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주(1990.1). 대한민국 비디오 10년 약사. 비디오플라자.  288~291.

288쪽 

79년 가전사가 제10회 전자박람회를 통해 VTR을 선보이게 되면서 부터, 즉 80년 부터 초기 몇년간의 비디오 산업은 소위 하드에 의해서 주도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는 단지 가전 3사의 '기술축적'이라는 의미가 컸을 뿐 시판시기나 VTR의 적극적 활용들에 관해서는 포르노 테이프들이 대부분이었다. 

'83년은 VTR이 어느 정도 자기자리를 찾게 된다. 가격이 60만원대로 내려가면서 품질도 충실해지기 시작했으며,30만원대의 단순재생기능만을 내세운 VTR이 나와 비디오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해이기도 하다.  

VTR의 자체적인 기술개발 측면에서 보면 '83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무선리모콘이 '84년에 본격적으로 채용되었으며 '85년 음성다중의 대응책으로 스테레오 VTR이 발매 되었다. 이 기능은 가격이 비싸 대중의 호응을 얻는데는 실패했으나 고급기능의 탑재라는 면에서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289쪽

'86년 부터는 화질보상을 위해 HQ방식의 채택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고 '87년 디지탈 VTR의 개발로 한국 VTR업계는 끊임없이 기술의 진보를 가져온 셈이나 몇몇 대중화된 기능을 제외하면 고급기종의 제품들은 그 활용도가 극히 미약한 편이었다. 

소프트산업의 태동 

289쪽 

VTR이나 비디오 소프트에 대한 보급율이 미약했던 초창기, 비디오는 보통 연극이나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보고 토론을 하거나 기업의 교육,홍보적 측면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80년초 비디오 테이프의 국내생산이 시작되면서 '80년 9월,세신영상,한국비디오,삼화 등이 국내 최초의 비디오 프로덕션으로서 문공부에 등록을 하게 된다. 이 당시의 출시 프로그램들은 중국식 무협물이나 B급 외화, 방화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에는 판권료는 쌌지만 판매시장이 협소했기 때문에 프로테이프 1개당 가격은 지금의 1만원대 보다 훨씬 비싼 2만원 선에서 거래 되었다. 이 시기에는 소프트가 풍부했지 못했으므로 오히려 복사품이 활개를 쳤고 프로 테이프 시장보다는 공테이프 시장이 더욱 활성화된 상태였다. 때문에 몇 개 되지는 않는 비디오 숍들도 정품은 거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진열용'으로 사들였을 뿐 비품 위주의 장사를 했다. 이런 불법 비디오 테이프의 유통은 대개 미군 PX나 그들을 상대로 유흥업을 벌이는 군소비 지역을 통해 흘러 나오게 되었는데 이 테이프들이 복사가 용이하다는 잇점으로 불법 제작자들의 손에 의해 대량 복사되어 대중에게 파고 들기 시작했다. 

당시의 비디오숍은 지금처럼 신용대여가 아니라 교환제로 운영되었다. 즉 초창기에는 소프트가 풍부하지 못하고 테이프의 가격도 비쌌기 때문에 고객이 일단 비디오 숍에 갖다추고 빌려봐야 했는데 덕분에 비디오 숍에서 지금과 달리 테이프의 판매수익 또한 만만치 않았다. 

비디오시장의 변화 

저작권법의 발표를 앞두고 국내 비디오 업계엔 대대적으로 '불법 비디오'에 대한 수거운동이 벌어졌는데 그동안 볼만한 정품프로의 부재에 의해 소위 '비'자 테이프에 많은 것을 의지해 있던 비디오 숍에선 초비상이 걸렸다.'불법 비디오 수거'는 국내 비디오 시장의 정화란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으나 외국메이저들이 들어오기 전, '시장청소를 해주는 것이 아니냐'는 등 이에 따른 집을 또한 만만치 않게 국내 비디오업계를 긴장시켰다. 불법 비디오의 수거과정에서 당국은 불법 비디오 전부를 마치 '불법 포르노'처럼 설명했으나 사실 불법 테이프 유통량의 상당한 수가 극장용 개봉 영화이거나 아직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은 외국의 유명영화인 경우가 많아 국내에 출시된 비디오 프로들의 재정비가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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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쪽 

올림픽을 계기로 더욱 커진 비디오시장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비디오 시장은 엄청난 '사업확장'을 한 셈이다. VTR의 보급율이 2백60만대를 넘어섰고 비디오 프로덕션은 1백여개를 헤아리고 있다. '87년까지만 해도 최대 판매량이 1만개를 밑돌던 것이 '88년을 기해 1만5천~2만개까지 팔려 나간다. 이는 그만큼 올림픽을 계기로 VTR이 많이 팔렸고 그로 인해 '비디오를 빌려보는 사람 또한 꽤 많아졌음'을 시사해준다. 

비디오문화 10년, 얻은 것과 잃은 것 

초창기와 현재를 비교해 볼 때 비디오에서 가장 현격히 달라진 점은 바로 '베타'의 사장화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VTR은 처음 대한전선이 소니와 기술협정을 맺고 베타방식을 생산하게 되었고 금성과 삼성은 VHS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그 후 베타 VTR은 대우로 넘어가 계속 생산이 되었는데 베타와 VHS는 각기 그 특성을 달리하면서 보급망을 넓혀왔다. 특히 초창기에 VTR을 구입한 사람들 중에는 베타의 비율이 많았으며 강남의 경우 오히려 베타 테이프의 비율이 VHS보다 많았을 정도, 그러나 마켓팅의 열세 때문인지 점차 VHS가 시장을 잠식, 대우에서도 '86년부터 VHS를 생산하기 시작하더니 2년전 부터 서서히 베타의 시장이 사장되어 버렸다. 현재는 녹화를 위한 공테이프에는 베타가 나오지만 프로테이프는 나오고 있지 않은 상태다. 

