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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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었다.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고자 절치부심, 좋은 기회를 엿보던 세가(世家)의 수장에게 마침내 출전해야 할 때가 오는 법이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를 얻기 힘들고, 여기서 머뭇거린다면 용맹하지 않거나 비겁하다는 평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출전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순간 믿기 힘들 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고, 몇 년에 걸친 지지부진한 싸움이 시작될 수도 있다. 운명의 마지막은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

 

책을 계속 읽어 오면서, 이때껏 내가 읽은 책속에 많이 언급된 작품에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단연 으뜸을 차지할 것이다. 특히 최근에 읽은 여러 작품에 연속적으로 이 책이 나왔다. 안드레 애치먼의 하버드 스퀘어에서, 에릭 드 케르멜의 에르브 광장의 작은 책방에서도, 심지어 신곡을 읽으며 참고하고자 읽은 해설서에서도 프루스트가 언급될 줄은 몰랐다. 이 정도면 드디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단테의 작품을 현대 문학과 관련시키는 것은 교수 기법이 아닌 의무이다. 현대에는 신곡과 견줄 순수한 시 작품이 없다. 하지만 시어의 긴장감을 가지며 시가 드러낼 수 있는 심상 효과를 보이는 작품은 있다. 바로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 두 작품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가히 현대의 지옥편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프루스트는 <스완의 사랑>에서 질베르트와 알베르틴느를 향한 마르셀의 사랑 그리고 두 개의 세계, 즉 스완과 게르망트의 양식을 알고자 하는 갈망을 예고한다.

-p9~10, ‘단테의 신곡-지옥편’, 윌리스 파울리, 예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편에서 프루스트도 신곡에 대해 말한다.

 

[마치 내가 부모님 뒤를 쫒아가야 했듯이, 베르길리우스가 성큼성큼 멀어지면서 단테에게 빨리 쫒아오라고 강요하지만 않았다면, 그 죄인은 자신이 받는 형벌의 특별함이나 이유를 더 길게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p292~293]

 

역자의 해설에서 프루스트는 베르길리우스 같은 안내자를 두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한다고 한다. 내가 읽은 책들이 서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이 벅찰 정도로 감동적이다. 프루스트는 또한 다른 좋은 것들을 제치고 책을 최우선으로 두는 나에게 책을 읽는 당위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런 날들의 오후는 평생 동안 경험하는 것보다 더 많은 극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그 사건들과 관계되는 인물들은 사실 프랑수아즈의 말대로 실제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인물의 기쁨이나 불운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모두 이런 기쁨이나 이런 불운에 대한 이미지의 매개를 통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다....소설가가 우리를 이런 상태로 몰아넣으면, 우리가 오로지 내적 상태에 있게 되면 모든 감동은 열 배나 더 커진다.....소설가는 한 시간 동안 모든 가능한 행복과 불행을 우리 마음속에서 폭발시키는데, 실제 삶에서라면 그중 몇 개를 아는 데도 몇 년이 걸리며, 또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들은 너무도 느리게 진행되어 우리 지각을 방해하기 때문에 결코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을 것도 있다.

-p154~155]

 

듣던 대로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루스트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이 소설 속에서 나를 내적 상태에 머물게 하며 감동을 폭발시켰다. 재미없고 지루해서 읽기 어려운 것이 아닌 프루스트가 그려낸 언어의 마술에 푹 빠져 자주 머물러야만 했다. 의식의 흐름 속에서 세밀하게 묘사된 모든 문장에 의미가 있었다. 그것을 좇아가고 내 것으로 만들며 삼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고,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한 것도 많았다.

 

병마와 싸우며 코르크 마개로 방음벽을 설치한 방에 칩거하며 치열하게 써내려간 그의 소설은 첫 부분부터 엄청났다. ‘불면으로 시작된 어린 시절 콩브레에서 보낸 회상과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으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들을 생생하게 표현해 글이 곧 영상이 되고 음악이 되고 시가 되었다. 모든 사물과, 인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결국 그것들을 관념으로 연결시켰고, 자아와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1부인 <스완네 집 쪽으로>콩브레는 부활절 휴가 때, 고모할머니 또는 그의 딸 레오니 아주머니의 집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회상이다. 여러 개성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대화도 흥미롭다. 특히 이웃인 유대인 부르주아 스완은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을 예고한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사회적 계급이 존재했던 그곳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이중적인 사교생활을 했고, 화류계 여인인 오데트를 아내로 맞아들인 자유로운 인물이다. 아버지의 직업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듯한 화자는 자신이 갈 수 없는 게르망트쪽의 귀족적인 삶에도 관심을 가지고 열망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라는 소설의 특징은, 그것이 일종의 회고록 또는 내적 연대기라는 점이다. 회고록이되 일반적으로 시대와 사건들을 축으로 삼아 펼치는,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증언, 그것을 기록하는 이의 명료한 기억이나 비망록에 입각하여, 또한 그 사람의 의지가 그 내용을 선별하고 구상하여 술회하는 것과는 다른 회고록이다.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펭귄클래식코리아, ‘옮긴이의 말중에서]

