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에 악성 댓글의 사건을 종료한다는 글을 올렸는데, 다시 이렇게 그것과 관련한 글을 올리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종료하는 것에 변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저에게 어느 님이 올린 페이퍼를 보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나니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글은 남녀평등에 대한 제 생각이 잘못되었고 불쾌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를 오해한 내용이었습니다. 제 닉네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저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쓴 문장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닉네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저에 대한 배려인 듯합니다.)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숲을 보지 않고 한 그루의 나무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여자도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라는 문장만 보고 ‘물론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이라는 문장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글이 제가 쓴 그 문제의 글입니다. 다음의 글로 인해 악성 댓글을 받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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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에 대한 생각
저는 여자도 군대를 갔다 와야 남자와 동등해질 거라고 믿는 1인이에요. 물론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이론적으론 그런 것 같아요. 사무실에서 무거운 것 들어야 할 땐 남자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 몇 번 나누어서 스스로 들어야 하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데이트 비용도 반씩 나누어 내야 하고요... ㅋㅋ 여자로서 혜택은 다 받으면서 남녀평등을 외치는 건, 잘못된 것 같거든요. 님이 좋은 생각거리를 주셨습니다. ㅋ - (어느 서재에 내가 쓴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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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느 서재에 쓴 댓글을 복사 붙이기 해서 제 페이퍼에 넣었던 것임.)

 

 


여기서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이라는 문구를 간과해 버리는 실수를 합니다. 이 문구에는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데 말이죠. 만약 제가 이렇게 썼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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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자도 군대를 갔다 와야 남자와 동등해질 거라고 믿는 1인이에요. 그래야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너희들은 군대도 안 갔잖아?”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여자들 역시 여자라는 이유로 받는 특혜를 기대하지 않고 뭐든 열심히 하려는 마인드가 생길 것 같아서요. 물론 현실적으로 여자가 군대를 가는 게 어렵지요. 체력 면에서 여자는 남자와 같을 수 없으니 군대 생활을 해내기가 힘들고, 또 성추행이나 성폭력 등의 문제도 있으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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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길게 자세히 썼더라면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그 문제의 글은 재미로 ‘페크의 인터뷰’ 형식으로 쓴 것이므로 길게 자세히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니까요.

 

 

여기서 저는 실수 하나를 저질렀습니다. 저 역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남녀 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을 간과하고 제 주위에 있는, 공주 대접만 받으려는 여성들에게만 주목하고 그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한마디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제가 올린 그 글을 보길 바라면서요. 그래서 무거운 것을 몇 번 나누어 들어야 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 주위엔 월급을 많이 받는 여자들이 많은데 그들은 남자들과 함께 있을 때 ‘여자’라는 이유로 돈을 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강의를 듣고 강의한 교수님과 여럿이 식사를 하러 가면 남자가 돈을 내고 여자들은 돈을 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볼 때 월수입이 많지 않은 남자가 식사 값을 내고 돈 잘 버는 여자들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돈을 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문화에 많이 접하다 보니 남자와 동등하게 여자도 데이트 비용을 반씩 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말한 것입니다. 저도 같은 여자로서 여자들이 그렇게 멋있는 여자들이었으면 했습니다.

 

 

결국 무엇에 주목하고 글을 쓰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2.
만약 제가 ‘남녀평등’에 대한 글을 쓸 기회를 얻는다면 이렇게 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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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는 체력 면에서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남녀가 동등한 근로 조건에서 일하는 사회는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링에서 체급이 다른 두 권투 선수를 경기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라이트급 선수와 헤비급 선수를 싸우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과가 뻔한 그것은 공정한 시합이 될 수 없다. 스포츠에서 체급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선수들이 경기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처럼, 일터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힘이나 근육 등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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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가 2011년 12월 16일에 <페미니즘의 도전>이란 책을 읽고 쓴 리뷰가 있습니다. 제 서재에 올린 것인데, 일부만 복사 붙이기로 옮기겠습니다. 제가 쓴 리뷰이니까 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글일 것 같아 옮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저에 대한 불쾌감을 느낀 분들의 마음이 다소나마 풀릴 것 같아서입니다.

