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리야는 소비 물건이 분류의 체계를 이루며 행동을 구조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광고는 한 상품을 다른 상품과 구별하는 상징을 통해 상품을 코드화하고, 그럼으로써 이를 일련의 배열에 끼워 맞춘다. (그 대상(object)은 개별 소비자에게 그 의미를 전달함으로써 소비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이리하여 잠재적으로 무한히 반복될 기호작용이 제도화되어 사회를 규제하게 되며, 동시에 개인에게 자유에 대한 환영적인 감각을 심어준다. 



소비대상은 욕망을 무한히 자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부유하는 기표들의 연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사실, 상품을 단순히 인간적 욕구의 고정적 체계와 연관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지닌 효용물이라고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드리야르, 특히 그의 상품=기호의 이론화가 매우 중시된다. 그는 이제 상품이 소쉬르적인 의미에서 체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소비는 사용가치의 소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기호의 소비로 이해되어야 한다.



보드리야르는 개인이 대상을 통해 질서체계에서 그 위치를 찾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상품의 기능은 개인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일 뿐 아니라 개인을 사회 질서와 연계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소비는 생산에서 시작된 경제적 연쇄의 종착점일 뿐 아니라 교환체계이며 언어이기도 하다. 언어 상에서 볼 때 상품은 개인에 선행하는 기호체계에서 생각되는 물품인 셈이다. 보드리야르에게 있어서 자기 충족적인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회체계, 특히 언어나 재화, 혈연과 같은 것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사회질서에 차별적으로 연결시키고, 그럼으로써 개인에 대한 감각을 구성할 따름이다.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에서 정보는 점점 많아지고 의미는 점점 적어져 간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사회처럼 정보의 과부하로 고통받는 사회에서는 의미를 거부하는 것만이 저항의 유일한 방식이라고 제안한다. 우리는 인생 매 순간마다 정보로 넘쳐나는 이미지들에 의해 그야말로 폭격을 당하고 있다. 이에 대처할 유일한 방법, 우리 인생을 점령해 버릴 정보의 힘에 저항할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이미지들을 오직 기표나 표면으로만 받아들이고 그 의미와 기의는 거부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단순히 시청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표면적인 이미지들, 기표들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전날 저녁 뉴스를 기억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기억할 것이 없고 오직 이미지와 기표들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의 콜라주다. 개개 이미지는 더 많은 것을 낳고 더 많은 것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원본이 없는 완벽한 복제품, 즉 시뮬라크르이다. 뉴스는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의 이미지인 바, 최종적인 하이퍼리얼리티인 셈이다."









니체는 미래에 희망을 거는 어떠한 믿음도 반대했다. 니체는 절대적 진보, 즉 역사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계획이나 목적을 거부했다. 경험적 사실들에 비추어 보아도 역사가 진보한다는 신념은 오류다. 니체는 "인류의 최종 목표는 인류 최고의 바람직한 모습에 있을 뿐 시간의 마지막 순간에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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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7-25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비의 시대 속에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것이 아닌, 광고와 홍보로 만들어낸 수많은 이미지의 변주를 남들과 달라보이지 않기 위해 쇼핑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3-07-26 15:39   좋아요 0 | URL
넵 우리는 ‘남들과 달라보이지 않기 위해” 소비하는데, 반면 그들(?)은 ’남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 소비하는 듯 합니다. ^^
 



“인간은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하는 환상이 있다. 

그렇기에 모든 일을 자기중심으로, 

다시 말해 자신 필요나 목적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 질 들뢰즈





논란이 있지만 우리나라 법은 술 마신 뒤 저지른 범죄에 대해 처벌이 관대하다. ‘심신미약’(diminished responsibility) 상태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보고 정상을 참작해 준다. 비슷하게 프랑스는 치정 범죄에 처벌이 가벼운 편이다. 이성이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극한 상태’에 있었기에 자유의지가 발휘될 수 없었다고 감안해 준다. 그렇지만 이러한 몇 가지 심신미약 상태를 제외하면 법은 인간 의식이 항상 특정 행동을 지시하는 ‘정상’ 상태에 있기에 인간을 자신 행동에 대해 온전히 책임이 있는 존재로 생각한다. 



고대 로마인들 또한 정신이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면책해 주었다. 범죄자가 자신 의지로 통제할 수 없었다고 판단되면 무죄가 선고되었다. 로마나 현대 사회의 이러한 판결은 멀리 아리스토텔레스의 법제 개념에 근거한다. 사법당국이 용의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범죄 행위뿐 아니라 행위자 동기를 증명해야 한다. 이 같은 행위자 동기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죄지은 마음’(라틴어로 mens rea)이라고 표현했다. ‘죄지은 마음’을 달리 말하면, 시민은 자신이 의도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만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플라톤 이래로 서구 사회는 인간 영혼과 마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유의지가 있기에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믿었다. 근대 서구 시민사회는 자유의지를 기반으로 모든 개인이 타인 인격을 존중하고 선과 악에 대해 스스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주체라고 전제하며, 인권을 부여했다. 특히, 근대 서구 사상을 연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없는 생각하는 나’의 ‘내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논리의 공리(公理)로 삼았다. “1)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 2) 결정론에 지배받는 존재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 3) 순수한 물리적 존재는 결정론의 지배를 받는다. 4) 따라서 인간은 순수하게 물리적 존재만은 아니다.” 
















칸트의 도덕법칙도 개인이 자유로운 자신 양심 속에서 스스로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가 생각하는 도덕법칙은 개인의 자율적인 의지와 분리할 수 없다. 개인 스스로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 칸트의 정언명법(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 하라)인데, 당시에 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던 칸트는 신이나 자연법칙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필연 상황에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칸트는 자유의지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알 수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는 세계 – 칸트 용어로는 물자체 혹은 본체계, 예지계, 초감성계 –에 있으며, 인간은 신이나 자연법칙의 필연성 제물이 아니라 언제나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 사고를 통해 자유의지가 얼마나 답하기 어려운지 문제인지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생각과 달리, 인간이 자유롭게 의지를 발휘하여 자신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대에는 인간의 자유의지 개념이 거의 전무했다. 히브리인들 운명론은 <구약성서>에서 엿볼 수 있다. “인간은 변덕스러운 운명의 희생자다. 노력과 성공 사이에는 어떠한 필연적 관계도 없다. 빠르다고 해서 달리기에 이기는 것은 아니며 용사라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더라. 지혜가 있다고 해서 먹을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총명하다고 해서 재물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배웠다고 해서 늘 잘 되는 것도 아니더라. 불행한 때와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친다(<전도서> 9:11).”



