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
정인경 지음 / 이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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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 싶은가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

 

정인경 지음 [이음] (2026)

 



최근에 혼자 생각하곤 하는 질문이 있다. ‘과학을 왜 공부해요?’라는 질문과 ‘인류는 지구에서 얼마나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들이다. 누군가 나에게 과학을 공부하는 목적을 물어보았을 때 나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섬주섬 어렵지 않은 용어로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자문해보곤 한다. 게다가 올 여름 뜨거운 열기로 실감하게 했던 기후위기 시대에 인류 문명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를 종종 상상해본다. 이건 진지한 환경활동가처럼 어떤 행동으로 실천해야한다는 의무감보다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일종의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학저술가, 과학사연구자 정인경의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를 읽는 동안 나 혼자 자문해보던 이 두 주제에 대한 고민을 이 책에서 발견했다. 저자는 2022년도에 개정된 고등학교 과학사 <과학의 역사와 문화>를 집필했다. 이 책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저자가 과학사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고민했던 주제들을 후기처럼 들려주는 성격의 책이라 느꼈다. 교과서의 정제된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에 숨어 있는,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이 책에서 보다 진지하게 소개되고 있었다.

 

저자는 과학 공부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었을까? 내 나름의 설득력 있고 세련된 표현을 찾지 못했기에 나는 저자의 견해가 궁금했다. 들어가는 글에서 그는 “(과학) 지식이 왜 중요한지 알고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11)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달리 말하면 과학을 공부하는 목표는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나와 사회의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두드러진 ‘과학의 상업화’를 지적하며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지닌 위상과 역할이 달라진 현실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과학의 공공성과 메타 학문으로서 과학의 역할이 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시대가 지나며 과학의 위상이 달라진 만큼 과학의 목표 또한 과거와는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과학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과학사를 전공하고 연구하는 저자의 입장에서 과학사는 메타 인식을 하도록 도와주는 채널일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과학이란, 절대적 진리를 확정하는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지각과 앎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검증 받아온 믿음 체계 혹은 방법론에 가까운 듯하다. “과학은 지난 400년 동안 혹독한 검증 과정에서 살아남은 지식”(122)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이 여태껏 신뢰를 더 쌓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메타 인지적 절차, 끊임없는 비판과 토론의 과정에 열려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고대) 자연철학자들이 우주의 법칙을 찾는 것이나 도시국가의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본질적으로 서로 같았”다(73)는 평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여겨진다.


한편으로 나는 저자가 ‘인류의 문명이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를 묻는 대목에 관심이 갔다.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시작이 있었던 것처럼 결국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인류가 겪게 될 ‘문명의 죽음’이 얼마나 가속화될 것인가다.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활동, 자원을 착취하는 행위로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은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최근 네팔의 산지에서 발생한 대홍수 사태를 보며 실감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환경의 변화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올 때 환경 변화에 취약한 계층이 더 많은 희생을 겪게 마련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인류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함께 붙들고 해결할 마지막 타이밍을 놓쳤다고 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이러한 문제는 지식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는 과학 교과서를 통해서 인식하고 생각해보기에는 부족하다. 저자는 과학사에서 우리가 처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고 여긴듯하다. 조금 낯선 입장이긴 하지만, 저자는 과학사로부터 인류에게 필요한 윤리적 입장을 발견하고 이야기해 볼 수 있다고 본 듯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에 대한 탐구 일변도의 관행과 무한한 신뢰를 보내기 전에 과학의 방향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여 조정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과학은 가능하다.

 

여기에 더 필요한 것은 ‘과학적 상상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부터 주목하는 철학과 윤리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과학을 수행하는 과학자 집단의 책임과 열린 자세, 과학 행위의 공공성에 대한 믿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여긴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고 우려하는 과학의 상업화 현실에 개개인이 거리를 두고 균형감을 갖게 해주는 도구가 아닐까. 이제는 ‘시민과학’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졌다. 시민과학의 관점에서 과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이들도 과학과 기술이 수행되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과 기술은 이제 인류 공동체의 삶을 결정 짓는 문화이자 ‘사회적 합의’의 산물로 우리의 삶 속에 공고히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개선의 가능성과 실패에 따른 위기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학의 가능성과 일련의 수행 과정이 열린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적 절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과학적 상상력’이 인류 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마 당장 임박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예상해 보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10년 가까운 트로이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트로이 왕국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 가운데 트로이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 놓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사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가져올 비극을 예언했던 인물인 카산드라가 있다. 트로이가 맞이한 비극은 트로이 왕국의 운명을 카산드라가 예언했지만, 그 누구도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왕국의 멸망에 대비할 기회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과학적 상상력은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인류의 운명을 예상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누구도 과학적 상상력이 예측하는 인류의 위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인류의 운명은 트로이 왕국처럼 되지 않을까. 지구 위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과학적 상상력은 카산드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과학적 상상력은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과학 활동에서의 민주적 절차임은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과학 활동으로 축적된 지식과 판단 체계가 주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곧바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곧 우리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과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탐구한 책이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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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51
로렌스 스턴 지음, 김정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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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죽마’를 찾아서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

