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8) 그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어떤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생각나는 것으로 상대에게 선물 공세로 환심을 사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효과도 안심할 수 없다. 상대가 선물을 준 ‘사람’이 아닌 선물로 준 ‘그것’만 좋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듯하다. 돈도 들지 않고 효과도 만점인 것.


러셀에게서 답을 구했다.




특별히 예쁘거나 뛰어나지 않더라도 사랑 받는 방법은 만나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의식적인 아부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최선의 방법은 그들과 어울리는 순간을 즐기고, 무엇보다 그들이 과시하는 능력을 즐기는 것이다. - 346쪽. 

- 러셀 저, <런던통신 1931-1935>에서.




러셀에 의하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은 ‘상대가 과시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 시간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가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 연인에게 열광했던, 또는 현재 열광하는, 또는 미래에 열광할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하는 것 같다. 가족이나 친구보다 연인에게 열광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연인이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멋지게 봐 줌으로써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임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일 것 같아서.



예를 들면 나는 그녀의 두 앞니 사이의 틈을 이상적인 배열로부터의 불쾌한 일탈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치아의 완벽성을 독창적으로 그리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방식으로 재배치한 것으로 보았다. 나는 그녀의 치아 사이의 틈에 그냥 무심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을 예뻐했다. - 128쪽.


그것의 진정한 가치, 호기심이 덜한 사람이나 사랑이 덜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의미 없어 보일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바로 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 150쪽.


- 알랭 드 보통 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이처럼 다른 사람의 눈엔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두 앞니 사이의 틈’에서도 독창성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게 바로 연인의 눈이다. 그래서 그렇게 자신을 최대한으로 아름답게 봐 주는 그 ‘연인’이 그렇지 않은 무심한 ‘친구’에 비해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에 이런 게 있다.




아까 내가 마치 모욕 받은 계집처럼 네 앞에서 그만 눈물을 흘렸다는 것, 그것 때문에라도 나는 영원히 너를 원망할 거야! 또 지금 너한테 이런 걸 고백하고 있다는 것, 이것 때문에라도 나는 영원히 너를 미워할 거다! 그렇다, 너는 이런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왜냐하면 네가 공교롭게 그런 순간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 185쪽.

-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이 남자는 계집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 여자를 원망하겠다고 한다. 하필 이러한 때에 그녀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미는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모습만을 보게 해 주고 싶었던 상대가 자신의 가장 추한 모습을 우연히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계획되지 않은 우연한 목격이라 할지라도 남자는 화가 난다. 누구나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본 사람을 싫어하고 자신을 근사한 모습으로 봐 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추한 모습을 하고 있을 땐 모른 척하고 지나갈 일이다.)


TV 드라마에서 딴 여자와 연애하는 남편의 단골 대사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그 여자는 나를 남자로 느끼게 해 줘.”


이 말은, “그 여자는 남자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던 나를 남자로 느끼게 해 줘.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남자로 말이야.”라는 말과 같다. 그러니 아내와 함께 있는 것보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게 행복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살고 싶다는 마음의 표출인 셈이다. 결국 자신을 잘 봐 주는 이가 좋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무조건 그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은 물론 아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그 상대가 가진 매력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똑같은 조건 하에서라면 자신에 대해 호감을 나타내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똑같은 정도로 매력적인 두 사람이 있다면 그중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끌린다는 것이다. 우월감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므로.


이런 예를 들어 본다.


만약 자신이 중학교 때의 성적은 상위권에 속하는데, 고등학교 때의 성적은 하위권에 속한다면 어느 동창회에 가길 좋아할까. 그 두 동창회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있다면 어디로 발길을 돌릴까.  

답은 뻔하다. 중학교 동창회에 갈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보다 우월하게 보이는 자리를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우월감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 행복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을 인정해 주지 않는 친구보다 인정해 주는 친구를 좋아하나 보다.  

결론은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려면, 상대가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 것.


‘너를 만나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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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여러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같은 내용을 표현만 다르게 쓴 글이 많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다르지만 내용이 많이 중복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웬만큼 독서를 해 본 사람은 ‘거기서 거기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폼 나게 표현하면 ‘하늘 아래 새로울 게 하나도 없다. 같은 내용에 대해 다양한 변주가 있을 뿐이다.’가 된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동안 미처 알지 못한 걸 생각해 냈다. 나를 따르는 후배 몇이 있는데, 내가 그들을 예뻐하는 가장 큰 이유를 알아낸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만날 때마다 나를 좋게 봐 주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이 ‘선배님과 얘기를 나누는 게 좋아요.’하는 얼굴이라고 여겨질 때 내게서 아름다운 빛이 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기에 그들을 좋아함을 알았다. 또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뭐든지 다 알고 계시는군요.’하는 듯한 얼굴로 보는 학생들을 내가 좋아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독서를 ‘내면으로의 여행’, ‘나를 읽는 행위’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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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러셀 저, <런던통신 1931-1935>

알랭 드 보통 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도스토예프스키 저, <지하생활자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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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7-19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으며 음, 음, 음, 하며 감탄을 탄복하며 읽었습니다. ^^ 지금 제 상황에 딱 맞는 리뷰이어서요. 크게 깨달아 우주의 지평이 열리는 기분입니다. ㅋㅋㅋ

저도 놀러왔어요. 이런 좋은 글을 보다니 오늘은 무척이나 상쾌한 날이네요. 헤헤 노신 선생을 좋아하신다는 방명록에 자극 받아 노신 선생의 리뷰를 쓸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 ^^

읽고 또 읽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페크(pek0501) 2011-07-19 15:18   좋아요 0 | URL
'탄복하며...'라는 말은 듣기 좋은 새콤달콤한 말입니다. 새콤달콤해지는군요. 고맙습니다.

참, 루쉰이라는 아이디를 잘 지으신 것 같아요. 제가 루쉰의 팬이라서 들르게 되었으니까요. 저도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좋아하는 작가 이름으로 아이디를 짓는 건데...ㅋㅋ 꼭 루쉰의 분신 같거든요.

좋은 리뷰 쓰시길 기원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7-20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사람은 남자로만 혹은 여자로만 살면 불륜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부모로,남편이나 아내로 살고 있기도 하다는 점을 자각해야 하는데...그래도 능수능란한 도사들에게 걸리면 해답이 없죠.

페크(pek0501) 2011-07-21 13:57   좋아요 0 | URL
결혼제도가 있어서 딴 길로 새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맞아요. 결혼제도가 아내나 남편,또는 부모의 자리를 갖게 함으로써 질서를 갖게 하죠.

"그래도 능수능란한 도사들에게 걸리면 해답이 없죠." - 이 말도 맞습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건 이성이 아니라 정열이다(임어당의 말)."의 경우가 분명 있으니까요.

반가웠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1-07-22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3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3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4 0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