예수 이후 신학자들 사상도 히브리인들 운명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신의 결정론에 맞서 자신 운명을 바꿀 자유의지가 없었다. 사도 바울은 율법적인 노력으로 구원을 확보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장차 다가올 삶에서 인간이 맞게 될 운명은 전적으로 신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신학도 신의 전능성을 기조로 삼았다. 그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는 것은 신의 전능함을 부정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갖는 중요성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구원을 스스로 얻어낼 만큼 의지가 있다면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내려올 필요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혁명을 일으킨 루터도 인간은 누구도 자신 선행으로 구원을 바랄 수 없다고 보았다. 오히려 구원은 오직 신의 은총일 뿐이며, 선행이든 계율 준수든 신의 마음에 들기 위한 개인 노력과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천국으로 가기 위해 기도할 뿐이며 그 이상의 일을 할 수는 없다. 루터에게 있어 구원받을 자의 선택은 오로지 주어지는 것, 개인 노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칼뱅도 구원이란 신이 내린 은총의 산물일 뿐이며 인간 업적이나 자격에 구애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누가 구원받고 누가 단죄 받을지는 예정되어 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성례(聖禮)도 아무런 효험이 없다. 그래도 신자는 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은총을 받기 위한 수단이 전혀 아니다. 인간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자신 운명을 바꿀 수 없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들 영혼에 신의 축복이나 저주의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바울부터 아우구스티누스나 루터, 칼뱅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각자의 생활 태도나 노력과 상관없이 오직 신이 구원받을 사람을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기독교 전통 사상은 신의 전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게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라면 신은 거기에 얽매이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 능력을 인정해야만 한다. 구원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스스로 구제하다’는 의미가 되며, 따라서 신의 무한한 힘에 한계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신이 세상 모든 것의 주재자라면 악의 존재 역시 신이 주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이 정의롭다면 그의 힘으로 방지할 수 있는 고통과 악이 왜 발생하도록 그대로 두는 것인가? 신이 전능함에도 불구하고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가 정의롭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학에 다음 세 가지 견해가 병립하기 매우 어렵다. ‘신은 정의롭다’ ‘신은 전능하다’ ‘악은 존재한다.’



이 난제를 푸는 방법 하나는 인간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로써 악의 존재에 대한 책임은 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옮겨진다. 만약 신이 어떤 규범을 세웠을 뿐 아니라 개인에게 그것을 따르거나 따르지 않을 자유를 부여했다면, 우리는 옳은 것 대신 잘못된 것을 선택한 것에 책임져야 한다. 나쁜 일을 한 자는 현세 또는 내세에서 신의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그의 고통은 악이 아니라 위반에 대한 징벌이다. 따라서 중세시대에 교회는 자유의지를 다시 불러들였다. 교회 예식과 절차(세례, 기도, 미사 참석, 성가 참례 등)를 강조한 것이다. 사실 신학적으로 ‘행함을 통한 구원’이라는 생각, 자유의적인 생각은 이미 배경에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가톨릭에서는 예식과 성례를 잘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유대교에서는 신의 율법을 잘 기키고 시나이 산의 계명(십계명)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렇듯 종교에서도 자유의지 여부가 답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철학에서 보면 인간 자유의지를 증명 없이 공리로만 사용한 데카르트나 증명에 실패한 칸트와 달리 스피노자와 흄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음을 설득한다. 흄은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 때 책임이 있다. 그런데 결정론(필연성)이 참이라면 인간 행동과 욕구, 사상 등 모든 것은 인과 법칙에 의해 결정되고 인간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다. 반면 결정론이 거짓이라면 사건은 인과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생기는 일이며, 이것도 인간 통제력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흄의 환경론(필연성과 우연성)에 인간 내면의 메커니즘을 덧붙여 결국, 인간이 의지를 자유롭게 발휘할 수 없다고 논증한다. 인간은 비록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우리 사고와 행위를 규정하는 욕망을 의식하면서도 그 욕망을 일으킨 원인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비유한다. “만일 공중으로 던져진 돌멩이가 그 순간 의식을 갖게 된다면, 그 돌멩이는 자신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다고 상상하게 되리라.” 스피노자가 보기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자신 ‘의지’대로 선택하고 행동한다고 여기지만, 이는 다만 그때그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충동에 따라 결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의 요점을 당시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인간은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에 의해 미리 결정되지 않는 한 자유롭다. 하지만 인간의 그 어떤 행위도 그런 조건은 성립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자유란 어떤 행위나 결정이 외부에서 귀결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 행위자의 본성에서 귀결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스피노자가 신만이 자유롭다고 말한 것은 옳다.” 
















근대 철학자들의 논증뿐 아니라 첨단 장비를 이용한 현대 신경과학자들도 흄과 스피노자 주장을 지지하며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워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018)에서 이 같은 실험 결과를 정리하여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신 뇌 안에 갇혀 있으며, 또한 사회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의 핵심적 정체성은 뇌신경망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환상이다. 최신 과학 이론과 최신 기술 장비에 따르면 정신은 어떤 경우에도 조작에서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상인 자유와 사랑, 창의성조차 다른 누군가 목적을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 정신은 조작된 산물이다. 우리는 우리 밖의 세계를 통제할 수 없으며, 우리 자신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우리가 통제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유의지가 없다. 우리 욕망이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의 마술 같은 발현이 아니라 생화학적 과정의 산물이다. ‘자아’는 허구적 이야기다. 우리 정신 안에 스토리텔러가 있어서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바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한다.“ 
















