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칼럼>
역지사지(1) - 부제 : 받는 것도 호의
인간은 ‘편견의 노예’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굳어지면 그것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그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역으로 생각해 보는 발상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일이다. 이것은 모든 사물을 주관적으로 보게 되는 시각을 객관화시켜 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이해 받지 못할 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한다. 자신을 어떤 처지에 놓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예로, 내가 연애하면 아름다운 로맨스지만 남이 연애하면 스캔들이 되는 것이다. 또 직장에서 내가 휴식을 취하면 재충전이지만 남이 휴식을 취하면 근무태만인 것이다. 이렇듯 자신에겐 긍정적 해석을, 타인에겐 부정적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 자기는 인복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기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아무리 잘 해 줘도 상대방은 자신에게 잘 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밥을 사 줘도, 차에 태워 운전하여 집에까지 바래다줘도 상대방은 말로만 고맙다고 할 뿐, 그것에 대한 답례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섭섭한 마음이 생기더라는 거였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때는 그 대가를 바라지 않을 때가 많다. 그저 선의로써 좋아서 했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그것에 대한 답례가 없으면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은연중 보상을 받고 싶기 때문이며, 그것이 없으면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바로 손익계산인 셈이다. 처음엔 좋아서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 결과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기주의가 도사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난 어떤 경험을 한 뒤엔 그것에 대한 생각이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한 친구가 남편이 회사에서 승진했다며 점심으로 한턱을 내겠다고 나를 포함해서 친구 넷을 어느 고급 음식점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날따라 비도 오고 내 몸도 고단해서 외출하기가 귀찮았다. 하지만 친구가 모처럼 하는 초대인지라 가지 않으려니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오라는 시간에 맞춰 나갔다.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흔쾌히 그 경사스런 일에 축하를 해줬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생각한 것은, 축하를 해 주기 위해 이 귀찮은 외출을 실행한 나에 대해 그 친구가 고마워할까, 하는 것이었다. 즉 한턱을 낸 사람만 호의를 베푼 게 아니라 그것에 응해 준 나도 호의를 베풀었다고 여긴 것이다.
그 일 이후로 내가 과거에 베풀었다고 생각한 한턱의 호의가 그 상대방에겐 부담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내 호의를 받아 준 상대방도 어쩌면 선심을 쓴 것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역발상을 하자 자연 그 보답을 바라지 않게 되었고 답례가 없어서 생겼던 섭섭한 마음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밥을 샀다면 그것을 맛있게 먹어 준 그에게 감사하고, 또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했다면 그것을 고맙게 받아 준 그에게 감사할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괜스레 심통이 나서 상대방에게 만족감을 주기 싫은 마음에, 선의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게 그런 베푸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해 준 모든 이에게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