 

이 소설에는 회상이나 추억도 많지만, 여러 사물에 대한 리듬감 있는 다양한 표현들도 탁월하다. , 정원, 나무, 산사나무, , 성당의 종탑, 아스파라거스, 스완쪽과 게르망트쪽으로 가는 길들의 상세한 묘사가  저돌적일 정도로 뛰어나다. 잠깐 동안 질베르트를 만난 순간과 성당에서 자신을 보며 미소 짓는 게르망트공작 부인과의 시선 교환도 앞으로 마르셀의 여정을 기대하게 한다.

 

그 당시 부르주아와 귀족들의 삶은 지금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위도식하는 느낌이다. ‘벨 에포크로 구분되는 시절의 전형적인 좋은 삶의 모습들이다. 이 소설보다 앞서 발표된 에밀 졸라의 소설에서 표현된 서민들의 가난과 아픔과는 대조적이다. 그러한 계급적인 차이는 단지 과거 프랑스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들의 삶에서도 그 계급은 이어진다.

 

어린 마르셀은 잠자기 전 엄마의 키스를 열망한다. 소년이 가진 예민함이 어쩔 수 없는 신경병으로 간주되는 것이 안타깝고 슬프다.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며 평생을 그런 식으로 살아야하는 프루스트의 삶의 고달픔이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엇이며, 전정한 자아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우리는 매번 혼란스럽다. 한 순간 말하고, 행동하며 겪어오는 모든 것의 의미에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작가의 움직이는 의식 속에서불면과 마들렌과 냄새에 얽힌 기억들을 따라가며 나 역시도 나의 '의식의 흐름'속에 빠져든다.

 

길게 이어지는 소설을 읽으며 프루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잃어버린 시간또는 오랜 시간의 뜻을 잘 알아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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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5-03 22: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게 되는 책들에서 자주 만나는 ‘어떤 책‘은 ‘운명‘이란 느낌이 들더군요.
페넬로페님의 마음을 두드린 운명적 징후들에 저까지 흐뭇해집니다♡
신화에 대한 배경지식도 있으시니 앞으로 한권한권 읽어가실때마다 리뷰 기대되고요!
무엇보다 프루스트 세계에 스며드신것 축하드립니다~♡^0^♡

페넬로페 2022-05-03 22:50   좋아요 4 | URL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읽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 책은 한 번 읽어서는 안되는 책 같아요.
일단 완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읽으신 분들과 소통하고 느낌도 공유하고 싶네요~~
잃.시.찾, 거꾸로 읽으내신 미미님이 참 대단하다는 걸 직접 확인 했습니다 ♡♡
리뷰쓰기 어렵네요.
그냥 문장 전체를 필사하고 싶더라고요^^

scott 2022-05-03 23: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잃시찾 1권만 n년째 읽다가(다음 스토리로 넘어가지 못해서)
완전히 1권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ㅎㅎㅎ
1권만 여러번 읽다보니
다음편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아우토반 질주 하듯 쭈욱!

페넬로페님 신곡 속에 프루스트 옹도!
탑승!
*。*.。*∧,,,∧
ヾ(⌒(_=•ω•)_

페넬로페 2022-05-04 01:46   좋아요 4 | URL
저도1권은 여러 번 읽을 것 같아요.
2권 잠깐 읽었는데 1권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네요.
근데 어느 정도 경지까지 가야 아우토반을 달리듯 할까요? ㅎㅎ
신곡도 연옥, 천국이 남아 걱정이 되는데 5월도 열심히 달려야겠어요^^

희선 2022-05-04 00: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어야겠다 생각도 안 하는 책이군요 언제가 읽어야지 할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말한 사람이 많고, 다른 책에도 자주 나왔군요 그러면 봐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들 듯도 합니다 어린 마르셀을 보고 프루스트의 삶의 고달픔을 보기도 하셨군요 그런 걸 보셨으니 앞으로도 잘 보실 듯합니다 시간은 걸려도 다 보면 보람 있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2-05-04 01:49   좋아요 5 | URL
시간이 많이 걸릴 듯 해요.
그래도 읽어 나가다 보면 완독할 수 있겠지요.
어릴 때 엄마 일을 도와줄때 언제 이걸 다 하냐고 투정부릴때 시나브로 하다보면 다 할 수 있다고 한 엄마의 말이 생각나네요~~
기회되면 희선님도 같이 읽어요^^

