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독한 오후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허즈번드 시크릿》《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로 기억하게 된 작가 리안 모리아티의 《정말 지독한 오후》를 읽어보게 되었다. 65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작가의 뛰어난 심리묘사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올해 7월 출간과 동시에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마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영화 판권을 계약하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인 이 소설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퍼즐게임을 하듯 그 몰입도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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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에 대한 기억은, 누군가가 몇 장면만 빼곤 다 싹둑싹둑 잘라버린 낡은 영화  필름 같았다. 전체 필름은 사라지고 없었고 그저 조각들만 남아 있었다. 아주 얇은 시간의 조각들만 남은 거다. 에리카는 단지 "실은 기억나지 않은 게 많아"라는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고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고 싶을 뿐이었다. (본문 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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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현재와 정말 지독한 날이었던 바베큐 파티를 하던 그날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바베큐 파티를 하던 그날의 진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달 전, 그날 무엇인지 모를 사건에는 세 가족이 얽혀있다. 첼리스트인 클레멘타인은 자상한 남편 샘의 도움으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기 위한 오디션 준비로 바쁘다. 어릴 적부터 자매처럼 자란 친구 에리카는 의논할 일이 있다며 만나자고 하지만, 어떤 이야기인지 언급하지 않는다. 한편 회계사인 에리카는 클레멘타인 가족과의 만남을 위해 애프터눈 티를 사가지고 오는 길에 옆집 비드를 만나게 된다. 비드는 첼리스트인 클레멘타인을 만난다는 에리카의 말에 바비큐 파티에 초대하게 된다. 의논해야 할 일이 무척 중요한 일이었는지 에리카의 남편 올리버는 그말에 언짢아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 클레멘타인과 그녀의 남편 샘 그리고 두 자녀 루비와 홀리가 에리카의 집에 방문한다. 의논할 이야기는 바로 에리카의 난자가 질이 낮은 관계로 클레멘타인의 난자를 제공받고 싶다는 것. 그렇다면 이것이 이 지독한 날의 중요 포인트가 되는것일까? 하지만 에리카와 올리버는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바비큐 파티를 가자고 제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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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비큐 파티가 시작된다. 비드의 딸인 다코타는 클레멘타인의 두 아이를 돌봐주었고, 비드와 그녀의 아내인 티파니, 그리고 샘과 클레멘타인은 즐거운 담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물론 앞집에 사는 괴팍한 노인 해리가 시끄럽다는 항의가 있었지만 아이들도 어른들도 파티를 즐길고 있었다. 다만 엄마의 수집증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던 에리카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은 후 술을 마신 탓인지 약간 취해있었고 설상가상 비디와 클레멘타인이 난자제공에 대해 언짢아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 상처를 받는다. 그런 에리카가 걱정되어 올리버는 화장실로 찾으러 가고 사건은 그 시간에 일어나고야 만다.

 

티파니는 그 이유를 알았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건 바비큐 파티 이후 모든 균형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티파니와 비드는 파티를 연 사람들이었다. 그곳은 두 사람의 집이었다. 두 사람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두 사람이 그 일을 부추긴 거였다. 두 사람에게는 기여 과실이 있는 거다. 그러니까 티파니는 무죄를 주장할 수 없었다. 비드도 마찬가지다. (본문 2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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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나고 두 달이 지났지만 세 가족은 여전히 그 사건에 얽매어 있다. 그날 바비큐 파티에 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일련의 사건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에리카가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모든 사건의 의문이 풀려가기 시작하자 긴장했던 독자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그날 함께 했던 사람들은 이 사건으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모두가 그 사건에 대해 죄책감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다. 사실 이 책속에서 일어난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우리가 흔히 겪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우리가 흔히 겪게 되는 심리를 탁월한 묘사로 몰입감있게 펼쳐내고 있었다. 내가 겪을 수도 있을 일, 어쩌면 그런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지도 모를 일, 앞으로 겪게 될지도 모를 이런 일들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마 나 역시도 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토리를 진실을 파헤쳐가는 추적과정을 담았지만 그 속에는 가족, 부부, 친구와의 관계, 죄책감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뛰어난 심리 묘사가 독자를 긴장하게 하게 하기도 하고, 마치 등장인물 중 하나가 나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주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모두는 이러한 상황에 서 있게 마련이니까. 평범한 소재로 뛰어난 몰입도를 보여준 저자 리안 모리아티, 그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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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정말 지독한 오후'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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