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레이첼 카슨 외 지음, 스튜어트 케스텐바움 엮음,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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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품은 관계성을 바라보기

-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2022)


(원제: Visualizing Nature)

레이철 카슨 외 19명 지음 |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우리는 자연이라는 용어에 친숙하다. 익숙해서 잘 알고 있다고 믿기 쉽다. 하지만 자연이 뭐야?’ 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는 여러 사상가, 지식인들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그 중 레이철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를 보고 잠시 읽기를 멈추었다. 레이철 카슨이 가장 좋아하는 자연의 정의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25)라는 표현이었는데, 이제 행성 지구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자연은 명료하게 정의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무언가로 다가온다. 실체가 있다고 믿어지지만 또한 어떤 대상을 명확히 지시하기 어려운 무엇. 영어 단어 nature가 품고 있는 여러 의미처럼, 존재물의 성질이나 본성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닐봉지나 통조림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 마리아나 해구에서 발견되고, 미세플라스틱이나 환경 호르몬이 알라스카의 이누이트 족이나 북극곰 체내에 가득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선뜻 레이철 카슨이 말하는 자연의 정의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는 DDT와 같은 살충제의 폐해를 경고하는데 큰 역할을 한 장본인이었지만, 태평양 한 가운데에 한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거대한 쓰레기섬 GPGP와 같은 풍경이나 미세플라스틱의 폐해를 알기 전에 사망했을 터이므로 이 자연의 정의를 고수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반면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를 다시 뜯어보면 자연이란 실체와 인간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이 바탕이 된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정확한 용어를 찾긴 어렵겠지만, 카슨의 자연은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미개척지로서의 야생(wilderness)’과 더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혹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행성 지구 위의 장소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카슨의 자연과 달리 이제 우리는 자연의 다른 정의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서 처음 만난 글에서 잠시 머뭇거린 이유는 내가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물음을 갖고 나는 계속 여러 저자들의 에세이를 읽어나가게 되었다.

 


이 책은 시인이나 작가, 저널리스트, 조경학자, 생물학자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저자들이 자연을 주제로 쓴 짧은 에세이를 담고 있다. 숲이나 늪지에서, 바다 속에서, 나무를 쓰다듬으며 바라보는 자연에 대한 단상이 모여 있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의 글이지만 이들에게서 결이 맞는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이들이 모두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말을 걸 때, 이들은 이에 귀를 기울이고 여기에 화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엮은이의 말에 따르면, 이 저자들은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에 담겨 있는 주제들을 숙고하고, 오늘날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머슨은 당대에 마거릿 풀러,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소통하며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사상가다. 따라서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의 저자들은 한편으로 에머슨의 후배 사상가라고 이해해도 되겠다.


 

레이철 카슨이 언급한 자연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다른 저자들의 글을 읽어보니 자연이란 어쩌면 관계성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자연이란 관계성을 품은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싶다. 편집자로 오래 일했던 아키코 부시는 기억이라는 지리라는 제목의 글에서 장소와 상호작용하는 존재(인간)의 기억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연을 파악하려는 활동으로서 디지털 지도를 만드는 우리의 모습과 시간을 두고 기억에 새겨진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반세기 전에는 목초지였던 숲을, 지난 6월까지는 연못이었던 초원을, 한때 단풍나무가 서있었던 움푹 팬 땅을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사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습성이 뿌리박혀 있다.”(112)


 

저자는 불과 한 인간의 일생이 지나는 시간 동안 변해버린 숲의 모습, 그리고 몇 개월 사이에 인간의 영향으로 변해버린 땅, 장소를 바라보고 성찰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린 자연의 장소는 바로 인간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가 아닌가. 만약 카슨이 인용한 자연의 정의에 따르면 인간의 활동으로 변해버린 장소는 자연의 지위를 잃은 것일까. 인간이 행성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긴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그러므로 인간에 의해 변해버린 지구의 모습,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장소, 그리고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된 공간 역시 자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관계성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보면 어떤 환경이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행성 지구가 갖추게 된 모습은 결국 또 하나의 자연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제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아마존 밀림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문명 속에서 살게 된 인간에게 도시는 또 하나의 자연이 된 셈이 아닌가. 관계성을 염두에 둘 때, 콘크리트에 덮인 도시가 현대인들에게는 새로운 자연이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인간과 도시의 새로운 공진화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의 관점에서 읽다보니, 진 바우어의 글에도 주목해본다. 그는 여러 책의 저자이면서 먹거리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글의 서두에서 그는 거리의 자동차 범퍼 스티커 문구 하나를 인용한다. “인간은 지상의 유일한 종이 아니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163) 바우어에 따르면, 이 말은 인간의 오만함, 인간이 자연에 끼친 해악을 암시하고 강조한다. 인간으로서의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경고하면서, 특히 먹거리에 관심을 두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한다. 육식 보단 채식을 함으로써 건강과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연을 존중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가 언급하는 인류세의 특징 중 인상적인 표현은 인간이 닭 뼈가 수북하게 박힌 지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악영향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먹거리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시점에서 일흔일곱이 된 저자 월리스 코프먼의 에세이가 기억난다. 삶은 삶으로 이어진다는 글에서 그는 딸에게 자신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바람을 전한다.


