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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살인 ㅣ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5월
평점 :
원제 - Sleeping
Murder, 1976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아가일 때 뉴질랜드로 건너가서 성장한 그웬다. 남편 가일스와 영국에서 살 집을 구하는데, 마침
눈에 들어오는 해변 저택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곳을 수리하니 잠긴 문이 나오고, 이 방에는 어떤 무늬가 어울릴
거라 생각하고 벽을 뜯으니 자신이 생각한 무늬의 벽지가 붙어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친구들과 연극을 구경하러 간 날, 그녀는 봉인되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집에서 아기였던 그웬다는 살인을 목격했다. 그 곳은 바로 아주 오래전에 그녀와 아빠, 그리고 새어머니가 살았던 집이었다. 물론
그녀는 너무 어려서 아무 기억도 못하지만 말이다. 그웬다는 가일스와 함께 자신이 본 기억이 진실인지, 행방불명되었다는 새어머니와 병으로 죽어간
아버지에 얽힌 비밀을 풀어보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집필한 때와 발표한 시기가 다르다. 이 책은 1976년, 그러니까 애거서 크리스티가
사망한 다음에 출판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그녀가 집필한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깨어진 거울 The Mirror Crack'd from
Side to Side, 1962’에서는 몇 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 밴트리 대령이 아직 살아있다고 나온다. 그녀가 왜 이 작품을 숨기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놓기엔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고치느라 그랬는지, 아니면 너무 잘 썼다는 느낌에 마지막까지 아끼느라 그랬는지는 아마
며느리도 모를 것이다.
크리스티의 시리즈를 읽다보면, 그녀가 창조한 탐정에 대해 이런저런 표현을 적어놓은 걸 볼 수
있다. 포와로에 대해서는 너무 나이가 많다거나 자아도취에 빠져있다는 평이 나온다. 미스 마플 역시 동네의 소문을 몰고 다니는 늙은 고양이라는
평이 있는데, 이번 책에서 나온 말이 재미있었다. “적어도 세 군의 경찰서장을 손 안에 쥐고 좌지우지한답니다. 우리 서장이야 아직 그런 꼴이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그 서장이 누군지 모르지만, 사건을 척척 해결해주는 지원군을 얻은 것이니까 운이 좋다고
해야겠다.
19년 전, 다른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한 여인, 불륜을 저지른 부인을 자기가
죽였다는 망상에 빠져 자살한 남자.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시기했던, 악의로 똘똘 뭉친 한 남자. 와, 읽으면서 열 받아 죽는 줄 알았다.
개XX라고 욕하고 싶었지만, 그건 개한테도 욕이 될 거 같아서 겨우 참았다. 개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딴 놈과 동급이 되야 한단 말인가! 이건
개에 대한 모욕이다. 집착과 사랑은 한끝차이라고 하지만, 이놈은 거기에 ‘미친’을 더해야한다. 아주 그냥 계획적으로 한 가정을 파멸로 이끄는데
와 진짜, 내가 욕을 못 배운 게 이렇게 한이 될 줄 몰랐다. 음, 욕을 좀 배워놓아야겠다. 그래야 이런 상황에서 아주 그냥 죽여주게 해줄 수
있을 테니까.
그웬다가 사건을 처음 파헤치기로 결심했을 때, 미스 마플은 그리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친구인 헤이독 의사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잠자는 살인은 내버려두라.’ 이게 두 사람의 의견이었다. 헤이독 의사는 몰라도, 미스 마플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의외였다.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 아니었던가? 하지만 젊은 커플이 여기저기 들쑤시는 바람에
범인이 불안함을 느껴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걸 보니, 미스 마플의 생각도 옳은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이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애꿎은 사람이
살해당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마치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과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충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나쁜 미친놈이 죗값을 치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운 채
편하게 살아가는 건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 그런 놈은 잡혀서 사형대에 세워져야한다. 미스 마플이 그놈을 잡아서 다행이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나야하는 법이다. 그게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