우리는 오늘 점심 식사로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의식적으로 결정한다고 생각하기에 우리에게는 분명히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점심 메뉴를 고르는 아주 간단한 일조차 엄청나게 많은 요인에 좌우된다. 연구 결과는 한 종(種)의 수준에서 보나, 개인 수준에서 보나 식욕은 대체로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유전자 안에 새겨져 있으며 뇌 회로도 이미 그런 식으로 배선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식욕은 오랜 세월 동안 특정 음식을 더 맛있다고 여기도록 진화해 온 생물학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태어나기 수십 년 전 친할아버지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었는지가 오늘날 당신 음식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태어난 네덜란드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있었다. 이 연구는 1944년에서 1945년 사이에 1년 동안을 거의 굶다시피 살았던 독일 점령 치하의 가족에서 태어난 아동들과 독일 점령지가 아닌 덕분에 식량 조달이 훨씬 용이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동들의 건강을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수정 당시 영양 상태가 심각하게 불량했던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동들은 나중에 비만과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먹을 것이 귀한 환경에서 잉태된 아이의 신진대사는 나중 모든 것이 풍족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한 것이다. 태어나기 전 가혹한 환경 변화에 따라 유전자가 변했고 이런 변화는 다음 세대, 그리고 그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체중과 체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는 150개 정도가 있다. 그중에는 얼마나 배고픔을 느낄지 지시하는 유전자(이 유전자는 언제 먹어야 하고, 언제 배가 부른지 알려 주는 신호를 뇌로 보낸다)와 쾌락회로에 관여하는 유전자(어떤 사람은 뇌의 보상경로를 자극하려면 더 많은 칼로리가 필요하다. 이들 수용체의 민감도가 떨어지기에 남들보다 더 많이 먹어야 기분이 좋아진다), 뇌가 몸속의 필수 영양분 수준을 감지하여 영양분이 너무 부족하면 더 먹으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과 같은 유전자 등이 있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고칼로리나 고당도, 고염도 음식을 선호하게 되어있지만, 이것 말고도 평생에 걸쳐 생긴 온갖 식습관이나 기호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이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나 만족 지연 같은 것도 작용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그날 호르몬 수치도 영향을 미치고, 당신이 얼마나 지친 상태인지, 당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도 영향을 미친다. 짜장면이나 짬뽕을 고르는 일만 해도 거기에 따르는 의사결정 과정은 복잡할 뿐 아니라 대체로 무의식으로 이루어진다.
















흄의 주장처럼 사람들이 이성적일지라도 – 사실 주로 이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이지만 - 자신이 통제하는 범위 밖의 힘에 영향받으며, 또한 스피노자 주장처럼 감정과 인지 반응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기에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전제에 의문을 던진다. 이에 더해 신경과학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도록 뇌가 조종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행동하려고 마음먹기 최소 0.3초에서 최대 10초 전부터 행동 관련한 뇌 활동은 무의식적으로 증가한다. 뇌는 사람이 인식하기 전부터 벌써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만약 어떤 행동이 의식적으로 마음먹기 전에 이미 무의식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면 자유의지 역할은 그 과정에 끼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식적 의지는 환상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직관은 우리 내면에 숨겨진 것이 밖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보통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고, 그것이 정서를 유발하고, 느낌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느낌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를 이어 정서가 표현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잘못되었다.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정서가 먼저 나타나고, 기쁨이나 슬픔에 대한 느낌이 그 뒤를 따르며, ‘기쁘다’ 혹은 ‘슬프다’고 말하는 마음의 상태를 규정하는 생각들이 나타난다. 정서 상태가 먼저 오고 느낌과 생각이 그 뒤를 따른다는 점은 사람이 행동하기 전 인식하는 것보다 무의식이 먼저 발현된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신경생리학자들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애초 없다고 주장한다. 자유의지뿐 아니라 자아라는 개념도 물리적 뇌 신경의 착각이다. “우리 인간은 행동에 대한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계속해서 착각한다. 이 믿음은 떨쳐내기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하고 압도적인 환상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유의지가 있다는 ‘압도적인 환상’을 갖게 되었을까? 우선 인간 본성 측면에서 살펴보면, 우리에게 정서가 먼저 유발되고 느낌과 생각이 뒤따르는 이유는 진화 과정에서 정서가 먼저 생겨났고 그다음 느낌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서는 자동으로 자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도구다.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연결망으로 인해 우리 인식보다 결정이 앞서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 행동에 대해 이러한 사전 무의식을 알지 못한 채 나중에야 자신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의식화한다. 즉, 과거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제시함으로써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이유는 뇌가 인과관계를 추론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뇌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실을 조금씩 날조한다. 결국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의식적 자아는 그 결정을 가장 늦게 알뿐 아니라 왜곡되어 알게 된다. 신경과학자들이 내린 난처한 결론은 이렇다. “이런저런 일을 하거나 하지 않을 판단은 의식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의식에서 ’드러난다‘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압도적 환상’을 양육(사회화)의 측면에서 보면 도덕과 법률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자유의지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고 단순한 환상이라고 한다면, 자유의지에서 유래하는 ‘책임’도 붕괴하고 도덕철학이나 법철학이 성립하지 않을 염려가 있다. 그래서 칸트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도덕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자유의지에 대한 대중 통념은 한 가지 가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즉, 우리들 각자는 과거에 우리가 했던 것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는 가정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저질렀다면, 그가 그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전제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주체는 결코 자율적이고 주관적인 주체가 아니다. 인간은 태생 자체가 다른 무수한 원인에 지배받을 수밖에 없다. 인간 의지는 철저히 타율적인 존재다. 우리 의지는 기본적으로 타인 의지에 의해 감염된 ‘최면 상태’와 같이 작동한다. 의지가 자유롭다는 생각, 그것이야말로 일종의 독단이자 사회적 현상에 대한, 그리고 우리 정신 본성에 대한 무지다. 
















프로이트의 양심 이론도 옳고 그름에 대한 생득적 개념이나 절대적 개념의 가능성을 부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로이트는 인간이 본래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 지를 결정하는 것은 초자아다. 초자아에서 생긴 두려움이 죄책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흔히 자신의 초자아와 싸워서 그것의 요구를 철회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문화가 제시하는 윤리적 요구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불교적 관점에서도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행하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행위를 할 때 어떠한 정서 상태에 있었는지 이다. 행위 자체는 단순히 마음 작용의 후속 절차, 즉 반향(反響)일 뿐이다. 정서 상태(emotional states)가 매 순간 활발하게 발현하는 반면, ‘정서 특성’(emotional traits)은 행위 결과로서 창조되어 개인에게 남아 오래 지속된다. 정서 특성은 수동적인 형태로 쌓이고 의식적으로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불교적 사고가 프로이트적 사고 및 현대의 심층 심리학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 마음속 밑바닥에 숨겨진 성향 또는 잠재적 기질이라고 부르는 어마어마한 영역이 잠자고 있고, 다양한 자극을 받아 이 기질들이 활성화된 상태로 일어난다는 점을 고대에도 이미 잘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 정서 특성들이 일생에 걸쳐 매 순간 퇴적암 지층처럼 쌓여가고, 깊은 곳에 쌓인 지층은 현재의 경험 안에 격하게 분출될 수도, 잠잠하게 드러날 수도 있다.



