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에서의 한 달
히샴 마타르 지음, 신해경 옮김 / 열화당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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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부재의 계절에...

시에나에서의 한 달


히샴 마타르 지음

신해경 옮김 [열화당] (2024)



 

나는 경계를 넘어본 사람들에 무의식적으로 매료되곤 한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 히샴 마타르(Hisham Matar)는 리비아계 영국 작가로서, 정치적인 이유로 경계를 넘었던 경계인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는 군인이자 외교관/정치인으로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 정권의 반체제 인사였다. 가족의 이런 배경으로 저자가 영국에서 대학생이던 1990년의 어느 날, 망명 생활 중이었던 저자의 아버지가 납치되어 리비아로 압송된 후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19966월의 어느 날 카다피 독재 정권의 명령에 따라 1270명의 정치범이 처형당했을 때, 그의 아버지도 실종되었고, 이후 30여 년간 아버지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저자는 정치적인 이유로 국가의 경계를 넘었던 인물이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이중, 삼중의 경계를 넘은 인물이었음을 깨닫는다. 무슬림 국가인 리비아에서 기독교가 주를 이루는 국가 영국으로 경계를 넘은 것, 그러니까 같은 기원을 가졌음에도 서로 경쟁하고 배척했던 이슬람과 기독교의 경계를 넘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와 더불어 10세 때까지 쓰던 아랍어를 버리고 영어를 받아들여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저자의 배경은, 그가 이중, 삼중의 경계를 넘은 혼종의 인물임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거듭 읽게 된 이유는 어쩌면 저자의 이런 개인적인 배경에 공감하게 되어서인지 모르겠다.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군복무 시절 전역을 3주 남겨놓고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나이에 마주한 아버지의 기약 없는 죽음 이후 30년이 다 되어가고, 나는 그 때 이후로 아버지를 잃었다고 여긴다. 오늘은 우리에게도 특별한 날(43)이다. 누군가는 내가 아버지를 잃은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상실의 역사를 관통해왔을 테다. 이처럼 이 책은 저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상실을 겪은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시에나의 캄포 광장 한 가운데에 섰을 때, 아버지에 대한 상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푸블리코궁 앞의 광장에 높이 서 있는 탑 주위로 또렷하게 둥근 달이 떴다. 서늘하게 저물어가던 저녁, 깊은 물색을 띤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또 옷깃을 스치며 목에 스며드는 바람의 한기를 느꼈을 때, 내게도 한동안 무감해졌던 부재의 감각이 되살아났던 것 같다. 문득 모든 이는 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상실을 경험하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누구나 겪게 될 상실이지만, 누군가는 더 고통스럽게 경험하게 마련이다.

 

시에나에 가게 되면 저자처럼 시의 경계 부근에 있는 공동묘지를 가보고 싶었다. 묘지는 인간의 취약성과 덧없음을, 그리고 기억과 구원에 대한 갈망을 침묵의 소리로 증거 하는 장소인 까닭이다. 묘지는 나란 존재가 삶의 경계에서 먼지처럼 부유하는 존재일 뿐임을 자각하게 하는 장소다. 비석 사이에 존재하는 텅 비어있음의 감각을 기억해두고 싶었다.

 

이 책을 읽을 때 저자가 소개하는 시에나 화파의 프레스코화를 시에나에서 처음으로 직접 마주하면서 비로소 부성의 부재에 대한 감각이 환기되었나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저자에 더 공감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이유로 시에나 화파에 더 마음이 갔던 것일 테다.

 

중세의 끝무렵, 시에나 화파와 피렌체 화파는 일종의 경쟁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1348년에 시에나를 덮쳤던 흑사병은 300여 년간 이어진 시에나 화파의 종말을 결정적으로 앞당겼다. 반면 피렌체 화파는 살아남았고, 이들은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더욱 기반을 단단히 다지며 이어지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을 견인하고 꽃피웠다. 흑사병은 무심하고 매정할 정도의 판결을 내렸던 셈이다. 역사 앞에서 운명이 극명하게 나뉘었던 시에나 화파와 피렌체 화파. 그런 까닭에 나는 취약하고 단명했던 시에나 화파에 더 마음이 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간 시에나 화파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었다.

 

내가 시에나 화파의 운명에 이끌리는 것처럼, 우리가 예술작품에 끌리는 이유는 예술이 기억과 구원에 대한 갈망, 때로는 절망적 몸짓이 드러나는 출구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혹은 우리에게 예술이 누군가를 기억하고 애도하게 하여 비로소 위안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실종되었던 아버지의 자녀로서, 자신이묘지 없는 애도자였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시에나 화파에 그토록 매료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은 누군가를 기억하고 부재한 존재를 호명하며 상실한 자를 애도하는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나아가 예술은 결국 우리의 현재, 삶을 진득하게 감싸 안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아내와 함께 어느 시에나 화파의 그림 한 점을, 오랜 친구를 보러 가듯 보고 또 보러 가는 날들을 고대했다는 마지막 문장이 새삼 뭉클하게 다가왔다.