또 한가지 비디오 산업의 성숙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영화와 비디오의 '상호접목'이다. 초창기 영화업계에서는 비디오가 영화산업을 좀먹는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으나 점차 비디오산업이 커짐에 따라 영화쪽에서는 비디오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 하나의 연계산업으로서 인정해 나가고 있고 많은 영화인들이 실제로 비디오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창간기념특별좌담 : 비디오 산업관계자 6인의 연석방담 "생각나는대로 거리낌없이 아낌없이 '주고 받읍시다' .비디오플라자(1989.12) 

128쪽

한순호(SKC 소프트사업부):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후보문제가 적지않은 고민입니다. 국내에서 개봉된 작품들이야 지명도가 있어 별 문제가 없지만 미개봉 작품 중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이런 작품들이 널리 소개되지 못하고 반품이 속출한 때는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129쪽 

사회 : 이것은 결국 영화가 비디오가 상호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외국의 경우 감명 깊었던 작품들을 재감상하기 위해 비디오로 보거나, 비디오로 보고 좋은 작품을 보다 명확하게 감상하기 위해 영화관을 다시 찾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영화의 현장감과 영상효과가 비디오로 감상할 때에 비해 훨씬 큰 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 국내의 경우 아직 영상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김영원(금성사 영상제작과): 아직 우리의 경제수준이 비디오로 본 영화를 극장에 가서 다시 감상할 만큼은 못되지 않나 싶습니다.   

사회자 : 비디오 시장에서도 철저한 마케팅 전략은 중요한 것이 생각하는데 국내에서는 이것 역시 아직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일본의 경우 영화 'ET'가 비디오로 출시되는 것에 맞추어 36인치 TV가 개발,시판되지 않았습니까? 

이승철(삼부프러덕션) : 대작의 경우 비디오로 감상을 하면 음향효과나 영상효과가 떨어진다는 단점을 커버하기 위함이겠죠.시장운영이나 판매전략이 그렇게 철두철미 하니 흥행에 성공하지 않을 수가 없죠. 

한순호 : 우리의 경우 시장조사에서만 주먹구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윤의 심의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승철: 사전,사후로 심의가 나누어져 있는 현행제도에서 사후심의와 사전심의의 결과가 판이하게 다를 때가 비일비재 합니다. 심지어는 외화의 경우 극장상영이 안되는 작품이니 비디오 역시 허가할 수 없다는 획일적 행정을 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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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희(1985.6) 비디오의 속과 겉을 벗긴다 : 한국의 비디오 현주소.154~157. <월간 비디오>

가정에서 

155쪽 

한편 이런 비디오 필름이 혼자서 몰래 보는 내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환한 곳에서 공개적으로 볼 수 있을 때 블랙비디오의 의미에서 환한 비디오, 화이트 비디오의 생각을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이 몰래 몰래 보는 것때문에 어른 스스로가 비디오를 나쁘게 생각하는 데 참 재미있는 내용도 많은 것 같다."며 학교에서 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집에도 가져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박정신(홍익대 3년)양은 이야기 한다. 

영화사에서 

155쪽 

"비디오가 옛날 추억의 영화를 많이 카피하여 시중에 파고드는 카피문화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영화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음악에서 디스크와 테이프가 공존하듯 비디오와 영화는 서로 협력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영화 감독 이미례 씨는 이야기했다. 

비디오숖에서 

157쪽 

3일간 빌려주는 비디오테이프를 서로 옆집,앞집으로 돌려보고 있어 이용율이 더 적어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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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영화와 비디오의 랑데뷰. 1985.5 <월간 비디오> 

63쪽 

이황림(영화감독.합동영화사 기획실장) : (전략)..영화예술의 정수를 수용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비디오를 통해서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느냐는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러나 제가 영화를 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어차피 비디오는 영화의 동생이 아닌가 즉 서자 취급하는 것 같은 매체로써 좀 건방진 마음도 있어요.(후략).. 

박평화(삼부프로덕션 대표) : (전략) 그쪽에서는 침투라고 표현하시겠지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비디오는 모방한 영상매체로 종전 영화가 했던 기능을 영화로 보는 팬들에게 그 영향을 그대로 전해 줄 수 있는 것이 거든요. (후략) 

이황림 : ..(전략)'비디오산업은 곧 방송이다'라는 문제 하나하고 비디오산업이 영화와 공존할 수밖에 없지만 비디오가 갖고 있는 장르는 확실히 따로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분재나 육아법 대한 프로그램을 극장에서 돌려봤자 어디 관객이 들겠읍니까.비디오는 어떤 면에서 일상적이고 교육적인 영화가 침해할 수 없는 어떤 범위가 있는 것을 새삼느낍니다. 앞으로 그러한 문제들이 비디오 하시는 분들이 중점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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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준(1998.2). 기획취재-비디오산업. 총체적 난국 속 비디오 업계의 살아남기.<비디오 무비> 118~120.

118쪽 

셀스루 시장에 거는 기대 

: "렌탈용 비디오 시장의 불황을 판매용 교육물, 기획물 비디오로 이겨낸다는 것이다." 

119쪽 

감소 추세의 비디오 대여점 사업 

: 비디오 대여업계에서 추산하는 매출액과 대여점 수의 추이를 보면 지난 94년 매출액은 3천억원에 달했으나 96년은 2천8백억원,97년은 2천억에서 2천2백억원으로 감소하였고 대여점수도 90년 약 3만5천개에서 94년 2만8천개,96년 2만3천개,97년은 1만5천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항간에서는 비디오 산업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떠돌 정도로 비디오 시장의 축소는 심각한 현황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비디오 대여점은 특색이 없다. 최근 출시된 대박 프로 중심으로 비디오샵의 작품들이 구비되어 있다. 