 

 

제가 2011년 12월에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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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략)

 


우선 저자는 머리말에서 ‘물음’에 대해 말한다. 모든 물음은 질문하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사고방식을 반영한다는 것.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의 교양과 예의뿐 아니라 권력을 드러낸다는 것.

 

 

(중략)

 

 

내가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니. 그렇다면 평상시 하는 말에도 주의가 필요하겠다. 나의 말에 어떤 편견과 선입감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검토해야겠다. 인간이 인간답게 인간을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저자는 우에노 치즈코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여성주의 사유 방법의 출발은 “그들이 말하게 하라.”였다. 우에노 치즈코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서화된 역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여성의 역사가 출발하다 보니, 그동안 역사는 남성에 ‘의해’ 여성에 ‘대해’ 쓰여진 문서나 재현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남성들이 쓴 것은 여성에 대한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환상을 갖고 있는가와 관련된 남성들의 관념을 웅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남성이 생산한 여성에 대한 지식은 남성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지,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214쪽)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남성에 의해 쓰인 여성의 역사에서 여성의 모습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여성 모두가 갖고 있는 시각은 남성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시각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에 불과함을 말하고 있다.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리면,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다는 것이겠다. 이것이 세월이 흘러도 남성 중심의 사회가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중략)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이란 저서에서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해 쓴 것, “어릴 때 우리 모두 가졌던 환상, 즉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가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을 머리에서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글이 생각났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이란 일시적으로 임시변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를, 얼마든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제도를 마치 늘 존재해 왔고 또 늘 존재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함을 말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게 어디 ‘제도’뿐이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원칙들을 일말의 의심 없이 꼭 지켜야 마땅한 옳은 것들로 수용하여 고정관념의 노예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우리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있으면 곧 2012년이 된다. 예전에 비해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요즘도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여자가 뭐 하러 밤늦게 싸돌아 다니냐?”라는 말로써 여성이 여성을 비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또 신문을 통해 한국인이 이주 노동자를 무시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을 존중하는 세상’에 살기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이 책은 아직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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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을 보실 분은 여기로...   http://blog.aladin.co.kr/717964183/5281993

 

 

 

 

 

 

4.
제 글로 인해 답답했거나 분노를 느낀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합니다. 별 생각 없이 글을 썼으니까요.

 

 

불미스러운 일로 여러분을 피곤하게 만든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함께 전합니다. (저도 더 이상 이런 글을 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댓글을 쓰신 그분에게도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저로 인해 불쾌하셨다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런 제게 에밀 시오랑이 위로 한 줄 주는군요.

 

 

 

 

 

 

 

 

 

 

 

 

 

 

 

 

 

 

똑같은 주제, 똑같은 사건에 대해 나는 하루 동안에도 열 번, 스무 번, 아니 서른 번이나 의견을 바꿀 수가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가장 저질의 사기꾼처럼 ‘진실’이란 단어를 발음할 수 있다!(100쪽)
-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에서.

 

 

 

 

읽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페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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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4-22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의견을 덧붙이면 ; `항상 숲을 봐야만 한다`는 것도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나무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pek0501 님은 나무를 이야기하셨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pek0501 님이 나무를 이야기하셨고, *** 님이 숲을 이야기했다면,
저는 생태계를 이야기하고 싶네요.
http://blog.aladin.co.kr/maripkahn/7485260

페크pek0501 2015-04-23 12:43   좋아요 0 | URL
만약 제가 어느 곳에 여행을 한다면 말이죠
숲을 보길 포기하고 관심 가는 나무 한 그루 잡아서 그것만 관찰하며 여행하겠습니다.
때론 숲보다 나무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설명하자면 어느 나라 전체를 둘러볼 게 아니라 그 나라의 한 도시를 잡아서 그리고 도시 안의 어느 곳을 잡아서 거기서 여러 날을 묵으면서 그곳의 전문가 수준이 될 만큼 그렇게 여행하다가 오겠습니다.

숲에 주목하면 개개의 나무의 가치를 알 수 없거든요.

좋은 봄날 되세요. ^^

2015-04-22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3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