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칼럼>


그냥 지나친 적은 없는가


며칠 전(10월 5일) 일간 신문에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온 81세의 노인이 숨져 있는 것을 그의 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는 기사가 났다. 딸은 직장 때문에 어머니와 떨어져 살다가 추석을 맞아 뵈러 와서 노모의 시신을 보게 된 것이다. 경찰은 시신의 부패 정도로 보아 2개월 전에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그동안 많이 있어 왔다.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가 죽은 지 한참 지나서야 사람들에게 발견된 적도 있다. 이런 일들의 원인을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지만, 건조하고 삭막한 현시대 삶의 한 단면을 보는 듯싶다.


프란츠 카프카 저, <유형지에서>라는 소설이 있다. 유형지로 새로 부임한 신임 사령관의 초대로 탐험가가 유형지에 오게 된다. 사령관이 탐험가를 초대를 한 것은 이곳에서 집행되는 사형방식이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자문을 얻어 이곳의 처형제도를 개혁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이 탐험가에겐 그만한 영향력이 있었다.


이곳에 끌려온 죄수는 야간 보초를 서다가 잠이 들었다는 것과 이를 상관에게 들켰는데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불공평하게도 죄수에게는 어떠한 변명을 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단지 판사인 장교의 독단적인 판결로 사형이 집행된다. 장교는 이 사형 집행에 찬성하는 사람인데, 여기서 사형 집행이란 뾰족한 바늘이 죄수의 등에 죄명을 새기는 그런 기계 속에서 죄수가 죽어가는 것. 그것도 12시간 동안이나 고통스런 고문을 받다가 죄수가 죽게 되면 그를 구덩이 속으로 처넣는 것이다.


탐험가는 이곳 유형지의 비인간적인 제도와 비인간성에 대해 마음속으로는 반대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침묵한다. 자신은 유형지의 주민이 아니므로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줄 알면서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방관자적 입장을 취한다. 남의 일이라며 관심을 갖지 않는 이런 탐험가의 모습은, 홀로 사는 사람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부패될 때까지 몰랐던, 이웃에 무관심한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초라한 오두막에 가난한 부부가 살았다. 남편은 성실한 어부이지만 다섯 명의 자식들이 먹을 빵조차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이었다. 어느 날 “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았소.”하며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는 “우리 이웃 여자가 죽었어요.”하고 말한다. 죽은 여자는 과부였고 역시 가난하였다. 이어서 아내는 어젯밤에 죽은 것 같고 어린 두 아이를 남겼다고 덧붙인다. 아내는 직접 그 과부의 집에 가서 그녀의 시체를 보았던 것이다. 과부가 죽었다는 말에 남편은 “저런! 저런!” 그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우리에게 아이가 다섯인데, 그렇다면 일곱이 되겠군. 저녁은 가끔 먹게 되겠군.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참! 낭패로군!”하고 말한다.


그런데 아내는 과부의 시체가 있는 그 집에서 나올 때 무엇을 가지고 나왔었다. 무엇을 훔친 것이다. 그것을 남편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라서 가슴이 뛰고 걱정이 되었다. 그것을 모르는 남편은 그 애들이 죽은 사람 곁에서 무서워하고 있을 거라며 그 애들을 데려다 키우자고 말한다. 그런 남편에게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커튼을 젖히며 답한다. “자, 그 애들이 여기 있어요!” 그녀가 훔친 것은 바로 고아가 된 아이들이었다. 아내도 그 가여운 애들을 키울 생각으로 이미 자기네 집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이것은 빅토르 위고 저, <가난한 사람들>이란 작품이다.


타인에 대한 가장 큰 죄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의에 대해 저항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담담하게 보아 넘기는 무관심. 또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웃의 불행에 관심이 없는 무관심. 이런 무관심은 사회를 해치는 ‘악’이 아닐까.


어느 집에 화재가 발생한 것을 보고도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친 적은 없는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집 잃고 울고 있는 어린애’를 보고도 바쁘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친 적은 없는가, 이웃에서 불길하고 수상한 울음소리를 듣고도 남의 일이라는 이유로 그냥 지나친 적은 없는가, 나는 나에게 물어 보았다.


내가 인정 메마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나는 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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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들


프란츠 카프카 저, <유형지에서>

빅토르 위고 저, <가난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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