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오후 5시가 넘은 시간. 학교 교문을 나오면서 찜찜했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파리 때문이다.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을 보내고 나서 창문을 닫고 교실 문을 잠그려는데 파리 한 마리가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이 교실은 내일이나 되어야 문을 열 텐데. 그러니까 그때까지 파리는 밖으로 나갈 수 없어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할 텐데. 파리 혼자서 뭘 한단 말인가.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할까. 밖에서 날아다니면 구경거리도 많을 테고 먹이도 찾을 수 있을 텐데. 여기 교실에선 구경거리도 먹이도 없을 텐데. 여기까지 생각하고 창문을 열어 파리가 밖으로 나가도록 팔을 휘저으며 애써 봤다. 안타깝게도 파리는 나갈 생각이 없는지 공중을 빙빙 돌기만 했다.

 

그다음에 내가 생각해 낸 것. 10분만 파리에게 시간을 주자, 그리고 파리가 밖으로 나갔는지를 확인하지 말고 퇴근을 하자, 였다. 파리가 끝까지 나가지 않는다면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는데, 찜찜해지는 게 싫기 때문에 확인하지 않기로 했던 것. 그리하여 나는 파리에게 10분의 시간을 주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왔고 바로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왔던 것. 물론 창문을 닫았고 교실 문을 잠갔다.

 

그런데 교문을 나오면서, 파리가 나가지 않고 교실 안에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도로 교실로 들어가기도 싫었다. 만약 되돌아가는 도중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런 말이 오갈 것이다.

 

“왜 퇴근 안 하시고 오세요?”

 

“저... 파리가 교실에 갇혀 있는 것 같아서 확인하러 왔어요. 파리가 답답할 것 같아서요.”

 

이럴 순 없지 않는가?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다든지 특이한 사람으로 보이는 건 싫다. 

 

오늘 있었던 일을 지금 생각하니 잘못한 것 같네. 창문을 조금 열어 두고 나오는 건데. 그렇게 했어야 했다. 비가 들이칠 수 있어서 창문을 닫고 퇴근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게 문제다. 습관은 정말 무서워.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하니까.

 

제발 습관의 노예가 되지 말자. 깨도 될 때는 말이다.

 

앞으로 똑같은 상황이 생기면 비가 들이치지 않을 만큼 창문을 조금 열어 두고 오기.

 

 

 

 

 

 


5월 28일

 

낮에 욕실에 들어갔더니 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닌다. 집안에 파리가 한 마리라도 있으면 신경 쓰인다. 혹시 밥 먹는 중, 음식에 앉아 비위 상하게 하는 일이 생길까 봐. 파리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화장실 문을 닫아 놓고 재빨리 신문지를 가지고 왔다. 적당한 크기로 접어서 기다렸더니 파리가 욕실 벽에 앉는다. 이때다 싶어 신문지로 세게 쳤다. 파리가 바닥에 떨어졌고 죽은 걸 확인했다. 성공이다. 죽이긴 했지만 고통 없이 죽이기 위해 한 방에 죽을 수 있도록 세게 쳤다. 이건 파리에 대한 나의 배려다.

 

아, 가만있어... 그저께 있었던 일? 그 일을 까먹다니...

 

그저께 파리 한 마리가 교실에 갇혀 답답해할까 봐 걱정하더니 오늘은 파리를 죽인 거야? 내가? 이 두 가지 일을 한 사람이 나 맞아? 인간이 이렇구나. 이런 게 인간이었어. 모순 덩어리.

 

그저께의 ‘나’와 오늘의 ‘나’는 얼마나 다른가? 어느 게 나의 진짜 얼굴인가?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나. 어느 게 진짜 얼굴인지 모르는 나.

 

앞으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을 나쁘게만 보지 않기로 한다.

 

어쨌든 두 파리에게 미안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두 파리 모두 밖으로 날아가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5-05-3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가르치시는군요. 논술인가요?ㅋ

2015-05-31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