특이한 점은 이러한 시각이 자기(self)에 대한 가변적인 시각[無我]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어떤 정서들이 심층에 내재하는 동안, 개인은 저마다 독특한 인성을 갖게 된다. 경험적이고 습관적인 반응을 결정하는 정서 패턴들은 독특한 경험에 의해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되면서 독자적인 형태로 발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환경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배우고, 긴 시간에 걸쳐 퇴적된 잠재 성향은 일련의 습관을 형성한다. 이렇게 학습된 반응에 따라 우리는 순간순간 적절한 방식으로 새롭게 반응한다. 

















우리는 우리 의지로 행한 결과에 따라 뭐든 우리가 얻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운명을 전부 통제할 수 없고 우리 성공과 실패는 다른 누군가에게, 가령 신이거나, 운명의 장난이거나, 순간의 선택에 따른 예상 밖의 결과 등에 좌우되는가? 내게 주어진 보상은 행운 덕이지 자유의지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겸손이 시작된다.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 그런 겸손함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가혹한 성공주의나 능력주의를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자유의지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더 관대한 공동체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게다가 우리는 굳이 현대 서양의 자유의지 개념이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고대에는 자유의지 개념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의지 자리를 대신할 대안적 견해가 오히려 매력적일 수 있다. 그 대안적 견해란, 개인 수준에서는 습관적 행동을 바꾸기가 쉽지 않지만, 법률 제정이나 정책 입안, 교육 등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환경을 바꿈으로써 거시 수준의 변화가 만들어진다면 우리가 집단적으로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유지해서 집단 수준에서 바람직한 큰 변화를 일구어낼 수 있다. 



일단 개인과 마찬가지로 집단도 병든 신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이 작동해서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생각되는 신념조차 의식적 자각 없이 일어나는 뇌의 작동으로 결정된다. 평생 계속 이어지는 학습을 통해 뇌 속에서는 새로운 경로가 만들어진다. 과학자들은 이를 가소성이라 부른다. 몇몇  연구에서는 단순히 페이스북 피드를 바꿈으로써 사람 감정 상태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식적이고 지적인 활동 결과로 여긴 의견이나 신념 중 상당 부분이 사실은 뇌 기능이 주도하는 감정 반응에 의해 빚어진다는 의미다. 이런 지식을 적용해서 우리의 신념을 역설계(reverse-engineering)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데올로기 스위치’ 설계의 가능성은 한 인간 신념을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바꿔 놓을 수 있다. 사람들은 실제로 극적인 사건 결과로, 혹은 삶의 경험이 천천히 축적되면서 자신 생각과 의견을 바꾸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없다. 우리가 종 전체 특성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 집단이 전체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 또한 지나친 단순화다. 신념 체계는 집단적 재평가와 그에 따르는 압력 아래에 변하고 진화한다. 집단도 자신 생각을 바꿀 수 있고, 또 실재로 바꾼다. 타고난 선천성과 자율적인 개인의 힘이라는 기존의 지배적 통념에서 멀어져 우리를 이끌고, 인생 결과를 빚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면 기회가 열린다. 

















소크라테스도 모든 악행은 악의가 아닌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무지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만약 우리 실수가 미칠 영향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특정 덕목에 대한 참된 이해는 도덕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윤리적 사고를 펼쳐 나감에 있어 기원전 5세기 당시 그리스에 널리 퍼져 있던 도덕관념에 크게 반발했다. 소크라테스 임무는 의지의 나약함이라는 널리 퍼져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 왜 사실상 잘못인가를 보이는 것이다. 의지 나약함은 한 개인이 어떤 행위가 그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쾌락을 추구하려는 욕구에 압도되어 결국 그 행위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 즉 개인 의지가 유혹을 이겨낼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을 때 – 발생한다고 대부분 사람은 생각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런 개인이 사실상 자신 입장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지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수행하려고 선택한 행위가 – 즉 자신이 나쁜 것이라고 믿지만 자신에게 쾌락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되는 행위가 – 사실상 결국 고통을 주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나쁜 행위를 한 것은 다름 아닌 무지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자신 행위가 선을 산출할 것이라고 믿고 있으나 그의 이러한 믿은 잘못된 것이다. 
















니체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행위가 아니라 태도며, 잘못된 행위는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이렇게 비유한다. “어린아이가 동물에 대해 보이는 잔인함은 어린아이의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그 아이는 동물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결국 어떤 행위가 악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늘 ‘어리석은 행위’일뿐이다. 그런 행위를 선택했던 지성 정도가 너무 낮았던 것이다. 타인 고통을 유추할 수 있는 능력, 우리 기억과 상상력을 활용해 고통을 주는 행위에 대해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이것은 오로지 배움에 의해 가능해진다. 배움이 커지면 해석도 달라진다.



