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대 비극 - 개정판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이태주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리어 왕’을 읽고 - 진실은 왜 멀리 있을까



노인이 된 리어 왕은 세 명의 딸들에게 ‘자신을 누가 가장 극진히 사랑하는지’를 말해 달라고 하면서, 세 딸의 말을 들어보고 큰 재산을 주겠노라고 한다. 이에 첫째 딸 고네릴과 둘째 딸 리건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버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셋째 딸 코델리아는 아무 할 말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리어 왕은 아무 할 말이 없다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하며 다시 말해 보라고 한다. 코델리아는 마지못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언니들이 정말 아버님을 그토록 사랑한다면, 어째서 남편을 얻었단 말입니까? 저도 만약 결혼을 한다면, 아마도 저의 배우자인 주인께서 제 애정과 관심과 의무의 반은 빼앗아 갈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절대로 언니들같이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아버님께 효도를 다하기 위해서라면.”




이 대답에 리어 왕(아버지)은 그것이 진심이냐고 격노하면서 셋째 딸과의 인연을 끊는다. 이 말을,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을 늘어놓은 첫째 딸과 둘째 딸에게 재산을 나눠 준다. 그러나 이 두 딸은 효도는커녕 아버지를 학대하기에 이른다. 결국 불효하는 두 딸로 인해 리어 왕은 불행한 파국을 맞는다. 너무 솔직했던 셋째 딸의 말에서 진심을 읽지 못한 대가는 그렇게 혹독했다.


리어 왕은 어째서 딸들로부터 사랑의 표현을 듣고 싶어 했을까, 왜 진실을 몰랐을까, 그리고 솔직한 것은 나쁜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여기서 인간의 특성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인간은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 둘째, 인간은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싶을 만큼 외롭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 셋째, 같은 말인데도 인간은 해석의 차이를 발생시킨다는 것. 넷째,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는데, 솔직함이 지나쳐서 아버지를 분노케 할 만큼 셋째 딸은 어리석었고, 딸의 진심을 모르는 아버지 역시 어리석었다.


이 작품은 리어 왕의 충신인 글로스터 백작의 비극도 함께 전개되는 이중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백작은 서자인 에드먼드에게 속아 장남인 에드거를 불행 속으로 빠뜨리고, 자신도 에드먼드에게 배반당하고 눈알을 뽑히고 만다. 이 역시 진실을 몰랐던 대가였다.


진실은 왜 알 수 없을까. 리어 왕뿐만이 아니라 실지로 우리도 무엇의 진실(진심)을 제대로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볼 수가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보이지.” 이 말은 겉만 보지 말고 그 속도 헤아려서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어서 마음으로 보는 것 또한 소용없는 게 아닐까. 차라리 수전 손택(소설가, 평론가)의 말에 믿음이 간다. “이해라는 것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라는 말.


나 역시 나의 진실이 왜곡되는 일을 경험하곤 하였다. 나는 ‘A’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그것을 ‘B’라고 알아듣는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말을 그렇게 왜곡한 적이 있을 것이다. 또 내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던 그것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거짓임이 밝혀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은 없는 거라고 여겨졌다. 우리가 지금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 중에서 반 정도는 진실이 아닐지 모른다. 진실은 우리가 쉽게 닿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저 산 너머에 핀 꽃과 같은 것이라서.


진실은 잘 알 수 없는 것이어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뒤늦게 발견되는 것’이라는 게 이 작품의 메시지다. 이 책처럼 명작이란 오래 전에 씌어졌다고 하더라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유용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카알라일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위대하게 평가 받았던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당신이 현재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그 사실은 실제로 진실이 아닐 확률이 많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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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구절>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들은 장님이 된다는데,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친절하다네. 운명의 여신은 매춘부라서 가난한 사람에게 문을 잠그네.(본문 중에서)


<내가 쓴 구절>

뒤늦게 알게 된 진실이 확실한 진실임을 확신하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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