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혼자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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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시가 좋아서 30편쯤을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이 시가 그중 하나다.


외운 적이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읽는 시인데도 낯설지가 않다. 암기의 가치를 느낀다.

 

김기림의 <길>이란 책에 있는 시인데 이 책이 품절되어 아쉽다.

 

(참고로 이 작품은 시로 분류하기도, 산문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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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1-25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다 사진이네요.
해가 막 지고 밤이 되는, 지금 시간 같은 느낌입니다.
요즘 시집을 읽고 계시는군요.
이 작품은 시로도 산문으로도 분류된다니 신기합니다.
페크님,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0-11-26 18:27   좋아요 1 | URL
시에 바다가 나와 사진을 넣었어요. 몇 년 전에 제주도 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렇죠. 밤바다 같아요.
어느 책에선 시로 나오고 어느 책에선 산문으로 나와요. 제가 보기엔 산문시 같아요.
서니데이 님도 좋은 저녁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희선 2020-11-26 0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를 외우셨군요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시 외워야 했는데, 잘 외웠는지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네요 김기림 시인 이름은 아는데 아는 시는 없는 듯해요 어떤 게 떠올랐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옮겨 쓰신 시 쓸쓸하네요 돌아오지 않는, 떠나버린 걸 기다리다니... 오지 않을 걸 알아도 기다릴 때 있지 않나 싶습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0-11-26 18:30   좋아요 1 | URL
학교 국어 시간에 시를 왜 외우게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까먹지만 외운 적이 있는 건 다시 보면 기억이 나더라고요.

기다림, 이란 게 설렘도 있지만 쓸쓸한 일이지요. 기다리는 사람이 꼭 온다는 보장이 없어서...
맛있는 저녁 드시고 좋은 저녁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