이런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도덕적 인류’에서 ‘현명한 인류’로 진화해간다. 모든 것을 자유의지에 따른 죄악으로 보는 관점에서 지성 정도에 따른 어리석은 행위로 보는 관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를 지은 게 아니라 어리석은 행위를 한 것이다. 지금의 최고 지성도 언젠가는 더 우월한 지성에 의해 추월당할 것이므로 우리는 여전히 어리석다. 범죄자를 니체적 개념에서 하나의 ‘어리석은 자’로 보자. 이렇게 범죄자에게서 자유의지를 제거하면 죄라는 개념과 벌이라는 개념도 세계에서 추방된다. 형벌을 가해 범죄자에게 보상받고자 하는 복수심까지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사악한 자유의지가 문제라면 거기에 대한 벌은 분노하는 자의 자의에 의해 무한대로 커질 수도 있지만, 남에게 끼친 손해에만 집중한다면 벌은 정확히 계량 가능한 것이 되어 원한의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악한 행위를 한 사람이 자신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에게 벌을 내리는 게 가능할까. 벌은 행위의 모든 의도를 다 알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태반이다. 우리는 우리 본능과 육체, 정신 운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우리는 범죄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명명할 수 있어야 한다. 범죄자에게서조차 죄를 빼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낯설며, 일부 철학자나 과학자 사이에서나 공허하게 떠도는 이야기라 여겨질 수 있지만, 범죄자에게 자유의지가 없었다고 보고 처벌보다는 진짜 ‘교화’ 관점에서 운영되는 교도소들이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남쪽으로 약 96킬로미터 떨어진 숲에는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교도소 중 하나가 있다. 그곳은 마약 밀매범, 성범죄자, 살인범 약 250명이 수감되어 있는 노르웨이에서 두 번째로 큰 감옥이지만, 감방이나 철장을 볼 수 없으며, 권총이나 수갑으로 무장한 교도관도 볼 수 없다. 교도관들은 ‘우리는 그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우리 무기다’라고 말한다.



할렌(Halden) 교도소 수감자에게는 바닥 난방을 갖춘 개인 전용 방이 주어진다. 평면 텔레비전과 전용 욕실, 수감자들이 요리할 수 있는 주방에는 자기로 된 접시와 스테인리스스틸 칼이 있다. 또한 도서관과 암벽등반 연습용 벽, 수감자들이 자신 음반을 녹음할 수 있는 음악 스튜디오까지 완비하고 있다. 



할렌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만 더 가면 마지막 형량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중범죄자 115명이 수감되어 있는 그림 같은 섬 바스퇴위가 나온다. 수감자와 교도관이 함께 버거를 뒤집고 수영을 하고 느긋하게 햇볕을 쬐고 있다. 솔직히 교도소 직원과 수감자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바스퇴위 교도관들은 유니폼을 입지 않고 수감자와 함께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함께 식사하기 때문이다. 섬에서는 영화관과 일광용 베드, 스키 슬로프 2개가 있어 온갖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다. 섬에는 교회와 식료품점, 도서관도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미쳐버린 건가? 수많은 살인자를 휴양지로 보내는 형을 선고하는 것은 얼마나 순진해빠진 행동인가? 바스퇴위 직원에 의하면 이는 더없이 정상적인 일이다. 그들은 수감자와 친구가 되는 것이 그들을 하대하고 모욕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배운다. 노르웨이에서 교도소는 나쁜 행동을 예방하는 곳이 아니라 나쁜 ‘의도’를 예방하기 위한 곳이다.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이 정상적인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들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정상성 원칙’에 따르면 벽 안의 삶은 가능한 벽 밖의 삶과 비슷해야 한다. 
















우리 선조들은 코페르니쿠스와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개념을 처음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우주에서 인간 자리를 재평가해야 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자유의지 개념도 그와 비슷한 사상 붕괴의 여정을 출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분명 그 통찰에 담긴 함축적 의미와 윤리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신념이 역사와 사회 산물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덜 독단적이 되고,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누구도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고, 누구도 객관적 진실을 완전하게 깨우쳤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자신이나 외부 대상과 맺는 관계를 변형시킨다. 우리 상처를 치유하고 타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잘못을 가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의 행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각각의 사건과 사람을 셀 수 없이 많은 조건의 결과로 봄으로써[緣起] 하나의 사건이나 단 한 사람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 한 구조적 원인을 알게 될 때 우리 미움과 괴로움은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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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은 12세기 런던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뼈를 발굴해서 조사해 보고는 당시 사람들이 지금 우리 세대를 제외하고는 역사상 어떤 시기 못지않게 키가 크고 영양 상태가 좋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여성의 경우에는 키가 더 큰 편에 속했다. 중세시대 가운데 그들은 3세기 동안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낸 사회에 살고 있었다. 북유럽의 채석장에서 고대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보다 더 많은 석재를 생산해서 고딕풍 성당을 건설했다. 그 당시 북유럽에는 전쟁 때문에 기근과 빈곤이 있었지만, 평화 시에는 현재의 우리와는 다르게 빈곤이 거의 없었다. 



중세 봉건제 아래에서 영주의 크고 작은 통제는 받았지만, 수십만의 소작인들이 대부분 빚지지 않는 경제적 안정을 누렸으며 중세 농부들은 오늘날 우리보다 더 긴 휴가를 즐겼다. 경제학자들 계산에 의하면, 빅토리아 시대인 1495년 당시 공유지에서 일했던 평범한 농부 한 사람이 연간 15주 정도 일하면 1년 동안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0년 동안 유례없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중세시대의 소작농들보다도 더 죽어라고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가? 우리는 집 하나 사는 것도 매우 어렵게 되었으며, 부부가 1년 내내 일하지 않고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조차 힘들고, 그것마저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세 서유럽 경제가 오늘날의 21세기 경제보다도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비록 길드제도가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측면이 있었지만, 구성원들이 장인으로 훌륭하게 커나가는 데 직업 훈련과 지원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또한 중세에는 가격을 합리적으로 매김으로써 자원을 보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합리적인 가격 덕분에 무차별하게 물고기를 잡을 필요가 없어 강의 수질을 보호하고 어족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교회가 이자를 부과시키는 것을 금지하였기에 대부금에 이자를 붙일 수 없었다. 때문에 귀족계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빚이 없었다. 물론 그 대신 중세 봉건제 아래에서의 의무는 있었다. 



그 당시 고딕 성당을 건축하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의문이 남아 있었는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당 건축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가혹하게 세금을 징수해서 사람들 삶을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가 12세기의 ‘블랙머니’라고 할 수 있는 자체 화폐를 발행하여 그 재원을 조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저가의 동전들은 몇 년마다 수수료를 붙여서 회수되고 재발행되면서 지역에서 소비를 늘리는 데 기여했다."









