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사노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100만 번 산 고양이>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그림책 중 하나입니다. 백 만 번을 살아보고서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 고양이의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겨 주었지요. 읽어본 지 꽤 오래된 그림책이었는데 저자 사노 요코의 첫 에세이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를 읽으면서 다시 떠올려 보게 되었네요. 저자는 <사는 게 뭐라고>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가라 하는데 사실 제게는 낯선 작가였어요. 그러다 작가의 이력을 보고서야 그제야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저자라는 걸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답니다.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겨준 그림책의 저자가 쓴 에세이는 저자와 친숙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그림책을 쓴 작가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 삶이 너무도 궁금했답니다.

=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내 인생의 테마 같은 건 모른다.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우주 어느 부분을 핀셋으로 집어도, 거기에 내가 느끼는 조금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본문 177p)

=

이 에세이집은 사뇨 요코가 40대에 쓴 첫 에세이집으로 어린시절부터 유학 시절, 그리고 40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글 속에서 가난으로 평탄하지 않았던 삶이지만 당당했던 그녀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어요. 그녀의 당당함은 여명 선고를 받은 순간 우울증이 싹 가실 정도로 즐거웠다고 했다는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 두려움 없이 당당했던 것은 그녀가 스스로의 삶을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

나는 '세상이 좁아진다'는 표현을 처음 들었다.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닌 '세상'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세상'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막연하게 나를 둘러싼 것으로 조금은 진부하고, 조금은 나를 방해하는 것이어서 걷어차버리고 싶은 존재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세상이란 한 사람 한 사람 살아 있는 인간의 연결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본문 45p)

=

저자는 가난했던 유학 시절, 계모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혼났던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일찍 세상을 떠난 오빠, 유학 중 만나게 된 한국 사람들과의 인연, 도쿄 우시고메에 사는 이모 집에서 하숙하던 때의 일화 등이 섬세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그 중 오빠와 함께한 고양이 실험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면서 그녀가 유독 고양이 그림을 그리고, 고양이 이야기를 담아낸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 싶었습니다. 이들 이야기 속에는 그녀의 여리면서도 강인한 면이 많이 부각되고 있어요. 2010년 72세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뇨 요코의 삶은 아무래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야기에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

=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오빠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중략) 오빠가 어린아이일 때 죽은 사실은 내게 고정된 환상을 심어 주었다. (중략) 그림 그리는 일이 사실은 오빠 같은 사람에게만 허락된 일이라는 환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중략) 나는 그런 착각이나 자신감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보통 사람으로서 그림을 계속 그렸고, 사람들 대부분 보통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보통 사람도 저마다 소중한 자신임을 깨달았다. 보통 사람이 보통인 자신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본문 157,158,159p)

=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을 때 작가는 어떻게 이런 그림책을 그릴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짧지만 강렬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는 그림책이었기에 큰 매력을 느꼈던 거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그림책의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사노 요코는 에세이를 통해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갈 이유를 생각해보게 한답니다.

=

나는 상상력 풍부하게 살고 싶다. 불손하지만, 많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상상력은 난처한 일을 산더미처럼 안고, 남들이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 생활을 평범하게 쌓아가며 얻을 수밖에 업다고 생각한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현실에 계속 직면해야 상상력이 생겨나는 거라고 나는 고집스럽게 믿고 있다. (본문 161,16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