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존재를 결정하지만, 

관념의 본질을 결정하지 않는다.“

- 피터 버거





자유란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고의 가치다. 현대 시민 사회에서 말하는 '자유'는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말한다. 그렇지만 자유가 무엇인지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역사를 보면 매 시기마다 자유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 특히 아테네 문명은 자유와 개인 존엄성을 높이 평가한 사회다. 자유를 뜻하는 그리스어 ‘엘레우테리아(Eleutheria)’는 당시 다른 고대 근동 사회의 어떠한 언어로도, 심지어 히브리어로도 번역할 수 없었다. 그리스를 제외한 고대 문명 대부분 사회는 개인이 집단에 종속된 상태인 절대주의나 교권주의에 압도되어 있어 자유라는 개념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엘레우테리아에 해당하는 로마어는 ‘리베르타스’(Libertas)다. 이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의 모티브가 되었다. 자유를 ‘liberty’라고 해석한다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서 얻은 자유’라는 뜻이 담겨있다. 반면, ‘freedom’은 ‘원래부터 부여받은 권리로서 자신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다. 토크빌은 ’freedom‘을 ’자연적 자유‘라고 이름 붙인 반면 ’liberty‘는 ’시민적 자유‘나 ’공민적 자유‘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현재 흔히 말하는 자유는 liberty라기보다는 freedom에 가깝다. 고대 도시국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자유 개념은 이처럼 우리 생각과 매우 달랐다. 고대 자유는 폭정과 억압을 방지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시민이 도시 통치에서 어떠한 역할이라도 맡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의회에 출석하고, 토론장에서 의견을 발표하고, 정치 논쟁을 판단하고, 어느 한 쪽 편을 들어 투표할 특권과 의무가 바로 고대 자유였다. 아울러 행정관으로서 봉사하거나 필요한 경우 배심원으로 참석하는 일도 고대 자유에 속했다. 


















고대 자유는 이처럼 시민이 자치에 참여함(self-governing)을 의미했다. 공동체를 위한 선(common good)을 달성하고자 동료 시민과 함께 깊이 고민하고 정치 공동체 운명을 만들어가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이 고대 자유였다. 따라서 자치를 위해 시민은 바람직한 인성이나 시민적 소양(시민적 덕성), 예컨대 공적인 일에 필요한 지식을 쌓고, 공동체 소속감을 키우며,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추는 일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자유에는 자치가 필요하고 자치는 시민 덕성에 의존한다는 생각이 고대 자유사상의 핵심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개인이 교육을 통해 절제와 지혜, 중용, 정의 같은 덕목들을 함양할 경우에만 자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곧 그리스 철학은 ‘파이데이아’(paideia), 즉 덕성 교육이 폭정을 미연에 방지하고 시민 자유를 보호하는 주된 방안이었다. 그래서 자치를 열망하는 자유 시민들에게는 ‘교양학’(liberal arts) 교육이 강조되었다. 교양학은 반복적인 기예나 돈벌이 학문이 아닌 자유 시민이 갖추어야 할 학문이기에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법과 논리학, 수사학, 산술, 기하학, 음악, 천문학으로 구성되었다. 정치학자 페트릭 데닌(1964~ )은 “이름 자체에 자유민을 함양한다는 뜻이 담긴 이 교양학 교육을 우리가 더 이상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이제 사람들은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라며, 현 상황을 고대 사회와 대비하며 안타까워한다. 우리는 “한때 ‘노예교육’이라 여겨진 학문을 선호하고 있다. 즉 오로지 돈벌이와 직업교육에 몰두하며, ‘시민’ 칭호를 누리지 못했던 사람들이 받았던 교육에만 매달리고 있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한때 자유민과 농노를, 주인과 노예를, 시민과 하인을 구분했던 정체(政體)를 비난한다. 우리는 무지몽매했던 선조들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기고만장하지만, 지난날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만 받았던 교육 형태를 채택하고 있다.” 

