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하기 위함이라고. 글을 읽는 것은 남이 알고 있는 진실에 귀기울이기 위함이라고.
저마다 알고 있는 ‘무엇에 대한 진실’이란 게 있다. 진실이라고 알고 있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진실이 아닐 수가 있기도 하겠다. 자신이 잘못 알았다고 깨닫게 될 때가 있기도 하겠다. 하지만 혹시 그릇된 정보로 또는 그릇된 해석으로 진실을 잘못 아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무엇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진실’이 있다고 해도 ‘진실 찾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사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은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아니다. 이 땅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달리 말한다면 우리 모두는 깊이 생각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옮겨 보는 글이다.
세상이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면 나머지는 쉽사리 하찮아진다. 심지어 인간의 존엄과 생명마저 돈보다 순위에서 밀린다. 돈이 가치 사다리의 꼭대기에서 선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지경에 이를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가 아닐까. 수명이 다한 중고 선박을 구입해 과도하게 운항한 것이나 규정 이상으로 화물을 적재한 행위 모두 돈에 대한 탐욕이 시킨 일이다. 수백 명 학생에게는 자리를 지키라고 해놓고 자기 몸만 쏙 빠져 나온 선장은 비정규직이었다. 수백의 인명을 책임진 자리에마저 비정규직을 앉힌 경영 논리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까. 참극이 빚어진 와중에도 해경 간부는 민간 잠수업체에게 돈벌이 기회를 만들어 줄 궁리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줄줄이 폭로되는 부정한 유착 고리들에 분노했지만, 그 비정상이 사실상 우리 일상에 만연해 있음을 뼈아프게 자각했다. 그렇게 돈 중심의 사회가 꽃다운 학생 수백 명을 희생시켰다.(68~69쪽)
- 박세길,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에서.
1983년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전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단일 주제로 무려 138일 총 435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되어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수많은 이산가족이 출연해 사연을 호소했고 온 국민이 지켜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당시 그 기막힌 사연들을 TV로 지켜보던 나는 어떤 의문을 떠올렸다. 흔히 이산가족이라면 남북이 가로막혀 발생한 경우를 떠올린다. 그런데 당시 KBS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산가족은 대부분 남한 땅에서 헤어진 경우였다. 남북 사이에 발생한 이산가족은 그 프로그램에 출연할 이유가 없었다. 북한 땅에 있는 이산가족이 방송을 보고 만나러 올 리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쟁 시기라지만 남한에 살던 주민들 사이에서 왜 그토록 많은 이산가족이 생겼던 걸까. 이 의문은 한국 전쟁사를 공부하면서 풀렸다. 결국 남한 이산가족의 대부분은 미 공군기의 무차별 폭격이 만든 ‘난리통’에 생긴 것이다.(145~146쪽)
- 박세길,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