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어느 블로그에 내가 쓴 댓글

시, 무척 좋아해서 한때 30편 정도를 외워본 적이 있어요. 김기림의 <길>이란 시는 지금도 기억해요.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대신 차라리 시에서 비유적인 표현, 참신한 표현을 배우는 게 좋을 듯한대요. 시인 출신의 소설가들, 또는 시를 아는 소설가들이 문장력이 좋습니다. 시를 공부해서죠. 


제 생각엔 스티브 잡스 같은, 성공하는 인물이 되려면 시보다 소설을 읽는 게 좋을 듯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신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업의 경우,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판매전략을 써야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등을 아는 게 중요해요. 인간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죠.  


식물에 관한 공부를 하려면 식물학을 공부해야 하고,
사회에 관한 공부를 하려면 사회학을 공부해야 하고,
인간에 관한 공부를 하려면 인간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소설은 인간학입니다.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죠. 
 

인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면 아마 스티브 잡스처럼 사회적인 성공은 물론, 연인관계에서도, 친구관계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걸요. ㅋ
여러 인물의 내면을 마치 남의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은 인간을 아는 데에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2) 7월에 어느 블로그에 내가 쓴 댓글 

작가란 결국 삶을, 그리고 인간을 얼마나 꿰뚫어 깊이 보는가,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능력이 있어야 돈키호테나 햄릿 같은 캐릭터의 인간형이 창조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셰익스피어가 훌륭한 것도 그 때문.   

차라리 사상성이 없는 소설이 더 훌륭할 수 있어요. 어떤 메시지로 탁월한 작가는 소설 말고 칼럼을 쓰는 게 나을 듯해요. 그 시대, 예를 들면 1930년대를 적확하게 보여 준 소설이라는 점으로도 명작이 될 수 있고, 한 인간의 내면을 깊이 보여 줬다는 것만으로도 명작이 될 수 있고, 또 경험하지 않는 일을 상상력만으로 마치 경험한 것처럼 구체적이고 리얼하게 썼다면 그것도 훌륭한 것. 꼭 대단한 메시지가 있는 것만이, 또는 사상성이 있는 것만이 명작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이런거야, 또는 세상은 이런거야, 라고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게 명작입니다. 우리는 인간이면서 인간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걸 가르쳐 주는 게 작가죠.  

 

3) 2월에 어느 블로그에 내가 쓴 댓글 

리영희님에 대한 비판이 한때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고를 확 엎었다는 사실로 그는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분입니다. 우리의 관점을 흔들어 놓았으니...소설가 박완서님도 그의 저작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전 그래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알게 되었죠. 또 유시민님의 <청춘의 독서>에서도 그 분을 사상의 은사라고 썼지요.

어쨌든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 주고 사고의 영역을 넓혀 주시는 분은 소중합니다

 

4) 2월에 어느 블로그에 내가 쓴 댓글 

귀족이지만 귀족을 미워했다는 톨스토이. 자신의 삶에 사회에 순응하며 살지 않았기에 그의 삶은 모순 투성이일 수밖에 없겠죠. '삶과 사회'와의 마찰 때문에 좋은 글을 뽑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작가의 저항정신입니다. 마찰과 저항이 있어야 좀더 바람직한 세상에 대한 모색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한 작가의 고뇌가 만든 그의 저작을 통해 우리가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톨스토이는 인류에게 훌륭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5) 1월에 어느 블로그에 내가 쓴 댓글 

전 소심한 사람을 낮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소심함의 다른 말은 신중함이거든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신중해져서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소심해져요. 또 소심해져서 망설이게 되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신중해지죠. 차라리 소심하지 않아서 생각 없이 막 구는 사람들을 경계합니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소심하지 않아서 길거리에 쓰레기를 겁없이 버리고 소심하지 않아서 식당에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하고 그런 사람들... ㅋ.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용도 좋지만 생각을 다양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 글이라서 더 좋은 글입니다

  

6) 1월에 어느 블로그에 내가 쓴 댓글 

전 글 쓰다가 그런 것 헷갈릴 때 꼭 국어사전 찾아봐요. 지금 사전을 찾아보고 답을 쓰면 반칙이니까 못 찾아보겠고...ㅋ 그래서 글 쓸 땐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씁니다. 우리나라 말 띄어쓰기는 또 왜그리 어려운지요. 예를 들면 필요 없다 -는 띄어쓰는데, 쓸데없다 와 쓸모없다-는 붙여 쓰거든요. 이것을 구분하는 쉬운 방법은 사전에 필요없다 라는 낱말이 나와 있지 않으면 띄어쓰는 것, 쓸데없다 와 같이 낱말이 사전에 나와 있으면 붙여 쓰면 됩니다. 붙여 쓰는 말은 사전에 꼭 붙여서 나와 있거든요. 우리가 습관적으로 붙여 사용하는 말은 붙여 쓰는 것임다.