 















자유(freedom)는 어느 정도 개신교에 뿌리 두고 있다. 유럽의 종교개혁은 단순한 예배 의식보다는 늘 진심 어린 신앙을 추구하며 개인 양심을 존중했다. 개신교 교의는 인간 죄가 종교적 예식이나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 따라 용서됐기 때문이다. 과거 가톨릭교회는 인간 죄가 종교적 또는 도덕적 행위에 따라 용서된다고 가르쳤고, 따라서 각종 의식과 의례가 성행했다. 반면 믿음을 통해 죄를 용서받는다는 개신교 교의는 특정한 행위나 의례보다 동기가 더 중요했다. 어떤 행동이 순수한 마음과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서 나온 것인지 알려면 자기 마음을 살펴봐야 했기에 각자 개인적인 양심에 의존하게 되었다. 바로 이 점이 그냥 신을 따르고자 하는 가톨릭 전통을 약화시켰다. 개신교에서 개인의 양심은 유럽을 ’세속화‘시킨 힘이었다. 그 덕분에 한 나라에 여러 종교가 공존하거나 아예 종교가 없는 관용의 자유도 가능해졌다. 



처음에는 종교적 의미에서 관용의 자유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자유 자체가 하나의 권리로서 존중되었다. 이것이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자유(freedom)였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발생한 모순과 충돌이 대단히 컸던 탓에 프랑스인은 그들 구호(자유, 평등, 박애) 중 자유를 자연적 자유, 곧 구속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는 자유로 이해했다. 그들은 혁명 전 사회에서 수많은 불합리한 제한과 압박을 받았고, 혁명으로 이 제한과 압박을 깨부쉈으므로 그 결과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자유가 가치 있다고 여겨진 것은 프랑스 혁명부터다. 1801년 출간된 한 논문의 문장이 ‘자유’라는 가치의 탄생을 알린다. “현재 개혁가들이 널리 퍼뜨리고 신성시하고 불가사의한 의미를 각인시킨, 10년 전에는 미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떠올리지 않았을 법한 단어는 ‘자유’나 ‘휴먼’과 같은 표현들이다.” 프랑스 혁명 여파로 ‘자유’라는 단어는 19세기에 정치의 핵심 개념으로 부상했다. 특히 “자유사상은 앙시앙 레짐 몰락이 가져온 변화를 강조하고, 개인 권리를 관대하게 인정하려는 정치적 실천”처럼 보였다. 

 















1815년 나폴레옹 패배 이후 유럽이 신성동맹 지배 아래 놓이게 되자 마침내 권력의 정상에 서게 된 귀족 보수주의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 결집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공포통치에 동조했던 사회주의 급진주의자들을 해산시키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프랑스 혁명의 근본정신인 자유가 구현되기를 희망했다. 프랑스 혁명 구호 가운데 자유주의자들에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재주만 있으면 어떠한 경력이든 추구할 수 있다’는 오늘날 ‘능력주의’라는 용어로 더 익숙한 구호였다. 결국 능력주의나 엘리트주의는 자유주의 개념의 하위 범주가 된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대중이 개혁을 주도하는 것에 반대했다. 자유주의자들 눈에 대중이란 기본적으로 배우지 못한, 따라서 비합리적인 존재로 비쳤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도달한 결론은 주도권을 갖고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능력 있는 전문가 집단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전문가 집단은 어떠한 분야든 학습을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필수적이고 바람직한 개혁을 가장 잘 이루어낼 수 있는 집단으로 정의되었다.



이러한 자유(freedom) 개념은 서유럽 선진국에서 1860년과 1890년 사이에 점차 확산되었다. 여기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기여가 컸다. 그는 1859년에 『자유론』을 펴냈다. 독재 국가가 자유(liberty)를 위협하는 경우는 낯익은 문제였기에 그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개인이나 소수의 자유(freedom)에 대한 다수의 지적 강압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과거에 보잘것없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남들 권리를 부인하고 견해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유를 새롭게 정의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행동이 상대방에게 더 좋다는 이유로, 그것이 상대방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거나 혹은 심지어 올바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도록 강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라고 밀은 주장했다. 
















1840년 중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정치적 자유 의미를 부르주아 계급과 연결시켰다. 부유한 지배층이 자신이 소유한 부(富)를 지키기 위해 모든 시민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 당시 부유층 다수는 반혁명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다. 평등을 내세운 가난한 다수가 소수 부유층의 재산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었다. 자유권을 강조하고 자유권 침해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자유의 중요성을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자유는 부르주아의 실제 이해관계를 감추는 관념적 표현이었다. “자유주의는 국가 생활 속에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제약받지 않는 지배자들이 자유롭지 못한 시민을 지배하기 위한 억압”이라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지적했다. 