120쪽 

비디오 대여점의 문제점 - 빅뱅의 전국 확산 파문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비디오 대여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여료 덤핑문제이다. 언제부터인가 2천원 하던 대여료가 균형을 잃고 어디에서는 500원,어느 곳에서는 300원,심지어 울산의 어느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구프로는 10원을 받는다는 얘기까지 떠돌고 있다. " 

<비디오 무비>(1998.1) 98년 국내 비디오 산업 전망.  

124쪽.  

비디오 업계의 네 가지 난제 

첫 번째는 프로그램의 원활한 수급이다. 모든 기업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그 여파가 영화계에도 미치고 있는 지금 프로그램의 공급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비디오 대여 시장의 침체 시기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세 번째는 판매용 비디오 시장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현재 월트 디즈니의 판매용 만화 비디오는 안정적인 판매망을 구축했지만 일반 극영화 비디오의 판매는 극히 미약한 상태. 

125쪽 

비디오 샵 영화 안목 높여야 한다 

"비디오 샵은 단순히 슈퍼에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공급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업주들이 영화에 대한 안목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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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길라잡이>(1999.6)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시행령!어떻게 달라졌나. 114. 

114쪽 

5월 9일부터 발효된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지난 5월 15일 확정,공포되었다. (중략) 비디오업계의 큰 변화로는 비디오 대여점의 영업 시간이 전면 자율화되었고, 기존 4등급제에서 3등급으로 간소화된 점, 비디오물의 수입 추천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각 업종별 진흥위원회 설치 등을 들 수 있다. 

이원우(1997.12)'97 비디오 업계 달군 핫 이슈 퍼레이드 - 통합과 구조조정에서 청소년 보호법까지 -  <비디오 무비>

117쪽 

CIC, 9000원대 극영화 셀스루 내놓아 

"렌탈시장의 한계와 끝을 모르는 비디오 시장의 불황. 이에 따른 위기에 맞서 업계 공통으로 제시하는 대안중 하나가 셀스루 분야다. 국내 셀스루 시장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기획물, 아동용 교육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극영화 셀스루는 극히 미미한 실정.(중략) 극영화 셀스루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이유중에는 여러 가지가 '아무때나 반복해서 볼 만한,', 또는 소장가치가 있는 타이틀의 부족(117) 과 비싼 가격문제가 주로 거론되어왔다. 특히 가격문제는 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좌우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사안. 이럴 때  CIC가 지난 10월 극영화 셀스루를 파격적으로 테이프 1개당 9,900원에 판매하기로 해 큰 주목을 끌었다." 

119쪽 

7월 1일, '영상 말살법' 청소년 보호법 발효 

..(전략)..이 법에 의해 개정된 이름 자체가 '청소년 출입 제한 업소'가 아니라 '청소년 유해 업소'로 너무 광범위하고 게다가 비디오 대여점이 어째서 '청소년 유해업소'인지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이전에도 청소년들을 음란물이나 폭력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법은 음비법을 비롯해 형법의 음란물 유포죄,청소년 기본법, 미성년자 보호법 등 10여개나 있었다. 문제는 단속할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몇몇 업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체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고 무소불위의 힘을 앞세운 법을 새로이 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 더욱이 청소년 범죄의 주범이 만화나 영화,비디오 등의 영상매체라는 발상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 법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막고 심하게는 청소년을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청소년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말살하는 법이라는 얘기도 있다." 

<비디오무비>(1997.12). '97년 마케팅 아이템 점검 -사전주문제에서 대규모 타이 인 프로모션까지- 

1월 : 1월은 뭐니해도 <인디펜던스 데이>의 달. 비디오 업계 사상 최대규모의 프로모션에 눌려 다른 작품들은 기를 죽인채 한 달을 보내야했다. 출시 전과 후로 나뉘어진 이 프로모션은 총 10여개 회사가 참여했고 70억원 규모의 광고 프로모션이 걸린 메가톤 급,대우전자와 해태제과. 농심 켈로그등이 참여했고 외계인의 침공을 다룬 영화답게 '현실로 다가오는 외계문명전'에도 <인디펜던스 데이>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밖에 카메라, 랜턴 고급 탁상시계, 다이어리 등을 선물로 내건 사전 주문제와 심야출시를 실시했다. 판매량은 13만 5백장. 

<로드쇼>(1994.3). 홀드백 기간 단축에 대하여 . 273쪽 

'홀드백'이란 영화가 개봉한 후나 종영한 뒤에 비디오로 출시되기까지의 공백 기간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홀드백 기간이 도입된 것은 80년대 후반부터이다. 당시 직배영화사들이 들어서면서 홀드백 기간은 1년이었다. 다시 말하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지 1년 뒤에 비디오테이프를 출시하도록 영화사와 비디오회사가 계약한 것이다. 최근 들어 그 홀드백 기간이  차츰 줄어 3개월까지로 축소되어 영화계와 비디오업계 간의 찬,반 양론이 일고있다. 영화계는 홀드백 기간의 단축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홀드백 기간을 3개월로 잡으면 지방상영관까지 영화를 돌리기 전에 비디오가 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화사로서는 큰 손실이며 지방업자들과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 (중략)영세한 영화사들은 비디오사들의 자금줄에 매달려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3개월'이란 기간은 너무 야박하며 기간을 더 늘여야한다는 것이 영화사들의 입장이다.  

이에 반해 비디오업계는 반대입장이다. 대부분의 영화는 한달만에 종영되는데 비디오가 1년이나 지나서 출시되면 상품가치가 없기 때문이다.(중략) 홀드백 기간은 영화사와 비디오사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계약된다. 그러나 올해부터 프린트 벌수 제한이 풀렸기 때문에 영화유통기간은 더욱 짧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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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1990.1). 비디오영화의 제작 실태. <영화>128호. 

