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젯밤 비가 내려서 공기가 깨끗해진 느낌이다. 비가 왔으니 오늘은 어제보다 덜 덥겠지, 하는 생각. 여름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제 낮처럼 기온이 34도가 넘는 여름은 싫어한다. 30도 이하의 여름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름 저녁이나 여름밤이 좋다.
소나기가 그친 아침에 따뜻한 커피가 든 잔을 손에 쥐고 바깥 풍경 - 길이 있고 나무가 있고 하늘이 있는 풍경 - 을 바라볼 수 있다면 즐거운 여름이다.
푸른 나무들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여름.
매미 울음소리가 낭만적으로 들리는 여름.(아니 매미의 웃음소리였으면 좋겠다.)
한 줄기의 시원한 바람이 환한 미소를 짓게 하는 여름.
그런 여름을 좋아할 뿐이지 사우나탕처럼 뜨거운 여름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며칠 전, 폐품을 버리러 아파트 마당에 나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세상의 빛깔은 어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바람이 분다. 부드럽게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의 감촉이 쾌적하다. 시간을 보니 저녁 7시 2분. 딱 좋은 시간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렇게 저녁을 시원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낮의 뜨거운 여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었다.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불행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듯이.
2. 여름은 다른 계절에 비해 일이 많아 더 바쁜 것 같다. 덥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아 실내 바닥에 먼지가 많으니 청소를 자주 해야 하고, 덥기 때문에 샤워를 자주 해야 한다. 이런 일들로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여름의 단점.
3. 여름이다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곧 아버지 제사다. 첫 제사다. 작년 여름에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내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병원에 가 있는 동안 우울하고 힘들었다. 뭘 살 게 있어서 잠깐 밖에 나와 거리의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당신들은 좋겠다. 가족이 병원에 입원해 있지 않아서.’
‘그런데 당신들은 모를 거야.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나도 내가 행복한지 몰랐지. 아버지가 입원하기 전까지.’
4. 살다 보면 속상할 때가 있다. 속상함의 무게를 덜기 위해선 평소 인생을 생각할 때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고 여기기보다 ‘인생은 서글픈 것’이라고 여기는 게 낫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고 여기면 ‘인생은 원래 즐거운 것인데 나는 왜 이래?’ 하는 생각이 들고, 인생은 서글픈 것이라고 여기면 ‘인생은 원래 서글픈 것인데 나라고 해서 예외일 순 없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생은 서글픈 것이라고 생각하자 서글프지 않게 느껴졌다.
5. 사람들은 만족감을 멀리 하며 사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오랫동안 감옥에 있는 죄수가 밖에 잠깐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이런 말을 할지 모른다.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이렇게 누군가를 부러워해 보긴 처음이에요.”라고.
더워서 짜증이 나게 하는 이 햇볕도 눈부신 행복으로 느껴질지도.
이 생각을 하며 ‘감사하자 그리고 행복하자.’라고 내가 나에게 말했다.
6. <고종석의 문장>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문법학자가 옳다고 하는 대로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말을 하면 문법학자가 그 말의 원리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 고종석 저, <고종석의 문장>, 136쪽. |
‘휴대’폰이란 말이 있다. 어느 페이퍼에서 내가 이 말이 틀렸음을 지적한 적이 있다. ‘핸드폰’ 또는 ‘휴대 전화’라고 해야지 영어와 한국어가 합성된 이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아,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보니 ‘휴대폰’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면 국어사전에 오를 수 있겠구나 싶다.
“붉은색이 제 상징의 정원에 공산주의를 처음 맞아들인 것이 언제인지 나는 모른다.”<자유의 무늬>, 15쪽 - 고종석 저, <고종석의 문장>, 133쪽. |
이 문장이 좋아서 한참 들여다봤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가... 그런데 저자는 자신이 쓴 이 문장에 문제가 있다고 하며 고쳐 써야 한다고 한다. (<자유의 무늬>는 저자의 다른 책이다.)
이건 멋 부리려다 조금 오버한 경우입니다. ‘상징의 정원’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 말 자체는 멋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정원 하면 대뜸 떠오르는 건 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문장에서는 이념을, 공산주의란 이념을 꽃에 비유한 셈이 돼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념과 꽃의 매치는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제가 다시 쓴다면 ‘제 상징의 방에’ 또는 ‘제 상징의 집에’ 또는 ‘제 상징의 마당에’ 이렇게 쓸 겁니다. - 고종석 저, <고종석의 문장>, 133쪽. |
멋지다. 저자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것도 멋지고 이렇게 좋은 표현을 할 줄 아는 저자의 능력도 멋지다. 요즘 저자에게 반해서 흥미롭게 이 책을 읽고 있다.