(The Life and Opinions of Tristram Shandy, Gentlman)

 

로렌스 스턴 지음

김정희 옮김 [을유문화사] (2023)

 



올해는 책 읽는 속도가 더디다. 하지만 뜨거웠던 지난 여름 밤마다 아껴 읽었던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이하 《트리스트럼 섄디》)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로렌스 스턴의 소설은 아마도 올해 읽은 작품 가운데 3위 안에 들 것 같다.

 

“나는 불행해지게끔 잉태되고 태어난 사람이다.”(56)


“어르신들께 감히 말씀드리건대, 이 책은 다만 울화에 대항하고자 하는 글입니다.”(375)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저 이 모퉁이에서 저 모퉁이로 이리저리 변통하며 자리 바꾸기를 하는 게 아닐까?”(415)


“마음이 곧은 독자에게 탄원하노니, 나는 인간이 결국 짐승일 뿐이라는 가장 겸허한 신념에서 - 이 질문을 던졌다는 것을 믿어주기 바란다.”(790)

 


현실의 삶에선 사제이기도 했던 로렌스 스턴의 이 작품은,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서 보이는 원초적이고 보다 육체적인 호탕함이 다소 덜할지 몰라도 그 보다는 지적인 언어유희를 비롯한 은근하고 교묘한 장치들로 즐거움을 준다. 화자 트리스트럼이 길 위에서 보여주는 좌충우돌의 모습은 그가 소설 속의 여러 장면에서 언급하는 돈키호테의 모험과도 닮아 있었다.

 


이 작품이 1700년대에 나온 소설이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만큼 이 소설은 세련되고 징후적이다. 버지니아 울프나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모더니즘의 징후가 이미 보이는 까닭이다. 화자(아마도 영화 감독 우디 앨런처럼 끊임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사제가 아니었을까)는 끊임없이 옆길로 새고야 만다. 산만한 의식을 따르는 그의 글쓰기는 이따금 작품 속에도 개입하여 독자와 상호작용한다. 작품에 메타적인 접근법도 과감하게 시도한다.

 


화자는 본문에서 “글쓰기란, 그것을 제대로 관리했을 때, (내가 내 글이 그렇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당신도 알 것이다) 단지 대화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137)라고 말한다. 이런 장면은 마치 무성영화 시대에 스크린 옆에서 영상 속의 인물들을 여러 목소리로 연기하며 효과음까지 도맡았던 ‘변사’의 역할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처음에는 저자의 생몰연도를 여러 번 확인하며 읽었다. 정말 1700년대에 나온 소설이 맞을까 싶었던 것. 그렇지 않으면 다분히 20세기 초의 모더니즘적인 실험 소설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화자(트리스트럼)가 특정한 시각을 쓰는 대목이 두 번 나오는데(1759년 3월 26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 & 1761년 8월 10일), 이는 저자가 실제로 해당하는 장을 집필할 때의 시간이었다. 작품 속의 작품, 혹은 작품 위의 작품에서 장면을 바라보듯 제3자의 존재를 전제하는 듯하다. 형식적으로도 매우 실험적이다.

 