서니데이 2022-05-04 02: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는 다른 것보다 홍차와 마들렌만 남은 것 같아요. 길어서 다 읽기도 부담인데 점점 표지가 예쁘게 나와서 구매충동 생깁니다.
페넬로페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밤되세요.^^

페넬로페 2022-05-04 13:27   좋아요 4 | URL
표지가 넘 예쁘죠~~
어떤분은 읽지 않더라도 꽂아두면 예쁘다고 그러셨어요 ㅎㅎ
얼마전에 옆 신도시에 갔는데 홍차를 파는 카페가 생겼더라고요
책 가지고 가서 마들렌과 홍차 마셔야겠어요~~

새파랑 2022-05-04 07: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드디어 읽기 시작하셨군요~!! 왠지 책을 좋아하면 꼭 읽어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드는 책입니다 ^^ 페넬로페님은 금방 읽으실거 같아요~!!

완독을 응원합니다 😆

페넬로페 2022-05-04 13:29   좋아요 4 | URL
언젠가는 꼭 읽어야 할 책을 드디어 시작했어요. 잃.시.찾 완독 선배님,
잘 이끌어 주십시오^^

독서괭 2022-05-04 08: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와 제임스조이스는 자주 등장해서 아이고 또야? 나 아직 안 읽었는데 ㅠㅠ 하게 만드는 작가들 같습니다 ㅎㅎ 페넬로페님 시작 축하드립니다! 신곡을 비롯해서 읽어내신 여러 책들과 연결지어 써주시니 더 흥미로워요. 끝까지 즐겁게 읽으시길 빕니다. 전 나중에.. ㅎㅎㅎ

페넬로페 2022-05-04 13:32   좋아요 4 | URL
프루스트와 조이스는 참 많이도 등장하죠 ㅎㅎ
이 분들의 작품이 유명도에 비해 많이 읽지 않은 작품에도 들어가더라고요~~
시작했으니 완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독서괭님 기다리고 있을께요^^

coolcat329 2022-05-04 12: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 속에서 내가 읽은 책이 나올 때 정말 기분좋죠.
페넬로페님 글 읽으니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마지막 발췌 문장 너무 좋습니다.

페넬로페 2022-05-04 13:34   좋아요 3 | URL
1편의 문장들에 거의 밑줄을 친 것 같아요. 어쩜 이런 표현을 했을까 감탄했어요~~
덕분에 저의 유년시절도 생각했어요^^
쿨캣님, 같이 읽어요~~

mini74 2022-05-04 17: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책 속에서 유난히 자주 언급되는 책, 그래서인지 저는 숙제같아요 ㅠㅠ 하기 싫어서 방학 마지막날까지 미루는 숙제 ㅎㅎ 누가 대신해 주면 좋겠는데 또 읽고는 싶고 ~ 그래서 완독한 분들이 부러워요 ㅎㅎ 저 책표지 그림의 , 사은품으로 받은 냄비받침대만 잘 쓰고 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2-05-04 19:01   좋아요 2 | URL
네, 그럴땐 책 읽어주는 아바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책이 아니어도 미니님은 워낙 책 많이 읽으시니 퉁 쳐도 될 것 같은데요 ㅎㅎ
이 책 표지가 예뻐 냄비받침위에 놓여 있는 음식도 맛있을 듯 해요^^

서니데이 2022-05-04 2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서 초여름 날씨에 가까워졌다고 해요.
내일은 어린이날이라서 오늘은 금요일 저녁시간 같아요.
페넬로페님, 내일 즐거운 휴일 보내시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2-05-04 21:05   좋아요 3 | URL
네, 며칠 추웠는데 이제 완전히 봄날씨로 돌아왔어요.
이번에 여러 날이 겹치고 어버이날까지 있어 맘과 몸이 더 바쁠것 같아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즐거운 휴일 되시길 바래요^^

서니데이 2022-05-05 17: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일매일 햇볕이 밝고 더워지고 있어요.
오늘은 어린이날이라서 그런지, 창문을 열었더니
아이들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즐거운 휴일 보내고 계신가요.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

페넬로페 2022-05-10 20:06   좋아요 2 | URL
네, 날씨가 따뜻해져서 그런지 놀이터에 아이들 소리가 왁자지껄해요 ㅎㅎ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를 들으면 참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생동감이 느껴져 좋아요^^

레삭매냐 2022-05-10 16: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를 통해 느끼게 되는
강렬한 기쁨, 생각만 해도
짜릿하네요.

당분간은 책 읽기에 매진
해 보렵니다.

페넬로페 2022-05-10 21:19   좋아요 2 | URL
정말요,
그 강렬한 기쁨이 좋지요~~
레삭매냐님,
독서에 매진하신다니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