부르주아가 부를 지킬 수 있도록 필요한 사상을 개발한 철학자가 존 로크(1632~1704)다. 그는 사유재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시민의 자유(freedom)를 자신 논리의 근거로 삼았다.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하다면 시민들의 자유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로크의 핵심 통찰이었다. 로크는 이를 논증하기 위해서 우선 천부인권이라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에서 출발했다. 개인의 인신(人身)은 그 사람 소유며, 자기 인신을 소유할 권리는 천부적 권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인신에 대한 소유권을 기반으로 생산한 것의 소유 권리를 정당화한다. 즉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기 인신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기에 자기 인신이 수행한 노동으로 획득한 대상도 그 사람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로크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인간이 공동체를 결성하고 스스로를 정부 지배하에 두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은 그들 재산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애덤 스미스(1723~1790)는 『국부론』에서 그 핵심을 간결하게 말한다. ”귀중하고 방대한 재산을 획득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정부 수립을 요구하게 된다. 재산이 없으면 정부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정부는 재산 안전을 위해 형성되는 한,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에 맞서 부자를 지키기 위한, 혹은 재산을 전혀 갖지 못한 사람에 맞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개인 재산, 특히 공장과 자본 설비의 소유권 보호는 물론 자본주의 필수 조건을 보호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자본가들이 경제 권력과 정치권력을 갖게 된 것은 이렇듯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소유 관계를 보호하는 구실을 정부에 부여하는 것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지배 계급인 자본가 권력 원천을 보호하는 일을 정부에 맡긴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로크와 스미스의 국가 논리에는, 개인의 사유재산이 부당하다는 무의식 판단이 함께 전제되어 있다. 만약 사유재산 제도가 정당하다고 여겼다면, 사유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당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유재산을 긍정하자마자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보호 장치로서 국가의 강제력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로크가 논리로 만든 자유는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그것은 공적인 삶이나 공공 가치[liberty]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신을 통해서 획득한 재산과 그 보호[freedom]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의 자유주의는 1870년 이후 면모를 바꾸어 신고전파 패러다임으로 변하게 되며, 오늘날에도 신자유주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제 자유라는 개념에는 경제활동만이 부각되고 여러 정치적, 사회적 차원은 은폐된다. 
















자유(freedom)라는 개념은 가장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인간의 특징을 가정하고 있다. 그것은 ‘개인주의’와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라는 개념이다. 특히 개인이 규제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하는 선택이라는 뜻의 주의주의 이념을 윤리와 정치 토대로 삼는다. 페트릭 데닌은 칸트(1724~1804)가 자율성을 본격적으로 고양한 철학자임에 주목한다. “자유주의의 근본 전제는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개인 자율성 전제와 관련있다. 자유주의 문제는 칸트 철학이 악용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개인 자율성을 고양한 것이 처음부터 잘못이었다.” 칸트는 계몽주의 인간관에 기초한 자유주의 윤리학의 강력한 대변자다. 개인으로서 인간 자유와 존엄성을 모토로 하는 자유주의 윤리학 기초는 칸트의 원자론적 인간관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당연히 자유란 무엇인지, 어떻게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윤리학의 일차적 과제가 된다. 하지만 이 과제와 씨름하던 칸트의 모든 노력은 미궁에 빠지고 만다. 자유라는 것이 이성의 필연적인 전제임에는 틀림없으나 결국 구체적인 사례를 들 수도, 개념적으로 파악될 수도, 이성적으로 통찰할 수도 없는 불가해한 사태라는 결론에 이른다. 신비한 자유 이념 앞에서 이성은 전적으로 무능력에 빠진다.



칸트는 이성 체계의 중심에 자유를 놓고 그 자유의 객관적 실재성을 입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최후에 깨달은 것은 자유 이념의 불가해성이다. 자유를 이론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성의 선험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자유는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무조건 닥치는 주관적 사실로서, 혹은 윤리학의 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하기에 무조건 요청되는 것이다. 
















