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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종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지음, 양영란 옮김 / 동문선 / 2015년 8월
평점 :
《잠수종과 나비》
: Le Scaphandre et le Papillon
장 도미니크 보비(Jean-Dominique Bauby) 지음 | 양영란 옮김 | [동문선]
‘내부로부터 갇힌 자가 바라본 자신의 몸과 세계, 그리고 존재증명’
사랑스러운 가족과 사회적 성공을 거머쥔 한 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찾아온 불가항력의 사건으로 이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면 당사자는 어디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게다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단지 왼쪽 눈꺼풀을 깜빡이는 일과 왼쪽 부분의 입으로 반쪽짜리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뿐이라면 말이다. 이 불가항력의 사건은 실제로 한 남자에게 발생한 일이었다.
장 도미티크 보비는 1995년 12월 8일 당시까지 세계적인 패션잡지 <Elle>의 편집장이었다. 멋지게 차려입을 줄 알고, 문학과 스포츠카를 사랑했으며, 사회에도 영향력을 가졌던 남자였다. 사건 당일 그는 BMW신차의 시운전을 하며 비틀스의 노래 ‘내 삶 속의 어느 하루 A day in the life'를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모습은 보비가 ‘정상인’으로 기억하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며 쓰러진 그를 살펴본 의사는 ‘뇌일혈’이란 진단을 내렸다. 3주 동안의 혼수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지만, 전신 마비 상태로 깨어났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번개를 맞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일명 ‘락-인 신드롬 locked-in syndrome'으로 불린 이 증상으로, 의식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전신이 마비된 몸속에 영원히 유폐되었다.
의식이 깨어난 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전신마비 상태로 15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를 더 살았던 보비는 대략 반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자신이 ‘글자들의 빌보드 차트’라고 유머스럽게 부른 글자배열판과 왼쪽 눈꺼풀을 깜빡거리는 행위만으로 사람들과 소통했다. 오늘 만난 《잠수종과 나비》는 이렇게 태어났다. 이 책은 한 순간에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에서 멀어진 한 인간이, 고집스럽게 자신을 찾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했던 희망과 비통의 기록이다.
의사들이 자신의 증상을 ‘락-인 신드롬’이라 불렀을 때, 저자는 자유로운 의식을 상징하는 나비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흐느적거리는’ 몸을 심해 다이버들이 사용하는 잠수종(diving bell)에 비유했다. 엄청나게 무거운 잠수종 속에 들어가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 물 밖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43년 동안 ‘온전한 신체’로 살다가 어느 날부터 이 ‘무거운’ 육체 속에 갇힌 영혼으로 지내야만 했을 저자의 삶을 상상해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몸 혹은 육체라고 불리는 대상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의 의식 혹은 마음이라 불리는 개념도 떠올려본다. 나는 흔히 나의 몸과 마음/정신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나의 육체가 갑자기 제 기능을 멈추는 사태를 겪었다면, 나는 무엇인가? 내 코에 앉은 파리 한 마리도 쫓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을 곁에서 만지고, 끌어안을 수도 없다면 말이다. 게다가 정상적으로 침을 삼킬 수조차 없어서, 가족과 지인들 앞에서 흘러내리는 침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면, 과연 나라는 존재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대로 우리의 ‘몸’은 그저 하나의 ‘그릇’에 불과한 것일까?
이 책은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바라본 시선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를 보여주는 보기 드문 기록이다. 특히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자는 오랜 시간 비장애인의 영역에 있다가, 그 경계를 넘어 장애인의 영역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운명의 장난이라도 이런 비통한 사태가 있을까. 한순간에 뒤바뀐 한 사람의 시선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장애를 안고 살았던 짧은 시기에 저자가 남겼던 체험의 기록은 ‘내부로부터 감금된 자’가 자신의 몸과 주변을 돌아보고, 세상을 향해 소통하고자 했던 한 사람의 존재증명이었다.
