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인문/사회판에 대한 촉이 발달되어 있는 이라면 알겠지만, 근래 사회학자나 문화연구자들은 감정이라는 인간의 주관적인 측면을 객관화시키는 구조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러한 관심은 학문 사회 안에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라면 쓰고 싶은 '힙'한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주제를 교수에게 쓰고 싶다 밝히면, 백이면 백 말리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라는 그 불확실한 측면을 어떻게 사회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라는 질문이, 어젯밤 강하게 가졌던 대학원생들의 '야심'을 단번에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은 심리학의 전유물이었고, 인문 도서란에는 여전히 감정을 흥미롭게 실험한 사례들이 듬뿍 담긴 심리학서들이 주류를 차지한다. 그러나, 도전은 계속되었다. 감정을 사회학적으로 이론화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잭 바바렛 같은 감정사회학자들을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사회학이 애초에 인간의 감정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재선언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감정사회학은 아직 국내에선 '힙'한 연구분과로 여성학(여성학은 한국 사회에서 학문 유행을 가장 잘 타는 학문분과 중 하나다),사회학, 문화연구자들이 도전하고 싶은 연구 테마로 분류되어 있다.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 계발의 의지>나 김홍중의 <마음의 사회학>을 감정사회학이라고 딱 잘라 분류하긴 어렵지만, 이 두 연구자들이 갖는 이견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불확실해 보였던 인간의 마음 상태, 혹은 인간이 추구하고 싶은 추상적인 욕망의 형태가 어떻게 가시적인 형태로 우리의 일상에 들어오고 있는지 사회학적 성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젊은 연구자들은 더욱 이런 연구 형태에 욕심을 내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러리라 본다.
# 2
최근 출간된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열정이라는 인간의 내면에 담긴 감정의 한 형태가 어떻게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변질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꼭 나왔어야 할 기획이었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책이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창의산업'의 폐해는 한국 사회의 불안, 그 정점에 서 있는 젊은 노동자들의 가능성을 점점 코너로 몰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것이 긍정적으로만 활용되고 있는가,라는 중요한 문제제기를 한다는 점 또한 동의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드는 여러가지 아쉬움도 많았음을 기록해두고 싶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저자들이 '열정 노동'의 이론화를 시도하고 있다 밝힌 3장 <오렌지 족, 그리고 신지식인의 열정>이다. 이 장을 기대한 것은 과연 저자들이 열정이라는 그 인간 내면의 형태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인간의 일상생활에 파고 들었으며, 그것이 오늘날 '노동'이라는 인간 행위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그리고 '열정'과 '노동'이라는 두 개념이 접합되었을 때 이러한 접합이 갖는 이론화에 대한 시도가 별 무리는 없었는가에 대한 꼼꼼한 점검 혹은 언급이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 3
그러나, 아쉽게도 저자들은 '열정'이라는 개념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자신들이 비판하고 싶은 사회 현상을 더욱 특색있게 보여주기 위해 '열정'이 수사적 기능으로만 보여지고 있지 않은가란 점을 간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해서 굳이 '열정'이라는 말을 넣어서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그리고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노동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먼저 든 것이었다. 오히려 본 책이 주목하는 '창의성'이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떻게 오용되고 악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더 세부적인 검토가 있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창의 산업'과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연관성, 그리고 이 관계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문화생산자라는 개념을 포함한)의 모습을 담은 비평 그리고 연구는 예전부터 국내외적으로 그 논의의 장을 구축해 왔다. 대표적으로 안젤라 맥로비나 존 하틀리 같은 문화연구자들은 소비문화를 향유하는 청소년들이 느끼는 즐거움이 어떻게 상품화에 필요한 아이디어가 되었는지, 그들이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 문화 생산의 주체이자 기업의 피해자가 되었는지 혹은 창의산업에 대한 정의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내릴 수 있는가를 검토해 왔다. 이런 논의를 참조하여 국내에서도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생산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의 일상에 영향을 주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체제의 속성은 무엇인지 연구가 이루어졌다. 문화연구자 김예란의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문화생산 공간과 실천에 대한 연구>(2007)는 대표적이다. 그녀는 이 연구를 통해 '문화판'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문화'를 강조하게 된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특수성과 그것을 관장하고 있던 정부의 정책 형태를 비판하고, 또 문화의 소비자인 90년대 청소년 세대들이 자신들이 즐기던 문화를 어떻게 자신들의 노동 형태로 만들고 살아가는지, 그 속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없는지를 심층 인터뷰 형태로 분석하였다. (김숙현의 2006년논문 <문화백수의 정치성과 정체성에 대한 연구>도 유사한 관점을 가진 글이다. 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보시라)
# 4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리고 다양한 사례로 펼쳐진 문제들. 인간의 재능을 프로그램화하고, 그 프로그램의 틀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순응의 구조를 만드는 오늘날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열정'이라는 개념으로 다 끌어안고 가기에는 지나치게 헐겁다는 생각은 책 속에서 느낀 어떤 산만함 혹은 더 나아갈 듯하다가 멈춰버린 구성 같은 것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다시 앞의 논의로 들어와서 열정이라는 것이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우리 앞에 담론적인 한 구성물로 등장할 수 있다면, 그랬을 때 그 열정이 비단 90년대 한국 사회의 소비 문화, 거기서 발생한 소비 주체의 특수성, 신지식인이라는 국가 주도의 담론 정책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쉽게 단언할 수 있을까? 여기서, 열정은 확고하고 적확한 개념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열정 노동의 이론화 과정이 그 외 챕터에서 제시된 열정 노동의 사례라고 든 부분들과 제대로 엮이고 있는가? 내가 이런 생각을 갖는 건, 이 책이 새롭게 제시하는 '열정 노동'이라는 개념이 이미 제시된 유사 주장들을 모아놓은 것 이상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 나머진 다음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