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사진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터뷰 사진입니다. 송지선 아나운서를 좋아해 모든 인터뷰를 챙겨 읽었습니다. 그녀는 김석류 아나운서와 함께 본격적으로 여성 야구 전문 아나운서 1세대를 열었습니다. "여자가 알면 얼마나 알겠어"라는 말 듣기가 가장 쉬운 게 스포츠 영역입니다. 다른 여성 야구 아나운서들의 인터뷰를 보면, 어떤 구단에선 인터뷰 후 소금까지 뿌렸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여성 야구 아나운서의 활발한 활동이 정착되지 않을 때였지만, 그때 받은 상처들은 정착했을 겁니다. 아마 송지선 아나운서도 그런 상처들 다 감내하고 이 자리에 왔을 겁니다. 

송지선 아나운서는 씩씩하고 당당하며 늘 열정적으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으로 야구팬들의 호감을 얻었습니다. 팬은 점점 늘어났고, 여성 야구 아나운서를 무시하던 분위기도 점점 사그라 들었습니다. 선수들의 전지훈련에 동행하여 팬들이 알고 싶은 점들을 묻기 위해 사전에 공부 또 공부하고 가야 했습니다. 행여 방송 인터뷰 때 감독이나 선수 호칭을 실수해서 팬들에게 "그러면 그렇지. 여성이 야구를 뭘 안다구"라는 말을 들을까봐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다음엔 실수하지 말아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야구 지식을 철저히 익히고 또 익혀야 했습니다.  

언제부터 그녀의 인터뷰 내용에서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답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선수들과 엮이는 문제, 그 문제에서 자라나는 근거없는 소문과 소문에 대해 민감한 상태임을 처음엔 약하게 그리고 최신 인터뷰 내용으로 갈수록 적극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죽기 전 마지막 인터뷰에선 자신을 취재한 기자에게 좋은 기사로 내보내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그녀는 미래에 '여성 전문 스포츠 캐스터'가 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건 스포츠 쇼도 진행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결국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용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열정도 좋아합니다.   

당신이 김석류 아나운서와 함께 해맑게 시구,시타를 하던 2008년의 그 날을 기억합니다. 

송지선 아나운서를 추모합니다. 
 

故 송지선(1981~2011).  

덧붙임)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당신이 외롭고 힘들 때 꺼내는 이야기를 공감할 고개의 끄덕임. 그것을 할 턱은 견실합니다. 그리 똑똑하진 않지만, 당신이 우울하여 무엇이든 털어놓고 싶을 때 쓸데없이 주저리주저리 개입하는 것을 삼가는 눈치는 있습니다. 그리 부자는 아니지만 당신의 마음이 고플 때 함께 시간을 채워줄 차 한 잔 살 돈은 있습니다. 외롭고 힘들 때 속에만 가두지 말고..풀고 살아요...우리..다들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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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5-24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가 보내는 신호들, 걱정스러웠는데, 설마했던 일이 일어났어요.
씩씩했던 그녀의 모습으로 오래오래 기억하고, 얼그레이님의 덧붙임에 공감합니다.

남은 한 사람이건, 인터넷의 그녀의 글들 보며 방관하거나 혀 차거나 걱정했던 모두들, 지금은 고인의 명복을 빌 시간이네요. 이 일이 또 다른 마녀사냥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5-24 01:30   좋아요 0 | URL
네 하이드님.. 뭘 더 알고..진실이 뭐고..그런게 머리에 안 들어오는 날이네요..임재범 버전의 <여러분>을 무한 반복해서 듣고만 있습니다...묘하게 가사가 울리네요..

pjy 2011-05-2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소식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5-24 14:44   좋아요 0 | URL
어제 멍하니. 오늘 좀 정신차리고 제 일을 시작했어요. 산 사람은 살아야죠..라는 말을 또 하고 사는 저지만, 마음이 착 가라앉는 건 어쩔수 없네요.

LAYLA 2011-05-2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젠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 ㄱㄴ은 물론이고 그 소문을 듣고서도 분노하지 않고 희희덕대기만 했던 야구팬들에게요.

얼그레이효과 2011-05-24 23:50   좋아요 0 | URL
오늘 동료 김민아 아나운서가 생방송 도중 클로징 멘트하면서 울컥했네요.저도 다시 울컥했습니다...지금 마음이 허한데..남은 분노도 있고..어떤 짜증남도 있고..복잡한 상태인 것 같아요..'토닥토닥'입니다...

Alicia 2011-05-24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이 아프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5-24 23:53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매일매일 안 좋은 일들은 여기저기 일어나지만..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갈 때..그 마음 아픔이..참,.,이게 표현이 제대로 안될 만큼..그냥 상태가 어벙벙하네요..암튼 그렇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마음 편하게 있었으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