어쩌면 후대의 버지니아 울프가 이 겸허한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떠다니는 의식을 따라가 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혹은 스턴과 같은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성’의 대상을 지적이고 은근한 언어유희로 전환하는 스턴의 실험에 흥미를 느끼며, 구차하고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인간에 대해 긍정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물론 어느 한 작품이 수많은 작가의 작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후대의 작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은 주었을 법한 작품이라는 말이다. 이를 테면, 후대의 괴테와 니체는 비판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면서도 타자에 대한 연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지점을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보았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D.H. 로렌스는 라블레와 스턴의 작품을 통해 ‘생(生)’의 이면인 ‘성(性)’의 참모습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아니었을까, 혹은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보이는 동성애적 욕망의 노출을 보비 삼촌과 그의 하인이자 동지인 트럼 상병과의 친밀한 우정과 연대의 모습들에서 더 밀고 나아갈 수 있는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만큼 《트리스트럼 섄디》에는 이 모든 후대의 징후가 담겨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 눈길이 갔던 부분은, 등장인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죽마 놀이’다. 트럼 상병과 보비 삼촌이 보여주는 것은, 주인과 하인 관계를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 사이의 유대와 우정, 인간에 대한 관대함을 보여준다. 이런 덕목들은 함께 수행하는 죽마(hobby horse) 놀이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지금으로 치면 말도 안 되는 ‘밀덕’(밀리터리 덕후)인 셈인데, 이들의 일상은 사뭇 ‘진지한’ 유희와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신체의 상처와 심리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에게 ‘죽마’는 단순한 취미나 취향의 수준을 벗어난다. 트럼 상병과 보비 삼촌에게 ‘죽마’는 수행적 의식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오히려 ‘죽마’는 우리를 ‘살아있게’해주는 일상의 의식(ritual)이자 일용한 마음의 양식을 대표하지 않는가. 이들의 ‘죽마놀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우연이 가득한 인생에서 잠시나마 삶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해준다. 통제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또 누군가에겐 무익해보여도 각자가 통제 가능한 유희, 지극하고 순수한 즐거움을 되찾게 해주는 의식인 셈이다. 따라서 ‘죽마’는 개인을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시키는 소외의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18세기 소설에서 ‘개인’을 발견하는 뚜렷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트림 상병과 보비 삼촌처럼 각자의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세상을 관대하게 품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바로 이 죽마 놀이로부터 유래한다. 유희의 시간을 함께하는 이들은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계와 자연을 통제하고 우리의 손 안에 가두려 하는 동안, 우리의 ‘죽마’는 점점 더 우리의 손에서 빠져나가버린 것은 아닐까. 길지 않은 생애를 살면서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어본 순간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나는가. 애초에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언젠가 잃어버린 나의 ‘죽마’를 다시 찾아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을까? 너는 이 생애에 후회 없이 사랑해 보았는가, 라고.

 

 






#신사트리스트럼샌디의인생과생각이야기 #로렌스스턴 #김정희번역가 #을유문화사 #18세기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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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불행해지게끔 잉태되고 태어난 사람이다."
- P56

[2] "어르신들께 감히 말씀드리건대, 이 책은 다만 울화에 대항하고자 하는 글입니다. 웃음을 통해 횡격막이 보다 자주, 보다 격렬하게, 상승과 하강 운동을 하고, 늑간과 복부 근육이 맹렬히 진동하게 만듦으로써, 우리 신민들의 쓸개와 간, 췌장에서 담즙을 비롯한 쓰디쓴 액체들은 물론 그 액체에서 나오는 모든 적대적 감정도 십이지장으로 몰아내기 위해서 쓴 글입니다."
- P375

[3]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저 이 모퉁이에서 저 모퉁이로 이리저리 변통하며 자리 바꾸기를 하는 게 아닐까? - 이 슬픔에서 저 슬픔으로? - 한 가지 괴로움의 원천을 봉새화면! - 또 다른 괴로움의 문이 열리는 것 아닌가!" - P415

[4] "마음이 곧은 독자에게 탄원하노니, 나는 인간이 결국 짐승일 뿐이라는 가장 겸허한 신념에서 - 이 질문을 던졌다는 것을 믿어주기 바란다. 라블레가 세상에 뿌려 놓은 모든 기지를 내 것으로 만들어 준다 해도 존경스러운 불행의 여신이 계신 자리에서 내가 그렇게 어우리지 않는 농담을 흘리고 다닐 사람이 아니란 것도 믿어 주기 바란다."
- P790

[5] "하**님! 하고 어머니가 소리쳤다, 도대체 이게 모두 무슨 이야기지요? -
수탉과 황소 이야기지요하고 요릭이 말했다 - 그리고 내가 들어 본 그런 이야기 중에선 최상인데요."
- 마지막 문장 - P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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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우주리뷰상 수상작품집
김선경 외 지음 / 알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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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껏 읽고 쓰는 사람들이 여전히 어딘가에는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반갑네요. 응원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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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를 찾아서
하나 미쉘 지음, 이윤정 옮김 / 정은문고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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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성장에 미친 대한 민국의 모습을 서사로 보여주는 작업같아요. 희생자와 유가족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남게된 트라우마는 여전히 진행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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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이건 더 베스트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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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선보인 작품이 하나 뿐이지만 입문자들에겐 더 없이 좋은 첫 만남일수도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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