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의 내용과 꿈의 만족 중 중요한 것은
신경숙 저,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그는 매일 커피집에 커피를 마시러 간다. 그의 아내가 항상 따라나선다. “그 커피집은 예전에 그가 살던 집이다. 그가 대표로 있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가 가진 재산 중에서 맨 먼저 경매에 부쳐졌던 게 그 집이다.”(144쪽) 그 집이 커피집이 되었다. “커피집 주인은 젊은 날부터 이런 커피집 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커피 곁에 있었고 커피 공부를 해왔다고 했다. 꿈이 이루어진 지금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행복하다고 했다.”(145쪽)
“젊은 날 그는 회사 일로 일 년의 반은 집을 비웠다. (…) 그때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자동차 안에서 샌드위치로 때우는 일이 허다했고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밤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일이 숱했다.”(149쪽) “그때의 그는 지금은 군의관인 아들이 한때 시디가게를 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하자 아들에게 실망해 한동안 아들을 보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젊은 놈의 꿈이 고작 그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화를 낼 가치도 없이 느껴져 아예 얼굴을 보지 않았다”(150쪽)
그러던 그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으면서 왜 여길 하루도 빼놓지 않고 와요?, 하는 아내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저 사람(커피집 주인)을 보고 있으니 이런 커피집을 하면서 살았어도 좋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151쪽)
시디가게를 하면서 살고 싶다던 아들의 작은 꿈에 실망해 화가 났던 그가 커피집을 하면서 살았어도 좋았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나이가 들자 자신이 즐겁다고 느끼는 삶을 사는 게 최상의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나이가 들어서 깨닫지 말고 미리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시디가게를 하면서 살고 싶다던 아들의 작은 꿈을 지지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나이가 들면 거창한 꿈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나 보다. 중요한 것은 꿈의 ‘내용’이 아니라 꿈의 ‘만족’임을 알게 되나 보다.
나는 현명한 삶과 즐거운 삶 중에서 어떤 게 중요한가를 생각하다가 현명하기보단 즐거운 게 낫지, 하고 판단한 적이 있다. 즐거운 삶과 비교할 때 현명한 삶에 후회가 따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현명한 삶이 나중에 보면 현명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현명하다고 여기는 삶을 선택할 경우, 그것이 정말 현명한 삶인지를 의심하고 따져 봐야 한다.
웃고 떠든다고 해서 즐거운 삶이 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고 신나게 논다고 해서 즐거운 삶이 되는 건 아니며, 직장인이 근무를 하지 않고 신나게 논다고 해서 즐거운 삶이 되는 건 아니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즐거운 삶이란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만족’할 수 있는 삶이리라.
2. 이미 경험한 맨 밑바닥이 있다는 것은
신경숙 저,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도 있다.
N은 세계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구성작가 자격으로 며칠째 음식의 천국이란 나라에 왔다. “어제 저녁식사는 이 여행의 마지막 식사였다. 자연히 회식 분위기가 되었다.”(118쪽) “식당의 종업원이 마지막 요리라고 하면서 튀김요리를 내왔다. 막 튀겨 내온 듯 훈기 어린 튀김을 너도나도 하나씩 집어들었다. (…) N이 집기를 망설이고 있는데 정피디가 냅킨에 튀김 한 개를 싸서 N에게 내밀었다. 닭 목뼈처럼 뼈가 둥글고 긴 걸 보니 어쨌든 이상한 벌레는 아니겠지. 싶긴 했다. (…) N이 튀김 한 개를 거의 다 먹어갈 때였다. 누군가, 근데 이건 뭘 튀긴 거길래 이렇게 바삭하냐고 물었다. 아는 이가 없는 듯했다. 모두들 그제야 정말 이게 뭐냐고 물으며 다시 튀김을 한 개씩 집어들었다. 통역자가 종업원에게 이 나라 말로 튀김의 정체를 묻는 듯했다. 종업원에게 무슨 대답을 들었는지 통역자가 얼른 N을 바라보았다.”(120쪽~121쪽)
“-뭐래요?
-……
-뭐라고 하냐니까요?
-저 그게…… 그러니까…… 뱀이라고 하네요.”(121쪽)
그 다음날 뱀을 먹인 죄로 N에게 미안한 정피디가 말했다.
“-어젯밤엔 진짜 미안했어. 나도 (그게 뱀인 줄) 몰랐어. 알았다면 그랬겠어.
N은 다른 사람들을 찾는 듯 정피디를 외면했다. (자신에게 뱀을 먹인 일로 화가 나서)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N…… 어젯밤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어쩌면 큰 힘이 되어줄지도 몰라. 이제 겨우 우리가 서른인데 말이야.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이 세상일이 힘겨울 때면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나는 뱀도 먹은 년이다.
정피디는 아주 진지했다, 어제 밤새도록 생각해낸 말인 모양이었다.
-뱀도 먹은 년인데 …… 내가 뭘 못 하겠냐, 이렇게 생각하면 N은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야. 안 그래?”(121쪽~122쪽)
‘나는 뱀도 먹은 년이다!’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을 것이란 얘기다.
큰 슬픔을 겪어 본 사람은 웬만한 슬픔 따위엔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니, ‘이미 경험한 맨 밑바닥’이 있다는 것은 좋을 수 있다.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 지금의 불행이 예전의 그 불행보다 견디기 낫다는 생각이 위안을 줄 것이다. 오히려 늘 높은 곳을 향해서만 올라갈 뿐, 한 번도 낮은 곳으로 내려간 적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위태로워 보이는 게 아닐까.
우리의 삶이 보다 나은 삶을 향해 올라가는 쪽으로만 생각해선 안 될 것 같다. 올라가는 삶만 있는 게 아니라 내려가는 삶도 있는 것이니까. 현재의 삶이 가장 만족스런 상태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월수입이 줄어들 수도 있고, 직장을 그만두게 될 수도 있고, 건강에 이상이 생겨 환자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내려가지만 않게 된다면, 현재의 삶이 자신의 인생에서 최상의 행복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내가 수영을 할 줄 알게 되었을 때 물에 대해 겁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깊은 곳에서 수영하게 되었는데, 수영을 멈추려고 할 때 밑바닥에 내 발이 닿지 않아 당황하며 겁이 난 적이 있다. 물을 먹으면서 발버둥을 치다가 어느 순간 내 발이 밑바닥에 닿았을 때 그제야 발로 밑바닥을 뻥 차고 헤엄을 쳐서 간신히 몸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할 수 있었다. 맨 밑바닥을 경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생도 이와 같으면 좋겠다. 인생의 맨 밑바닥을 경험한 자는 위를 향해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점점 나아지는 삶을 살아서 맨 밑바닥을 경험한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뱀을 먹은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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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나서>
이런 단상을 쓰게 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