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최소한의 자존심 마음이 자라는 나무 12
정연철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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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같은 느낌을 주는 표지삽화가 눈길을 끄는 <<열일곱, 최소한의 자존심>>은 푸른숲주니어 <마음이 자라는 나무> 시리즈의 12번째 이야기이다. 사춘기 자녀를 둔 탓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시리즈 중 하나이기에 새로운 책의 출간이 반갑기만 하다. 큰 아이가 사춘기의 긴 터널을 빠져나올 때가 되자, 이제 작은 아이가 그 터널 입구에 들어서고 있다. 남자 아이는 또 어떤 사춘기 열병을 앓게 될지 사뭇 긴장되는 와중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은 [너에 대한 소문][원시인? 병시인?][열일곱, 최소한의 자존심][엄마가 돌아왔다][쉬즈 곤?] 등 총 다섯 편에서 각기 다른 주인공들을 통해 청소년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주인공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모범생과는 다소 거리가 먼, 쉽게 말하자면 문제아들이다. 우리는 흔히 모범생, 문제아로 나누어 청소년들을 구분지어 놓고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이들을 이렇게 구분짓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다섯 편의 주인공들은 비록 모범생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너에 대한 소문]의 태용은 졸다가, 마팅하다가, 침 흘리면서 중간고사를 끝내는 인물이다. 애들은 그런 태용을 골 빈 놈으로 치부하지만, 태용은 사는 데 별 지장 없는 지식들로 꽉 차 있는 것보다 어느 정도 비어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 빈 공간에 사는 데 꼭 필요한 파란 하늘, 붉은 노을, 새털구름, 안개 낀 아침, 보슬비, 드넓은 바다, 단풍 든 나무, 낙엽 떨어진 거리 등등을 채워 넣는 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니까. 부모님의 간섭은 사양하고 대신 자신의 일에는 책임을 지기로 한 태용은 실수로 같은 반 왕따 몬스터에게 문자를 잘 못 보냈다가 성추행으로 고소당할 위기에 처한다. 몬스터의 합의를 위해 가방 셔틀이 된 태용은 몬스터가 소신 있게 잘 살아가고 있음을, 시시콜콜한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아고 있음을 알게 된다. 태용은 그런 몬스터를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걸 한다. 엄마와 아빠도 몇 번의 겨울을 보내고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겠지.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지금 내 모습은 그동안 내가 한 선택의 결과였다. 나는 나한테 단순한 질문을 해보았다. 만족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문득 내 마음에 시뻘겋게 혹은 시퍼렇게 든 단풍도 이제 하나둘 떨어뜨릴 시점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내가 산다니까. (본문 55p)

 

[원시인? 병시인?]의 원대한은 여자 친구에게 차인 후 우연히 화장실 벽에 적힌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게 되고 시인이 되고자 한다. 국어 선생님이 낭송한 시를 듣고 슬퍼서 슬퍼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한 놈 취급을 당하게 되었고, 학교에서 점점 독보적인 별종으로 거듭났다. 시집을 끼고 돌아다니는 또라이, 병시인으로 취급 당했다. 대한에게는 원시인이 되느냐 병시인이 되느냐의 문제는 중요했다. 그렇게 친구들에게 별종이 된 대한은 비록 공모전에는 떨어졌지만 원시인이라는 꿈은 계속 되었다.

 

표제작 [열일곱, 최소한의 자존심]의 수호는 아빠가 운영하던 합기도 도장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집안 살림에 압류 딱지가 붙고, 사채업자들에게 협박을 받고, 아빠가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치고, 징역을 선고받고, 풀려나서 막노동을 하다가 사고로 청력을 잃고, 알코올에 중독되고, 엄마가 가출하고, 아빠는 허리마저 다치는, 불행 공식 그대로 대입된 듯 시궁창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다. 방과후, 야자보다는 돈을 버는 것이 더 중요한 수호를 선생님은 이해해주지 않았고, 상한 우유마저도 간절한 배고픈 수호를 친구들도 이해해주지 않았지만 수호는 치열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간다.

 

원망? 그럴 리라.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맷집도 좋아졌고 깡다구도 생겼다. 학교가 나한테 준 유일한 선물이었다. 덕분에 난생처음 체육 부장이라는 감투까지 썼다. (본문 104p)

 

교실에 들어가자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서 가난 때문에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친구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던 선생님의 콩나물국 이야기가 방송되고 있었다. 가난한 애들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내 경우, 가난은 치욕과 이음동의어였다. 순간 배 속에 상주하고 있는 거지를 꺼내 목을 비틀고 싶었다. (본문 111,112p)

 

이 외에도 할머니의 구박으로 집을 나간 엄마에 대한 사람들의 험담을 뒤로 한채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디는 [엄마가 돌아왔다]의 용덕, 좋아하는 선생님을 위해 구민 노래자랑에 나간 [쉬즈 곤?]의 재광 등 다섯 명의 청소년들은 왕따가 되는 것도, 불행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고 넘어뜨리고 목에 예리한 칼까지 들이대는 사는 게 구차스러운 상황에서도 오늘을 이겨내고 내일을 향해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공부는 뒷전이고 수업시간에는 잠만 자는 영락없는 문제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견뎌내며 자신의 꿈을 위해,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꿈이 없는 십 대는 틀린 문장의 마침표와 같다." (본문 150p)

난 이를 앙다물고 버텨 내야 한다. 살아 내야 한다. 그것이 열일곱, 나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였다. (본문 103p)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꿈을 갖고 소신있게, 당당하게 오늘을 견디는 이들 주인공들을 보면서 청소년들을 모범생과 문제아로 구분짓고야 마는 어른인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어른들에게도 힘겨운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수호가, 왕따지만 소신있게 살아가는 몬스터가, 별종 취급을 받지만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수호가 그리고 용덕이와 재광이가 내일의 꿈을 위해 막막한 오늘을 버티는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버티면 밝은 내일이 찾아올 수 있다. 나도 함께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고자 한다.

 

 

《열일곱, 최소한의 자존심》에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결핍과 상처가 있다. 사실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어쩐지 더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낭떠러지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아이들에게 무턱대고 긍정적이고 밝은 미래를 이야기해 줄 순 없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 한 결코 꺼지지 않을 한 줄기 빛이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본문 207p)

 

(이미지출처: '열일곱, 최소한의 자존심'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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