원래 경제학은 도덕 철학의 한 분야로 시작되었으며, 경제학이란 사람들을 빈곤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학문이다(이것이 경제학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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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7-03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논란이 될 주장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저자들의 주장을 위해서 중세를 미화한 듯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3-07-03 20:13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ㅎㅎ
저도 중세 관련 책 조금 읽어봤는데요, 매우 신선한 주장인 거 같습니다.
하지만 천년 중세를 저자가 말한 12~14세기 정도에만 한정하면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그 시기 기후가 넘 좋아서 농사가 엄청 잘 된 시기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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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팡글로스는 형이상학적, 신학적 우주론을 강의하였다. 그는 다음 같은 사실을 멋지게 증명해 보였다. 즉 원인 없는 결과란 없으며, 우리의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며, 남작 각하의 성(城)은 이 세계의 성 중에서 가장 멋진 성이며, 남작 부인은 가장 좋은 남작 부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증명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이란 가장 좋은 목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일례로 코는 안경을 얹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안경을 씁니다. 다리는 양말을 신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양말을 신습니다. 돌은 원래 성을 짓는 석재로 쓰이기 위해 생성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작 각하는 멋진 성을 소유하고 있지요. 왜냐하면 이 지방에서 제일 유력한 남작은 가장 좋은 성에 살아야 하니까요. 또 돼지는 식용으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년 내내 돼지고기를 먹습니다." pp 10-11. - P10

그들은 캉디드에게 법률을 들먹이며 그 연대의 모든 군인들로부터 서른여섯 대씩 얻어맞는 태형 아니면 머리통에 총알 열두 발을 한꺼번에 맞는 총살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였다. 캉디는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은 둘 중 어느 쪽도 원치 않는다고 강변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쨌든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결국 그는 신이 은총으로 내려 준 자유의지로 서른여섯 대씩의 태형을 선택했다. 연대에는 총 2천 명의 군인이 있었다. 그들이 2열로 늘어선 사이를 한 번 왕복하는 동안, 그는 도합 4천 대를 맞았다. 그러자 머리에서 엉덩이까지 신경과 근육이 모두 터져 나왔다. 막 세 번째 차례가 시작되려고 할 때, 캉디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차라리 머리를 부숴 달라고 빌었다. pp 16-17.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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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존재를 결정하지만, 

관념의 본질을 결정하지 않는다.“

- 피터 버거





자유란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고의 가치다. 현대 시민 사회에서 말하는 '자유'는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말한다. 그렇지만 자유가 무엇인지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역사를 보면 매 시기마다 자유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 특히 아테네 문명은 자유와 개인 존엄성을 높이 평가한 사회다. 자유를 뜻하는 그리스어 ‘엘레우테리아(Eleutheria)’는 당시 다른 고대 근동 사회의 어떠한 언어로도, 심지어 히브리어로도 번역할 수 없었다. 그리스를 제외한 고대 문명 대부분 사회는 개인이 집단에 종속된 상태인 절대주의나 교권주의에 압도되어 있어 자유라는 개념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엘레우테리아에 해당하는 로마어는 ‘리베르타스’(Libertas)다. 이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의 모티브가 되었다. 자유를 ‘liberty’라고 해석한다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서 얻은 자유’라는 뜻이 담겨있다. 반면, ‘freedom’은 ‘원래부터 부여받은 권리로서 자신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다. 토크빌은 ’freedom‘을 ’자연적 자유‘라고 이름 붙인 반면 ’liberty‘는 ’시민적 자유‘나 ’공민적 자유‘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현재 흔히 말하는 자유는 liberty라기보다는 freedom에 가깝다. 고대 도시국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자유 개념은 이처럼 우리 생각과 매우 달랐다. 고대 자유는 폭정과 억압을 방지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시민이 도시 통치에서 어떠한 역할이라도 맡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의회에 출석하고, 토론장에서 의견을 발표하고, 정치 논쟁을 판단하고, 어느 한 쪽 편을 들어 투표할 특권과 의무가 바로 고대 자유였다. 아울러 행정관으로서 봉사하거나 필요한 경우 배심원으로 참석하는 일도 고대 자유에 속했다. 


















고대 자유는 이처럼 시민이 자치에 참여함(self-governing)을 의미했다. 공동체를 위한 선(common good)을 달성하고자 동료 시민과 함께 깊이 고민하고 정치 공동체 운명을 만들어가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이 고대 자유였다. 따라서 자치를 위해 시민은 바람직한 인성이나 시민적 소양(시민적 덕성), 예컨대 공적인 일에 필요한 지식을 쌓고, 공동체 소속감을 키우며,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추는 일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자유에는 자치가 필요하고 자치는 시민 덕성에 의존한다는 생각이 고대 자유사상의 핵심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개인이 교육을 통해 절제와 지혜, 중용, 정의 같은 덕목들을 함양할 경우에만 자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곧 그리스 철학은 ‘파이데이아’(paideia), 즉 덕성 교육이 폭정을 미연에 방지하고 시민 자유를 보호하는 주된 방안이었다. 그래서 자치를 열망하는 자유 시민들에게는 ‘교양학’(liberal arts) 교육이 강조되었다. 교양학은 반복적인 기예나 돈벌이 학문이 아닌 자유 시민이 갖추어야 할 학문이기에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법과 논리학, 수사학, 산술, 기하학, 음악, 천문학으로 구성되었다. 정치학자 페트릭 데닌(1964~ )은 “이름 자체에 자유민을 함양한다는 뜻이 담긴 이 교양학 교육을 우리가 더 이상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이제 사람들은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라며, 현 상황을 고대 사회와 대비하며 안타까워한다. 우리는 “한때 ‘노예교육’이라 여겨진 학문을 선호하고 있다. 즉 오로지 돈벌이와 직업교육에 몰두하며, ‘시민’ 칭호를 누리지 못했던 사람들이 받았던 교육에만 매달리고 있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한때 자유민과 농노를, 주인과 노예를, 시민과 하인을 구분했던 정체(政體)를 비난한다. 우리는 무지몽매했던 선조들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기고만장하지만, 지난날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만 받았던 교육 형태를 채택하고 있다.” 

