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자신이 예상한 것과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보이는 상대로 인해 당황하거나 불쾌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일으키는 예를 나의 상상력으로 써 보았다.


A라는 선생님이 초등학교 6학년의 여름방학식 날에 학생들에게 말했다. “이번 여름방학은 중학교 교과서를 마지막으로 공부할 수 있는 중요한 방학이다. 그러니 방학 동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라고. 그러자 어떤 학생은 이런 생각을 한다. ‘초등학생으로서 마지막 방학이니 실컷 놀아야지. 중학생이 되면 학원 다니느라 놀 시간이 없을 거야.’


B라는 남자가 여자와 연애를 하면서 싸움을 자주 하게 됐다. 그래서 더 이상 싸우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한 끝에 무조건 그녀에게 잘 해 주기로 했다. 그러면 싸울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것. 그런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너무 잘 해 주었더니 그녀가 자만해져서 더 싸울 일이 많아졌던 것이다.


C라는 사람이 어느 블로그에 들어가서 “이 글은 참 재미있군요.”라고 댓글을 썼다. 정말 잘 썼다고 생각해서 최고의 찬사로 그렇게 쓴 것이다. 그러면 글쓴이가 기분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글쓴이는 오히려 기분 나빠했다. ‘내 글이 깊이는 없고 재미만 있다는 말이군.’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


어떤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면 자연히 그것과 관련 있는 글이 떠오른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보여 주는 글과 그 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지 오웰 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조지 오웰의 글을 만난다는 것은 내겐 ‘충격’을 만나는 일과 같다. 그가 쓴 소설 <동물농장>이 그랬고, <1984>가 그랬다.


29편의 에세이가 실린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집 역시 충격을 주는 글이 많이 실려 있다. 이 책에는 그가 몸소 체험한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마치 그의 육성을 직접 듣는 듯해 자서전처럼 읽히는 글이 많다. 이 중에서 조지 오웰이 부랑자 생활을 한 경험을 토대로 쓴 ‘스파이크’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있다. (스파이크란 ‘부랑자 임시숙소’를 말함)


부랑자들이 있는 스파이크에선 그저 맛없는 빵과 차로 끼니를 때운다. 그런데 200야드 떨어진 구빈원 부엌에선 “소고기로 만든 굉장한 요리들”(16쪽)을 비롯한 음식이 많았고,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게 했다. “남은 음식을 부랑자들에게 주지 않고 버리는 건 고의적인 방침인 듯했다.”(17쪽)


그 이유는 이러했다.




“이런 데를 너무 좋게 만들어 놓으면 온 나라의 쓰레기들(부랑자들을 말함)이 다 몰려들게 돼요. 그런 쓰레기들을 떼어 놓으려면 음식이 나빠야만 되고요.”


- 조지 오웰 저, <나는 왜 쓰는가>, 18쪽.




구빈원 부엌에서, 먹다가 남은 음식을 부랑자들에게 주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는 것은 좋은 음식을 주게 되면 부랑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란다. 이런 마음 작동은 충격적이다.


혹시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가 서울역에 몰려드는 노숙자들에게 기거할 주택을 마련해 주지 않고 방관하는 이유도 이와 같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2) 버트런드 러셀 저, <런던통신 1931-1935>에서   

 


<런던통신 1931-1935>는 135편의 칼럼들이 실려 있는데, 러셀이 1930년대에 주로 미국 신문에 기고했던 글이다. 그 시대를 살며 목격하고 생각한 일들에 대해 날카로운 직관으로 풀어 써서 그의 깊은 사색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글을 쓴 시대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좋은 글이 많다. 
 



그중, ‘기대하는 마음이란’의 제목의 칼럼에는 남녀 사이에서 변심한 사람에 대한 그의 시각이 잘 나타나 있다.




결혼을 하는 신랑 신부는 이제부터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두 사람의 ‘의무’라는 얘기를 듣는다. 사랑이란 하나의 감정이기 때문에 의지로 통제할 수 없고 따라서 의무의 영역에 넣을 수 없는데도 그렇다고 한다. 신중한 행동이야 의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하늘의 은총이다. 따라서 그 은총이 철회되었을 때는 그것을 상실한 사람을 비난할 게 아니라 동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 버트런드 러셀 저, <런던통신 1931-1935>, 192쪽.



우리는 흔히 변심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판단해 버린다. 남녀가 만났으면 사랑을 영원히 간직한 채 살아야 좋은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감정의 영역에 있으므로 변할 수 있다. 그리고 변심한 사람은 사랑을 잃은 것이므로 미워하기보단 가엾게 여겨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변심한 사람을 비난할 게 아니라 오히려 동정하는 게 마땅하다고 하는 이 마음 작동은 옳은 것 같다. 또 서로를 위해서 이런 마음 작동이 바람직한 것 같다.


(3) 홍은희 저, <삶의 시간들>에서 


   


<삶의 시간들>은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저자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쓴 생활칼럼 가운데 110편을 가려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것, 여성들의 문제에 관한 것, 남성들의 문제에 관한 것, 고질적인 생활문화의 병폐에 관한 것, 조기유학의 실상과 같은 우리 사회의 문제에 관한 것 등을 다루고 있다.


 

그중, ‘부부싸움과 말버릇’이란 칼럼은 어느 부부싸움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 작동이 성별에 따라서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준다.




얼마 전, 부산에서 남편의 술버릇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던 아내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했다가 뒤쫓아 달려온 남편이 간신히 팔을 붙잡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다.


‘목숨 건 부부싸움’ 기사를 보다가 그들 부부의 ‘사건 후 세력판도’가 궁금해졌다. 질문을 받은 몇몇 남성들은 예외 없이 “이제 그 남편은 완전히 마누라에게 잡혔군” 하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여성들은 “남편이 생명의 은인이 됐으니 큰소리치긴 다 틀렸다”고들 했다.


- 홍은희 저, <삶의 시간들>, 178쪽~179쪽.




하나의 부부싸움을 보면서 신기하게도 남성들과 여성들은 정반대의 마음 작동을 일으키고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할 땐 세상을 읽는 시각이 자신과 같은지, 다른지의 문제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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