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 : 또 한 주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마술을 부려서 높은 시간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에 머무른 듯하다. 앞으로 또 그런 마술을 부려서 한 달이 금방 가고, 이 여름이 금방 갈 것 같다. 시간의 마술에 우리가 속아 넘어가는 것만 같다. 왜 그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바쁜 일상에 쫓겨 이곳 서재에 소홀하다 보면, 어느새 글을 올린 지가 한참 되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왜 그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2. 시간의 흐름 : 시간의 흐름에 대한 느낌은 다를 때가 많다. 관심 있는 책을 읽을 때와 같이 재밌는 시간은 긴 시간이라도 빨리 가는 것으로 느껴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와 같이 지루한 시간은 짧은 시간이라도 천천히 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각각의 시간의 ‘의미 없음’과 ‘의미 있음’의 차이일까.
3. 시간의 의미 : 나는 여행 가기 전날인 어느 날에 여행 가방을 싸면서 여행을 가기도 전에 미리 행복한 적이 있다. 오늘 커피를 타면서 커피의 맛을 보기도 전에 미리 행복했다. 오늘 넷북을 켜면서 글을 쓰기도 전에 미리 행복했다.
<어린 왕자>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어린 왕자는 이튿날 다시 왔다. 그러자 여우가 말했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오면 더 좋을 거야.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벌써 안절부절못하고 걱정이 될 거야.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나는 몇 시에 마음을 곱게 치장해야 할지 알 수가 없잖아…… 예절이 필요한 거란다.”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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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행복이란 : 때로는 행복이란, 큰 액수의 재산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배고플 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 끼의 식사 값에서 얻어지는 수가 있다. 또 행복이란, 누가 주느냐에 따라서 백 송이의 장미꽃보다 한 송이의 장미꽃에서 얻어지는 수가 있다.
“아저씨 별의 사람들은 한 정원 안에 장미꽃을 5천 송이나 가꾸지만…… 그들이 찾는 것을 거기서 발견하지는 못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단 한 송이의 장미꽃이나 물 한 모금에서 얻어질 수도 있어…….”
“그야 물론이지.”
내가 대답했다.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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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길들이기 :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한 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에 베란다가 없어서 거실에서 화초를 키우고 있다. 거실 바닥에 물이 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기에 물을 주는 일이 간단하지가 않다. 화분을 부엌이나 욕실로 가져가서 물을 흠뻑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화초가 잘 자란다. 일을 줄이고 싶은 나는 사실 화초를 없애야 한다. 그런데 나와 십 몇 년을 함께 해 온 세월 때문에 마치 식구처럼 느껴져서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가 키운 모든 화초는 내게 특별한 것이다. 어느 가게에서 팔고 있는 화초와 아주 다른 존재인 것이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정성껏 물을 주며 보살펴 준 화초이므로. 내가 길들인 화초이므로.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물었다.)
“(…) ‘길들인다’는 건 무슨 뜻이지?”
“(…)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란다.”
“관계를 맺는다고?”
“(…)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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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장미꽃들을 다시 만나러 갔다.
“너희들은 내 장미꽃들과는 조금도 같지 않아.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를 길들이지 못했어. 내 여우도 너희와 마찬가지였어. 수만 마리의 다른 여우와 같은 여우에 지나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 여우를 내 친구로 삼으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었어.”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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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너희들은 아름답긴 하지만 속이 비었어. 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내 장미도 지나가는 행인에겐 너희들과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내게는 그 꽃 한 송이가 너희들 모두보다 더 중요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바람막이를 씌워 주고 바람을 막아준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이 그 장미꽃이었으니까. 그리고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놓는 것도, 때로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도 귀기울여 들어준 꽃이기 때문이지.”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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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음으로 느끼기 : 아는 선배에게 내가 물은 적이 있다.
“선배님은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가장 좋으세요?”
그랬더니 그 선배가 웃으며 답했다.
“봄은 봄대로 좋고, 여름은 여름대로 좋고, 가을은 가을대로 좋고, 겨울은 겨울대로 좋아.”
나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제가 물으나마나한 거잖아요. 그런 싱거운 대답을 하시다니.”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누군가가 그렇게 묻는다면 그 선배처럼 대답하게 될 것 같다. 정말, 봄은 봄대로 좋고, 여름은 여름대로 좋고, 가을은 가을대로 좋고, 겨울은 겨울대로 좋다. 이제야 사계절이 다 좋다는 것을 그 선배처럼 알겠다.
