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표제작인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다가
제가 밑줄을 그은 대목을 옮깁니다.
소설 문장이 아니라 한 편의 산문시를 읽는 듯합니다.
시처럼 읽히라고 제 맘대로 줄 바꾸기를 했습니다.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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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를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그건 여자 없는 남자들이 아니고는
이해하지 못한다.(327쪽)
그 세계에서는 소리가 울리는 방식이 다르다.
갈증이 나는 방식이 다르다.
수염이 자라는 방식도 다르다.
스타벅스 점원의 응대도 다르다.
클리퍼드 브라운의 솔로 연주도 다른 것으로 들린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방식도 다르다.
오모테산도에서 아오야마 1가까지 걸어가는 거리 또한
상당히 달라진다.(331쪽)
-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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