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료 공방에서 일하던 젊은 연금술사에 의해 우연히 탄생한 ‘프러시안 블루’는 누가 보아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색깔이다. 화학이 정식 학문으로 자리 잡기 전, 고래로부터 연금술사에 의해 연구된 실험은 광기와 집념, 폭력으로 얼룩진 것이었다. 그들이 긴 세월동안 노력했어도 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열정의 실험은 의도치 않은 뜻밖의 중요한 것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 프러시안 블루도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프러시안 블루는 유럽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독일에서 다량으로 생산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1782년 칼 빌헬름 셸레는 극미량의 황산을 입힌 스푼으로 프러시안 블루를 휘저어 현대의 가장 강력한 독약을 만들어 냈다. 그는 이 새로운 화합물을 ‘프러시안산’으로 명명했으며 그 과다 반응성의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금세 알아차렸다.
-p.23]
청산(靑酸)이라 불리는 ‘시안화물’은 프러시안 블루에서 분리된 부산물이다. 이 아름다운 색깔에서 어마어마한 죽음이 양산되었다. 독가스로, 대량 살상 무기로 유대인과 적들을 죽이고, 나중에는 이것으로 나치 자신의 목숨을 끊는데 사용되었다. 시안화물은 짧은 시간에 인간의 숨을 멈추게 한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이 매력에 사로잡혀 독일뿐만 아니라 연합국측도 독가스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동물을 죽인다.
시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색깔은 나의 선택에 의해 내 주변의 세상을 장식한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는 언제나 색깔이 있는 세상을 보며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배제된 인간의 시각으로만 유용해진 색깔은 그 속에 많은 것이 감춰진 듯 보인다. 벵하민 라바투트의 논픽션 소설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시작부터 강렬하다. 소설의 장르부터 특이해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찾기 어렵지만, 이것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에 제동을 걸어준다. 지금부터 뭔가를 더 정확하게 보라는 경고를 받는다. 아무 느낌 없이, 같이 살고 있는 색깔부터 다르게 다가온다. ‘아름답다, 예쁘다’라고 표현되는 색깔이 무수한 화합물의 결과라는 사실을 뒤늦게 인식한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그것에 들어 있는 의미를 찾아야겠지만, 유대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의 생에서 디스토피아를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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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화가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작품 전시회에 다녀왔다. 93세의 현존하는 프랑스 작가인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작품은 『프러시안 블루』의 향연이라고 불릴 만큼 색감이 아름다웠다.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브라질리에의 작품은 설명 없이 그저 보기만 해도 아름다웠고 힐링이 되었다. 작가는 “자연이란 조화와 질서, 아름다움 그 잣대이고, 평화와 환희, 꿈과 현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곳이다.....회화가 좋은 취향의 언어로 세계와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작가가 그린 작품은 그의 말대로 자연, 음악, 말(馬), 인간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순간에 충실한 삶과 자연의 순수한 느낌이 충만했다.
내가 만약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읽지 않고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작품을 감상했더라면 순수한 『프러시안 블루』의 아름다움에만 젖어 그 전시회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전시회에 갔기 때문에, 작품을 보면서 계속 책 속의 문장들이 생각났고 그림과 글이 오버랩되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누구나 다르다. 난 ‘벵하민 라바투트’와 ‘앙드레 브라질리에’, 두 사람의 시각 모두 인정하고 존중한다. 다만 거기에서 나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깊이가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이 보고 읽어야 한다는 절실함에 전율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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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강가에서 바라보는 노을이다. 미술작품이 아니더라도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작품이 될 수 있다. 세상은 아름다운 색깔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래서 여기서 머물러버리자는 유혹을 받는다. 그것은 파렴치한 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