 















자유(freedom)는 어느 정도 개신교에 뿌리 두고 있다. 유럽의 종교개혁은 단순한 예배 의식보다는 늘 진심 어린 신앙을 추구하며 개인 양심을 존중했다. 개신교 교의는 인간 죄가 종교적 예식이나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 따라 용서됐기 때문이다. 과거 가톨릭교회는 인간 죄가 종교적 또는 도덕적 행위에 따라 용서된다고 가르쳤고, 따라서 각종 의식과 의례가 성행했다. 반면 믿음을 통해 죄를 용서받는다는 개신교 교의는 특정한 행위나 의례보다 동기가 더 중요했다. 어떤 행동이 순수한 마음과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서 나온 것인지 알려면 자기 마음을 살펴봐야 했기에 각자 개인적인 양심에 의존하게 되었다. 바로 이 점이 그냥 신을 따르고자 하는 가톨릭 전통을 약화시켰다. 개신교에서 개인의 양심은 유럽을 ’세속화‘시킨 힘이었다. 그 덕분에 한 나라에 여러 종교가 공존하거나 아예 종교가 없는 관용의 자유도 가능해졌다. 



처음에는 종교적 의미에서 관용의 자유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자유 자체가 하나의 권리로서 존중되었다. 이것이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자유(freedom)였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발생한 모순과 충돌이 대단히 컸던 탓에 프랑스인은 그들 구호(자유, 평등, 박애) 중 자유를 자연적 자유, 곧 구속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자유로 이해했다. 그들은 혁명 전 사회에서 수많은 불합리한 제한과 압박을 받았고, 혁명으로 이 제한과 압박을 깨부쉈으므로 그 결과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자유가 가치 있다고 여겨진 것은 프랑스 혁명부터다. 1801년 출간된 한 논문의 문장이 ‘자유’라는 가치의 탄생을 알린다. “현재 개혁가들이 널리 퍼뜨리고 신성시하고 불가사의한 의미를 각인시킨, 10년 전에는 미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떠올리지 않았을 법한 단어는 ‘자유’나 ‘휴먼’과 같은 표현들이다.” 프랑스 혁명 여파로 ‘자유’라는 단어는 19세기에 정치의 핵심 개념으로 부상했다. 특히 “자유사상은 앙시앙 레짐 몰락이 가져온 변화를 강조하고, 개인 권리를 관대하게 인정하려는 정치적 실천”처럼 보였다. 

 















1815년 나폴레옹 패배 이후 유럽이 신성동맹 지배 아래 놓이게 되자 마침내 권력의 정상에 서게 된 귀족 보수주의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 결집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공포통치에 동조했던 사회주의 급진주의자들을 해산시키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프랑스 혁명의 근본정신인 자유가 구현되기를 희망했다. 프랑스 혁명 구호 가운데 자유주의자들에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재주만 있으면 어떠한 경력이든 추구할 수 있다’는 오늘날 ‘능력주의’라는 용어로 더 익숙한 구호였다. 결국 능력주의나 엘리트주의는 자유주의 개념의 하위 범주가 된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대중이 개혁을 주도하는 것에 반대했다. 자유주의자들 눈에 대중이란 기본적으로 배우지 못한, 따라서 비합리적인 존재로 비쳤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도달한 결론은 주도권을 갖고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능력 있는 전문가 집단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전문가 집단은 어떠한 분야든 학습을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필수적이고 바람직한 개혁을 가장 잘 이루어낼 수 있는 집단으로 정의되었다.



이러한 자유(freedom) 개념은 서유럽 선진국에서 1860년과 1890년 사이에 점차 확산되었다. 여기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기여가 컸다. 그는 1859년에 『자유론』을 펴냈다. 독재 국가가 자유(liberty)를 위협하는 경우는 낯익은 문제였기에 그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개인이나 소수의 자유(freedom)에 대한 다수의 지적 강압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과거에 보잘것없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남들 권리를 부인하고 견해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유를 새롭게 정의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행동이 상대방에게 더 좋다는 이유로, 그것이 상대방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거나 혹은 심지어 올바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도록 강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라고 밀은 주장했다. 
















1840년 중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정치적 자유 의미를 부르주아 계급과 연결시켰다. 부유한 지배층이 자신이 소유한 부(富)를 지키기 위해 모든 시민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 당시 부유층 다수는 반혁명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다. 평등을 내세운 가난한 다수가 소수 부유층의 재산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었다. 자유권을 강조하고 자유권 침해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자유의 중요성을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자유는 부르주아의 실제 이해관계를 감추는 관념적 표현이었다. “자유주의는 국가 생활 속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제약받지 않는 지배자들이 자유롭지 못한 시민을 지배하기 위한 억압”이라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지적했다. 



부르주아가 부를 지킬 수 있도록 필요한 사상을 개발한 철학자가 존 로크(1632~1704)다. 그는 사유재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시민의 자유(freedom)를 자신 논리의 근거로 삼았다.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하다면 시민들의 자유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로크의 핵심 통찰이었다. 로크는 이를 논증하기 위해서 우선 천부인권이라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에서 출발했다. 개인의 인신(人身)은 그 사람 소유며, 자기 인신을 소유할 권리는 천부적 권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인신에 대한 소유권을 기반으로 생산한 것의 소유 권리를 정당화한다. 즉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기 인신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기에 자기 인신이 수행한 노동으로 획득한 대상도 그 사람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로크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인간이 공동체를 결성하고 스스로를 정부 지배하에 두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은 그들 재산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애덤 스미스(1723~1790)는 『국부론』에서 그 핵심을 간결하게 말한다. ”귀중하고 방대한 재산을 획득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정부 수립을 요구하게 된다. 재산이 없으면 정부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정부는 재산 안전을 위해 형성되는 한,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에 맞서 부자를 지키기 위한, 혹은 재산을 전혀 갖지 못한 사람에 맞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개인 재산, 특히 공장과 자본 설비의 소유권 보호는 물론 자본주의 필수 조건을 보호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자본가들이 경제 권력과 정치권력을 갖게 된 것은 이렇듯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소유 관계를 보호하는 구실을 정부에 부여하는 것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지배 계급인 자본가 권력 원천을 보호하는 일을 정부에 맡긴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로크와 스미스의 국가 논리에는, 개인의 사유재산이 부당하다는 무의식 판단이 함께 전제되어 있다. 만약 사유재산 제도가 정당하다고 여겼다면, 사유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당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유재산을 긍정하자마자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보호 장치로서 국가의 강제력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로크가 논리로 만든 자유는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그것은 공적인 삶이나 공공 가치[liberty]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신을 통해서 획득한 재산과 그 보호[freedom]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의 자유주의는 1870년 이후 면모를 바꾸어 신고전파 패러다임으로 변하게 되며, 오늘날에도 신자유주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제 자유라는 개념에는 경제활동만이 부각되고 여러 정치적, 사회적 차원은 은폐된다. 
