비디오영화 제작, 이유있다  

39쪽 

'A급외화의 더블'이라는 우리 영화가 공급에 비해 수요과잉으로 판권료가 1년반-88년 중순에 1천만원 선이었던 것이 89년 11월 현재 2천5백~4천만원 선-사이에 급격히 인상되어 영화의 비디오 판권구입은 설상가상격으로 난항에 부딪히게 된다. 이로써 힘없는 중소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그리고 또 하나 6개월~1년의 비디오 홀드백 기간도 프로덕션의 자체제작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제작 이전에 이미 영화사에 판권료 전액을 현금으로 지불하고 극장에 개봉이 되고서도 6개월~1년 동안 비디오로 출시할 수 없어 거의 2년동안 거액의 자본이 묶여 있다는 것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중소 프로덕션들에게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산머루>의 반향. 16MM 제작.  

40쪽 

극영화의 제작비가 1억원 정도라면 비디오영화는 이것의 15~25%의 비용밖에 들지 않는다. 

이연호(1990.1).홈비디오를 통한 영화시장의 확대.<영화>128호. 

48쪽 

최근 비디오업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비디오영화 제작붐을 혹자는 '16밀리 영화의 비극','16밀리 정신의 탈선'이라고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16밀리 영화가 35밀리 영화의 상업성에 반기를 들고 철저한 문제의식이나 작가의 주관을 반영하는 도구로 인식되어 왔으나 한국에서는 가장 상업적이며 몰작가의식의 변형된 형태로 탈바꿈되었기 때문이다. 

50쪽 

비디오그램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자 극장흥행에 실패한 영화가 홈비디오로서 성공하여 극장흥행의 적자를 메꾸는 일도 비일비재해졌다.물론 극장에서 흥행에 실패한 B급, C급의 영화라 할지라도 홈비디오로 성공하는 율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자 비디오 수익만을 노려도 넉넉할 만큼 영화산업이 안정되었다. 이와같은 현상에 대해 헐리우드 경영진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제 영화사업은 극장흥행의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이 되었다. 제작사는 극장흥행에서 실패한 영화나 심지어는 극장에서 개봉을 하지 않은 영화로부터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더욱 더 많은 영화들이 홈비디오로부터 거두어들일 수익의 가능성 때문에 제작된다." 

50쪽-51쪽 

한편 비디오소프트의 활성화가 극장용 영화흥행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생각했던 당초의 우려와는 반대로 극장용 영화시장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추세를 보이자,헐리우드 영화사들은 극장용 영화시장의 보호를 위해 마련한 비디오그램의 제작유보기간을 점차 단축시키고 있다. 이것은 극장용 영화에 대한 광고 및 판촉효과가 직접 비디오의 판매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51)고 때에 따라선 극장용 영화의 판촉을 위한 캠페인용으로 개봉전에 비디오를 배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비디오가 극장흥행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작 및 흥행 패턴의 변화 

51쪽 

홈비디오를 통한 영화의 시장확대는 헐리우드 영화사들의 기존 영화제작양식 및 영화의 흥행패턴을 변화시키고 있는데,이와같은 변화의 양상은 다음의 몇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영화형식의 변화이다. 영화제작자들은 비디오시장을 의식해서 기존의 극장용 영화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을 4:3에서 5:3인 유럽의 표준영화 사이즈로 변화시켜 왔다. 이와같은 영화 사이즈의 변화는 영화를 제작해서 극장상영이 끝난 후 곧바로 비디오테이프로 옮기기 위해서이다. 

둘째,홈비디오의 수정제작이라는 형태로 극장용 영화를 위해 삭제된 부분을 다시 편집하여 홈비디오로 만들어내는 일이 나타나게 되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극장에서 참패를 했어도 비디오 완제품으로 성공,작품성까지 재평가 받게 된 경우도 예를 들 수 있다. 

셋째,극장상영을 전제로 하지 않는 홈비디오 용의 저렴한 영화가 대량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1980년에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의 수가 264편이었는데 반해, 1983년 이후로는 매년 약 400여편이 제작되었으며 증가된 양의 대부분은 홈비디오를 위한 저렴한 영화들이었다. 

넷째, 홈비디오는 극장용 영화의 개봉방식에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기존의 극장용 영화의 흥행방식은 개봉-재개봉-재재개봉 등으로 이루어진 플랫폼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흥행방식은 70년대 이후 2,000여개의 개봉관에서 동시에 개봉되는 동시다발적인 상영형태로 변화되는데, 이러한 흥행패턴은 홈비디오의 등장으로 한층 강화되게 되었다. 이를 통해 홈비디오는 기존의 재개봉관의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다. 

 송영택(1990.1)비디오영화 제작에 대한 평가. <영화-128호> 

53쪽 

비디오영화는 각 제작업체에서 '창작기획물'이라는 이름으로 심의 의뢰한다. 개중에는 무슨 단편소설을 읽는 것처럼 깔끔하게 다듬어진 훌륭한 작품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작품은 그렇지 못함으로써 음란성 시비가 뒤따른다. 

이들 작품의 소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하나는 구전 또는 이야기 책으로 내려오는 음담패설 등을 중심으로 한 상투섹스물이고,다른 하나는 1920~30년대의 신파조 연극내용을 원용한 현대 섹스물이다. 줄거리를 보면,사주팔자를 그렇게 타고 나서,또는 우연치 않게 인신매매조직에 붙잡혀서 매춘을 강요당하게 되고,장기 출장간 남편이 그립던 차에 어떤 유혹에 빠져서탈선을 하다가 팔자 땜을 하거나 악의 무리에 대해 복수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몇 번의 정사장면을 어떻게 넣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강근주(1990.1) 국내 최초의 비디오 극영화 제작, 대영비디오 프로덕션 임종구 사장. <영화-128호>63쪽. 