일상을 누리지 못하게 되면서 저자의 의식이 마주한 것은 심연과도 같은 깊고 광막한 절망감이었다. 그는 불구가 된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전신마비를 겪고 있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말한다. “날개 꺾인 새, 목소리를 잃은 앵무새. 불길한 전조의 새”로 자신을 표현하는 동시에, “우리들이 병원의 풍경을 망치고 있음을 나도 잘 안다”(53)라고 잠수종 속의 의식은 표현했다.
병원에서 어느 날 유리에 비친 자신의 ‘끔직한’ 몰골을 보고 저자는 미친 듯이 웃어댄다. 그러나 육체라는 굴레에 갇힌 상태에서, 그가 그렇게 웃어댔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고개를 젖히고, 호탕하게 소리 내어 웃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는 이렇게라도 해야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불운을 ‘농담으로라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44)라고 고백한다.
저자가 냉혹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또 배워야 했던 것은 일종의 ‘체념’을 배우는 일이었다. 자신의 ‘몰골’을 거울에서 발견했을 때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일요일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기에 그는 더욱 고립된 자신의 모습을 기록했다.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던 시절, 아마도 저자는 신랄한 유머감각을 보유한 사람이었을 듯하다. 거대한 불운의 한 가운데에서도 그는 완전히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가 물리치료사의 안마를 받는 날, 자신을 ‘국제 사이클 대회를 앞둔 자전거 경주계의 다크호스’로 상상한다. ‘물리치료사가 고된 전지훈련으로 파열된 자신의 근육을 불어주고 있는 중’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다만 이 유머 감각은 점차 새로운 체념으로 바뀌어 간다.
극적인 삶의 격변 사태를 경험한 사람에게 그 이전에 누리던 일상은 이제 이례적이고 소중한 순간이 된다. 아버지의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 딸의 축하를 받은 그는 이 ‘강요된 기념일’이 얼마나 소중해지는 순간인지를 일러준다. 자신이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 전에, 이런 말들을 가족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을 듯싶다. 다만 팔을 들어 아이들을 안아줄 수 없다는 좌절감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에서 그가 짊어지게 될 삶의 무게를 간접적으로나마 공감하게 되었다. “일요일은 지루한 사막과 다름없다”(146)라고 언급했을 때, 그는 이미 일요일마다 찾아오는 극한 고립감과 두려움에 체념하고 받아들이기를 배워야 했던 것이다.
“잠수종이 한결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의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나들이 길에 나선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 (16)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종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188)
저자 장 도미니크 보비는 ‘갇힌 의식’이 되어 짧은 병원 생활을 했다. 오로지 눈꺼풀만을 움직여서 한 인간의 몸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의 비통한 기록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시선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그가 ‘잠수종’으로 표현한 육체의 욕구와 바람, 몸에 새겨진 기억의 편린을 이야기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리는 유일무이한 사태 앞에서 저자는 자신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한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았던’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에게 지금 내가 꺼낼 수 있는 건 숙연함과 경외의 감정이다.
"발뒤꿈치가 아프다. 머리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하고, 온몸은 잠수종 속에 갇힌 듯 갑갑하게 조여온다." (13)
"지금 현재로서는 끊임없이 입 속에 과다하게 고이다 못해 입 밖으로 흘러내리는 침을 정상적으로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일 것 같다." (27)
"목욕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 낡은 조끼를 입을 때면 여러 가지 추억이 고통스럽게 내 기억을 되살린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현상을 계속되는 삶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고집스럽게 나 자신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32)
"그렇게라도 해야 내 운명을 바꿔 놓은 그날의 사고 이후, 줄곧 내가 감당해야 했던 불운을 농담으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44) -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보고 미친듯이 웃어댔다는 저자의 고백
"다만 감각적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맛과 냄새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기억이야말로 감각의 무궁무진한 보고이다." (56)
"물리치료사의 안마를 받는 동안이면, 나는 어느 새 다음날에 벌어질 프랑스 일주 국제 사이클 대회를 앞둔 자전거 경주계의 다크호스가 된다. 물리치료사는 고된 전지훈련으로 파열된 내 근육을 풀어주고 있는 중이다." (168) - 저자에게 남은 일말의 체념섞인 유머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종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 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188) - 베르크 플라쥬, 1996년 7-8월에 남긴 저자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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