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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멍키 - 혼돈의 시대, 어떻게 기회를 낚아챌 것인가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지음, 문수민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카오스 멍키》
(원제: Chaos
Monkeys)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지음 | 문수민 옮김 | 비즈페이퍼
강아지 이름을 닮은 <카오스 멍키>의 저자 마르티네즈는 IT벤처 업계의 ‘개자식’이라 불릴만 했다. 물론 ‘좋은’이란 수식어를 앞에 붙여줄만하다. 책을 읽기시작하자마자 솔직담백하게 드러나는 저자의 저돌적이고 ‘돌아이’적 기질은 저자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페인계 이민자의 자손으로 미국 서부의 명문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마친 마르티네즈는 말하자면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돈키호테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지적이면서도, 솔직하다못해 (책의 지면을 통해) 여자를 밝히고, 그럼에도 스스로를 사기꾼이라고 묘사하는 이 사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두툼한 책이지만 시간이 좀 걸린다뿐이지 지루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스페인계 미국인 돈키호테의 좌충우돌 생존기(?)는 처음부터 책을 덮을 때까지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학위를 받자마자 미국의 많은 명문대 물리학과 졸업생들처럼 동부의 뉴욕에 있는 월가로가서 ‘퀀트’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 금융자본주의의 핵심인 월가의, 그것도 세계적인 금융회사로 잘 알려진 골드만삭스에서 금융자본주의의 실상을 목도하고, 이 업계를 떠날 결심을 하게된 것이 마르티네즈의 좌충우돌 생존기의 서막이었다. 미국 동부의 금융계에서 저자가 일할 때 월가가 하는 일을 매우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상대가 차도둑이고 차를 훔칠 계획을 짜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그들은 차를 훔치기 전에 미리 보험에 들어둠으로써,
차도 훔치고 보험금도 타내 양쪽으로 이득을 보려할 수도 있다. 월가가 그렇게 한다.”(37면)
이 책에서 저자는 실제 인물(예를 들어 투자자, 대기업 CEO, 벤처업계 동료)들의 실명과 함께 이들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가감없이, 그리고 돈키호테와 같이 저돌적으로 던지고 있고, 이러한 저자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쓰기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호감을 끌어들이는 점이 분명 있다. 아마도 투자자들과 수도 없는 미팅과 설득(다시 말하면 구워삶기)으로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들이는 저자의 수완과 경지를 엿볼 수도 있다. 물론 물리학 박사에다 최고의 금융회사, 그리고 최첨단의 IT벤처업계, 그리고 트위터와 페이즈북과 같은 IT계의 공룡회사를 종횡무진하며 일해온 저자의 화려한 경력으로 볼 때, 교활하기만한 인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솔직함이 투자자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주목을 더욱 받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선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미국 첨단 기업의 생태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저자의 눈에 비친 시각이나마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해본다는 것은 이 두툼한 책이 전달해주는 미덕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요즈음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주목받는 화두는 단연코 ‘4차 산업혁명’일 것이다. 온 나라가 앞으로 생존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형국이다. 초등학교 수준의 교실에서는 놀이를 통한 프로그램 코딩의 기초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에 요긴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프로그램 코딩 조기교육’을 ‘당연히’ 시켜야한다고 믿기 시작한 듯 하다. 그러나 이러한 ‘호들갑’의 이면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분명 아주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이미 국내의 언론에서는 35년도 이전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를 촉구하는 기사가 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제와서야 이런 전국적인 호들갑은 과연 무엇때문이었을까.
저자가 지나가듯 전달하는 통찰 중에는 귀기울여 들어볼만 한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4차 혁명의 물결에 잘대비하기 위한 이런 대한민국의 호들갑은 분명 마르티네즈의 심각한 비판을 받게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르티네즈에 따르면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기술의 주체가 ‘인간’에서 ‘컴퓨터’로 이동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깊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리슨의 말을 다시 여기에 언급하자면, 미래의 일자리는 컴퓨터에게 일을 지시하는 사람과 컴퓨터가 지시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라고 한 말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격변을 예고하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앞으로는 모든 것의 주체가 인간에서 컴퓨터로 이동하게 되고,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막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적인 특성이 되어버리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특히 저자가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광고 타기팅’과 관련한 기술을 언급할 때 새롭게 알게된 사실들 때문이었다. 즉 내가 장바구니를 담는 나의 행위가 실시간으로 추적당하고, 이 기록이 읽히면서 이것이 내가 온라인 상에서 어디를 가든 나를 따라다니고, 나의 취향 및 행동 패턴을 반영한 소비활동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가 시간을 두고 점점 쌓여간다면, 나를 구성하는 무의식마저 읽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물론 이제는 인터넷에서 나의 구매 행위나 각종 활동들이 계속 읽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이것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있다는 점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카오스 멍키>를 읽으면서 그 전에는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온라인 생태계와 첨단 IT업계에서 주도하는 기술개발의 방향이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설정되어가는지를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두꺼운 책을 읽어나갈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마르티네즈의 돌직구 같은 솔직한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입담과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실제 인물들과의 좌충우돌 비하인드 스토리가 특히 흥미를 잃지않도록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여러 가지 역경을 겪는 모습은 책의 제목대로 (다중적 의미에서) 혼돈 속의 ‘카오스 멍키’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에 더하여 각 장의 시작에서 저자가 인용해두는 고전의 진지한 문구들은 저자가 겪게되는 사건들과 관련하여 자신을 희화하하는 보다 인간적인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점은 분명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했던 폭넓은 독서에 힘입은바 클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이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저자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경제 경영서를 잘 읽지 않았던 나도 이 책을 꽤나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 ‘이거면 된 것 아닌가?’
(44면)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리슨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미래에는 두 부류의 일자리가 존재할 것이다. 컴퓨터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과, 컴퓨터가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월가는 시작일 뿐이었다. (...) 컴퓨터가 작업흐름을 이끌고, 인간이 빈틈을 메우게 된 것이다. 우버의 운전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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