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왜 그리 말을 못하는지 답답해 죽겠다. 삼각관계에서 자신의 의사 표시를 잘 못할 뿐만 아니라 우유부단한 경우도 있다. 혹시 이런 게 작가의 의도일까? 시청자들의 속을 태움으로써 시청률을 높일 생각일까? 그 반대로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줌으로써 시청률을 높이면 안 될까?

 

 

예를 들어 보겠다.

 

 

부유한 집안의 두 남녀는 결혼하기로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가 파혼을 한다. 이유는 상대 여자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는 따로 있는데 바로 이혼녀다. 하지만 파혼 당한 여자는 남자를 사랑한다. 아니 자신이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이혼녀에게 남자를 빼앗길 수 없다며 앙심을 품는다. 세 사람은 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그녀는 이혼녀에게 중요한 서류를 훔친 누명을 씌워서 회사를 그만두게 만든다. 그런데 이혼녀가 누명이 벗겨져서 다시 회사에 근무하게 된다. (특정한 드라마의 내용이 아니라 내가 여러 드라마를 보고 생각나는 대로 써 본 것임.) 

 

 

이럴 때 이런 대사가 오간다.

 

 

A(파혼 당한 여자) : 당신 두 사람을 만나게 내버려 두지 않겠어요. 그 여자가 당신 앞에 다신 나타나지 못하게 만들고 말 거예요. 제발 정신 차려요. 당신이 만날 사람은 그 이혼녀가 아니라 나란 말이에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걸 모르겠어요? 내가 당신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

 

 

B(파혼한 남자) : 제발 그만 둬요. 우린 끝났어요. 난 그 사람을 사랑해요.

 

 

B남자의 말은 요걸로 끝이다. 어휴~ 답답해. 이런 장면을 봤다면 나처럼 답답해 할 시청자가 많지 않을까.

 

 

그럼 B남자가 어떻게 말해야 나 같은 시청자가 시원할까. 바로 요렇게.

 

 

A(파혼 당한 여자) : 당신 두 사람을 만나게 내버려 두지 않겠어요. 그 여자가 당신 앞에 다신 나타나지 못하게 만들고 말 거예요. 제발 정신 차려요. 당신이 만날 사람은 그 이혼녀가 아니라 나란 말이에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걸 모르겠어요? 내가 당신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

 

 

B(파혼한 남자) : 사랑이란 게 그렇게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당신도 알잖아요. 난 이미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이 나를 포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 여자를 포기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이 다신 나타나지 못하게 만들고 말 거라고요? 만약 내가 어디론가 사라진다면 당신은 어떨 것 같아요? 내가 그리워지겠죠. 마찬가지예요. 그 여자가 어디론가 사라진다면 난 그 여자를 그리워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더 사랑하게 되겠죠. 원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되면 감정이 더 강렬해지는 법이니까요.

 

 

A(파혼 당한 여자) : (침묵함...)

 

 

B(파혼한 남자) : 그리고 이런 당신을 난 신뢰할 수 없어요. 정이 떨어질 뿐이에요. 그러니 그만둬요. 추해요. 이러면 이럴수록 내가 멀어진다는 걸 왜 모르죠?

 

 

ㅋㅋㅋ 아, 시원하다. 이렇게 시원하게 대사를 날려 줘야지~.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한 여자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와서 그 여자를 만나러 가는 아내. 어느 카페에서 두 여자는 만난다.

 

 

이럴 때 이런 대사가 오간다.

 

 

A(그 여자) : 이미 당신의 남편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나를 사랑해요. 그러니 이혼해 줘요. 그게 당신한테도 좋잖아요.

 

 

B(아내) : (분해서 손을 부들부들 떤다. 그러다가 카페 테이블에 놓여 있는 컵의 물을 그 여자에게 끼얹는다. 그러고 나서 반말로 말한다.) 결혼 생활이란 게 사랑만으로 유지되는 건지 아니? 니가 뭘 안다고 감히 나한테 이혼해라 마라 하는 거야? (침묵함...) 나는 절대 이혼 안 해. (아내는 계속해서 분하다.)

 

 

어휴~ 답답해. 이런 장면을 봤다면 나처럼 답답해 할 시청자가 많지 않을까.

 

 

그럼 B아내가 어떻게 말해야 나 같은 시청자가 시원할까. 바로 요렇게.

 

 

A(그 여자) : 이미 당신의 남편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나를 사랑해요. 그러니 이혼해 줘요. 그게 당신한테도 좋잖아요.

 

 

B(아내) : 너 같은 여자들 만나러 다니느라 내가 좀 피곤한데 우리 짧게 끝내자. 혹시 우리 남편이 너한테도 너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니?

 

 

A(그 여자) : (어리둥절하다. 침묵함...)

 

 

B(아내) : 나한테도 결혼 안 해 주면 죽는다고 해서 진짜인 줄 알고 나 결혼했어. 그런데 알고 보니 사귀는 여자마다 그런 말을 했더군. 그러니까 우리 남편 말을 다 믿지 마. 그리고 우리 남편이 싫증이 좀 많은 편이라 한 여자랑 오래 못 가. 그러니 일 년 이상 사귀고 나서 그때도 두 사람이 지금과 똑같은 마음이면 그때 다시 나한테 연락해. 그때 이혼해 줄게. (일어선다.) 아, 그리고 내가 한 말을 남편한테 확인하려 하면 아마 아니라고 잡아뗄 거다. 그 말을 믿든지 말든지 그건 너의 자유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도 내가 알 바 아니야.

 

 

(B는 A에게  화가 나서 이렇게 거짓말을 한 것임.)