며칠 전, 여름 날씨에 반해 버렸다. 장마철이라 무더위가 시작되지 않아서겠지만 날씨가 참 좋다고 느꼈다. 저녁에 산책을 해 보면 얼마나 좋은 날씨인지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비 개인 날에 걸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와 피부에 닿는 공기의 감촉이 신선해서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여행을 가게 된다면, 저녁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할 수 있는 여름에 가리라. 따뜻한 겨울도 좋지만 시원한 여름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그동안 여름의 매력을 모른 것은 무더위로 인해 그 계절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다른 계절도 그 좋은 점을 마음으로 느껴 보는 여유를 갖는다면 그 매력을 알게 될 것이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 내 비밀을 일러 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다.”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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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름이 아름다운 이유 : 여름이 덥기만 하다면 그래서 시원한 순간은 한 번도 없다면 여름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여름에 가장 좋아하는 건 이런 것.
- 밖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대낮인데, 거실의 찬 바닥에 누워 책을 보는 것.
- 누워 책을 보면서 창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의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것을 느끼는 것.
-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이 오는 것.
- 잠에서 깨어나 욕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하는 것.
- 저녁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것.
- 운동으로 흘린 땀을 씻기 위해 샤워하는 것.
- 문득 창밖을 보았는데 비 오는 풍경이 보이는 것.
여름이 아름다운 것은 그 무더위 속에서도 시원한 순간을 선사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여름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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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짧은 행복 : 한때 혼자 살고 싶었던 적이 있다. 혼자서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주부라면 누구나 혼자서 자유롭게 사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지 않을까.
혼자 살면 우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애들과 남편을 위한 아침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늦잠을 실컷 잘 수 있겠다. 내 소원 중 하나는 스스로 잠을 깨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것. 낮에 일어나도 누가 뭐라 하겠는가. 늦잠을 자도 되니까 밤에 늦게까지 책을 보든지 티브이를 봐도 되겠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해도 누가 뭐라 하겠는가. 밥상을 차리기 싫으면 밖에 나가 한 끼 사 먹어도 되겠다. 누라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막상 혼자 있는 경험을 해 보면 꼭 좋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느 여름에 남편과 애들이 시집 식구들과 물놀이를 간 적 있다. 나는 그때 논술수업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집에 남아 이박 삼 일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물론 처음엔 기뻤다. 신났다. 내 소원이 이뤄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환상은 밤이 되자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밤에 혼자서 자려니 문단속을 반복해서 살피게 되고, 무슨 소리만 나도 도둑인가 싶어서 신경이 쓰여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혼자 살면 불편한 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삼 일째 저녁이 되자 이젠 식구가 집에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모든 식구가 밖에 나가고 없는 월요일 아침을 좋아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네 식구가 함께 지내다가 월요일 아침에 혼자 남는 건 즐겁기 때문이다. 그 즐거운 자유가 좋다. 그런데 그 즐거움은 저녁때가 되면 돌아오는 식구가 있다는 것을 전제해서라는 걸 이젠 안다. 직장인들이 휴일이 즐거운 것은 출근하는 평일이 있다는 걸 전제해서인 것처럼.
내가 아는 한, 행복한 시간은 길어지면 그 행복이 물기가 증발하듯 날아가 버린다. 짧은 시간의 행복일 때만이 행복일 수 있을 뿐, 길게 매일 가지는 행복은 없다. ‘행복은 짧음’, 이게 행복의 속성인지 모른다.
* 맺는말
1번에서 8번까지의 글에서 관통하는, 공통적인 것은 ‘무엇에 의미 두기’이다. 무엇에든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은 그것 자체와 전혀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물건이 특별한 물건이 되는 것은 ‘추억의 물건’이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듯이.
“예절이 뭐야?”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우가 대답했다.)
“그것도 너무나 잊혀진 거지.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가령 내가 아는 사냥꾼들에게도 예절이 있어. 그들은 목요일에 동네 처녀들하고 춤을 춘단 말이야. 그래서 목요일은 내게 있어 기막히게 좋은 날이란다! 나는 포도밭까지 소풍을 가지.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고 해 봐. 그저 그날이 그날 같고, 나는 휴가라는 게 없을 거 아니니?”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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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처럼 삶이란, 매일 똑같은 목요일이 되지 않게 무엇에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의미를 가지고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만약 그렇다면, 좋은 쪽으로 의미를 가지고 사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겠다고.
이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인식하면 삶은 언제든지 달라져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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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순)
(인용문은 하서 출판사의 책에서 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