 그 옆에 빌붙어있는 스타일인데, 나중에는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고생했다고 머리를 쓰다듬해주고 싶었다. 내면이 변하면서 외면에까지 영향을 주는 건지, 아니면 계속 봐서 정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솔직한 모습일 보이기 때문일까?



  다만 어째서 트리가 하루를 반복하게 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건 자신과 똑같은 딸을 남겨두고 하늘로 가버린 엄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방송 프로그램 ‘서프라이즈’ 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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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or: Ragnarok, 2017

  감독 - 타이카 와이티티

  출연 - 크리스 헴스워스, 마크 러팔로, 톰 히들스톤, 케이트 블란쳇






  ‘토르’는 ‘로키’의 계략으로 지구에 유배된 아버지 오딘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오딘은 앞으로의 일을 맡기겠다는 말과 함께 세상을 떠난다. 그와 동시에, 오딘에 의해 봉인되어있던 ‘헬라’가 돌아온다. 그녀는 원래 자신의 자리였던 왕좌를 내놓으라며 토르와 로키를 공격한다. 토르는 다른 행성에 떨어져, 검투사로 팔리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챔피언으로 활동하고 있는 ‘헐크’와 오래 전에 아스가르드를 떠났던 ‘발키리’를 만나는데…….



  ‘라그나로크’라는 건, 북유럽 신화에서는 신들의 황혼을 의미한다. 그 때가 되면 지하세계에 갇혀있던 로키와 그의 세 자식, ‘펜레르’, ‘요르문간드’ 그리고 ‘헬’이 신들을 공격한다. 로키파와 오딘파의 대결은, 결국 거의 모든 신들의 죽음을 초래한다. 영화에서는 신화의 설정을 살짝 바꾸었다. 하긴 로키가 자식을 셋이나 뒀다는 설정은 없었으니, 갑자기 만들어내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대신 헬을 오딘의 첫째 자식으로 바꾸었고, 펜레르를 그녀의 수하로 설정했다. 또한 신화에서는 적이었던 토르와 로키가 여기서는 끈끈한 형제애를 자랑하며 같은 편이 되었다.



  영화는 1,2편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제일 바뀐 것은, 토르의 캐릭터였다. 내가 본 것은 토르 시리즈뿐이라 ‘어벤져스’ 시리즈에서는 어떠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말이 많았다. 전작에서도 대사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장난끼 많고 수다스럽지 않았다. 원래 그런 성격은 동생인 로키의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로키와 거의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막상막하의 개그와 수다를 자랑한다. 설마 2편에서 목숨 걸고 살려내려고 했던 ‘제인’과 헤어진 후유증 때문인 걸까? 주인공의 성격이 바뀌니, 전반적인 극의 분위기도 달랐다. 분명 아버지의 죽음과 존재조차 몰랐던 누나의 등장과 공격, 아스가르드를 비롯한 모든 세계의 종말을 앞두고 있는데, 무척이나 가볍고 유쾌했다. 음, 유쾌한 종말에 관한 작품도 아닌데 이러니 좀 당황스러웠다.



