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백설자 옮김 / 현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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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슈타인 가아더의 작품을 읽은 적은 없지만 그의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다. 1994년 『소피의 세계』가 북유럽과 독일에서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으면서 독일 청소년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그는 세계적인 작가로 급부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까지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만큼 『소피의 세계』는 철학을 대중화한 책으로 극찬을 받았는데 이 책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역시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카드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1995년 한국어판으로 출간 후 절판되었다가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간된 것이라고 한다. 절판에 대한 아쉬움을 가졌던 독자라면 이 책의 출간이 더없이 반가울 듯 싶다. 출판사 서평에 의하여 초·중학생이 읽기에도 적합하다고 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철학이라는 단어가 붙게 되면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런탓인지 흥미로운 책 제목, 궁금한 작가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의 선입견이었다. 한 소년이 아빠와 함께 엄마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는 포맷 속에 담겨진 철학은 어렵지 않았으며 상상력이 가미된 스토리는 오히려 흥미로웠다. 혹 나처럼 철학이라는 단어로 인해 이 책을 망설이는 독자가 있다면 그 선입견을 잠시 넣어두기를 먼저 당부해본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열두 살의 한스 토마스로 네 살 때 아버지와 자신을 떠난 엄마를 찾기 위해 여행을 하게 딘다. 엄마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고, 한스 토마스는 엄마가 떠난 후 곳곳으로 엄마를 찾아다녔지만 엄마를 찾은 곳은 작은할머니가 크레타에서 가져온 그리스 패션 잡지에서 였다. 그렇게해서 엄마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기 위한 아버지와 한스 토마스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여행을 시작할 때, 한스 토마스는 자동차를 타고 오랫동안 달리는 시간 동안 짜증을 부려선 안 되고 아버지는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약속을 했다. 그 대신 아버지가 담배를 피울 휴식 시간을 많이 갖기로 했는데, 그 휴식 시간 동안 아버지는 자신의 출생 이야기를 시작으로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스위스 국경에서 초라한 주유소에 멈췄을 때 한 남자가 나왔는데 그는 난쟁이였다. 아버지가 그에게 커다란 교통 지도를 펼치고는 알프스를 거쳐 베네치아로 가는 제일 좋은 길을 물었을 때 그는 '도르프'라는 작은 마을에서 숙박할 것을 권했고, 한스 토마스에게 녹색 통에 들어 있는 작은 돋보기 하나를 건넸다. 그는 이 돋보기가 도르프에서 필요할 것이며 반드시 쓸 데가 있을 거라고 덧붙혔는데, 한스 토마스가 도르프의 조그만 빵 가게의 백발 노인이 준 롤빵 속에 있던 '무짓갯빛 레모네이드와 마법의 섬'이라고 적힌 작은 책을 볼 때 정말 쓸모 있었다. 그 노인은 한스 토마스에게 "나는 어린 소년 하나가 어느 날 도르프에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단다. 그 보물을 가지러 말이야. 얘야, 이제 그 보물은 내 것만은 아니구나." (본문 45p) 라는 뜻모를 이야기를 건넨다.

 

내가 도르프에서 만난 제빵사 노인은 누구였을까? 내게 돋보기를 선물한 데다가 줄곧 우리 근처에 나타나곤 했던 난쟁이는 누구였을까? 나는 제빵사와 난쟁이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 스스로는 그런 관련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해도. 나는 적어도 꼬마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아버지한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철학자 한 사람이 나와 함께 자동차에 타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본문 161p)

 

그렇게 해서 이 이야기는 책 속의 책이라는 액자식 구성을 띄면서 흥미를 더해간다. 이 작은 책은 루트비히가 쓴 것으로 소년이었던 제빵사인 알베르트가 소년 시절 제빵사 한스를 방문했던 때의 이야기를 루트비히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다. 이 작은 책은 52명의 난쟁이와 조커라는 환상적인 스토리를 담아내고 있는데, 한스 토마스의 실제 이야기와 이 환상적인 이야기가 버무러지면서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매력적인 이야기로 재탄생하게 되고 독자는 이 스토리에서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더불어 독자들은 상상력 속에 가미된 존재와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에 감탄하게 될 것이며 저자의 이름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되는 순간이 될 것이 분명하다.

 

"난 단 하나의 긴 우연의 고리에 대해 말하고 있단다. 이 고리는 최초의 생명이 있는 세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 세포가 분리됨으로써 오늘날 이 행성 위에서 자라고 번성하는 모든 것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나의 고리가 언젠가 30억 년이나 40억 년이 흐르는 동안 중단되지 않았을 확률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남았어. 그래, 빌어먹을, 그게 나야. 그리고 내가 이 행성을 너와 함께 체험한다는 게 얼마나 환상적인 행운인지, 이 행성에 있는 온갖 작은 벌레조차도 저마다 얼마나 운 좋은 존재들인지 난 알고 있단다." (본문 165,166p)

 

내 손에 돋보기가 쥐여지고 나서 작은 글씨로 쓰인 꼬마책을 얻게 된 것도 아마 순전히 우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 아닌 내가 그 꼬마책을 얻게 된 것 뒤에는 어떤 의도가 숨어 있음이 틀림없었다. (본문 168p)

 

액자식 구성의 두 이야기가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을 담은 이 책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주어지는 일석이조의 독서여행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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