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젠가부터 과거의 특정한 날에 있었던 사건 혹은 

특정 인물이 겪었을 사건들에 대해 알게 되면,

이것 저것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고 멍때리곤한다.

아마도 모든 고민의 근원은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일 것 같다. 모든 예술의 전제 조건 또한 필멸의 삶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우연한 기회에 어제는 미국의 작가 토니 모리슨의 2주기가 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1931.02.18-2019.08.05) 


<칼라 퍼플>, <빌러비드>, <솔로몬의 노래>, <재즈>, <술라>, <자비>,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누가 승자일까요?>, <얄미운 사람들에 관한 책>, 그리고 가장 최근에 출간된 산문집 <보이지 않는 잉크>까지.... 자신의 입장과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 인종차별/젠더 갈등에 관한 문제 제기 등을 글로 보여준 흑인 문학의 거장이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서양의 백인들로부터 오랫동안 인종차별을 받아온 흑인들의 

예기치 못한 심리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인종차별을 그토록 받아왔으면서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분노를 아시아인에게 분출하는 

일부 흑인들의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까하는 것들.... 


또 미국에서 흑인이 아시아인의 물건 혹은 돈을 훔쳤을 때,

신고하려는 사람에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백인들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참고 기사: https://news.v.daum.net/v/20210806105602103)

 

그들 역시 희생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조리한 일에 가담하는

가해자가 되는 상황 역시 상처받고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은 이들에게

보이는 패턴인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이들을 비난하기 전에

이 상황에 대해서 보다 면밀히 들여다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2] 

76년 전 오늘(2021.08.06)이 76년 전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일본 도쿄에서 하계 올림픽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상황에서 일본인들에게 오늘은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해진다. 그 와중에 대통령 선거에 나오겠다고 하는 어느 후보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적이 없으며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나라 전체를 경악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제는 소름끼칠 정도다. 


몇 년 전에 회사 외부 미팅을 나가 상대 중소기업 회사의 임원과 면담을 한 기억이 있다. 대화를 나누다가 어떤 계기인지 모르겠으나 그 사람은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지 않았어야 더 잘 살았을 거다'라는 말을 해서, 태극기 부대 집회에 열심히 나가고 아침마다 '일베' 사이트에서 놀곤 하시던 울 회사 부사장이 놀라셨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니 그 말은 좀 심한거 아니요? 허허...' 아직은 내가 사람들에 대해, 현실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내가 계속 공부해야할 이유가 된다. 앎으로 인해 내가 좀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말이다. 


아무튼 76년 전 오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기록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페이퍼로 끄적였던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에 까지 생각이 미쳤다. 주중에는 책 읽을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아 중단했던 <파친코>읽기를 오늘부터 다시 해보려한다. 주말에는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사람들의 작품을 읽고 사람들과 이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면서 배우는 것은 모든 이들이 태어나 소멸한다는 것일테고,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하는 데까지 생각이 나아간다. 백신의 과학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백신을 맞고 멀쩡하던 내가 다음 주에는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유서 같은 것을 써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매년 유서를 새로 쓴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백신 때문만이 아니라, 불시에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이란 대상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를 잠시 생각해보곤 한다. 


[3] 

딴 생각을 하고 멍 때리다가 문득 어디선가 봤던 문장을 찾아보려고 

여기 저기 책을 뒤적였다. 제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이었던 '맨해튼 계획'을 지휘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1945년 7월 16일, '트리티티 테스트'라고 알려진 원자 폭탄 실험 광경을 보고 인용했다는 문장이다.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Bhagavad Gita>


'이제 나는 세상의 파괴자, 죽음이 되었도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일본에 원자 폭탄이 떨어지고 그 피해 상황을 알게 된 오펜하이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어떤 이유에선지 이번에는 원자력을 이용한 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강연과 운동을 벌였다. 반공주의자들의 눈에 좋게 보일리가 없었다. 50년대 초에 미국을 휩쓸었던 공산주의자 색출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그는 하원 청문회에 불려가 증언해야 했다. 이 때 맨하탄 계획에 함께 했던 동료 에드워드 텔러라는 헝가리 출신의 물리학자가 오펜하이머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했다. 말하자면 동료를 배신하는 행위를 한 셈인데, 이후 오펜하이머는 비밀인가 취급 허가를 박탈당하고 그의 인생은 말그대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대신 에드워드 텔러는 영전하여 맨하탄 계획 이후 폭발력이 훨씬 강한 '수소 폭탄' 계획을 지휘하게 된다. 그가 '수소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일 테다. 권력과 명성을 얻은 그 였지만 동료들을 배신한 대가는 과학계의 냉대였다. 이런 사람은 어디에나 반드시 있다.  



 


[4]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나는 잡생각의 왕이다.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Little Boy)이 하나 떨어졌고,

다시 미국은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Fat Man)을 하나 더 떨어뜨린다. 그런데 두 원자 폭탄이 종류가 다르다는 걸 방금 알았다. 

히로시마에 떨어 졌던 원자 폭탄(Little Boy)는 '농축 우라늄'을 사용한 건배럴 방식(포신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길이 방향의 두 방사성 물질을 강제로 합치는 방식으로 임계질량에 도달하게 하여 '연쇄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반면, 나가사키에 떨어뜨렸던 원자 폭탄(Fat Man)은 '플루토늄239'를 사용했는데, 인플로젼 방식(내폭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길이형으로 방사성 물질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플루토늄이 들어 있는 구형 질량 외부에서 '느린 폭발'을 일으키면, 이 압력이 내부에 있는 플루토늄을 구의 중심 방향으로 수축시켜서 임계질량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이 방식을 개발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양자 물리학 이론 개발에 기여하기도 했던 물리학자, 수학자이자 컴퓨터 이론의 선구자 '존 폰 노이만'이라니 아이러니 하다. 