  영화를 보고 내린 결론은, 이미 1편에서부터 주장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오딘의 잘못된 빅 픽쳐 때문이었다. 신화나 외계인이 아닌, 현대판으로 배경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어느 야심만만한 기업가가 있었다. 그는 다소 공격적인 정책으로 다른 회사들을 하나둘씩 집어삼키며 그룹을 일궈냈다. 여기에는 아버지를 도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은 딸의 공헌이 컸다. 하지만 딸의 야망이 너무 커서 자신의 회장 자리가 위험해지자, 사업가는 어린 아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기로 한다. 그래서 그동안 벌였던 탈세, 조폭 비리, 그리고 뇌물 수수 등등의 모든 죄를 딸에게 뒤집어씌운다. 그리고 변호사도 제대로 붙여주지 않아, 이례적으로 딸은 무기징역! 이제 사업가는 어린 아들을 위해 회사의 이미지 변신을 꾀한다. 그 전까지는 갖고 있던 악덕 기업에서, 자선사업과 기부도 많이 하는 착한 회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자신의 바람과 달리 그리 똘똘하지 않게 자란다. 그래서 양자를 이용해 아들을 각성시키려고 했지만, 결국 양자에게 뒤통수를 맡게 된다. 한편 모범수로 조기 출소한 큰 딸은 자신의 반에 반도 못 미치는 어리석은 동생을 보자, 분노가 차오른다. 내가 겨우 이런 놈 때문에 감옥에서 그 고생을 한 건지 자괴감이 들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동생에 대한 증오를 주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회장 자리를 빼앗기로 결심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오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노인네, 딸내미인 헬라가 반격해오자 토르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튀어버린다. 문제는 그가 너무 어리석어서, 로키도 알고 있던 자기 집안의 과거사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도대체 토르는 그동안 뭘 배웠고, 오딘은 뭘 가르친 건지 의문이다. 설마 왕좌만 토르에게 넘겨주고, 뒤에서 모든 것을 좌우하려고 했던 속셈일까?



  코믹한 상황과 유쾌한 대사, 그리고 화려한 영상은 두 시간 반 정도 되는 상영 시간을 그리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줬다. 물론 다 보고 나니, 기억에 남는 건 ‘레드 제플린 Led Zeplline’의 노래 ‘Immigrant Song’밖에 없지만 말이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이건 변신이 아니라 환골탈태아닌가?

특히 에오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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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10-3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면서도 헬라가 아스가르드를 왜 공격한거야 권력욕 때문인가 했는데 현대판으로 정리하니까 정말 한방에 내용이 머리 속에 다 정리되는군요..
 



 원제 - Big Ass Spider, 2013

  감독 - 마이크 멘데즈

  출연 - 그레그 그룬버그, 린 샤예, 레이 와이즈, 클레어 크레이머





  언제나 그렇지만, 미국 정부와 군대는 비밀리에 위험한 연구를 하고 있다. 거기에 가끔 옵션으로 거대 다국적기업이 끼어들기도 한다. 이 영화도, 그런 미국 군대의 연구로 생겨난 거대 거미를 퇴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활약을 그린 코미디 영화이다. 괴수가 나오긴 하지만, 그리 심각하지도 않고 그냥 웃기기만 했다.



  해충 퇴치업을 하는 ‘알렉스’는 거미에 쏘여 근처 병원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곳에 군 연구소에서 도망 나온 거대 거미가 몰래 숨어들어온다. 직업정신을 발휘하여 거미 소탕에 나선 알렉스는 보통보다 큰 거미의 크기에 놀란다. 거미를 잡기위해 병원에 나타난 군인들은 알렉스를 무시하고, 이에 화가 난 그는 혼자서라도 잡겠다고 나서는데…….



  내용 요약에 군인들의 무시에 열 받아 거미 퇴치에 나섰다고 적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더 커보였다. 군인 중에 알렉스가 한눈에 반한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업을 무시한 군인들에게 한방 먹일 겸, 자신의 우수함을 마음에 든 여자에게 보여줄 겸 그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뛰어든다. 아, 혼자가 아니라 친구까지 함께.



  코미디라서 그럴까? 친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어딘지 나사가 풀려있었고, 주인공 역시 어딘지 모르게 허당끼가 있었다. 그건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민간인에게 주요 정보를 마구 알려주고, 대책 회의에 끼어들어도 다 받아주고……. 그가 미국 최고의 실력을 가진 해충 전문가라면 모르겠는데, 그런 얘기는 없었다. 또한 해충 전문가가 아는 정보를 최첨단기술을 가진 군에서 몰랐다는 것도 좀 어색하고. 음, 군대에는 곤충 전문가가 없었다는 설정인 모양이다. 그리고 알렉스가 사랑한 여자, ‘칼리’ 중위 역시 전혀 군인 같지 않았다. 군인이 저런 둔한 몸놀림을? 중위면 간부급인데 저렇게 부족한 상황 판단을? 연구원이라서 그럴까라고 생각해봤는데,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주인공이 왜 사건에 개입했는지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일부로 끼워 넣은 역할 같다. 다만 군인이라는 설정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그렇지. 거미가 크기만 했지, 공격력은 별로 없었다.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아무 때나 쏘아대는 게 아니었나보다.



