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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문학을 공부할 때가 생각난다. 소설을 공부하는 강좌를 들으면서 소설만 읽었다. 그다음엔 문학 이론서만 읽었다. 역사에 관련한 책만 읽은 적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읽어야만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독교인이 아니면서 기독교의 성경을 읽었다. 어느 책에서 성경이 문장 공부에 좋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다음엔 철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서 철학서만 집중해서 읽었고 그리고 심리학 책만 집중해서 읽었던 시기도 있었다. 과학서를 읽기도 하였고 한때 문화 인류학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독서를 했는데도 요즘 칼럼을 쓰면서 내가 아는 게 많지 않다는 자각이 들어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통해 여러 강좌를 듣다가 현장에서 직접 강의를 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인터넷으로 좋은 강좌를 찾아보았다. 종로 도서관에서 ‘대화의 철학을 찾아서’라는 무료 강좌가 있는데 집에서 멀어 포기했다. 동대문 도서관에서 ‘토요 인문 아카데미(독일 현대 철학자들)’라는 무료 강좌가 있는데 여기도 집에서 멀어 포기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찾았더니 한비자, 이백, 두보 등에 대한 강좌가 주 1회로 쭈욱 이어져 있는데 무료는 아니지만 수강료가 저렴해서 여기로 등록하였다. 강좌 등록을 한 이유는 한마디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는 만큼 글을 쓴다고 믿기 때문.
이런 내게 혹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독서를 하고 강좌를 듣고 글을 써 봤자 책 한 권 내지 못한다면 헛고생한 게 아니냐고.
이에 대한 나의 답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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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60편쯤 쓰면 책 한 권 분량이 되지 않을까 하고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26번째까지 쓰고 나서 안과에서 치료를 받을 일이 생겨서 칼럼 연재를 중단하게 되었다. 지금은 휴식이 필요해 쉬는 중이다. 설령 내가 앞으로 책을 내지 못한다고 해도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글쓰기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다 얻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블로그에 글을 실컷 써 봤고, 칼럼을 연재해 봤고, 어떤 지면에 칼럼니스트로 기고해 보기도 했으며, 글을 쓰기 때문에 독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만하면 글쓰기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다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남은 인생은 책 애호가로 살아도 좋을 듯하다.
남은 인생은 공부 애호가로 살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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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 그리는 동안 우리는 그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었으니까.
-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1>, 4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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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가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책을 내든지 유명해지든지 그런 일은 중요하지 않아. 글을 쓰는 동안 페크는 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었으니까.” - 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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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중에서 두 번 읽고 싶은 책 열 권을 뽑는다면 그 안에 <인간의 굴레에서 1>과 <인간의 굴레에서 2>를 넣겠다. 그만큼 아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