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Roots》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 지음 |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우리 모두는 현재의 역사를 미래에 전하는 그리오다’
인종 차별에 대항하여 흑인 인권 운동에 헌신했던 맬컴X가 자신의 자서전을 공동 집필하자고 제안했던 이가 있었다. 이 남자는 1950년대 말까지 20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며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글을 기고하곤 했던 군인 겸 아마추어 작가 알렉스 헤일리였다. 37세에 전역 한 다음 흑인 작가가 드물던 시절에 글 쓰는 일을 전업으로 새 출발을 했다. 헤일리가 《맬컴X 자서전》의 집필에 참여하면서 더욱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에게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안겨준 계기는 이 작업을 마무리한 후 10년이 지나서 찾아왔다. 바로 오늘 소개할 장편소설 《뿌리 Roots》다. 이 작품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저자의 외가 7대에 걸친 가문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인물들의 행동과 대화는 상상력에 의존했지만, 인물들의 기본적인 행적은 모두 면밀한 자료 조사에 바탕을 두었다. 이 책을 꿰뚫는 현실은 인종차별의 역사다. 보다 구체적으로 흑인 노예제라는 속박 속에서 살아남아 자유를 찾고자 했던 흑인 가족의 묵직한 역사를 이야기한다.
인류의 부조리한 역사 가운데 흑인 노예제에 관한 역사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서아프리카 감비아 강가에 살던 무슬림 부족의 한 흑인에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에서, 인종차별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보다는 작품의 배경에 주목해보려고 한다. 이 소설은 자신의 선조가 어떤 부족이었는지 밝혀내고 싶었던 전기 작가의 결심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위한 단서는 저자가 어린 시절, 여러 가족들로부터 들었던 아프리카 단어 몇 가지가 전부였다. 그는 이 단어들의 음성학적 특성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 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또 미국·유럽·아프리카의 3개 대륙에 산재해 있던 57군데의 문서 보관소를 12년 간 찾아다니며 자료를 읽었다. 한 가문의 도도한 역사가 담긴 《뿌리》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알렉스 헤일리는 자료를 수집하며 세대를 거슬러 추적하는 동안 미국의 역사를 온전히 관통한다. 이 작품의 첫 주인공 ‘쿤타 킨테’(저자의 7대 조상)는 1750년 봄에 맏아들로 태어났다. 쿤타는 부족의 문화를 배우고 성인이 되는 과정을 거친 후 17세가 된 어느 날, 숲 속에서 투봅(백인 노예 사냥꾼)에게 공격을 받아 납치되었다. 그가 139명의 다른 흑인들과 노예선에 감금된 체 아프리카를 떠난 해는 미국이 독립선언을 하기도전인 1767년 이었다. 그는 좁고 어두운 노예선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80여 일 간 자신이 머문 자리에 그대로 대소변을 누면서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불결함과 악취, 백인들의 폭행을 견디다 못한 흑인 42명은 바다를 건너는 도중에 사망하여 바다에 버려졌다. 자신의 대소변으로 범벅이 된 98명의 흑인들은 마침내 살아남아 미국의 메릴랜드 주 애나폴리스에 도착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쿤타 킨테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저자가 조각 모음 하듯 여러 문서 보관소에서 조상의 흔적을 찾아내었을 때, 얼마나 큰 흥분을 느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충격은 저자가 서아프리카의 벽지에서 ‘그리오(Griot)’를 만났을 때 찾아왔다. 그리오는 서아프리카 지역의 구비 전승자, 역사 구송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오로지 입과 귀를 통해서 왕국과 부족의 과거를 기억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던 이들이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만난 이 노인의 입에서 저자의 조상 쿤타 킨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책을 읽는 나에게도 이 장면은 엄청난 전율로 다가왔다.