-현재 영화와 비디오는 서로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은 물과 불같은 관계예요. 이것은 영화계 쪽에서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로 영화인의 사시와 극영화 제작자의 편견이 작용한 것이죠.그러나 앞으로는 비디오산업이 제3의 영상시대를 구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에 영화쪽에서 이쪽으로 다가와 공존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영화제작자들은 비디오프로덕션으로부터 받는 비디오판권료로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충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조선희(1997.7.29-8.5). 부활한 매카시.  <씨네21>113호. 

"지금 우리 사회에선 섹스와 폭력의 교사범으로서 영화와 만화에 대한 공개재판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영화는 과연 대중에게 폭력을 가르치고, 비디오를 본 아이가 살인범이 되며,이 때문에 현대사회는 점점 흉포해지고 있는 것일까. 영화도 다른 모든 매체들처럼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런 단정은 확실히 과도하며,일면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 

남동철(1998.3.3).대기업과 함께 춤을. <씨네21>. 

35쪽 

"88년 영화 직배가 영화인의 집단반발에 부딪혔던 것과 달리 비디오 직배엔 처음부터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비디오는 생소한 매체였고 직배사 출시 비디오는 포르노와 해적판으로 오염된 비디오문화를 건전하게 만든다는 명분을 갖고 있었다.직배 초기 UIP영화를 비디오로 내는 CIC는 "정품표시를 확인하라"며 시장을 개척했다.삼성,대우 등 VTR을 만드는 대기업이 직배영화라는 소프트웨어에 눈독을 들인 것은 시장의 논리상 당연하다.대우전자는 폭스,컬럼비아의 영화를 출시했고 브에나비스타는 삼성물산을 파트너로 삼아 드림받스란 브랜드로 비디오를 냈다.테이프 생산업체인 SKC도 워너브라더스 영화를 공급받았고 약 40~50%의 로열티를 주고 직배영화를 주무기로 구색을 갖춰나갔다. 직배사 입장에선 비디오 유통에 드는 초기비용없이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이득이 있었고 대기업에선 질좋은 영호를 안정적으로 공급한 덕에 VTR도 많이 팔고 자체수입한 영화를 끼워 파는 효과도 본 것이다." 

<씨네21-187호>. 1999.2.2 디즈니는 왜 자수했을까? 

18쪽 

디즈니는 지난 1월 8일 어린이 애니메이션 <구조대원들>(The Rescuers)에 여성의 상반신 누드가 들어 있다며 전국에 배포된 비디오를 회수하겠다고 밝혔다."온 가족이 믿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 디즈니의 설명이다. 비디오 회수에는 700만~1천만달러의 비용이 들어갈 예상이다. 그런데 디즈니의 '선의'를 곧이 곧대로 믿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구조대원들>비디오 회수는 판매를 증가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술일 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무엇보다 디즈니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데 혐의가 두어진다. 사실 문제의 장면은 영화 전체의 11만프레임 가운데 두 프레임에 불과해서 정지화면으로 문제의 프레임을 찾지 않느 이상, 육안으로 상반신 누드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정일(1990.2). 외부의 억압에 부서진 사랑 운명애에 부서진 사랑.<비디오 패밀리> 

53쪽 

좋은 시나리오가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장되거나 35밀리 영화화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비디오 영화로 제작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부드러운 숨결'같은 겨우,일급의 캐스팅만 배려될 수 있다면 35밀리 제작으로도 흥행을 기대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좋은 영화가 될 조건을 고루 갖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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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방송학과에 들어온 친구들이, 신문과 텔레비전을 다른 학과생들보다 더 안 보는 세상, 그렇다고 심리학과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더 심리를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나 또한 전공명에 '영상'이라는 것이 들어가 있지만, 영화를 안 본지 꽤 되었다. (부끄럽게도 그렇다.) 그래서, '오랜만에' 졸업논문을 써야 한다는 부담을 떨쳐내고, 친구와 함께 영화 <시>를 보러 가려고 예매버튼을 눌렀다. 

로쟈님이 추천해주신 씨네21 특대호를 구하지 못해 아쉬운데, 나중에 친구들에게 빌려 보고, "그거 나한테 줄 생각없나?"하고 찔러봐야겠다.  

극장에 갈 때면,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양장점을 운영하셨던 외할머니는, 골무와 재봉틀, 하얀 초크의 삶에서 벗어나, 극장에 가실 때, 늘 기품을 강조하셨다. 잘 다려진 외출복을 입으시고, 흐트러진 머리카락도 정돈하셨다. 그리고 교회와 극장에 갈 때만 신으시던 구두를 장 안에서 꺼내, 절도있는 걸음으로 극장을 향하셨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 기억에 외할머니께서 생전에 극장에서 보셨던 마지막 영화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였던 것 같다. 외할머니가 밥을 차려주시면서, 영화에 대한 정돈된 나름의 인상비평을 남겨주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물론, 외할머니는 극장에 늘 혼자 가셨다. 당신은 언제나 자신만의 길을 갔다. 떳떳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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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6 0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16 09:41   좋아요 0 | URL
저 털털한 사람입니다.^^!

비로그인 2010-05-1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진짜 멋진 분이시다아~!
고롷게 품위있게 늙고 싶어요^^

얼그레이효과 2010-05-16 09:4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늙고 싶습니다!

