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4) 애인, 친구, 책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면


1. 애인, 친구, 책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면


얼마 전, ‘세바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맞히는 퀴즈가 있었다. 그 중 재밌는 퀴즈가 있었는데, ‘평생 애인 없이 살기’와 ‘평생 친구 없이 살기’ 중에서 어떤 것을 사람들이 선택하는지를 알아맞히는 것이었다. 답은 ‘평생 애인 없이 살기’였다. 조사한 사람들 중 70% 이상의 사람들이 애인보다 친구를 더 중요시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마도 애인에 비해서 친구가 더 자신에게 잘 해 준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 같다. 애인과 싸우거나 결별할 때 또는 외로울 때 위로를 해 주는 것은 친구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렇게 아는 게 아닐까. 애인은 가끔씩 적대적인 관계에 있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애인은 늘 내 편일 수 없다는 것을.


만약 사람들에게 애인, 친구, 그리고 한 가지 더 넣어 책, 이렇게 세 가지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면 어떻게 될까. ‘평생 애인 없이 살기’, ‘평생 친구 없이 살기’, ‘평생 책 없이 살기’ 중에서 가장 끔찍할 것 같은 인생을 고르라면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다. 이 중에서 ‘평생 책 없이 살기’가 가장 끔찍할 것 같다는 사람도 꽤 있을 듯하다. 나도 여기에 속한다. 책이 없는 세상은 살맛이 나지 않는 세상이 될 것 같다.



애인은?

애인이 있어서 좋은 점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쁨과 달콤한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쁜 점은 상대에 대한 의무가 따른다는 점이다. 연애를 하면 언제든 상대가 불러내면 아무리 외출이 귀찮은 날에도 만나러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혹시라도 나가지 않으면 상대는 섭섭해 하거나 화를 낼 것이다. 또 생일 같이 특별한 날은 꼭 챙겨 줘야 하고, 아플 땐 더 마음을 써 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물론 사랑에 빠지면 그런 의무를 다하는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통계에 의하면 오래 사귈수록 달콤한 설렘도 점점 퇴색한다고 하니, 오래 사귀면 애인으로 인해 귀찮게 여겨지는 일이 생길 듯하다. 결국 둘 중 더 좋아하는 쪽이 있기 마련이고, 더 성의 없는 쪽이 있기 마련이어서, 한쪽은 화를 내고 다른 한쪽은 화를 풀어 줘야 하는 관계가 되기 쉽다. 혹자는 ‘연애’하면 떠오르는 게 ‘스트레스’라고 했다. 아마 가장 많이 싸우는 인간관계가 연인관계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주는 게 애인이란 존재가 아닐까.

친구는?

친구는 애인에 비해 기쁨을 덜 주지만 스트레스도 덜 준다. 애인에 비해 서로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관심이 적어서 싸울 일도 많지 않다. 친구의 좋은 점은 늘 그 자리에 있어 준다는 점이다. 애인은 한동안 만나지 않으면 저절로 이별이 되지만 친구는 소원하게 지내다가도 언제든 만나면 예전의 친숙했던 친구관계로 돌아가게 된다. 단점은 무관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구보다는 애인이나 가족을 더 챙기기 때문에 섭섭할 때가 많이 생긴다.

책은?

그러면 책은 어떠한가. 애인이나 친구를 만나는 일과 비교하면 책을 만나는 일엔 의무도 없고 섭섭함도 없다. 그저 새로운 책을 대할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이 생길 뿐이다. 싫증이 날 새도 없이 새 책은 매일 쏟아져 나와 설렘이 이어진다. 한번 책의 달콤한 열매를 맛본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자연히 책의 세계로 빠져 들게 된다. 독서만큼 값이 싸면서도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없으며(몽테뉴), 독서하는 사람은 참된 벗, 친절한 충고자, 유쾌한 반려자, 충실한 위안자가 없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M. T. 바로).