  굳이 남들에게 재밌으니 보라고 권할만한 영화는 아니었고, 할 일은 없고 조용한 것은 싫어서 모니터에 뭔가 틀어놓고 싶을 때 보면 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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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Gremlin, 2017

  감독 - 라이언 벨가드

  출연 - 아담 햄튼, 크리스티 K. 분, 캐쳐 스테어, 제프 바론






  예전에 ‘그렘린 Gremlins, 1984’이라는 귀여운 생명체가 괴물로 변신하는 영화가 있었다. 변신 전에 얼마나 귀여웠는지, 인형으로 있으면 갖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우연히 똑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리메이크인가? 왜 몰랐지? 표지에 등장하는 괴물이 기억 속의 모습과 달랐지만, 시대가 변했으니 비주얼도 바뀌었다고 단순히 생각했다. 그런데 음, 내 귀여운 기즈모가 나오는 옛날 영화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듣고 ‘g.o.d.’를 떠올리면 아재고, ‘빅뱅’을 연상하면 젊은이라는 그런 개그가 생각났다. 비슷한 다른 예로 ‘좋은 날’이라는 제목에 ‘이승환’을 생각하면 아재, ‘아이유’를 떠올리면 젊은이가 있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건데, 아무리 젊은이라고 해도 ‘그렘린’이라는 단어에 이 영화를 떠올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영화는 작은 상자에서 튀어나와 ‘짐’과 ‘리사’ 부부를 공격하는 괴물로 시작한다. 한편 회사 동료와 불륜중인 ‘아담’은 모든 것이 권태롭기만 하다. 같이 놀자고 다가오는 아들 ‘찰리’는 귀찮기만 하고, 사춘기 딸 ‘애나’는 반항 중이고, 아내 ‘줄리’와는 어딘지 서먹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처남인 짐이 찾아와 괴물이 나오던 상자를 들고 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라는 말과 함께, 장모에게 주고 간다. 그리고 장모는 아담에게 상자를 건넨다. 그날 밤, 상자에서 괴물이 나와 그녀를 죽인다. 그 광경을 목격한 찰리는 괴물이 할머니를 죽였다고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금 상자가 열리고 괴물이 나와 딸의 남자친구를 공격한다. 그제야 아들의 말을 믿게 된 아담과 줄리는 상자의 비밀을 풀고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데…….



  대충 설정만 보면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다. 괴물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극대화하면 잔혹한 고어가 될 수 있고, 가족과 지인을 죽였다 의심받는 사람을 중점으로 하면 스릴러물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가족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장의 모습에 주력하면 가족물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것저것 전반적으로 손대려고 하다가, 흐지부지되어버렸다. 괴물의 모습도 그냥 좀 허접했고, 인물들의 연기도 그냥 그랬고, 이야기의 흐름도 뭔가 많이 빼먹은 것 같았다.



  특히 가장 중요한 설정인 상자의 저주가 제일 이상했다. 누군가 그 상자를 갖고 있으면, 그 주변인들이 괴물에게 살해당한다는 게 저주의 내용이다. 그걸 피하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넘겨주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자를 주면, 그 사람의 가까운 사람에 내가 포함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내가 죽을 확률이 높아지는 거 아닌가? 아니, 그보다 내가 갖고 있으면 적어도 나는 안 죽는 거 아닌가? 내가 안 죽고 싶으면, 상자를 갖고 있는 게 더 이득이지 않나? 뭔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마지막까지 상자를 갖고 있으면 미쳐버린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도 안 보였다.



  심지어 그 전까지 보여줬던 설정을 완전 뒤집어버리는 결말이어서, 더 황당했다. 그 사람이 왜 상자를? 그게 가능해?



  감독이 제작과 각본까지 맡았다고 하는데, 대본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감수라도 받았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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