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이미지 알마 인코그니타
에르베 기베르 지음, 안보옥 옮김, 김현호 해설 / 알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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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베르와 바르트의 유령 이미지란?

- 유령 이미지


에르베 기베르 지음

안보옥 옮김 [알마] (2017)

 




재능이 넘치는 20대의 에르베 기베르의 사진에 관한 에세이 유령 이미지를 읽습니다. 다만 이 책은 젊고 잘생긴 저자의 표지 사진 이외에 사진 한 장 나오지 않는 에세이입니다. 책 뒤의 해설에 보면 이 책은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사진을 이야기한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또는 카메라 루시다)에 화답하는 책이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런지를 생각해보고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면,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밝은 방의 대척점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르트는 실존하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 온실 사진으로 자신의 사진론을 전개합니다. 사진이 제시하는 코드화된 정보인 스투디움과 사진의 요소가 관람자와 상호작용하여 그를 찌르듯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푼크툼의 관점에서 피사체 혹은 대상의 부재를 실감하고, 부재한 대상을 소환하는 사진 읽기로 이해합니다.



반면 유령 이미지는 사진을 찍는 행위는 이루어졌으나 필름이 없거나, 노출값 조정이나 카메라의 작동 오류로 인해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된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글쓰기로 밀고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기베르의 글쓰기는 바르트의 관점을 비틀기라는 표현도 이해가 됩니다.



또 바르트가 책에서 언급한 유령(spectrum)'과 기베르가 사용한유령 이미지를 견주어 봅니다. 여기에도 차이점이 보이는 데요, 바르트의 유령대상이 발산하는 환영적 이미지라고 말합니다. 이는 죽은 자의 귀환으로도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바르트 본인에게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되찾아주는 이미지로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곧 바르트의 유령은 실존했던 대상의 부재를 인증한다는 의미와 되찾기/부활과 맞닿아 있습니다.



반면 기베르의 유령은 대상의 실존 자체가 의문시됩니다. 실제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은 이미지이니까요. 그러므로 기베르의 유령이미지는 실존을 입증하고 인증하기가 아니라 그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드는 이미지라고 이해됩니다. 따라서 바르트의 유령이미지 개념에 또 다른 방식으로 비틀고 저항하기를 텍스트로 시도하는 작업인 것이죠.



이런 관점은 가족사진에 대한 기베르의 입장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런 사진은 실존했던 대상에 대한 추억을 불러오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동의 추억을 희미하게 만든다고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감한 글쓰기에서 한편으로는 재능 넘치는 20대의 저자에서 보이는 젊음의 패기와 약간의 치기마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어지는 파편적인 글에서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성적정체성을 펼쳐보이는 저자의 태도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용감하다라고 말하겠지만, 그는 이렇게 응답하죠.

 


그것은 최소한의 진정성입니다. 욕망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채 어떻게 사진에 대해서 말하기를 바라십니까? (...) 그것은 심지어 용기의 문제도 아닙니다(나는 투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글쓰기의 진실이란 점에서 정당한 겁니다.”(112)

 


이 선언적인 응답에 또한번 감탄합니다. 사진을 포함한 모든 예술 작업에는 자신에게 은폐없는 솔직함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다양한 정체성은 그 개별자의 존재 양식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자신을 그대로 신뢰하고 인정하는 태도에 감탄한 것이죠. 반대로 저는 사회적으로 얼마나 스스로를 은폐하고 다양한 페르소나로 연기하는 존재인지도 더 선명히 자각하는 독서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해지는 것은 어느 사진가가 자신에게 해준 조언에 주목해 봅니다.

 


당신과 아주 친근한 사람들, 부모님, 형제자매, 연인들 사진만 찍어봐요, 먼저 애정이 있어야 사진을 얻을 것입니다...”(124)


 

이 표현의 맥락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애정이 먼저라는 말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수 있을 테지요. 이 애정의 대상에는 자기 자신이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르시시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 자신의 행위로 도출한 결과물, 이미지 등에 대한 신뢰 역시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어머니 사진을 얻지 못했던 기베르에게는 바르트와는 분명 다른 사진에 대한 정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통념상 사진은 인화지에 드러난 결과물을 의미하지만, 기베르에게는 이 정의가 무의미하니까요. 기베르의 사진에는 인화지 이전의, 촬영자와 피사체 사이의 지극히 내밀한 교감과 기억과 더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정리해보면, 에르베 기베르가 사용한 유령 이미지는 촬영에 실패하여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에서 출발합니다. ‘사진이라는 우리의 통념에 존재하는 맹점을 음화(negative)의 방식으로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텍스트는 이미지의 절망”(21)이라고 언급했던 표현이 이제서 좀 더 이해가 됩니다. 기베르에게는 텍스트 자체가 이미지의 유령이었던 것이지요.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밝은 방이 새롭게 번역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보다 풍부한 주석과 함께요. 언젠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책 속으로]


[1] "그것은 최소한의 진정성입니다. 욕망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채 어떻게 사진에 대해서 말하기를 바라십니까? (...) 그것은 심지어 용기의 문제도 아닙니다(나는 투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글쓰기의 진실이란 점에서 정당한 겁니다."(112) - P112

[2] "다시 말하자면 이미지는 욕망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미지의 성적 특성을 없애는 것은 이미지를 이론으로 축소하는 일일 것입니다... "(113) - P113

[3] "당신과 아주 친근한 사람들, 부모님, 형제자매, 연인들 사진만 찍어봐요, 먼저 애정이 있어야 사진을 얻을 것입니다..."(124) - P124

[4] "검열된 사진은 나체 사진보다 더 에로틱하다, 포르노 사진이 에로틱한 사진이 되는 것이다."(136)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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