 

일흔일곱 해를 산 지금, 나의 마지막 소망은 소박한 관에 담겨 땅에 묻히고 내 위에서 검은 호두나 도토리가 아래로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는 것인데, 딸이 그 소망을 이루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부활하여 세상의 영주자가 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상태일 것이다.”(174)


 

월리스 코프먼의 이 바람 역시 생명이 또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자연 속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성찰이 아닌가. 나 역시 나의 마지막 모습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땅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학교에서 자연에 대해서 배우지 않아도 자연과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혹은 태어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저자들의 글들을 보면 각자 자신의 배경에 따라 자연과의 관계를 숙고하고 자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visualizing nature'. 글로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했던 시도가 아니었을까싶다. 각자가 경험한 자연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독자에서 제시하는 활동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구도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명의 저자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이들 모두 자연이란 실체에 대해 경이로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에세이들은 현대인이 자연과의 대화가 중단되거나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잃은 모습을 일깨워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자연을 보여주려는행위는 인간이 자연과의 대화를 다시 이어가고자 하는 시도이면서 자연과의 우주적 합일을 바라는 주술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길은 자연에 대한 경이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에 있던 한 문장으로 마무리해보려 한다. 이 문장이 이 책의 정신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일이다.”(13)

 




[책 속으로]

[1]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이다."(13)
-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Nature>, 제7장 ‘정신‘에서 재인용한 문장

[2] "이 책에는 2차림에서, 사막에서, 늪지에서, 산호초에서, 수백 년을 사는 나무들에서, 저지Jersey해안에 부서지는 파도에서 온 소식들이 담겨 있다. 그건 아마도 아직 세상에 조화로움이 존재한다는 소식일 것이다."(19)

[3] "제가 좋아하는 자연에 관한 정의는, ‘자연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입니다."(25)
- 레이철 카슨, 「자연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에서 재인용한 ‘자연’의 정의.

[4] "브리슬콘소나무는 가능성의 가장자리에서 산다. 그 뒤틀린 나무들은 경게에 선 보초들이다."(63)

"브리슬콘소나무는 ‘긴 시간’을 산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틀린 말인지도 모른다. 이 나무들은 긴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을 산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만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66)
- 데이비스 해스컬, 「로키산의 노장들, 브리스론소나무를 찾아서」에서 인용.

[5] "나는 솔방울이나 벌보다 위대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와 운명 사이의 문제다. 나를 필요로 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으면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환영해주는 세계에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의 완벽한 본보기다."(73)
- 후안 마이클 포터 2세, 「자연의 무심함 속에 사는 영광」에서 인용.

[6] "나는 반세기 전에는 목초지였던 숲을, 지난 6월까지는 연못이었던 초원을, 한때 단풍나무가 서 있었던 움푹 팬 땅을 생각한다. 우리 인간에겐 사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습성이 뿌리박혀 있다."(112)
- 아키코 부시, 「기억이라는 지리」에서 인용.

[7] "수중 세계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하리라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요란하다. 산호들이 펑펑, 비늘돔이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낸다."(131)

"나는 단편적으로만 체험할 수 있는 이 림보에 계속 머물 수 있는 암초상어가 부럽다."(133)
- 폴 베넷, 「산호초가 부르는 더 깊은 곳으로, 프리다이빙!」에서 인용.

[8] "자동차 범퍼 스티커 문구 중엔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은 지상의 유일한 종이 아니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재치 있는 말은 우리 종의 오만이 다른 동물들과 자연,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심각한 해악을 끼쳐왔는지를 강조한다."(163)

"이제 과학자들은 우리가 인류세를 살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지질시대는 인간의 지배, 멸종, 플라스틱과 닭 뼈가 박힌 화석 기록이라는 특징을 지니게 될 것이다."(164)
- 진 바우어, 「우리는 본래 농업 인류였다」에서 인용.

[9] "나의 묘비명:
여기 잠든 남자/ 그의 삶은 길었고/ 의지는 약했고/ 모은 튼튼했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망은/ 생각을 키우고 말(언)을 수확하며/
세상의 경이를 키우는 것./ 이제 그는 위에 있는 나무를 키운다."(174)
- 월리스 코프먼, 「삶은 삶으로 이어진다」에서 언급한 자신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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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11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건 좀 딴 얘긴데, 초란공님의 글은 글자가 커서 좋습니다.ㅋㅋ

초란공 2022-07-11 20:3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이젠 글자가 커야 답답하지 않더라고요 ㅋㅋ^^;;

페크pek0501 2022-07-23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연은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데 자연이 개발이다, 뭐다 해서 그 영역이 좁아지고 있는 게 문제예요.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