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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한 청춘이자 한 시대의 일지를 기록하고 싶었던 저자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근현대사 10년의 대한민국 속에 한 청춘의 삶을 담아냈다. 이 10년에는 어떤 모습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97년 대한민국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2000년에는 롯데 호텔 노조 파업 폭력 진압 사건과 대우자동차 부도에 이어 2001년에는 전학협 김우중 전 대웅 회장 자택 점거를 시작으로 GM, 대우자동차를 인수하였으며,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 개막 뒤에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일어났다. 2003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고 2004년에는 한-칠레 FTA가 체결되었으며 2007년에는 한-미FTA 협상 타결과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이외에도 굵직했던 대한민국의 10년의 사건들을 먼저 둘러본다면, 한 청춘의 삶을 넘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오롯이 엿볼 수 있을 듯 싶다.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한 작가 손아람처럼 <<디 마이너스>>의 주인공 박태의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다. 이런 이유로 혹시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자전적인 회고록이 아님을 밝혀두었다. 그런데 왜 작가는 주인공을 자신과 같은 환경 속에 묻어두었을까? 어쩌면 10년의 시대 속에 뛰어들었던 박태의 옆에서 세상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 가깝되 바깥인 곳에서 바라보기 위함(본문 526p)이었을지 모르겠다. 박태의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근 10년은 대한민국, 박태의에게도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참 많은 일이 일어났던 10년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등은 나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대한민국의 변화에 따라 나의 삶도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박태의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새내기 환영회에서 잔디밭에 원형으로 빙 둘러앉은 선배들은 새내기가 한 명씩 가운데로 나가 자기소개를 하면 노래를 연호했지만, 태의는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고 말했고, 여자 선배 한 명이 야유를 보내며 노래를 부를지, 엉덩이로 이름을 쓸지에 대한 단호한 명령에 태의는 엉덩이를 허공에 비벼 건성으로 이름 석자를 갈려쓰는 것으로 대신했다. 자기소개를 마친 뒤, 선배와 후배가 한 명씩 짝지어 짧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 한때 무력 투쟁을 불사하는 고전적인 학생운동 선봉대의 존경받는 지휘관이었으나 젊은 나이에 퇴역한 현승 선배는 모든 학생들에게 마르크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고, 까칠했던 여자 선배인 미쥬는 부모 양쪽 성을 함께 쓰는 여성주의자로 인문대학 전체에서 절대적으로 사랑받는 존재였다. 미쥬를 숭배한 태의는 학회에서 공부하는 내용이 주로 '전국학생연대회의'라는 학생운동 정파의 이론이라는 사실을 알지못했지만 철학연구학회에 들어가게 되었고, 실질적으로 학생운동의 관문이었던 학회에서 그는 그 관문을 통과하며 학생운동가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선배들이 공대 새내기 세 명을 데리고 왔고, 그 중에는 공대 전체를 집어삼킬 거목으로 자라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미쥬의 평가를 받는 진우가 있었다.
미쥬의 남자친구인 대석은 법대 4학년이었고, 전국학생회협의회 약칭 '전학협'이라 불리는 학생 운동 정파에 속해있었으며, 투쟁머신의 줄임말인 '투신'이 쓰여진 야구방망이를 들고 다녔다. 미쥬와 태의가 속한 연대회의와 경쟁하는 정파로 비슷한 책을 읽고 비슷한 이론을 공부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자주 또 격렬하게 다투곤 했다. 그래서 미쥬와 대석은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고 별것 아닌 문제로 매일같이 티격태격했지만, 정치적인 문제를 두고 다툰 것은 한 차례뿐이었고, 그 일로 헤어졌다. 학교에는 태의가 입학하기 전부터 졸업한 뒤까지도 학교에서 사는 남자가 있다. 그의 시간은 1971년에서 1974년 사이로 추정되는 어느 시점에서 멈췄는데, 그가 학교에 눌러앉은 건 학교만이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정치적 성소라고 믿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외 시장으로 무리한 확장을 시도했던 게 화근이 되어 국내 최대의 자동차 기업이었던 대우자동차가 부도를 맞게 되었다. 대우자동차의 위기는 오로지 방만한 경영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진과 채권단이 추진한 구조조정안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었으며 엔진이 고장 난 중고차를 도색만 바꿔 되팔려 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대우차의 해외 매각과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파업을 선언했고, 태의는 대석형의 권유로 김우중 자택을 습격하는 전학협과 합류하게 된다. 이후 GM과 대우자동차의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인 때 대우자동차가 노동자 1,750명을 기습적으로 해고하였고 노동자들은 공장이 위치한 부평에서 농성을 벌였고, 수도권에서 닥치는 대로 끌어온 엄청난 규모의 경찰력이 부평으로 투입됐다. 전국 대학가의 모든 학생운동 조직에 긴급 소집령이 떨어졌고, 태의와 진우도 합류했다. 이 사건으로 전학협 간부에 의해 대석이 대공분실을 다녀오게 되었고, 이후 대석으로 인해 태의가 대공분실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태의는 진우의 이름을 대고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진우는 부평의 대우자동차 시위가 종료된 지 반년 넘게 지난 때 처벌을 받았고,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월드컵 때문이었다.
"곧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는데, 너 같은 놈들이 또 후배들 끌고 거리로 뛰쳐나와 활개치게 놔둘 수는 없지. 축제 기간 동안만 머리 식히고 나와라. 너만 처넣는 거 아니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진우가 기소된 실질적인 이유였다. 도로교통법 위반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도, 국가보완법 위반도,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도 아니었다. 독재에 대항했기 때문도, 혁명을 계획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월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세계인의 축제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본문 300p)
태의는 양심을 팔아 진우를 가뒀고 양심의 텅 빈 자리에 갇혔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웠다. 강남 출신이었던 미쥬가 헬싱키로 떠나고, 대석은 태의에게 대공분실의 일을 사과하면서 야구방망이를 선물로 준다. 매일같이 몸을 축내고 싶은 갈증에 시달렸던 태의는 선봉대장을 만나 대석에게 받은 야구방망이를 무기로 삼아 활동하게 되었으나 자신이 도시를 떠난 게 아니라 도망친 것이었음을 기억하게 된다. 진우와 다시 재회를 하게 되지만, 미국 대사관 습격에서 진우가 크게 다치게 되고 태의는 군대에 입대한다.
태의의 삶은 나와는 많이 다르다. 그는 학생운동권으로 우리나라의 역사에 깊숙이 참여했지만, 나는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 마이너스>>를 읽는 동안에는 나 역시도 그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관심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 사건들마다 때로는 열을 올리고 함께 슬퍼했던 탓이리라. 그렇다면 <<디 마이너스>>라는 책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10년의 역사에 대한 성적표일까? "작가 스스로 매겨놓은 '디 마이너스'라는 성적표는 그 기억의 주체에게 반성적 기표로 작동하며 미래를 치열하게 사유케 하는 장치가 된다." (표지 中)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권력가들의 힘에 좌우되고, 갑들의 횡포로 을의 삶이 좌우되는, 지난 10년의 역사와 현재가 별반 달라져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며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결국엔 자본주의에 물들어가고 갑이 되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언정. 그럼에도 우리는 또 시작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또 세상을 바꿀 작은 불씨가 되어줄 수 있을테니.
자, 묻습니다. 혹시 끊을 날이 올 걸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까? (본문 1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