2010-05-16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17 01:57   좋아요 0 | URL
정보 고맙습니다. ~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십 분짜리 영화학교 - 7천 달러로 혼자 만든 영화, 세상을 놀라게 하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지음, 고영범 옮김 / 강 / 2007년 4월
품절


이 기계 때문에 정말 좋았던 것은,10달러라는 돈을 들여서 소리도 없는 2분 남짓한 슈퍼 8mm 영화밖에 만들지 못하던 예전에 비해, 같은 돈으로 두 시간이나 되는 총천연색 화면에다가 소리까지 넣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비디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29쪽

나는 사업에 잘되게 하려면 이렇게 제대로 만든 영화를 내놔야만 한다는 식으로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요즘 나오는 비디오용 영화들이 날이 갈수록 엉망이 되어가는데, 만약 우리 영화를 배급해주고 나면 그가 이 중남미권 비디오 영화 시장을 떠나 할리우드로 진출하기 전에 몇 편을 더 제작해서 공급해주겠노라고 했다.-202쪽

나는 비디오용 영화들이 눈 뜨고 못 볼 지경인 이유는 그 영화들을 만든 사람들이 단시간 내에 이익을 보길 바라는 사업가들이기 때문이고, 결국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자기 밥그릇을 자기가 차버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러고 나서는 지금 비디오 시장에는 나쁜 영화들이 너무 많아서 흘러넘칠 지경이다. 비디오 영화 회사들의 판매 실적은 이런 종류의 비디오들이 붐을 이뤘던 8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떨어졌는데, 그들이 판매하는 제품인 영화의 질을 향상시키지 않는 한 조만간 이 시장 자체가 사라지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뻔히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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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 컬트와 예술을 교란한 뒷골목 문화의 지휘자
자미 버나드 지음, 김정혜 옮김 / 나무이야기 / 2008년 6월
품절


"우리는 영화 학교 세대의 바로 다음인 비디오 가게 세대였다. 즉 컴퓨터와 비디오 그리고 정보고속도로와 함께 성장하며 영화감독을 꿈꾼 첫 번째 세대라는 얘기다.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럭 맥락에서 나는 그 비디오 가게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으며, 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쿠엔틴이다."-로저 에버리의 말-71쪽

그 가게를 더욱 개성적인 곳으로 만드는 동시에 직원들의 독특한 영(78)화 취향을 부각시키려고 그들은 '우리가 추천해도 될까요?'라는 코너를 신설했다. (중략) 결코, 좀더 전통적인 비디오 대여점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그들은 '우리가 추천해도 될까요?'코너를 '새로 나온 비디오'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야만 했다.비디오 가게를 찾은 손님 대부분은 가장 먼저 그 코너로 눈길을 주었기 때문이다.-78,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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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공부하는 것이 아닌, '예술사회학'을 공부하게 되면, 좀 못된 심성이 스며든다. 내가 바로 그런 인간이다. 예로 들어, <아버지는 똥이다>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다고 치자. 그 작품이 평단에 좋은 평가를 받는다. 누군가가 그 영화를 만든 사람에게 '천재성'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고 사용할 때, 나는 그 사람의 궤적을 조사하고 싶어진다. 왜 저런 제목을 달았을까? 평소에 저 영화 감독이 튀는 행동을 잘한다고 하는 데, 저런 행동에는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등등. 요즘 영화문화를 지배하는 담론인,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까요 뭐." 같은 반-지성주의와 지성주의 사이에 걸쳐진 '패배적 다원주의'로 무장한 이들의 생각과는 또 다른 영역인데, 이러한 '조사 취미'를 갖게 되는 과정을 밟고 싶다면, 피에르 부르디외의 책을 자주 읽으면 된다.  

나는 그동안 늘 '홍대형 인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주목해왔다. 물론, 여기서 '홍대'는 홍익대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분히 상징적인,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홍대'라고 부르는 상징적 공간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그러면서 그 공간 안에서 특징적인 문화 자본을 습득하고, 자신들의 코뮤니타스를 설정해놓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질 기회가 있었다. 이것은 물론 일반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누적된 경험에서 오는 정리 단계다.  (이는 물론 '홍대적 감수성'을 확보한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해당된다.)

예로 들어, 카페에서 공부를 하니, 잘 된다는 사람이 즐겁게 자신이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러면 '홍대형 인간'들은, 특유의 '예술적 감성'으로, "난, 그런데 가면 왠지 공부하는 것 티 내는 거 같아서 싫던데.."라고 말한다. 물론, 여기에 '예술적 감성'이란 의미를 개입시키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다만, 내가 이 의미를 넣는 건, 이 의미의 개입이 다른 대화에서도 비교적 유사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남들이 편안하게 이야기 하는 주제에 대해서, 그들은 근본적인 의미를 되물으면서 분위기를 숙연하게 /어색하게 만든다. 예로 들어, 사람들이 정치에 관련된 주제에 대해 활발하게 자신의 의견을 꺼내놓는다. 그럼 홍대형 인간은, 조용히 있다가, 웃으면서 한 마디 건넨다. "과연, 정치라는 게 무엇일까요?"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작용은, 열정적으로 이 세계를 옹호하거나, 혹은 부정하는 사람을 순식간에 무안하게 만들어버리는 효과로 나타난다.  

이런 '조사 취미'가 갖는 딜레마는 도덕과 예술의 접합 지점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접합을 만들어내는 사회와 유/무관한 예술가들의 생활에 대해 내가 개입하고자 할 때, 갈등이 일어난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천재성'에 대한 의구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내내 자위행위가 나오고, 구토를 하고, 그 안에서 기이한 재미를 주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을 만든 감독의 사생활을 알게 되었을 때, 가령, 야, 저 사람. 영화만 골때리는 줄 알았는데. 사람도 골때려. 노래방에서 팬티까지 벗고 노래하고 난리도 아니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그러면 이 의구심은 영화의 내용과, 그 영화가 받았던 평가(평가가 좋으면 좋을수록) 그리고 만든 사람의 생활-성격에 대한 연관성으로 압축된다. 소위 영화를 팔기 위해 저런 것 아니야?라는 진부한 '노이즈 마케팅'식의 질문은 물론 아니다. 이건 부르디외가 말하는 개인의 하비투스, 그리고 그 하비투스에 연관된 장 내부의 특성을 면밀한 체계로 구조화시켜 보는 작업이다.  

