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책 - 세미나 시작부터 발제문 쓰기까지, 인문학공부 함께하기
정승연 지음 / 봄날의박씨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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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책

정승연 지음 | [봄날의박씨]



 

쉘 위 공부? - 인문학 공부를 위한 세미나 지침


 

필사’, ‘발제란 표현을 알게 된지 몇 년이 되지 않았다. 독서모임이나 세미나 모임에 참여도 해보고 나서야 나는 이 용어를 접하게 된 셈인데,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세미나책을 읽기 직전까지도 발제의 개념을 제대로 몰랐다. 1년에 3-4권 정도 읽으면 이미 포만감을 느꼈을 정도로 책읽기를 힘들어 했던 내가 책 읽기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공부를 위한 책읽기는 혼자 못할 이유도 없지만 세미나를 통한 공부는 네트워크가 함께하는 공부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미나는 외부를 이어주어, 지금까지의 나를 벗어나게 해주는 접속구이기도 하다.


책 읽기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방법론적인 책을 여러 권 본 기억이 있다. 원래 매뉴얼 같은 안내서를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1만권 읽기와 같은 제목을 단 책들의 저자는 과연 책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했었다. 속독과 다독의 비결을 알려주는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대부분의 책에서 소개해주는 책읽기의 방법론은 인문학 공부에 크게 도움이 안 되는 독서법이었다. 어느 자기계발서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이 방법은 인문학 서적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이 경우는 저자가 솔직한 경우였다. 내가 관심 있는 인문학 공부의 책읽기, 공부하기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책들을 몇 권 읽고 내린 결론은 내 관심사를 파악해서 내 속도대로 읽어나가자는 것이었다.


세미나책은 나의 경험에 비추어 크게 기대하고 읽어 나가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저자의 인문학 세미나 경험과 공부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많이 던져주어서 만족스러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해서야 비로소 처음 인문학 공부를 시도했다. 이 때 처음 경험해보았던 것이 세미나식 공부였다. 다만 나를 괴롭혔던 것은 다소 기계적인 측면이 있는 내용 요약하기가 아니라 발제문 만들기였다.


내가 관심있게 읽은 부분을 중심으로 간단히 정리해보자. 저자에 따르면, 발제란 질문을 던질만한 문제를 찾는 일’(140)이다. 따라서 발제자는 세미나에서 고민할 문제를 만들어오되, 형식적으로는 이 문제를 만들기까지 고민했던 전후 맥락을 기록’(141)한다. 이것이 발제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과연 발제문이 무엇인가하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전에 내가 만들어간 발제문은 마감에 급급하여 끄적거린 요약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정작 중요한 질문을 곁가지취급을 했고, 이 질문은 내용 이해를 위한 요약과도 따로 놀았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에 우왕좌왕하며 고민하던 경험이 전혀 쓸모없지는 않았다는데 위안을 삼는다.


발제와 발제문 만들기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고, 나 스스로 발제란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었다. 저자 역시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세미나 공부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정리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밖에 이 책은 세미나 구성과 읽기, 발제문과 에세이 쓰기, 말하기와 같은 공부의 뼈대가 되는 방법론을 이야기하되, 다른 방법론 책과 달리 인문학 공부란 무언인가라는 저자의 공부론을 접할 수 있어서, 이 부분이 좋았다. 이를테면 인문학 공부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의식적 차원의 공부’(6)이며, 그런 의미에서 세미나/공부란 말로 바뀐 내 지식과 정서를 타자와 만나게 하는 장소’(161)이면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발굴해 내는 작업’(202)이라는 견해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공부는 어떠해야 할까 생각해본다. 저자가 학창시절 참여했던 운동권 공부얻은 지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공부였다면, 이 책의 (인문학) 공부는 나를 바꾸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언급도 인상 깊다. 저자는 공부의 주제로 삼을 만한 것이 마음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87)이라고 말한다. 어떤 책을 읽을 때 납득이 가지 않거나 생경하게 다가올 때,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어야 내 삶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고 전한다. 그러므로 내가 품고 있던 문제, 내가 결핍감을 느끼는 지점,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문일 테다. ‘나의 공부역시 이 지점을 향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고미숙 작가의 어느 글에서 공부’(工夫)는 중국 무술 쿵후’(功夫)와 발음이 같다는 언급을 읽은 기억이 난다. ‘쿵후는 공부의 ’()에 힘쓰기()가 더 들어간 셈이니, 몸을 중심으로 익히는 공부라고 볼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선인들의 공부(工夫)는 단순히 지식을 머리에 넣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익히고 숙달하는 과정을 전제한다. 말하자면 몸과 머리에 역사를 담고 쌓아가는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들어온 지식이 내 안에서 겉돌지 않고, 나의 삶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야 공부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부는 인문학 열풍의 정체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공부라고 진단한다. 이를 나의 말로 표현하자면, ‘인문학 열풍의 원인은 지식이 스펙 쌓기처럼 물신화되어 버린데 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뉴스를 보면 경제력뿐만 아니라 지식을 가진 이가 경쟁력을 가진 존재가 되고, 이것이 하나의 권력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工夫)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은 의미심장하다. 나의 공부가 어떠해야하는지를 묻는 일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점검해야할 물음이 되어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미나책은 세미나를 통한 인문학 공부의 지침을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공부란 무언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은 많은 책을 읽기 위한 테크닉과 같은 일방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시각에 충분히 보완이 될 만한 견해와 시각을 담고 있다. 이제 내 삶을 들여다보고 나를 바꾸는 공부를 할 때다. 쉘 위 공부?

 

 




[1] "(인문학 공부는) 좀 더 의식적인 차원의 공부입니다." (6)

"인문학 공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른 관점’의 획득입니다. (...) 그것은 곧 ‘자기 갱신’이기도 합니다." (20)

"(인문학 공부를 통해) 그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에 바뀌는 것은 나의 일상이고, 일상이 바뀌면 ‘욕망’, 그러니까 원하는 게 바뀝니다." (23)

[2] "‘마음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피해서는 안 되는 ‘공부’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파고들어야 내 삶에 무언가 남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87)

[3] "발제문은 무엇일까요? 그 시간에 고민한 ‘문제’와 발제자가 그 ‘문제’를 만들기까지 고민했던 전후 맥락을 기록한 글입니다." (141)

"세미나에 있어서 발제문은 ‘읽기’와 ‘말하기’ 사이에서 그 둘을 이어 주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도 납득 가능한 설명을 붙여 주어야 합니다." (142)

[4] "세미나는 말로 바뀐 내 지식과 정서를 타자와 만나게 하는 장소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내 말의 한계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한계를 봅니다. 그리고 잘만 한다면 내 존재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로 변환시킬 수도 있습니다." (161)

[5] "텍스트에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이 잠재되어 있는데, ‘읽기’란, ‘세미나’란, ‘공부’란 바로 그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을 발굴해 내는 작업인 것입니다." (202)

[6] "공부는 내 인생과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 자신과 함께 공진화해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매번 새롭게 주사위를 던져 보는 것뿐입니다." (205)

[7] "‘공부로 인생역전’ 한다는 건 공부를 발판 삼아 출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인생의 성질을 바꾸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어떻습니까? 공부, 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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