책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자질

나에게 재능이 있다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자질이다. 나에게 그 자질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에 속한다. 책을 읽으면 어떠한 잡념도 사라지고 곧장 몰입하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길 것이다. 행복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에 대해 시기하지 않고 너그러워진다는 점이다. 시기심이란 자기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공연히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므로,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공연히 시기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행복한 독서광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돈 많은 친구를 만나면, “넌 부자가 되거라, 난 책으로 행복할 테니.”라고 생각하고, 옷을 멋지게 잘 입는 친구를 만나면, “넌 멋쟁이가 되거라, 난 책으로 행복할 테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만약 ‘부자인 것’과 ‘책이 주는 행복’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독서광들은 아마 ‘책이 주는 행복’을 택할 것이다. ‘멋쟁이인 것’과 ‘책이 주는 행복’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역시 ‘책이 주는 행복’을 택할 것이다.


책은 참 잘생겼다고 느낀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볼 때면 또는 책이 방바닥에 쌓여 있는 것을 볼 때면 나는 그것의 잘생긴 외양에 감탄하곤 한다. 이보다 더 잘생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전자책의 출현으로 인해 종이책의 종말을 논한다고 해도 한 장 한 장 넘기는 종이의 질감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러셀에 의하면 독서의 두 가지 동기는 독서를 즐기는 것과 읽은 책에 관해 자랑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이미 책에 매료된 사람은 즐거움을 얻으면서 동시에 자랑거리를 갖게 하는 책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2. 이달에 구입하고 싶은 책


<아렌트 읽기> 엘리자베스 영-브루엘 지음, 서유경 옮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제자가 쓴 것으로,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3단계로 나누어 조명한 책이라고 한다. 그동안 여러 책에서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는 글을 많이 읽어 온 나로서는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그의 저작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정신의 삶>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 구입하고 싶다.



나치 시대 독일의 공무원이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어떻게 태연히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할 수 있었을까? 이상주의적 신념을 가진 소시민을 살인기계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 세기적 비극의 기원을 '생각 없음'에서 찾았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가장 뛰어난 제자이자 독보적인 아렌트 전기를 썼던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이 스승의 사상을 차근히 짚어간 아렌트 해설서이다. 

아렌트 사상을 크게 3단계로 나누어 확장되고 전개되는 사상의 궤적을 파악해내고 있다. 정치의 파괴부터 정치의 회복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는 아렌트의 주요 저작 3종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정신의 삶>을 꼼꼼히 읽어내며 이 사상의 흐름을 통해 현대 세계의 정치 상황들, 이라크전쟁이나 일본의 역사왜곡 등의 민감한 사안들을 조명하고 있다. - <책 소개, 알라딘에서 발췌>


 

<한나 아렌트의 저작들>
  

 

 

 

 

 

 

3. 책과 관련하여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

새 책의 빳빳한 질감을 느끼는 것,

책에서 외우고 싶을 만큼 좋은 구절을 발견하여 연필로 밑줄을 긋는 것,

책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드는 것,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할 책을 고르는 것,

반값 세일의 책을 구입하는 것,

집에 배달된 책의 포장지를 뜯는 것,

책의 첫장을 펼치는 것,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그 다음에 읽을 책을 책장에서 고르는 것,

찌개가 끓는 동안 식탁에서 시집을 뒤적이는 것,

여행을 떠나는 날에 가방에 넣을 책으로 무엇이 좋을지 생각하는 것,

밖에 비가 오고 있음을 느끼며 책을 읽는 것,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책을 읽는 것,

독서노트를 사러 문구점에 가는 것,

독서광인 친구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내가 알고 있는 책 정보를 누군가가 묻는 것,

책에 대한 정보가 많은 블로그에 들어가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

책 보다가 잠든 뒤에 전화벨 소리를 듣게 되는 것,

창문으로부터 들이친 비에 책이 젖는 것,

책이 구겨지는 것,

내가 아끼는 책을 누군가가 빌려 달라고 하는 것,

한참 재밌게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외출할 일이 생기는 것,

아끼던 책이 오래되어 종이가 누렇게 변색되는 것,

책 읽으며 안구건조증이 느껴지는 것,

전자책의 편리성을 알리며 종이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신문기사를 보는 것,

불황으로 문을 닫게 된 출판사나 서점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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