이런 글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씨가 후보로 뽑히기를 바란다.”<자유의 무늬>, 35쪽 앞서 이야기했듯, ‘개인적으로’는 삭제하세요. 필요 없는 말입니다. ‘뽑히기를’에서 ‘를’이 필요할까요? 격조사라 할지라도, 그게 없이도 말이 통하면 삭제하세요. ‘후보로 뽑히기 바란다.’ 좋은 문장은 간결한 문장입니다. 물론 간결함 때문에 명확성이나 섬세함을 잃어서는 안 되겠지만, 좋은 문장의 특징 하나는 간결함입니다. - 고종석 저, <고종석의 문장>, 145쪽. |
난 왜 이런 책이 재밌는지 모르겠다. 책을 한 번 잡으면 놓고 싶지 않게 만드는 책이다.
7. 최근 내가 저렴하게 구입한 책이 두 권 있다.
<마음> : 나쓰메 소세키 (지은이) | 오유리 (옮긴이) | 문예출판사 | 정가 9,000원 , 판매가 4,500원
나는 이 책을 어떤 이벤트(책 3만원 이상 구입시 주는 혜택)로 3,900원에 구입했다.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지은이) | 김춘미 (옮긴이) | 민음사 | 정가 8,000원, 판매가 4,800원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작가라서 가격이 저렴할 때 사 두려는 생각으로 구입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도련님>이란 소설을 읽고 좋아하게 된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사양>이란 소설을 읽고 좋아하게 된 작가.
여름이 가기 전에 읽을 수 있으려나. 할 일은 많고 시간은 후딱 간다.
8. 이런 책이 있구나. 신문을 보니 이런 신간이 나왔다. 이나미 저, <행복한 부모가 세상을 바꾼다>. 이 책에 따르면 부모를 이렇게 나눌 수 있다고 하네. 착취형 부모와 매니저형 부모, 도덕주의 부모와 방임주의 부모, 일중독 부모와 게으른 부모.
나는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 보니 방임주의 부모일 것 같다.
‘방임주의’ 의 뜻 : 돌보거나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태도.
내가 이 정도는 아니지만 방임주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큰애가 한 말 : 엄마는 방임주의자야. 난 엄마가 시켜서 공부한 게 아니라 나 스스로 공부한 거야.
작은애가 한 말 : 엄마, 나한테 관심 좀 가져 봐.
하하하~~~.
이것에 대한 반론.
남편이 하는 말 : 애들한테 하는 것의 반만이라도 나한테 해 봐.
남편이 생각하기엔 내가 애들한테 무척 잘해 준다는 말이겠다. 그러니 내가 방임주의 부모는 아닐 것 같네.
“우리 가족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다만 저는 저 자신에게 가장 관심이 많습니다요. 제일 궁금한 건 저의 미래입니다.”
9. 이 책을 사고 싶다.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영원의 철학> : 시대를 초월한 영성의 고전. 동서고금 420여개의 보석 같은 인용문을 통해 ‘영원의 철학’을 다채롭게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1945년 출간 이후 끊임없이 언급되고 재인용되었으며, 21세기에도 그 깊이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올더스 헉슬리의 방대한 독서량과 탁월한 안목은 27개 주제 속에 배치한 멋진 인용문들을 통해 절묘하게 드러나며, 해설에서 묻어나는 사유와 체험의 깊이는 《멋진 신세계》의 천재 작가로만 알고 있던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자극과 충격을 안겨준다. 인용문만 따로 골라 읽어도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흥미로운 인문학적 보고이자 탁월한 종교·명상서이기도 하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
인용문만 따로 골라 읽어도 좋다니. 동서고금 420여개의 인용문이 들어 있다니. 게다가 저자가 <멋진 신세계>의 저자라니.
이 책을 꼭 구입해서 정독하고 말겠다.
10. 이런 책도 나왔구나. 알랭 드 보통 저, <뉴스의 시대> 그리고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뉴스의 시대> : 정치 뉴스는 왜 그리 재미없게 느껴지고, 경제 뉴스는 왜 그렇게 딱딱하게만 느껴지는지, 왜 우리는 셀러브리티의 연애 소식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격변은 어쩌면 그렇게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는지, 끔찍한 재난 뉴스가 역설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따져 묻는다. - (알라딘, 책소개)에서. |
알랭 드 보통의 책은 그만 읽어야 할까, 또 읽어야 할까? 연애와 사랑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내가 많이 배운 작가인데 ‘뉴스’에 대해선 어떤 가르침을 줄까 기대된다.
밀란 쿤데라의 책은? 이 책은 152쪽의 장편소설이라고 하니 구미가 당기네.
(여름을 덜 지루하게 보내는 방법 : 시원한 바다에 빠지듯 책에 빠져 살기. 책에 빠져 살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와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