나는 스스로 이런 예술가들의 독특한, 그리고 그런 예술가들의 삶과 양식을 습득하는 특정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소외 취향'이라고 부른다. 이제 고민은, 얼마 전 아프락사스님이 올려주셨던 정치에 대한 '기계적 균형'의 맥락이 과연 내가 '홍대형 인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특성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의 지점이다. 이 부분은 아직 숙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나는 정치가 '취향화'되고 있으며, 이 '취향화'과정이 갈수록 심해질거라는 생각이 확고해지고 있다. 사실 정치라는 영역 안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 이제 스타와 팬, 그것을 지켜주는 건 '도덕의 언어'라는 생각이다. 예전 '시사인'의 특집 기사 제목처럼, '팬클럽 민주주의'라고 하는 형태. 이 팬클럽 민주주의가 주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오타쿠'로서, 자신의 스타가 무슨 짓을 하든, 그 스타에게 '쉴드'를 치는 것으로서 삶의 만족감을 찾는 라이프스타일. 우리가 잘 아는 '아버님들'의 출몰도 그런 면에서,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오빠부대'이며, 이건 다분히 최근 현상이 아니라, 역사가 빚어낸 산물이기도 하다. 이 산물은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역사를 간과하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탈퇴의 자유로움'이다. 스타가 좋아서, 취향을 바꾸는 사람들, 아니면 갑자기 '급취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도덕적 언어의 붕괴, '도덕적 사건'이 터질 때, 혹은 언론이 그렇게 도덕적 담론을 만들어, 인물의 완벽성, 특히 그 인물을 구성하는 도덕적 전기를 파괴하려 할 때, 팬들은 당황하고, 분열한다. 그리고 자신의 엄청난 정치적 열정이, 이 도덕적 담론에 의해 붕괴됨을 보고,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 공간 안에서 '소외 취향'을 가진 자가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 '소외 취향'을 가진 자에 쉽게 선입견을 씌우기엔 조사가 필요하다. 그들의 소외 최향이 다수가 유시민을 좋아하는데, 나는 김문수를 좋아하면 안 되요?라는 식으로 표현된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근거를 가지고 김문수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소외 취향에 대한 감수성은 무지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문화 자본을 갖고 있는. 학력 자본에 기반한 것임도 간과할 수 없다.  

학력 자본이라는 것과 연관만 살짝 시킨 채 이야기 다시 하기. 다른 맥락에서, 이 '기계적 중립'을 알바라고 치부하면서, 그 중립을 표하는 사람을 '무지하다'고 쉽게 무시해선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건 내가 부르디외의 책을 보면서 느낀 생각이다. 부르디외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을 드러내는 것과 관련하여, 학력 자본과 계급이 갖고 있는 특성을 흥미롭게 연구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정확히 말해,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그 배운 것을 정치에 대해 연관시켜 말하는 것을 즐겨사용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하지만, 그는 의심한다. 정치적 의견을 표출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로 시작하는.) 오히려, 그런 '기계적 중립'은 '나'가 배웠다는 사실. '나'가 배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그것을 이전의 역사가 준 씁쓸한 교훈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이건 내 조사취미가 가져다 준 습관적 사고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정치적 현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말해왔던 편향성을극복하고, 합리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보이기 위함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합리화하기 위함이다.하지만, 이 성찰의 방향에 대해 우리는 다시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가 '기계적 중립'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야만 하는 시도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오히려 '배운'사람들이 합리성, 공정성,객관성이라는 언어로 먼저 시작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정치적 교양을 뽐낼 때, 그 정치적 교양을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의심해본다. (오히려, 내겐 그들이 '알바'이다.) 그것이 기계적 중립으로 이어질 때, 그들이 내세우고 싶은 것은 '정치'인지, 아니면 '자신의 배운 능력'에 대한 표현인지, 나는 아직 구분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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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5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의 취향이라고 잘 못 보고 들어온....으이구~ㅠㅠ.

높은 학력자본과 계급에 우린 그의 가치관과 됨됨이도 무조건 동급일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죠.
얼그레이님~~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님께 반하게 되어요.
박학다식한 면 만이 아니라...줏대와 고집이 단단히 느껴져서요^^

얼그레이효과 2010-05-15 22:4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하지만 칭찬을 받을 만큼 그렇게 좋은 시선과 글인지는 아직 자신이 안사네요. 응원해주셔서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욧

신지 2010-05-15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그동안 추천은 여러번 눌렀지만 댓글은 처음 달아 봅니다.^^;

"오히려 '배운'사람들이 합리성, 공정성,객관성이라는 언어로 먼저 시작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정치적 교양을 뽐낼 때, 그 정치적 교양을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의심해본다. (오히려, 내겐 그들이 '알바'이다.) 그것이 기계적 중립으로 이어질 때, 그들이 내세우고 싶은 것은 '정치'인지, 아니면 '자신의 배운 능력'에 대한 표현인지"

ㅡ>

마침 방금 제가 본 기사가 있는데, 이게 비슷한 사례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제도만 남은 ‘민주주의’ㅡ 서경식,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16457.html


비슷한 사례가 맞나요.. (음, 그러고 보니 저도 서경식씨에게 그런 의심이 드는군요.)
효과님의 글을 읽고 제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그들이 내세우고 싶은 것은 '정치'인지, 아니면 '자신의 배운 능력'에 대한 표현인지, 나는 아직 구분이 가지 않는다."