자유(freedom)라는 개념은 가장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인간의 특징을 가정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주의’와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라는 개념이다. 특히 개인이 규제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하는 선택이라는 뜻의 주의주의 이념을 윤리와 정치 토대로 삼는다. 페트릭 데닌은 칸트(1724~1804)가 자율성을 본격적으로 고양한 철학자임에 주목한다. “자유주의의 근본 전제는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개인 자율성 전제와 관련있다. 자유주의 문제는 칸트 철학이 악용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개인 자율성을 고양한 것이 처음부터 잘못이었다.” 칸트는 계몽주의 인간관에 기초한 자유주의 윤리학의 강력한 대변자다. 개인으로서 인간 자유와 존엄성을 모토로 하는 자유주의 윤리학 기초는 칸트의 원자론적 인간관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당연히 자유란 무엇인지, 어떻게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윤리학의 일차적 과제가 된다. 하지만 이 과제와 씨름하던 칸트의 모든 노력은 미궁에 빠지고 만다. 자유라는 것이 이성의 필연적인 전제임에는 틀림없으나 결국 구체적인 사례를 들 수도, 개념적으로 파악될 수도, 이성적으로 통찰할 수도 없는 불가해한 사태라는 결론에 이른다. 신비한 자유 이념 앞에서 이성은 전적으로 무능력에 빠진다.



칸트는 이성 체계의 중심에 자유를 놓고 그 자유의 객관적 실재성을 입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최후에 깨달은 것은 자유 이념의 불가해성이다. 자유를 이론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성의 선험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자유는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무조건 닥치는 주관적 사실로서, 혹은 윤리학의 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하기에 무조건 요청되는 것이다. 
















사실 처음으로 주의주의를 분명하게 표현한 사람은 국가를 옹호한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779)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상태로 존재한다. 이런 취약한 조건에서 삶이 ‘추하고 잔인하고 짧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은 합리적인 자기이익에 따라 국가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 자연권을 대부분 포기한다. 그 정당성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계약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율적이고 이성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한 일도, 무의식 상태에 내린 잘못된 결정일 수 있다. 예컨대,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강의가 그저 인간을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개별 행위자로 기술할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쳐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1993년 로버트 프랭크가 수행한 한 실험은 경제학과 학생들이 다른 학과 학생들보다 “경제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자기 이익 모델이라는 소리를 자꾸 듣다보면 실제로도 자기 이익 방식으로 행동하는 정도가 더 증가한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자기 이익이라는 개념은 교육으로 학습되는 개념이다. 자기 이익이라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꼼수와 잔머리, 심지어 거짓말로까지 확장된다. 프랭크가 행했던 또 다른 실험에서는, 공동 구매 경우에 친구들을 희생해 가면서 업자로부터 상납을 챙겨 먹을 가능성이 경제학과 학생들 집단에서 현저히 더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제학 학습의 결과는, 자기 이익에 입각한 행동이 만사에 깊숙이 침투해 있으며, 자기 이익은 대체로 적절한 것이고 심지어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다시 자기 이익을 떳떳이 과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프랭크의 여러 실험은 경제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그러한 성향이 더욱 강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는 경제학과 한 학년 전체를 조사했다. 그중 절반은 게임 이론가(게임 이론 자체가 자기 이익이라는 동기를 기초로 이론을 수립하는 학문이다)에게 미시 경제학을 배웠으며, 다른 절반은 공산주의 중국 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전문가로부터 미시 경제학을 배웠다. 학기가 끝날 무렵 게임 이론가로부터 배운 학생들이 다른 쪽 집단 학생들보다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성향이 더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주의 개념 번창은 이기주의나 개인주의 이론이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오늘날 자유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자율적으로 살아가며, 이러한 상태에서는 국가 역할을 확대하여 무질서를 통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자율성을 더욱 보호하려면 국가 역할이 더 확대하고 실정법을 통해 개인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자유주의는 결국 두 가지 요소, 즉 해방된 개인과 통제하는 국가뿐이다. 홉스는 『리바이던』에서 이 두 실체를 완벽하게 묘사했다. 국가는 오로지 자율적인 개인들로만 구성되고, 개인들은 국가에 의해 ‘억제’된다. .

 













따라서 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과 국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에 과거 전통에 대한 존중이나 미래 세대에 대한 의무가 무시되고, 즉각적인 자유 추구만이 대세가 된다. 예컨대 자녀는 갈수록 개인 자유를 제한하는 원인으로 간주되기에 원하면 낙태를 할 수 있는 자유주의 사상이 강화한다. 그 결과 출생률이 감소한다. 경제 영역에서는 대개 당장 이익을 내라는 끊임없는 요구에 쫓겨 단기 수익을 올리려는 충동이 장기 투자를 막는다. 그리고 시장에서 넘쳐나는 상품에 감탄할 뿐이지, 지구의 풍부한 자원이 단기간 내 고갈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지 못한다. 설령 훗날 우리 자녀들에게 식수와 같은 귀중한 자원이 부족해질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이런 활동을 규제하는 일은 실정법을 시행하는 국가 소관으로 치부되지 문화 규범의 산물인 교양 있는 개인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자기실현을 추구하고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더 큰 경제성장과 사회에 만연한 소비가 필요하다. 자유주의 사회는 경제성장이 둔화될 경우 여간해서는 생존하기 어렵고, 경제성장이 얼마간이라도 멈추거나 역행할 경우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공공의 선(common good)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유일한 목표가 바로 ‘자유’(freedom)다. 더욱 중요한 점은 칸트가 우리에게 하나의 중요한 문제, 즉 자유의 문제를 남겨놓았다. 이 세계에서 어떻게 자유가 가능한가?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행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우리는 직관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자유가 실재함을 옹호한다. 하지만 우리 직관이 과연 자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만큼 확실한지 반드시 물어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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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28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도서들이 많이 보이네요.

북다이제스터 2023-06-28 19:07   좋아요 0 | URL
네, 대부분 책이 나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