추신 : 국어학자들이 띄어쓰기 -이런 것좀 통일해서 좀더 간단히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을 가르치기 힘들어요. 시간낭비 아닐까요. 그리고 불법을 꼭 불법으로 읽어야 하나요? 그냥 소리나는 대로 편하게 불뻡으로 통일해 읽기로 하면 될 것을... 꼭 복잡해야 과학적인 언어가 되나요? 외국인들도 한국어를 많이 배우는 추세인데 언어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좀 간단히 고쳤으면 좋겠어요. 그럼 학생들도 국어를 배우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절약될 터인데...   

  

 

7) 1월에 어느 블로그에 내가 쓴 댓글  

진중권님이‘정치권의 아바타’로 정운찬 총리를 꼽았다는 것이 놀랍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서요. 진중권님답게 참 예리합니다. 교수임용 탈락 소식은 안타깝군요. 그리고 의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중권이 없는 한국사회는, 정말 좀 허전한데요. 미네르바 사건때 같은 속 시원한 멘트를 이제 어디서 들을까요. 외국 가신다니 그의 저작 몇 권 더 사봐야겠네요. 이런 글 오려주신 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몇 자 적게 만드는 글입니다. 추천 누르고 갑니다

 

8) 1월에 어느 블로그에 내가 쓴 댓글 

문학작품이 읽을 가치가 없다는 건 작가의 무지인 것 같습니다. 책을 낸 작가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겠지요. 어떤 사회생활을 하든지 인간관계가 생기는데 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제일의 지혜란 상대방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것, 아닐까요.‘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문학을 모르고 산다면 지바고가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라라를 사랑하는 그 심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불륜을 저지른 안나 카레니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겠습니까. <닥터 지바고><안나 카레니나>뿐만 아니라 모든 소설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며 그래서 인간학입니다.

전쟁이 왜 일어나고 그 결과는 얼마나 참혹한지도 문학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지요. 아마 문학을 모른다면 우리는 세상의 현상만 보고 그 본질은 알 수 없을 겁니다.

인간세상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얻게 되는데, 모든 걸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문학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간접경험하게 만듦으로써 지혜를 얻게 합니다.

전 비즈니스맨들에게도 필요한 건 소설읽기라고 생각합니다. 

 

9) 1월에 어느 블로그에 내가 쓴 댓글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로 시작하는 소설이죠(범우사). 러시아 혁명가 레닌이 <안나 카레니나>를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몇 번이나 읽었다는 일화가 있어, 얼마나 재밌길래, 하는 궁금증으로 사 본 책입니다. 실제로 톨스토이의 이웃에 사는 한 여자가 남편과 미모의 가정교사 사이를 질투하여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의 하나라고 함.  

처음엔 톨스토이가 안나를 밉쌀스런 여자로 구상했는데 이 소설을 완성할 즈음엔 안나에 대해 애정을 품게 되었다고 함. 이것에 대해 쿤데라 "그는(톨스토이는) 제가 즐겨 소설의 지혜라고 부르는 것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라고 썼습니다.- <소설의 기술>p170  

안나를 불륜을 저지른 비도덕적인 여자로 보기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고 가여운 여자로 여겨지는 소설입니다.  

차라리 사랑하지도 않는 안나를 체면의 중시 등의 이유로 이혼할 수 없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비난의 화살이 갈 수 있는 작품...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10) 1월에 어느 블로그에 내가 쓴 댓글  

 "그는 호의를 베푸는 대신에 노동을 했고 나는 고마운 마음 대신에 돈을 지불했다"-좋은 글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뒤돌아보게 만듭니다. 욕을 먹지 않으려면 선의로써 행하는 도움마저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야 하는 세상은 씁슬하게 느껴지네요.  

살면서 인간으로서의 처신이 쉽지 않음을 가끔 깨닫습니다. 어떤 경우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잘 모를 때가 있어요. 무엇을 받는 행위도 간단치 않습니다. 답례를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섭섭하게 생각할 것 같고, 그렇다고 매번 답례를 한다면 '너도 받으면 꼭 답례를 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은연중 주는 것 같고... 그 적절함이란 어느 쯤인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결국 중요한 건 상대방에 대한 파악이겠죠. 어떤 인간인가, 즉 어떻게 해 줘야 상대방은 기분 좋은가, 하는 것이 관건. 정보란 이럴 때도 중요하네요.   

  

 

11) 작년 12월에 어느 블로그에 내가 쓴 댓글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속에서 나왔다"라고 <외투>를 격찬했지요.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작품이 그 영향을 받은 작품이지요.  

전 <외투>라는 작품을 이렇게 읽었어요. 민중의 힘없는 비참한 현실의 이야기이며 그런 가엾은 사람을 도와 주지 못하는 무력한 권력 이야기라고. 멋지게 장만한 외투라기보다는 억울하게 빼앗긴 외투로 봅니다. 외투를 빼앗기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무도 도와 주지 않습니다. 순경도, 경찰서장도, 유력한 인사도...  그러니까 '이것이 현실이다. 세상이 이래서야 되겠는가'라고 작가가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문학(또는 예술)의 매력은 해석의 다양성에 있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보는 게 옳은가, 하며 따지는 것보다 그저 많은 해석이 나오는 작품이라면 흥미로운 작품이다, 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요. 우리의 사고영역을 확장시켜 주니까요. 다른 해석이 많이 나오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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