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의 첫 시간에도 이야기했습니다만, 나는 자주 사람을 두 종류로 대별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당당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과 반대로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오만한 사람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조합(combination)은 없습니다. 강한 사람한테 비굴하지만 약한 사람한테 관용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원칙 없이 좌충우돌하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135쪽)

 

 

 

 

 

 

2.
재소자들의 문신은 대개 서툴고 조악합니다. 이런 문신이나마 넣는 이유가 벌레들의 문양과 다름이 없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호락호락하게 보이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감옥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바깥에서도 그런 환경에서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교도소 재소자들의 문신은 자기가 험상궂고 성질 사나운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위악’僞惡입니다. ‘위선’僞善과는 정반대를 겨냥하고 있습니다.(266쪽)

 

 

 

 

 

 

3.
위악이 약자의 의상衣裳이라고 한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입니다. 의상은 의상이되 위장僞裝입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 그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주 보는 시위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붉은 머리띠, 문신입니다. 단결과 전의戰意를 과시하는 약자들의 위악적 표현입니다. 강자들의 현장은 법정입니다. 검은 법의法衣의 엄숙성과 정숙성이 압도합니다. 시위 현장의 소란과 대조적입니다.(268쪽)

 

 

 

 

 

 

4.
문제는 위선이 미덕으로, 위악이 범죄로 재단되는 것입니다. 그것 역시 강자의 논리입니다. 테러는 파괴와 살인이고 전쟁은 평화와 정의라는 논리가 바로 강자의 위선입니다. 테러가 약자의 전쟁이라면, 전쟁은 강자의 테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모순된 조어가 버젓이 통용되고 있습니다.(270쪽)

 

 

 

 

 

 

5.
약자의 위악은 잘 보이지만 강자의 위선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보지 못합니다.(273쪽)

 

 

 

 

 

 

6.

그러나 윌리스는 결론 부분에서 이야기합니다. (...) 기존 체제의 위선에 대한 저항이 그 사회를 개혁하는 동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다시 그 체제의 효과적인 작동에 봉사하게 되는 역설에 마음 아파합니다.(275쪽)

 

 

 

 

 

 

7.

아우슈비츠에 대한 최고의 증언자로 평가받는 프리모 레비Primo Levi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이야기합니다. 아우슈비츠를 운영하고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 보통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그것이 일부 괴물들에 의해서 자행된 것이었다면 얼마나 다행한 것일까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의 요점은 위선과 위악의 베일을 걷어내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들은 실패하고 있습니다.(276쪽)

 

 

 

 

 

 

8.

화려한 무대와 의상, 오디오와 비디오의 현란한 조명, 그리고 수많은 언설이 만들어 내는 환상 속에서 우리가 그 실체를 직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실패의 더 큰 원인은 이러한 장치가 아니라 우리들의 인간 이해의 천박함에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애증을 고르게 키워 가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노력이 부족함을 탓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공부는 우리의 동공을 외부로 향하여 여는 세계화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향하여 심화하는 인간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276쪽)

 

 

 


신영복, <담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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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0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른 시간안에 주문할 책.^^.아직 리딩중에 있는 책 너무 많아서요 ..잘 읽었어요.

페크pek0501 2015-05-10 12:4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이 책은 구입해 놓으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거든요. 일부만 읽어도 배불러지거든요.

저도 읽고 있는 책이 많아서, 사고 싶은 책의 4분의 1만 사게 되는 것 같아요.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죠.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세실 2015-05-09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당당하고, 약한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은 합니다^^ 이책 독서클럽 토론도서라 반갑네요~~~

페크pek0501 2015-05-10 12:41   좋아요 0 | URL
세실 님은 부럽단 말이야... 하하~~ 든든한 직장에다가 독서클럽의 취미까지...

제가 부러워하는 분들 몇 분 안에 드십니다. 세실 님은...

저도 님 가까이 살아서 끼고 싶네요. 독학하는 것엔 한계가 있는 것 같거든요.

2015-05-10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5-05-10 19:07   좋아요 0 | URL
하하~~ 제대로 베끼기도 어렵군요. 잘 지적하셨습니다.

3번의 글. 오타였어요.
˝위악이 약자의 의상衣裳이라고 한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입니다.˝로 바르게 고쳤습니다.

이렇게 지적해 주시는 분이 계셔야 합니다.
저도 읽을 책이 쌓여 있는데도 이 책은 꼭 사야돼, 하고 샀답니다.
앞으로도 틀린 곳이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