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슬럼프 : 글을 이 주일 만에 올린다. 나는 그 이 주일 동안 무엇을 했던가. 열흘 동안은 책을 읽으며 지냈다. 이번에 세 권의 책을 구입했기에 새 책에 빠져 지냈다. 그 다음 요즘 며칠 동안은 글을 썼다. 그런데 결론을 어떻게 내야 할지 몰라서 완성을 못했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주제로 썼는데, 그 주제에 대한 나의 사고력을 나타낼 적합한 글이 생각나질 않아서다. 이럴 때 나는 슬럼프를 경험한다. 나의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때이다. 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는 어떤 좋은 생각이 번쩍, 하고 머리를 스치길 기다릴 수밖에.
2. 마음을 안심 시키기 : 지난 8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무명 여배우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이 기사(조선일보, A10, 2011. 10. 08.)에 의하면, 그 무명 여배우는 TV에 출연하면서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가, 오랫동안 방송 출연 기회가 없어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자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세상의 주목을 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주목을 받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는 ‘스포트라이트 증후군’ 환자가 되는 일이 늘고 있다고 한다. 연예인, 정치인만이 아니라 고위 관료, 성공 가도를 달리던 직장인들에게도 번지는 추세라고 한다. 자신의 위치가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언젠가 내려올 때를 대비하며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모기를 생각했다. 며칠 전, 잠을 자려는데 모기 한 마리가 앵~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기 소리를 듣자 모기에 물릴까 봐 잠이 오지 않았다. 생각한 끝에 모기가 나가기를 바라며 방문을 십 분간 열어 놓았다가 닫았다. 그랬더니 안심이 되어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물론 모기가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는 알 수 없었고,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모기가 나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안심 시켰기 때문이다. 이때 나의 마음이 타자처럼 느껴진다. 내 안에 또 다른 ‘나’가 있는 것만 같다.
‘마음을 안심 시키기’, 이것이 무척 중요함을 느끼곤 한다. 어떤 일로부터 공포나 두려움 또는 근심을 갖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도 자신의 마음을 다독여서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일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마음 편히 살 수 있다. 스트레스와 우울증, 그리고 이어지는 자살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안심 시키기에 실패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해도, 사업에 실패해도,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안심 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모기 한 마리에 잠을 설치게 될까 봐 방문을 열어 두었던 그 노력처럼.
우리에게 좋은 취미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도 그 취미가 ‘마음을 안심 시키기’ 역할을 해 줄 것 같아서가 아닐까. 취미에 빠져 즐겁게 살다보면 스트레스와 우울이 날아가서 마음을 안심 시킬 테니까. 나의 글쓰기 취미도 그랬으면 좋겠다.
3. 글쓰기의 무게 :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이것은 카프카가 문학 친구였던 오스카 폴라크에게 보낸 편지에 있는 글이다. 그는, 독서가 우리에게 강한 충격을 가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충격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카프카의 생각이다.
나는 충격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재미가 있는 책을 좋아한다. 여기서 재미란 배꼽을 잡고 웃을 정도의 재미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지적 즐거움과 같은 재미를 말한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재미없는 책을 괜히 읽었어.’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은 책값도 아깝고 책 읽은 시간도 아까웠다. 내가 즐겨 읽는 책들을 살펴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들이 많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은 유익함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어쩌면 책을 통해 깨달음으로써 충격을 받을 수도 있겠다. 내가 쓰고 싶은 글 역시 깨달음이 있는 글이다.
이런 생각으로 글쓰기의 무게를 느끼곤 한다. 그 무게가 무거워 내가 글을 많이 쓰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가벼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4. 깨달음 : 살면서 깨닫게 되는 일이 있다. 나에 대해서, 또는 타인에 대해서, 또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 또는 세상일에 대해서 어떤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늘 놀라며 사는 게 인생이 아닐까, 할 정도다. 그 깨달음을 책을 통해서도 맛볼 수 있다는 게 즐겁다. 내가 책값을 아까워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5. 가을 : 이번 가을은 내게 조용히 왔다. 이번 가을은 요란하지 않아서 쓸쓸함이 묻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이 계절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가을을 타는 사람이 되는 건 고독한 일이니까. 이번 가을을 타지 않은 것은 꽤 맘에 드는 책을 세 권 구입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책들을 읽으며 가을이란 계절을 잊었다. 어쩌면 이젠 내게 가을을 탈 정도의 촉촉한 감수성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이십 대에, 여름휴가를 늦게 얻어서 이미 폐장된 해수욕장에 간 적이 있다. 8월 중순쯤이면 폐장하는 것을 몰랐다. 피서객들로 붐빌 줄 알았던 바다는 텅 비어 있었고, 모래밭에는 피서객들이 남긴 소지품과 쓰레기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가을 바닷가에선 피서객들이 흘리고 간 목걸이나 반지를 많이 주울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가을 바닷가는 쓸쓸한 풍경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람들은 없고 그들이 다녀간 흔적만 있는 곳. 가을이 오는 이맘때면 그곳 가을 바닷가가 생각나곤 한다. 마치 가을의 전형적인 풍경처럼 느껴져서다.
앞으로 올 겨울도 봄도 여름도 이 가을처럼 쓸쓸함이 묻어나지 않게 조용히 왔으면 좋겠다.
6. 내 맘을 사로잡은 글귀 :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을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당연합니다.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테니까요.”
요즘 내 맘을 사로잡은 글귀가 있다.
“사람은 우주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은 그 어느 별보다도 먼 것이다.”(체스터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