일본과 독일은 20세기에 수많은 인간을 학살하고 인류에게 큰 고통과 트라우마를 남긴 바 있다. 동시에 우리 인류는 이들이 이 기간동안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학실험이나 그 밖의 과학기술을 통해 축적한 지식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 두 나라 모두 자국 내에 가해진 엄청난 폭격으로 국가가 망했음에도 타국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부를 얻고 다시 일어난 국가들이기도 하다. 이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다. 




[5] 

또 딴생각을 해보다가 두 사람 생각이 났다. 50년대 말에 미공군에서 일했던 두 사람이며 전역한 후 모두 사진가가 되었다. 

한 사람의 이름은 미국의 사진가 게리 위노그란드 Garry Winogrand.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국내에서 <사진강의노트>로 잘 알려진 사진가이자 교수인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이다.


두 사람 모두 공군에서 폭격기 승무원이었다. 이들은 50년대 말 냉전이 한창일 때 언제든 원자 폭탄을 싣고 적지로 날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끊임없이 폭격 장소를 확인하고, 항로를 검토하고, 비행 상태를 점검해야해서였을까... 이들은 모두 민첩하게 반응해야하는 스냅 사진의 대가들이었다. 공군에 복무했기에 이들이 사진가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들 모두 당시에 고급 취미로 인기있던 사진찍기를 군복무 시절 동료로부터 접하고 PX에서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사진을 시작한 것 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관조해야했던 이들의 임무가 영향을 주기는 했을 것이다. 핵무기를 실어나르는 일을 해야 했던 이들이 공교롭게도 사진가가 되었다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그저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멍때리다가 핵무기, 그리고 이 환경에서 사진가가 나오기도 하는 우연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카메라 역시 전쟁으로 더욱 기술이 발전하고 완성된 제품이다. 공교롭게도 독일의 라이카와 일본의 니콘과 캐논 같은 회사가 카메라의 발달을 더욱 앞당겼다. 갈릴레오가 만든 천체 망원경이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만든 천체 망원경, 스피노자가 갈아서 만들었다는 렌즈로 만들었을 현미경 혹은 망원경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 새로운 발견을 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로버트 훅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기도 한 것처럼. 하지만 카메라 기술과 독일/일본과의 관계는 전쟁을 매개로 한다. 이 기술과 지식 역시 오늘날 전 인류에게 나누어주는 수혜에 희석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자야겠다. 


하루가 지났으므로 다시 오늘 부터 <파친코>를 읽어보기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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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07 00: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흐름을
오늘 코스트코 갔다가 와인앱으로 진열된 와인을 거의다 찍다가 1865보다 높은 평점인데 싼 완인을 기쁘게 사서 홀짝 거리며 (아 ㅜㅜ 따는 순간 오늘 끝날 것 같아요를 예감합니다) 따라가며 즐거워 하고 있습니다.
전 예전에 어느 사업부 부장님이 전쟁이 한 번 일어나줘야한다는 트윗을 해서 그 분과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기도 했습니다 ㅎㅎ

그리고 사진
이건 제가 좀 할 말이 많은데
사진을 찍는 사람은 모든 이유를 용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그리고 두 폭탄이 결국 다른거 였군요.

제목만 보고는 아우렐리우스의 죽음에 대한 먼지 이론이 생각되었는데 그것 보다는 더 잼있네요 ㅎㅎㅎㅎㅎ
아~ 초란공님 건배요~~~

이상 취권이었습다
시원한 밤 되세요~

초란공 2021-08-07 00:57   좋아요 4 | URL
잠실 알라딘과 코스트코를 애용하시나봅니다 ㅋ
저는 따놓은 고량주를 홀짝 해볼까요 ㅋ

조금 덥지만 또 잠시 낼 수 있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멍때리고 혼자 보내는 시간 말이지요. ^^

저도 아우렐리우스 수준까지 가보았으면 합니다.
아직 갈길이 멀지요^^;;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초딩 2021-08-07 01:01   좋아요 4 | URL
알라딘은 잠실이고
코스트코는 하남이요 ㅎㅎㅎ

하남 코스트코 간다고 온 가족이 이야기해도,저는 하남 스타필드 출발~ 이라고 이야기하다 핀잔을 듣습니다 ㅎㅎ

항상 감사합니다 ~ :-)

페넬로페 2021-08-07 01:02   좋아요 4 | URL
초딩님께서는 와인을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좋은 글은 와인으로 인한 취중집필이신건가요 ㅎㅎ

페넬로페 2021-08-07 01: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삶과 죽음에 관한 글 너무 좋네요.
멍 때리기로는 너무 심오합니다.
이 딜레마들에 대해 계속 생각해봐야겠어요^^
얼마전 라디오 북클럽에서 들었는데 토니 모리슨 작가가 글도 잘 쓰지만 랜덤 하우스 편집장에다 흑인 여성 최초의 타이틀이 많이 붙는 작가더라고요~~
저는 두 작품 정도 읽었는데 저도 다시 읽고 싶습니다^^

초란공 2021-08-07 01:15   좋아요 4 | URL
아 그러고보니 제가 좋아하는 줌파 라히리도 프린스턴에서 토니 모리슨과 같이 글쓰기를 가르쳤던 것 같아요. 라히리의 <저지대>가 3대에 걸친 가족사라면, 이민진의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의 가족사라는 점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또 흥미로운건 위에 언급한 이민진 작가도 프린스턴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고...아무튼 토니 모리슨과 이민진 작가의 공통점도 있네요^^ 제 잡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