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역사의 역사>

 

 

"역사책을 집어 들 때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간 일자나 집필 일자가 때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누설한다." 단순히 언제 썼고 언제 출간했는지뿐 아니라, 그 책을 쓴 사람이 어떤 정치적 · 사회적 환경에서 살았는지 점검해 보라는 카의 말이다. 『역사서설』을 읽을 때도 할둔의 시대와 인생 역정을 들여다보아야 그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것을 들을 수 있다. 할둔은 강력한 종교적 · 사상적 · 정치적 통제 아래 살면서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했다. 『역사서설』에 들어 있는 종교적 찬양 문구는 이 걸출한 역사가가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끼면서 작업했는지 알려 주는 증거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본다.(97쪽)

그렇다면 역사가는 어떤 기준으로 중요한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을 나누며, 어떤 원칙으로 의미 있는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을 구분할까? 만인이 동의할 수 있는 완전무결하고 합리적인 기준이 있는가? 없다. 역사가는 저마다 다른 기준에 따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실을 선택하며 같은 사실로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사실의 선택은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 영역에 속하며, 역사가의 주관은 개인적 기질, 경험, 학습, 물질적 이해관계, 사회적 지위, 역사 서술의 목적을 비롯한 여러 요인이 좌우한다.(137~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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