사실 처음으로 주의주의를 분명하게 표현한 사람은 국가를 옹호한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779)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상태로 존재한다. 이런 취약한 조건에서 삶이 ‘추하고 잔인하고 짧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은 합리적인 자기이익에 따라 국가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 자연권을 대부분 포기한다. 그 정당성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계약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율적이고 이성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한 일도, 무의식 상태에 내린 잘못된 결정일 수 있다. 예컨대,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강의가 그저 인간을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개별 행위자로 기술할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쳐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1993년 로버트 프랭크가 수행한 한 실험은 경제학과 학생들이 다른 학과 학생들보다 “경제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자기 이익 모델이라는 소리를 자꾸 듣다보면 실제로도 자기 이익 방식으로 행동하는 정도가 더 증가한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자기 이익이라는 개념은 교육으로 학습되는 개념이다. 자기 이익이라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꼼수와 잔머리, 심지어 거짓말로까지 확장된다. 프랭크가 행했던 또 다른 실험에서는, 공동 구매 경우에 친구들을 희생해 가면서 업자로부터 상납을 챙겨 먹을 가능성이 경제학과 학생들 집단에서 현저히 더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제학 학습의 결과는, 자기 이익에 입각한 행동이 만사에 깊숙이 침투해 있으며, 자기 이익은 대체로 적절한 것이고 심지어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다시 자기 이익을 떳떳이 과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프랭크의 여러 실험은 경제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그러한 성향이 더욱 강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는 경제학과 한 학년 전체를 조사했다. 그중 절반은 게임 이론가(게임 이론 자체가 자기 이익이라는 동기를 기초로 이론을 수립하는 학문이다)에게 미시 경제학을 배웠으며, 다른 절반은 공산주의 중국 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전문가로부터 미시 경제학을 배웠다. 학기가 끝날 무렵 게임 이론가로부터 배운 학생들이 다른 쪽 집단 학생들보다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성향이 더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주의 개념 번창은 이기주의나 개인주의 이론이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오늘날 자유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자율적으로 살아가며, 이러한 상태에서는 국가 역할을 확대하여 무질서를 통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자율성을 더욱 보호하려면 국가 역할이 더 확대하고 실정법을 통해 개인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자유주의는 결국 두 가지 요소, 즉 해방된 개인과 통제하는 국가뿐이다. 홉스는 『리바이던』에서 이 두 실체를 완벽하게 묘사했다. 국가는 오로지 자율적인 개인들로만 구성되고, 개인들은 국가에 의해 ‘억제’된다. .

 













따라서 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과 국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에 과거 전통에 대한 존중이나 미래 세대에 대한 의무가 무시되고, 즉각적인 자유 추구만이 대세가 된다. 예컨대 자녀는 갈수록 개인 자유를 제한하는 원인으로 간주되기에 원하면 낙태를 할 수 있는 자유주의 사상이 강화한다. 그 결과 출생률이 감소한다. 경제 영역에서는 대개 당장 이익을 내라는 끊임없는 요구에 쫓겨 단기 수익을 올리려는 충동이 장기 투자를 막는다. 그리고 시장에서 넘쳐나는 상품에 감탄할 뿐이지, 지구의 풍부한 자원이 단기간 내 고갈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지 못한다. 설령 훗날 우리 자녀들에게 식수와 같은 귀중한 자원이 부족해질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이런 활동을 규제하는 일은 실정법을 시행하는 국가 소관으로 치부되지 문화 규범의 산물인 교양 있는 개인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자기실현을 추구하고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더 큰 경제성장과 사회에 만연한 소비가 필요하다. 자유주의 사회는 경제성장이 둔화될 경우 여간해서는 생존하기 어렵고, 경제성장이 얼마간이라도 멈추거나 역행할 경우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공공의 선(common good)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유일한 목표가 바로 ‘자유’(freedom)다. 더욱 중요한 점은 칸트가 우리에게 하나의 중요한 문제, 즉 자유의 문제를 남겨놓았다. 이 세계에서 어떻게 자유가 가능한가?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행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우리는 직관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자유가 실재함을 옹호한다. 하지만 우리 직관이 과연 자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만큼 확실한지 반드시 물어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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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28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도서들이 많이 보이네요.

북다이제스터 2023-06-28 19:07   좋아요 0 | URL
네, 대부분 책이 나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