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라는 책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성격상 늘 크고 작은, 그리고 필요없는 고민까지 껴안고 살아가는 탓일 게다. 더욱이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등 뒤의 기억>, <기억 깨물기> 등으로 여러차례 접한 바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 아닌가. 지금까지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아 온 에쿠니 가오리이며, 책 제목에서 풍기는 긍정적인 느낌이 좋아 선뜻 읽어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는데 스토리는 처음 느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세 자매의 이야기는 나의 정서와는 전혀 맞지 않아 기대만큼의 작품은 아니었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여러 남자와 쉽게 관계를 맺는 자매들의 이야기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고민하지 말고 즐겁게 살자는 의미를 왜곡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들게 하는 그녀들은 내게 무엇을 이야기해주려는 것일까?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그 때를 모르니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자'하는 뜻의 가훈을 신조 삼아 살고 있는 이누야마 집안의 세 자매는 아사코, 하루코, 이쿠코이다. 첫째 아사코는 결혼 후 2년쯤부터 시작된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다. 남편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아사코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그 폭력에도 아사코는 외려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남편의 폭력을 힘들어하면서도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그 안에서 위안을 찾는다. 사랑한다,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사코는 하루코와 이쿠코가 도움을 주려하지만 별일 아닌 일이라며 도움의 손길을 거절한다. 그러다 슈퍼마켓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듯 보이는 여자 유키에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함께 가출을 감행하지만 곧 남편의 품으로 돌아간다.

몇 시간 후면 구니카즈가 돌아온다, 하는 생각만 해도 기뻐졌다. 자신은 구니카즈가 필요하다. 구니카즈가 없으면 청소를 하고 반찬을 만들고 꽃을 사들고 와도, 아무도 기뻐해주지 않는다. 아사코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거의 없어진 것처럼. (본문 96p)

둘째 하루코는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이다. 그녀는 백수나 다름없는 작가인 구마키를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사랑함에도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는 이유로 구마키의 청혼은 매번 거절한다. 그러던 중 뉴욕에서 알게 된 기아노와 재회하여 하룻밤을 보내게 된 사실을 구마키가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구마키를 그리워하지만 하루코는 냉철하게 구마키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나는 연애 같은 거 안 믿는 사람이고, 아사코 언니는 사랑이 전부인 거나 다름없는 사람이니까, 우리 둘은 나름 일관성이 있는데 하루코 언니는 안 그래. 분열돼 있어." (본문 77p)

막내 이쿠코는 스물아홉 살로 운전면허학원에서 일하고 있다. 이쿠노는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는 평범하고 착한 딸인 듯 보이지만 연애에 관해서는 너무도 복잡한 인물이다. 고등학교 때 사랑을 알기 위해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과 스스럼없이 관계를 맺는다. 이쿠코에게 사랑 따위는 필요없다. 친구의 남자 친구와도 쉽게 잠자리를 하고, 운전면허 학원의 학생들과도 쉽게 잠자리를 하면서 스스로를 '서부영화 속 창부' 같다고 느낀다. 그런 이쿠코는 옆집에 사는 야무지고 부지런한 가정주부를 동경하는데 우연한 계기로 옆집 주부와 만나게 되고 그녀의 아들을 소개받으면서 그동안의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

"인생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거야." (본문 39p)

세 자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유키에는 이 세 자매를 보면서 강인하다고 말한다. 하루코가 구마키에게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 친구의 남자친구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두 사람의 문제일 뿐이라며 대처하는 것이 강인해보이기는 했다. 아니, 뻔뻔하다고 해야 옳겠지. 책을 읽다보면 나의 정서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했는데, 책 뒷면에 '옮긴이의 말'을 통해 저자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뻔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그들에게는 솔직함이라는 무기였음을.

그녀들은 이 모순을 자신들의 솔직함과 강함으로 견지하는 동시에 깨뜨리고 있다. 이쿠코에게 기시 마사아키라는 충족재가, 하루코에게 가와노라는 옛 남자가, 아사코에게 유키에라는 같은 아픔을 안고 있는 여자가 등장했을 때 그녀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그녀들의 무기인 '솔직함과 강함'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녀들은 언젠가 죽을 날을 위해 고민하지 않고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아닌 나'를 살게 되면 고민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살기 위해 분노한다.

그녀들은 '나인 나'로 살 때가 가장 즐겁다. 그러기 위해 전전긍긍 고민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또 당당하게 마주한다. (본문 328,359p)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는 이렇듯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즐겁게 살자는 것은 곧 '나'로서 살아가자는 것인데, 세 자매의 강인함, 솔직함, 모순 등이 '나'로 연결되어지는 것이 좀 난해하지 않았나 싶다.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삶이었지만, 그들이 나답게 살아가려는 행보를 통해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계기는 되어준 듯 싶다. 어쩌면 가장 강인한 인물은 주인공이 아닌 유키에가 아니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본다. 나의 정서와는 달라서 읽는동안 몰입하기 쉽지 않았던 이야기였지만 자신의 모순과 대적하며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강인함은 기억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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