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요즘 책 읽기에 무기력해져 있었는데, 불과 며칠전 인간의 본성을 너무도 잘 표현한 스릴러 소설로 인해 그 무기력함에서 조금은 벗어나는가 싶더니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을 읽으면서 무기력함에서 완전 탈피하게 되었다. 그동안 추리소설은 살인을 소재로 펼쳐지곤 했는데 미카미 엔의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은 '사진'을 매개체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추리를 이끌어내고 있다. 처음 접하는 미카미 엔 작가였지만 이 소설은 신선하게 다가왔고,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통해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다니 하니 이 소설 또한 더불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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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과거의 순간을 잘라낸 것이잖아요. 누군가 죽어도 그 사람의 사진은 오래도록 남고요." (본문 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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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이자 추리를 풀어가는 가쓰라기 마유는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에노시마 섬에 오게 된다. 후지코 외할머니는 에노시마에서 나고 자랐으며 작년 가을 폐암 진단 말기 진단으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에노시마 니시우라 사지관'을 운영했는데, 이 사진관은 100년 동안 영업했고 그 마지막 주인이 외할머니가 되었다. 마유는 어린시절 방학 때마다 이 섬에 왔었고 할머니가 건넨 낡은 일안 레플리카 필름 카메라를 통해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4년 전 사건이 있기까지. 함께 유품을 정리하기로 한 소설가인 엄마가 마감을 핑계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서 마유는 혼자 유품을 정리하게 된다. 사진관 스튜디오를 정리하던 중 마유는 '미수령 사진'이라고 적힌 상자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상자 안에는 '니시우라 사진관'이라고 인쇄된 봉투가 여러 개 들어 있었고 각각의 봉투 뒷면에는 '님'자를 붙인 성명이 적혀 있었다. 고민 끝에 가장 위에 있는 봉투를 연 마유는 시대는 다르지만 모두 한 사람 같은 느낌을 주는 네 장의 사진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때 사진 속 남자가 사진을 찾기 위해 오게 된다. 그는 마도리 아키타카로 한 사람으로 보이는 인물들은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자신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것이었는데, 마유는 마침 사진관에 들른 할머니의 이야기와 사진 뒷장에 적힌 인화, 촬영 날짜에서 사진의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 마유는 사진의 미스터리를 풀게 되고, 사진관과 인연이 있다는 마도리는 마유를 도와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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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령 사진 중에는 대학 선배인 '고사카 아키호'의 사진이 있었는데, 아키호가 찍은 사진에는 마유의 어린시절부터 친구이자 연예인이었던 나가노 루이의 사진이 담겨져 있었다. 그 사진은 스스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카메라를 놓게 했던 자신이 찍은 마유의 사진과 닮아 있었다. 마유가 찍은 그 사진으로 인해 루이는 실종되었고 그 사건 이후로 마유의 인생도 크게 달라졌으며 가까운 이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추잡한 과거였지만 마유는 아키타카에게 4년 전 사건을 이야기하게 된다. 마유는 아키호의 권유로 가입한 단지 서클의 비공개 계정 SNS에 루이의 사진을 올리게 되고 이것이 인터넷에 확산되면서 드러내서는 안되는 루이의 과거가 포착되어 연예계를 은퇴하게 된다. 마유 말고 연극영화과 학생 네 명이 속한 서클에서 사진을 유포한 유력한 용의자는 아키호 뿐이었다. 그런 아키호가 마유가 찍은 사진과 똑같은 루이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미수령 사진을 건네기 위해 아키호와 연락을 취하게 된 마유는 그 사건의 진상을 4년이 지난 뒤에 비로서 제대로 유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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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가게의 외아들인 다치카와 겐지는 말 못할 비밀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겐지 자신이 5년 전에 직접 만든 투박한 결혼반지였다. 사실 이 결혼반지는 결혼을 하기 위해 삼촌 다치카와 오사무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삼촌과 함께 사진관 2층 스튜디오 구석의 캐비닛에서 차용증을 쓰고 몰래 가져온 은 한 덩이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겐지는 삼촌이 작성한 그 차용증을 마유가 발견하기 전에 몰래 없애버리기 위해 사진관에 가게 된다. 차용증을 몰래 훔치는데 성공하지만 마유는 암실로 썼던 캐비닛 속 빛을 차단하는 암막인 커튼을 통해 그 사실을 밝혀내게 된다. 그리고 겐지는 아무도 몰랐을 거라 짐작했던 사실과 달리 그것을 알고 있었던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상자 바닥에 하얀 종이 밑에 깔려진 미수령 사진을 통해 마유는 아키타카에 관한 또 하나의 사건을 풀어내게 되고 그를 통해 그동안 내려놓았던 카메라를 다시 집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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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잘라냈던 사진, 그 속에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리고 잊으려했던 과거가 담겨져 있다. 미수령 사진을 통해 4년 전 사건에 갇힌 마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가진 겐지, 그리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키타카는 비로서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과거에 갇혀있던 이들은 사진 속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면서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과거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들은 외면하고 싶지만 결코 외면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의 일부분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주고 있다. 우리가 그 용기를 가질 때 우리는 현재와 미래의 삶을 오롯이 채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는 할머니가 마유에게 마지막으로 준 선물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메시지였다. 그동안 강한 임펙트가 담긴 추리소설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따뜻함이 있는 이 추리 소설은 실로 신선한 충격이었기에, '미카미 엔'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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