그리오가 헤일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쿤타 킨테의 집안이 아프리카 세네갈 지역의 감비아에서 ‘오래되고 잘 알려진 집안’이었으며, 200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오의 입을 통해 7대 조상 중 한 개인의 역사가 아프리카 벽지에서 기억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수많은 책 속에 인류의 역사가 기록되고 저장되고 있지만, 정작 내가 속한 집안의 역사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 기껏해야 조부모에 대해 들었던 몇 가지 사실이 고작이다. 헤일리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집안에서 내려온 이야기들이었고, 무엇보다 7대 조 할아버지 쿤타 킨테가 자녀에게 들려주었던 아프리카 단어 몇 개 때문이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몇 가지 단서가 200년의 세월 속에서 살아남았다. 부모의 입에서 자녀에게 전해지고 다시 그 자녀가 부모가 되어 후손에게 기억되었고, 역사가 이어졌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곧 공동체의 기억이자 역사라는 사실을 이 책보다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소설이 있을까 싶다.
《뿌리》를 읽는 동안 내내 숨이 막힐 듯한 노예제의 속박 아래서 위태롭게 살아왔지만 존엄을 잃지 않았던 인간의 역사를 접했다. 이 책에는 흑인 가족들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휘청거리면서도 가족을 이루며, 고난 속에서도 자유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견뎌온 이들의 서사가 보존되어 있다. 처음 읽을 때 한동안 조금 지루한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까지 읽는 이들에게는 그만큼의 감동과 전율로 충분히 보상을 해주는 작품이다.
“나 자신의 조상들에 관한 책이라면, 자동적으로 모든 아프리카 후손들의 상징적인 일대기가 될 터였으니 - 그들은 모두가 예외 없이, 아프리카의 어느 흑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어떤 사람, 납치를 당해서 쇠사슬에 묶인 채 어느 노예선에 실려 갔을 바다를 건너 항해했으며, 몇몇 농장을 전전하고, 그 때부터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계속했을 쿤타와 같은 어떤 사람의 씨앗들이기 때문이었다.”(813)
본문에 나오는 작가의 말이다. 한 개인의 가족에 관한 역사는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이야기되고 이것이 각자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것이 작은 공동체가 공감할 수 있는 집단의 기억이 되었다. 저자가 복원한 역사는 소수였지만 권력을 차지한 승자의 시각에서 쓰였던 역사가 아니었다. 그가 바로잡은 역사는 패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자유를 얻고자 분투했던 한 가문의 역사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흑인들의 보편적인 역사가 되었다. 헤일리는 청년 시절 글을 써보기로 하면서 자신의 첫 글이 팔리기 까지 8년이 걸렸다고 언급했다. 잡지사와 출판사로부터 ‘수백 통의 거절 통지서를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도록 해준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저자 가족들이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가족의 역사를 들려주던 이야기의 힘이라고 믿는다. 잠재되어 있던 무의식과 같은 충동, 선조의 역사가 기억되고 이야기되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저자에게 버팀목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역사 전달자, 그리오의 역할에 다시 주목해본다. 헤일리의 선조는 자녀가 태어날 때마다 쿤타 킨테가 어디서 왔고,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특정 사물이 만딩카어로 무엇이라고 하는지 등을 되풀이하여 이야기해주었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친척들 모두 각자가 가문의 역사를 기억하고 끊임없이 이야기해온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각자가 나름대로의 ‘그리오’였던 것이다. 공동체의 기억은 이 그리오들을 통해서 미래로 전해질 수 있었다. 나는 조부모님과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족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내겐 항상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뿌리》를 읽으면서 그 아쉬움을 더욱 느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들로부터 당신에 대한 이야기와 앞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는 특히 세대 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개개인이 고립되어가는 요즈음 더욱 절실한 가족의 양식이 아닐까한다, 나의 ‘뿌리’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가족과 타인에 대한 공감과 공동체의 유대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아프리카 속담 혹은 격언이라며 ‘노인이 사망하면 한 채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고 하는 표현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집에서 《뿌리》 의 원서를 발견(?)하여 여기에 실린 ‘감사의 글’에서 이런 표현을 만났다. “When a griot dies, it is as if a library has burned to the ground.” 