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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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꾼에 사는 세상을 꿈꾸며

-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창비] (2022)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상상을 해본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이하 해방일지)의 화자(아리)의 아버지가 아리를 번쩍 들어 올려 목말을 태우고 어머니 마중 나가던 순간. 화자의 아버지가 빨치산으로 입산하기 전, 사시도 아니었던 10대의 의기양양한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에서 확인하던 장면처럼 말이다. 내게도 아리처럼 나의 전부였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목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해방일지를 읽고 나니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이 좀 더 너그러워질 수는 있겠다 싶었다.


 

정지아의 소설 해방일지는 어느 노동절 아침, 과거에 구례 지역을 중심으로 빨치산 활동을 했던 여든 두 살의 남자 고상욱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화자는 이 남자의 딸, 그러니까 빨치산의 딸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조문 온 사람들을 처음 마주하며, 굵거나 가늘게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던 사람들로부터 비로소 아버지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 결국 화자는 빨치산 아버지가 아닌, 나의 아버지를 찾게 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1948년의 여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아리의 아버지는 이 사건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으나 곧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때 고문후유증으로 사시가 되었다. 이는 개인에게 드리워진 우리 현대사의 상흔이었다. 아버지의 사시는 시대와 반목하고 시대에 부적합했던, 한 남자의 운명을 보여주는 듯했다. 사시의 특징 하나는 그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타인도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6년 동안의 수감 후 출소하는 날 함께 찍었던 가족사진에서도 어딘가를 응시하지만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던 아버지의 불분명한 시선을, 딸은 기억해냈다. 아버지는 이제 곁에 없었지만 사진 속 아버지의 골똘한 응시는 내게 이렇게 묻는 듯했다. ‘너희는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는가?’, 라고. 소설을 읽는 동안 이 질문이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장례식장에 조문 온 사람들은 아버지의 생전에 어떠한 식으로든 그와 얽히고 엮인 인연들이었다. 70년이 다 되어서야 아버지의 동생(작은아버지)은 망자의 영정을 마주보게 되었다. 여기에 빨치산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 창창한 미래가 족쇄 채워진 삶을 살아야 했던 아리의 사촌 오빠 길수, 빨치산 동료의 동생으로 월남전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돌아온 절름발이 노인은, 이들이 지나온 이 세계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증언한다. 물론 아버지의 관계망에는 안쓰럽고 애처로운 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거나 심지어 목숨을 살려준 인연도 있었다. 아버지의 담배 친구였던 슈퍼마켓집 10대 소녀도 조문을 와 눈물을 훔치는 기이한 상황은, ‘빨치산의 딸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숨은 세계를 보여준다.


 

이렇듯 화자가 확인하는 아버지의 여러 인연들은 그가 이 세상에 남겨놓은 촘촘한 그물망이었다. 이 관계의 그물망에는 무참한 시절, 시대의 아픔을 함께 겪어 낸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득했다. 아리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깔끔하고 매끄러운 인연이 아니라, 질퍽하고 끈적거리며 질긴 인연들의 세계가 아버지의 세계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온 구례라는 상징적인 장소는, 오랜 인연이 만들어 온 작은 감옥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 (...) 질기고 질긴 마음, 얽히고 설켜 끊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이어진 세계이기도 했다. 부모 세대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그랬다. 이렇듯 잘 보이지 않는 인연들의 그물망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며 때론 서로 일으켜주며 살아온 세계를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197)던 심정으로 읽었던 것이다.


 

화자 아리는 장례식장에서 비로소 제대로 마주하게 된 아버지의 인연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빨치산의 딸임을 항상 억울해했던 만큼 아리는 이제 아버지의 인연들 각자의 사정을 헤아려 보게 되었다. 나아가 이들로부터 결국 아버지의 수많은 얼굴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혁명가 아버지, 경우 바른 아버지를 넘어, 어머니에게 하자고 조르기도 했던 인간아버지의 모습을, 따스해진 유골을 통해 느꼈다. ‘생각이 다르면 안 보면 되지, 맨날 싸우면서 왜 맨날 같이 놀아요?’라고 묻는 딸에게 늘 해주는 아버지의 말은 긍게 사램이제였다.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 용서도 한다”(138)는 아버지는 늘 누군가의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이렇듯 아버지의 이 하염없음, 신념보다는 사람의 도리로서 그러했다. 그가 죽는 날까지 인간임을 잃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자신의 신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마주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게 된 시절이다. 다시 소설을 읽는 동안 아버지의 초점 없는 시선을 환기해본다. 어딘가에 멈추지 못하고, 머물지 못했던 가족사진 속 그의 시선을. 우린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또 우린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까? 이들은 뚜렷한 정답이 없는 물음이었지만, 해답의 실마리는 보인다. 한때 서로 총을 겨누기도 했던 박선생과 아버지의 공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상대방도 나와 같은 인간임을 잊지 않는 일, 또 아버지가 말한 사람의 도리이기도 하다. 완전무결하지 않은 나, 마찬가지로 완전무결하지 않은 상대방이 얽히고 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을 간직하는 일. 아버지의 인연들이 응시하는 지점에는 바로 이렇게 인간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었다. 이는 아버지의 동창 박한후 선생의 한 마디, “항꾼에(함께) ... 올라네”(50)에 담겨 있었다. 아리에게 아버지 없는 노동절의 아침은 꿈결처럼 낯설었을 것 같다. 대신 아리는 이제 항꾼에 사는 세상을 새롭게 꿈꾸기 시작했을 테다.





[책속으로]

[1] "작은아버지의 사정은 작은아버지의 사정이지,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렇게 모르쇠로 딴 데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42) - P42

[2] "항꾼에, 올라네, 말 사이의 짧은 침묵이 마음에 얹혔다. 저런 말이 하염없이 인생을 살았던 한 남자의 애틋한 정일지 몰랐다."(50) - P50

[3] "한때 적이었던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살아가는 아버지도 구례사람들도 나는 늘 신기했다.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 긍게 사램이제. (...)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138) - P138

[4] "무엇에도 목숨을 걸어본 적이 없는 나는 아버지가 몇마디 말로 정의해준다 한들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147) - P147

[5] "구례라는 곳은 어쩌면 저런 기이하고 오랜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인 작은 감옥일지도 모른다."(163) - P163

[6]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181) - P181

[7]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ㄴ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 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197) - P197

[8]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을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198) - P198

[9]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231) - P231

[10]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252) - P252

[11]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265) [마지막 문장] - P265

[12] "사램이 오죽하면 글것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을 받이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268) [작가의 말 중에서]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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