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광이란 말이 있다면 : 현재 사전에서 책광이란 낱말을 찾을 수 없다. 골프광과 낚시광은 찾을 수 있다.  

 

 

사전에 이와 같이 나와 있다.

 

 

골프광 : 골프에 열광적으로 정신을 쏟는 사람.
낚시광 : 낚시에 열광적으로 정신을 쏟는 사람.

 

 

그렇다면 책광의 뜻은 이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책광 : 책에 열광적으로 정신을 쏟는 사람. 

 

 

그렇다면 나는 책광이 맞다. 책광이란 말이 있다면 말이다. 책을 많이 읽지 못해도 매일 읽는 사람이니까. 책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만약 앞으로 책광이란 말이 사전에 등재되는 날이 온다면 책광을 처음으로 쓴 사람이 페크라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기억해 주시라.

 

 

내 기억력을 믿을 수 없지만 작년에도 책광이란 말을 내 글에 쓴 것 같다. 어쩌면 재작년에도 썼을지 모르겠다.

 

 

 

 

 

 

 

2. 사고 싶은 책이 언제나 있다 : 사고 싶은 책이 언제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인가, 아닌가? 책값이 많이 드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니지만 책으로 인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니까 이런 점에서 보면 행복한 일이 맞겠다.

 

 

요즘 나는 양면성에 주목하고 있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에 새삼 신기함을 느낀다고나 할까. 예를 들면 나는 먹성이 좋은 편이 아니고 입이 짧아 먹는 걸 매우 즐거워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내게 장점이 있으니 살이 찌지 않아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고 고혈압이나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적다는 점이다.

 

 

밥맛이 없을 때가 가끔 있다. 최근에도 며칠 동안 밥맛이 없어 밥을 조금 먹고 살이 빠질까 봐 단감을 먹는 걸로 보충했다. 밥맛이 없어도 단감은 맛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밥맛이 없는 게 혹시 병이 있어서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게 아니다. 만약 밥맛이 없는 게 어떤 병 때문이라면 중고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밥 먹기 싫었던 경험이 많은 걸 설명할 길이 없다.

 

 

위로가 되었던 건 티브이를 보면서 먹는 즐거움을 모른다는 사람을 두 명 발견한 점이다. 선천적으로 그런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난 그들보다 낫다. 음식을 맛있게 먹은 경험이 많고 먹는 즐거움을 나는 안다. 다만 밥맛이 없을 때가 있을 뿐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내가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적은 대신 책을 읽는 즐거움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3. 내가 밑줄을 그은 글 : 책을 읽으면 밑줄을 긋고 싶은 글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럴 때 ‘이 책을 사 놓기 잘했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글에 밑줄을 그었다.

 

 

...............
세월호 참사 이후 수많은 자원활동가들이 진도, 안산, 목포로 끊이지 않고 몰려들었다. 그들이 하는 말은 거의 똑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무기력하다. 죄책감이 든다.”

 

그 사람들의 무기력이나 죄의식은 패자의 감정이었을까. 아니다. 지난 5년, 세월호 유가족 같은 극한의 트라우마 피해자들이 목숨을 버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이런 시민들의 거대한 무력감과 죄의식의 연대가 만들어낸 치유적 공기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었다고 느꼈다.

 

마침내 세월호를 육지로 끌어올린 힘도 무력감과 죄의식의 연대들이 만들어낸 분노가 근본 동력이었을 것이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91쪽.
...............

 

 

→ 자원활동가들의 무력감과 죄의식이 ‘아무 소용없음.’이 아니었다는 것.

 

 

 

이런 글에도 밑줄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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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가 이집트와의 전쟁에 승리했을 때, 승전국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는 패전국 이집트의 왕 프삼메니토스에게 모욕을 주고자 했다. 그래서 패전국의 왕을 길거리에 세워두고, 그의 딸이 하녀로 전락해 물동이를 지고 우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했다. 이 광경을 보고 모든 이집트인들이 슬퍼했으나 정작 왕은 땅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곧이어 아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왕은 역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포로 행렬 속을 걸어가는 늙고 초라한 한 남자가 자기의 오랜 시종임을 알아본 순간, 왕은 주먹으로 머리를 치며 극도의 슬픔을 표현했다.

 

 

이것은 그리스 시대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5세기에 쓴 《역사》의 3권 14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특별히 발터 벤야민의 글 <이야기꾼〉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이며 또 그것을 해석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 나는 이 글을 내보이고는 한다. 왕은 왜 그랬을까? 그의 마지막 슬픔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미 오래전에 몽테뉴는 이렇게 해석했다. “왕은 이미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조금만 그 양이 늘었어도 댐이 무너질 판이었다.” (《서사·기억·비평의 자리》, 길, 2012, 428쪽, 이하 동일) 딸과 아들까지는 잘 눌러 참았는데 시종을 보자 그 슬픔이 흘러넘쳤다는 것. (...)

 

 

이제 벤야민 자신의 해석을 들어볼 차례다. “거대한 고통은 정체되어 있다가 이완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법이다. 이 시종을 본 순간이 바로 그 이완의 순간이었다.” 예컨대 별안간 부모의 초상을 치르게 된 사람이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식을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는, 현관에 놓인 부모의 낡고 오래된 신발 한 짝을 보고 비로소 주저앉아 통곡하게 되는 상황 같은 것일까. 아마 그런 것이리라. 벤야민은 자신의 해석까지 소개하고 덧붙이기를, 헤로도토스가 왕의 심경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으므로 이 이야기가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라 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나는 벤야민의 말을 십수 년 동안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에 어떤 계기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확인해보고 조금 놀라고 말았다. 이야기 속 노인은 ‘시종’이 아니라 왕의 ‘친구’였다. 왕 자신의 해명도 이미 이야기 안에 있었다. “제 집안의 불행은 울고불고하기에는 너무나 크옵니다. 하지만 제 친구의 고통은 울어줄 만하옵니다.”(천병희 옮김, 숲, 2009, 281쪽) 그렇다면 우리는 벤야민에게 속은 것인가? 아니, 오히려 그가 소개한 해석들로 우리는 슬픔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 이런 것이 슬픔에 대한 공부다.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29~32쪽.
...............

 

 

→ 이 글을 나는 다른 경로를 통해 여러 번 접했고 이 책에서 다시 접했다. 반가웠다. ‘해석의 다양성’은 문학이 가진 가장 중요한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멋진 책을 갖고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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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11-10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책 다 저한테 있는데요 앞의 책을 먼저 읽고 있습니다. 빨리 읽어야 할텐데용. 책광이란 말은 제가 증인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는 분 중 이택광이란 분이 있어요. 관계는 없지만 택광, 책광 발음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페크pek0501 2018-11-10 18:11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 님을 책광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제가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말이에요.

증인이 되어 주신다니 제 마음 든든합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

서니데이 2018-11-16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혜신 작가의 책 저도 읽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과 어렵지 않게 쓰여진 것이 좋았어요.
페크님, 내일 아침은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8-11-17 13:41   좋아요 1 | URL
아,벌써 읽으셨군요. 저는 아직 완독 못했어요. 조금 읽어 보니 술술 읽히는 책인 것 같아서 마음먹으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다른 책에 빠져 있어요.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지...

날씨가 추워졌지만 오늘은 미세먼지가 없는 것 같아 좋습니다. 이런 날 많이 걸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가야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토요일입니다. 서니데이 님도 좋은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