부족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한 명의 그리오가 세상을 떠나면 마치 도서관과도 같은 거대한 앎의 원천, 지혜의 보고가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아프리카 속담의 ‘노인’은 무엇보다도 집단의 역사와 지혜를 지닌 그리오를 가리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로 알려진 호메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그리오’였던 셈이다. 또한 호메로스가 맹인으로 알려져 있는 것처럼, 그는 입과 귀로 당대 세계의 진실을 기억하고 전달했던 그리오, 당대 역사의 목격자로 볼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항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헤일리의 《뿌리》에서 또 다른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호메로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오디세우스 고향과 헤일리의 고향이 ‘이타카’라는 점이었다. 오디세우스의 고향은 그리스 서부에 위치한 ‘이타카’라는 섬이다. 반면 헤일리의 고향은 미국 뉴욕 주의 이타카라는 곳(아버지가 다녔던 코넬 대학과 어머니가 다녔던 이타카 음악대학이 있는 곳)이었다. 또 호메로스의 작품이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위해 집을 떠난 후 20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가족을 되찾은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면, 헤일리의 《뿌리》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 역시 오디세우스의 모험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헤일리는 2차 대전 당시 해안경비대로 입대하여 화물 및 탄약 운반선을 탔다. 그는 근무 외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는 책에서 군복무 중에 《뿌리》에 대한 착상을 처음 했다고 기록한다. 이 책은 저자가 55세이던 1976년에 출간되었으므로, 착상부터 고려하면 30년이 넘은 셈이다. 그는 자료 수집을 위해 오디세우스 못지않게 집을 떠나 미국, 유럽, 아프리카를 오갔다. 본격적인 자료 조사만 해도 12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작업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는 모험을 한 뒤에야 저자는 본인의 가족에 관한 역사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은 여러 공통점이 있다.
나는 《뿌리》가 현대인의 모습과 진실을 비추어준 20세기 그리오 알렉스 헤일리의 ‘오디세이아‘라고 부르겠다. 저자는 그와 동시대인이 살았던 시대의 목격자였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을 후대에 전해준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미래에도 전할 수 있게 남겨놓았다. 이 소설은 우리 시대의 구성원들 사이의 유대감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며 세대를 이어주고 서로를 묶어줄 수 있게 해준다. 저자의 작품은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기억되기 위해, 우리도 모두 그리오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내게 말해주는 듯하다. 2021년이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올해는 알렉스 헤일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올해 안에 《뿌리 Roots》를 읽고 무언가를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에 독후 기록을 급하게 몇 자 적게 되었다.
[덧붙임]
이 책에 관심 있는 분들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버전과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버전을 선택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두 출판사에서 모두 동일한 역자(안정효)가 작업한 도서를 판매중이다. 열린책들의 경우, 만듬새는 마음에 들지만 행간이 좁아서 독자에 따라서는 읽기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 분들에게는 문학사상사 버전이 눈의 피로도를 좀 더 줄이면서 읽을 수 있는 대안이라 생각한다.
번역 결과물의 경우,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영어 원문의 콤마까지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 ‘정확한’ 번역이다(이 책이 철학서적은 아니지 않은가). 역자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을 처음 번역했을 때가 1977년이다. 이 멋진 책을 요즘 독자들이 접근하기 좋게 문장을 조금 다듬었으면 좋겠다. 헤일리의 글에는 가끔 10줄에 가까운 긴 문장도 보이는데, 흐름을 유지하는 선에서 적절히 나눌 수는 없었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다만 안정효 번역가의 작업에서 감탄한 부분은 과거에 교육받지 못했던 흑인들 특유의 구어 표현들을 우리말로 멋지게 옮겨놓은 작업이다.
책에 관한 개인적인 바람을 좀 더 적어본다면, 문장을 새로 다듬고난 뒤 행간을 넓혀 편집하고(매우 중요함), 한 권으로 된 양장본으로 만나보고 싶다. 《모비딕》과 같은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뿌리》 역시 이 책이 담고 있는 한 가문의 묵직한 역사와 주제의식의 무게감을 한 권의 양장본으로 만나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시간이 지나도 되풀이해서 읽고 그 때마다 감동을 느낄만한 책이니까 말이다. 《뿌리》를 읽을 때마다 독자는 ‘타인들의 고통’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양하고 화려한 기념판이 출간되었다. 나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알렉스 헤일리의 기념비적인 작업, 《뿌리》 역시 주목을 받고 새로운 판본으로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판이 나옴직하다고 생각한다.