 

 

ㅋㅋㅋ 아, 시원하다. 이렇게 시원하게 대사를 날려 줘야지~.

 

 

 

 

 

2.

내가 드라마 작가라면 이렇게 대사를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대사를 썼다간 그 드라마가 망하겠지. 밀고 당기는 게 없어 재미가 없을 테니까. 아니다 망할 일은 일어나지 않겠다. 난 드라마 작가가 되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이 글을 쓰고 나니, 시원하게 날린 대사를 받는 쪽이 아프겠구나 싶다. 또 삼각관계에선 어느 한 쪽은 아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은 탈락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런데 자신이 탈락을 할 것임을 알게 되면 시간을 길게 끌지 말고 어느 순간엔 포기해 버려야 현명하다. 포기하지 못하고 이룰 수 없는 일을 오래 잡고 사는 건 나중엔 후회할 일이 될 뿐이다.  

 

 

탈락하게 되는 사람이 누가 되든지 그에게 응원의 말을 하고 싶다. 그 일로 이 세상이 끝날 것 같지만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라는 말로. 사랑은 또 찾아올 수 있다, 라는 말로. 더 살아 보면 사랑은 별것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라는 말로.

 

 

 

 

 

3.

‘따로 사랑하는 이가 있는 사람’을 쫓아다니는 사람을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사랑이 어디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인가.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데, 자신의 노력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이 어리석음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심리학자만큼 인간에 대해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에밀 시오랑은 말한다.

 

 

 

 

심리학자는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경험하며 스스로 터득하여 되는 것이다. 어떤 이론도 심리적 신비를 푸는 열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 심리학자가 되려면 행복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불행을 경험해야 하고, 야만인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세련되어야 하고, 사막에서 살고 있는지 불구덩이에서 살고 있는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절망해야 한다.

 

- 에밀 시오랑 저,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221쪽.

 

 

 

 

“심리학자가 되려면 행복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불행을 경험해야 하고, (…) ”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은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군대에서 충분히 힘든 생활을 했다면 편안한 생활이 뭔지 이해하게 되고, 군대에서 충분히 불행한 생활을 했다면 행복한 생활이 뭔지 이해하게 될 것 같다. 마음의 지옥을 체험한 사람이 마음의 천국을 저절로 이해하듯이.

 

 

사람들은 대체로 실연당할 위기에 처하면 실연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나는 실연당해 보는 것이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연당한 경험은 삶에 도움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내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다음의 글이 있다.

 

 

 

 

불행에 단련되어 있는 편이 오히려 불안이나 우연히 발생하는 괴로운 사고를 줄이고, 죽음의 고통을 완화하며, 괴로움을 억제한다.

 

- 에밀 시오랑 저,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209~210쪽.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불행에 전혀 단련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위태로워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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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3-16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언니도 드디어 드라마의 세계에 입문하셨군요!ㅋㅋ
사실 드라마의 묘미는 대사 받아치기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있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작가들은 어느 대목에서 싯적이며, 의미있는 대사를 어떤 인물이
구사하게 만드느냐에 혈안이 돼 있는 것 같아요. 주로 주인공급이 하지만요.
그 대사 과잉의 제왕은 아무래도 김수현 작가인 것 같은데 흔히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춰주긴 하지요. ㅋ

그런데 저 에밀 시오랑 굉장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읽어 볼까 하다가
읽다가 우울해지면 좀 힘들 것 같아 말아버렸는데 나중에 함 읽어봐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4-03-17 15:49   좋아요 0 | URL
ㅋㅋ 입문이라니요?
요즘 재밌는 드라마를 못 만나서 김수현 작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라는 주말드라마만 보고 있어요. 작가의 통찰에 감탄하며 봅니다.

1. 아이의 새엄마로 들어온 여자가 연기를 잘 해서 재밌어요.
외동딸로 자라서 버릇이 없고 형제가 없이 자라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할 줄 모르죠. 또 피아노를 전공해서 인문학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인지 아이(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지요.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어 하는 아이를 연민을 가지고 볼 줄 모르고 엄마만 찾는다고 못마땅해 하지요. 아이로선 당연한 것인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지라...

2. 버릇 없이 커서(형제들과 마찰을 일으킨 적도 없어서) 자신이 화가 났을 때 그것을 통제하는 능력이 없지요. 형제라도 있었으면 최소한 양보, 자제, 라는 걸 배우고 컸을 텐데요.

3. 게다가 친정아버지는 사회에 전재산을 기부해서 신문에 사진이 나오기도 하는데 아마 그는 과시욕을 즐기고 권위적인 듯해요. 김수현 작가는 이미 통찰한 것이지요. 사회에 전재산을 기부한다고 해서 인품까지 훌륭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요.

4. 재벌집으로 이혼녀가 며느리로 들어가는 게 무리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는지 결혼식 올리자마자 이혼한 남자(준구 역)를 만든 걸 보고 역시 김수현이구나, 했어요. (준구도 재혼이었죠.)

5. 시어머니가 아무리 며느리가 밉더라도 맘에 들지 않더라도 이혼시키고 나면 결국 가장 피해자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손녀라는 것, 명쾌한 교훈이에요.

6. 김수현 작가의 탁월함은 이혼과 재혼이 많은 요즘, 이혼과 재혼의 가장 피해자인 아이에게 초점을 두고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를 잘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에요.
(단순함에서 의미심장함을 발견하는 장면이지요.)
아직 이런 드라마를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획기적이죠. 감탄!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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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뿐만 아니라 드라마(대중예술이니까)를 포함해 모든 예술은 수학적입니다. 작가의 치밀한 계산은 필수라는 점에서요.
(쓰고 보니, 길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