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夢幻花, 2013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감상문에는 줄거리를 요약해서 적는 게 일반적인데, 이 책은 등장인물과 그 관계가 약간 복잡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게다가 그 많은 사람들마다 각각 갖고 있는 사연도 한두 개는 되고, 어떤 것은 연결되는 것도 있고 겹치기까지 한다. 그 이야기들이 퍼즐 조각처럼 자리를 찾아가면서, 책은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자살한다. 얼마 후, 그의 할아버지가 살해당한다. 한 집안에 연이어 일어난 불행한 사고로 볼 수 있지만, 노인이 기르던 노란색 나팔꽃 화분이 사라지면서 사건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신분을 숨기며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청 공무원 요스케. 죽은 노인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형사 하야세. 할아버지의 화분에 담긴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행동하는 손녀 리노. 그리고 아버지와 형이 숨기는 비밀이 뭔지 밝히려는 청년 소타. 이들이 따로 또 같이 행동하고 실마리를 찾아가면서, 자연 상태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노란색 나팔꽃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와 동시에 3대에 걸친 두 집안의 원죄와 같은 가업과 50년 전에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의 진상도 파헤쳐진다.

 

  이 작가의 다른 추리소설을 여러 권 읽어봤지만, 이번 책은 좀 당황스러웠다.

 

  유가와 교수가 등장하는 단편들이야 최신 과학 기술을 광고하는 느낌으로 읽었고, 가가 형사가 나오는 소설들은 사건보다는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라든지 숨겨진 사연들이 더 부각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다들 자연스레 사건에 그것들이 녹아들면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졌다.

 

  그런데 이 책은 중반까지는 그런 흐름을 잘 이어가다가, 갑자기 결말로 뛰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노인을 죽였냐가 아니라, '노란 나팔꽃의 정체가 뭔가?'여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을 죽인 사람을 찾아 헤맨 것은 엄밀히 따지면 형사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꽃의 행방을 알고자 하거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형사는 메인 캐릭터가 아니었다.

 

  머리를 땋을 때 세 가닥으로 나눈 머리카락의 양이 비슷하지 않으면, 완성된 머리는 상당히 이상하다. 한 가닥이 너무 많으면 당연히 다른 가닥이 적기 마련이라, 땋은 머리가 가지런하지가 않고 울퉁불퉁하게 된다.

 

  등장인물이 많은 이야기도 그렇다. 당연히 메인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겠지만, 이 책에서 각각의 인물들에게 분배한 분량은 꽤나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많은 가닥들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튀어나오는 부분 없이 매끄러운 땋은 머리가 완성되었다. 그 복잡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어떻게 그것들을 흔들림 없이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모을 수 있는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범인을 밝히는 부분이 지금까지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가,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오른 느낌이라, 아쉽기만 했다. 꽃의 정체에만 너무 집중해서 범인을 제대로 찾을 힌트를 놓쳐버린 걸까? 설마 이게 작가의 의도? 그런 거라면 작가의 트릭은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들이 꽃에만 집착을 하다 보니, 범인을 찾는 형사에게는 당연히 시선이 덜 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형사도 나중에는 꽃에 관심을 가졌으니……. 음, 작가가 나쁜 거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등장하는 사람들마다 아픈 사연이 한두 개씩은 다 있었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가면서,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고발도 같이 하고 있다. 하야세와 그 아들을 통해서는 이혼 가정이 겪는 갈등과 그 극복에 대해서, 리노와 소타의 경우에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그리고 요스케의 입을 통해서는 책임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요스케는 이렇게 말한다.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지만,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받아들여야 한다. 속된 말로 하면,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워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요스케에게는 가업처럼 된 노란 나팔꽃이었고, 소타에게는 전공인 원자력이었다. 일본과 원자력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있다. 후쿠시마. 소타는 다들 기피하는 원자력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어쩌면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황하는 일본인들에게 작가는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욕망과 책임감이 정비례하지 못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책이었다. 욕망에 사로잡힌 누군가는 금단의 꽃을 피워냈고, 그것에 책임을 진 다른 누군가는 뒤처리를 해야 했다. 어쩌면 작가는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떤 류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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