[1] "아버지, 노예가 뭐예요?" "노예와 노에가 아닌 사람들을 구별하기는 항상 쉬운 일은 아니란다." (68) - 쿤타 킨테와 아버지 오모로와의 가상의 대화
[2] "수백 장마철 전에 말리 땅에서 킨테 남자들은 대장장이였고, 여자들은 항아리를 굽고 옷감을 짰습니다." (105) - 성인교육을 받은 쿤타가 과정을 마치면서 받은 질문에 대한 대답
[3] "소년은 어른이 되어, 아들을 낳아 그 얘기를 전할 날이 오겠으며, 그러면 먼 옛날의 사건들은 영원히 살게 되리라." (124)
[4] "투봅의 땅에서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내다니, 그들은 도대체 어떤 흑인일까, 그는 생각했다. 자기들이 과거에 누구였고, 무엇이었는지 관심조차 없어 하는 듯한 이런 이상한 흑인들이 투봅의 땅에 얼마나 많을까, 그는 궁금했다." (246)
"이곳 흑인들은 투봅 주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그들의 동족을 위해서 햇볕을 받으며 흘리는 땀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256)
[5] "이곳 흑인들은 지난번 투봅 농장의 사람들보다 잘 살기는 해도,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역시 버림을 받았으며, 그들 자신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은 모두 철저하게 뿌리가 뽑혔기 때문에, 그들의 이런 생활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인식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관심은 매를 안 맞고, 먹을거리가 충분하고, 잘 곳이 마련되었느냐 하는 문제가 고작이었다." (290)
[6] "네가 주먹을 움켜 쥐면, 아무도 네 손에 무엇을 쥐여줄 수도 없거니와, 자신도 손으로 아무것도 집을 수가 없는 법이란다." (295) - 아버지 오모로의 가르침을 회상하는 쿤타 킨테
[7] "나는 왜 백인들이 그토록 비열하고 잔인한 행동을 자행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793) - 소설 속에서 저자가 직접 독자에게 말하는 대목.
[8] "타자기에 백지 한 장을 돌려 끼우고는 거기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읽어 줄 무언가를 써낸다는 생각은 나에게서 (지금도 역시 그렇지만) 도전과, 호기심과 환희를 자극했다. 다른 무엇이 나로 하여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밤 글을 쓰도록 충동을 일으켰는지, 그리고 내 첫 글이 팔릴 때까지 8년 동안이나 내 노력의 결실이 담긴 원고를 수없이 잡지사에 보내고는 그야말로 수백 통의 거절 통지서를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도록 해준 힘이 무엇인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797)
[9] "만일 어느 검은 아메리카 인이 나처럼 축복을 받아서, 겨우 몇 가지나마 조상이 물려준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알았더라면 - 그리고 그 남자나 여자가 아버지쪽이거나 어머니쪽의 아프리카 조상(들)이 누구였는지, 도대체 어디쯤에서 그 조상들이 살았고 잡혀갔는지, 그리고 그들이 결국 언제 끌려갔는지를 알아내었더라면 - 그랬다면 어쩌면 조상들이 살았던 바로 그 마을로 찾아가게 만든 힘은 바로 그 몇 가닥 안되는 단서였다." (812)
[10] "이 무렵에 이르러 나는 할머니와, 리즈 아줌마와, 플러스 아줌마, 그리고 조지아 대고모 역시 그들 나름대로의 그리오였음을 깨달았다." (817)
[11] "그리하여 아버지는 저 위에서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에게로 갔다. 나는 그들이 정말로 나를 지켜보고 이끌어 준다고 믿으며, 우리 집안의 역사가 담긴 이 이야기가, 역사란 승자들 쪽으로 심하게 치우친 시각에서 쓰였다는 과거의 유산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내 소망에 그들도 공감하리라고 생각한다."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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