ㅡ>

그런데 원래, 마음은 실제로 시간표처럼 딱딱 경계가 구획되는 것이 아니어서...... 또 "'자신의 배운 능력'에 대한 표현"이라고 해도, 그건 '누구한테나'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좀 더 부연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비판이나 지적이 아니고, 효과님의 의심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편이어서요. )

얼그레이효과 2010-05-15 23:05   좋아요 0 | URL
신지님,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서투른 글에 이런 친절한 인용과 응답 고맙습니다. 서경식 님 칼럼은 아, 처음 봤는데, 흥미롭군요. 근데 좀 맥락이 약간은 다른 것 같기도 하네요. 그 이념과 효율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마 제가 따로 글을 써야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칼럼을 한 번 더 읽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아마 제가 언급한 패배적 다원주의라는 측면. 이것에 대한 이야기의 심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사실 신지님 말씀이 논리적으로 맞지요. 저는 아무래도 사회학을 하는 놈이라서, 패턴을 정하고, 그 구조들을 만드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지라, 아마 이런 '결정주의'적 시각에 반하는 논리에 취약한 점이 있습니다. 고로, 특히 신지님의 생각처럼, 심리의 측면, 그리고 그 배운 능력을 바깥으로 표출하는 능력이 어떻게 '구조화'되고, 정의가 내려질 수 있는 부분, 특히 오늘 제 글처럼, 이런 보이지 않는 부분이, 어떻게 보이는 부분으로 나타날까의 측면은, 사회학적으로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구한테나'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거구요. 저는 그래서 그 반박이 안나오도록, 더 세밀한 근거를 제시해, 상대방에게 설득할 기회를 잡아야 하겠죠. 그래서, 부르디외 같은 사람들이 공격을 받는 이유도, 아마 그런 데서 있을 겁니다. 그래서, 부르디외는 쉽게 결정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쉽게 결정 안 되지도 않는 형태의 무엇인가가 사회에 있다는 걸 늘 강변한 것 같습니다. 그게 아마 저처럼 공부하는 사람이 세상 사람에게 낼 수 있는 사유의 대안이겠죠. 아직은 부족한 사람이라, 이렇게 밖에 말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신지 2010-05-16 07:46   좋아요 0 | URL
그래서, 부르디외는 쉽게 결정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쉽게 결정 안 되지도 않는 형태의 무엇인가가 사회에 있다는 걸 늘 강변한 것 같습니다. 그게 아마 저처럼 공부하는 사람이 세상 사람에게 낼 수 있는 사유의 대안이겠죠.

ㅡ> 아아, 이제 이해가 됩니다..

---------------------------------------

ㅡ 제가 댓글을 단 배경 ㅡ

저는 (서경식씨의 글이) 비슷한 사례라고 봤습니다 :

" ‘애교심’이라는 말이 홀로 걷기를 하면서 교직원이나 학생의 ‘애교심’의 크기를 재고,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사람을 배척하는 따위의 위험한 움직임을 조장할지 모른다. 이 대학에는 중국이나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도 있고 나와 같은 교원도 있다. 그런 소수자나 타자가 거리낌없이 다닐 수 있는 대학이 됐으면 좋겠다.”

애교심’이라는 말에는 저항을 느낀다. 운운~은 사실 진부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가 마르고 닳도록 들어온 내용인데, '애국심'에 대한 비판을 '애교심'이라는 말에 응용한 것 뿐이니까요.

애국심 고취라면 모를까, 애교심이라는 말에 저렇게까지 거창하게 주장을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특히 마지막 부분은 애국심이 아닌 애교심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외국에서 온 유학생에게 애국심까지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애교심 정도야...)

그래서 저도 효과님처럼 과연 저 분이 " 내세우고 싶은 것이 '정치'인지, 아니면 '자신의 배운 능력'에 대한 표현인지" 의문이 들더군요. ^^;

그는 <<스포츠 활동을 통해 학생의 ‘애교심’을 고취한다는 대목>>이 문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기계적 중립을 고깝게 볼 것이고, 반대로 서경식 자신과 서경식의 칼럼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그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 누군가가 발언해주기를 기대했으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ㅡ> "하는 수 없이 나는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ㅡ> "곧 나와 같은 소수자가 항상 긴장감을 유지한 채 남이 싫어할 일을 피하지 않고 전면에 나서서 발언하지 않는다면, 그런 흐름을 막을 수 없지 않겠는가." (서경식)

만약 단순히 "'자신의 배운 능력'에 대한 표현"이라고 해도, 그것이 부당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구요. (타인의 생각이 자신과 다를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도 있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수도 있는데, 둘 다 부당한 것은 아니니까요.)

효과님의 글에 저 사례를 대입해보면서, 공감이 되면서도, 이렇게 '저 자신'이 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질문을 드렸더랬습니다.

친절한 답변 고맙습니다.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는 글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생각이 같거나 다르거나 늘 많이 배우게 되어서 효과님의 글을 자주 챙겨보는 편이에요.. 효과님,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얼그레이효과 2010-05-1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거 제가 한 방 먹었는걸요^^! 칼럼을 꼼꼼히 읽고,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덧글 내용은 잘 읽었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5-16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배운 것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거부하는 것은 아니죠. 제 글에 단서가 되는 것은, 정치적 현실 안에서 작동하는, 그런 정서와 결부된, 어떤 제한/조건 안에서 이 세상의 정당함. 이 세상의 필요한 그 무엇을 위해 배운 능력을 발휘함. 그 정치적 의견을 표시하는 것을 말하는 게 거부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단, 이제 그 반대의 문제이겠지요. 정말 말도 안 되는 경우(다만, 이 말도 안 되는 경우의 기준이 뭔지, 이것이 심리적인 측면과도 크고, 생각보다 세상 사람들은 다양하다는 딜레마가 있지만.)의 정치적 의견, 또 그 의견이 기계적 중립이 될 때의 상황을. 가정해볼 때, 그 '중립'이란 말 안에 들어있는 성찰성이 있을 것입니다. '성찰'이라는 개념은 좋지요. 하지만, 그 성찰이 요즘 시대에는 분명 오용되는 경우도 있고..(한나라당 소장파라고 불리는 이들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 성찰 오용의 사례를 기계적 중립에 연결시켜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