[책 속으로]

[1] "1990년, 내가 아직 런던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열아홉 살 때, 불가사의하게 십삼세기부터 십사, 십오세기에 걸쳐 활동한 시에나 화파에 매료되었다. 나는 그해에 아버지를 잃어버렸다."(12)

"나는 그림이 시간을 요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13)
- P12

[2] "장식을 삼간 외부와 장려한 내부, 겉에서 보이는 침착한 초연함과 안에서 보이는 극진한 보살핌과 사려 깊음, 열렬한 심장을 감춘 겸손하고 또 절제하는 얼굴의 장난이 시에나의 관습이자 그 도시가 즐겨 펼치는 마술이다."(19)

"시에나 사람들은 간단하게 ‘일 캄포(Il Campo, 들판)‘라 부른다. 이곳은 시에나가 제 속으로 뻗어 나가 닿은 곳, 시에나가 완전히 쏟아져 나온 곳이다. 하지만 또한 시에나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 광장은 끝이요 시작이며, 공공연하게 선포된, 두 흐름의 장소이다."(21) - P19

[3] "나는 이처럼 오랫동안, 내 생의 거의 절반 동안, 잠들고 깨는 일을 그녀와 나누고 있음에,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사랑받고,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런 건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감사다."(41) - P41

[4] "사랑과 예술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오직 책 속에서만, 아니면 그림 앞에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다른 이의 전망 속으로 들여질 수 있다." - P48

[5] "내 나침반은 이 도시에만, 이 도시의 꼬불꼬불한 길과 모퉁이, 이 도시의 책략과 결정, 이 도시의 취향과 의도에만 이끌려야 했다. 시에나는 내 나침반의 북극성이었다." - P70

[6] 한 무덤을 깊이 생각하는 것과 끝을 모르는 죽음의 식욕을 일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망자들의 숫자가 산 자들을 압도한다. 현재란 검은 천 가장자리에 두른 금색 테두리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도한가. 그런 생각이 우리 종족에 대한 더없는 열광과 음울한 자긍심과 함께 밀려왔다." - P76

[7] "자기 책들이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정신과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책들의 끈질긴 유효성이 특정한 사유와 생각의 양상들을 가능케 하거나 가능성을 높인다고 믿은 점에서, 몽테뉴는 옳았다." - P92

[8] "잠시 앉아서 새소리를 들으려고 눈에 띄지 않게 계속을 훤히 볼 수 있는 비밀 벤치 쪽으로 향하면서 그 가족이 묘지 없는 애도자인 나를 보지 못했기를 빌었다. 그제야 나는 시에나에 그림을 보러 온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홀로 애도하러, 새로운 지형을 살피며 여기에서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 알아내러 온 것이었다."
- P93

[9] "두 아브라함 신앙 중 어느 하나의 안에서 태어난다는 것, 한 문화에서 태어나 다른 문화, 이 경우엔 지금껏 너무나 오래 다른 아브라함 신앙과의 대결에 몰두해 온 다른 문화 안에서 성년에 이른다는 것은, 역사의 요점이 어느 한쪽이 옳다는 걸, 어느 한쪽이 신을 더 사랑하거나 더 참되거나 더 인간적이라는 걸 증명하는 데 있는 양, 영성이라는 것이 마음의 개인적 영역이 아니라 미소 짓는 신이 메달을 건네줄 결승전까지 가는 경주인 양, 편협한 구별 짓기와 비난과 사악한 동기를 가진 비교와 차별과 공포의 어휘들이 가지는 논리에 너무 밀접하게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피나코테카에 선 내게는 이 모든 것이 요점을 빗나간 듯이 보였다." - P111

[10] "흑사병은 유럽에 극심한 종파주의와 사회 분열을 불러일으켰다. (...) 역병은 범죄자 집단에게 득세할 기회를 주었다. 시에나에서 그들은 빈집을 털고 살아 있는 이들의 재산을 강탈했다." - P123

[11] "상상력과 가치 구조 자체가 변했다. 알베르 카뮈가 그 역병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그래서였다. (...) 그 인간 본성을 폭로하는 역병의 힘을 믿었다. 카뮈가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끌렸던 것이 유토피아였다." - P127

[12] "상상력은 세상의 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는 ‘죽음’이 새겨지지 않는 생각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미켈란젤로는 조르조 바사리에게 보낸 편지에 그렇게 썼다."

"많은 예술가에게 죽음의 광경은 통과 의례이자 인간 생명의 치명적 취약성에 대한 맹렬한 교육이며 영혼의 덧없는 일시성을 들여다보는 창문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 P128

[13] "시에나는 너무 다채로우면서도 한결같고 너무 작으면서도 무진장해서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하나의 알레고리 또는 마음의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스쳐 가는 모든 영향력과 펼쳐지는 모든 날과 더불어 변화하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대상이기에, 소박하고 특별하지만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는, 도시로서의 자아였다." - P133

[14] "사랑해 마지않는 이의 손을 맞잡고 그저 그 눈을 오랫동안, 아니 아마도 영원히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방법이라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 P154

[15] "그 그림은 우리가 제일 바라는 것, 낙원보다 더 바라는 것이 알아봐지는 것임을 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아무리 형태가 변하고 바뀌어도, 우리의 어떤 것이 우리가 그토록 오래 사랑했던 이들에게 지각될 수 있도록 견디어 남는 것 말이다. 아마도 예술사 전체가 이런 야심의 전개이리라. 모든 책, 그림, 교향곡이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낱낱이 알려 주려는 하나의 시도인 것이다." - P156

[16] "우리는 그 그림을 보러 갔고, 이후로 그 도시에 머무른 석 달 동안 거의 매주 그 그림을 다시 보러 갔다. 우리는 오래된 친구를 보러 가듯이 그 그림을 보러 가는 날들을 고대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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