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리야는 소비 물건이 분류의 체계를 이루며 행동을 구조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광고는 한 상품을 다른 상품과 구별하는 상징을 통해 상품을 코드화하고, 그럼으로써 이를 일련의 배열에 끼워 맞춘다. (그 대상(object)은 개별 소비자에게 그 의미를 전달함으로써 소비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이리하여 잠재적으로 무한히 반복될 기호작용이 제도화되어 사회를 규제하게 되며, 동시에 개인에게 자유에 대한 환영적인 감각을 심어준다. 



소비대상은 욕망을 무한히 자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부유하는 기표들의 연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사실, 상품을 단순히 인간적 욕구의 고정적 체계와 연관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지닌 효용물이라고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드리야르, 특히 그의 상품=기호의 이론화가 매우 중시된다. 그는 이제 상품이 소쉬르적인 의미에서 체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소비는 사용가치의 소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기호의 소비로 이해되어야 한다.



보드리야르는 개인이 대상을 통해 질서체계에서 그 위치를 찾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상품의 기능은 개인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일 뿐 아니라 개인을 사회 질서와 연계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소비는 생산에서 시작된 경제적 연쇄의 종착점일 뿐 아니라 교환체계이며 언어이기도 하다. 언어 상에서 볼 때 상품은 개인에 선행하는 기호체계에서 생각되는 물품인 셈이다. 보드리야르에게 있어서 자기 충족적인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회체계, 특히 언어나 재화, 혈연과 같은 것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사회질서에 차별적으로 연결시키고, 그럼으로써 개인에 대한 감각을 구성할 따름이다.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에서 정보는 점점 많아지고 의미는 점점 적어져 간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사회처럼 정보의 과부하로 고통받는 사회에서는 의미를 거부하는 것만이 저항의 유일한 방식이라고 제안한다. 우리는 인생 매 순간마다 정보로 넘쳐나는 이미지들에 의해 그야말로 폭격을 당하고 있다. 이에 대처할 유일한 방법, 우리 인생을 점령해 버릴 정보의 힘에 저항할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이미지들을 오직 기표나 표면으로만 받아들이고 그 의미와 기의는 거부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단순히 시청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표면적인 이미지들, 기표들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전날 저녁 뉴스를 기억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기억할 것이 없고 오직 이미지와 기표들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의 콜라주다. 개개 이미지는 더 많은 것을 낳고 더 많은 것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원본이 없는 완벽한 복제품, 즉 시뮬라크르이다. 뉴스는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의 이미지인 바, 최종적인 하이퍼리얼리티인 셈이다."









니체는 미래에 희망을 거는 어떠한 믿음도 반대했다. 니체는 절대적 진보, 즉 역사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계획이나 목적을 거부했다. 경험적 사실들에 비추어 보아도 역사가 진보한다는 신념은 오류다. 니체는 "인류의 최종 목표는 인류 최고의 바람직한 모습에 있을 뿐 시간의 마지막 순간에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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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7-25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비의 시대 속에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것이 아닌, 광고와 홍보로 만들어낸 수많은 이미지의 변주를 남들과 달라보이지 않기 위해 쇼핑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3-07-26 15:39   좋아요 0 | URL
넵 우리는 ‘남들과 달라보이지 않기 위해” 소비하는데, 반면 그들(?)은 ’남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 소비하는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