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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 ㅣ 라임 청소년 문학 18
김영리 지음 / 라임 / 2016년 1월
평점 :
<라임 청소년 문학>시리즈 18번째 이야기는 조금 독특한 제목의 <<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입니다. 책
제목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전혀 감이 오지 않지만, 표지 삽화를 보면서 얼핏 짐작을 해봅니다. 의족을 한 소녀의 모습을 보아 아마 의족을 치타라
하는가 봅니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의 얼굴과 삐딱한 시선의 소년은 불량 청소년처럼 보이네요. 표지를 보면서 으레 청소년 소설에서 다루는
주제인 두 주인공의 성장통을 다룬 이야기가 아닐까 지레짐작하며 책을 펼쳐봅니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내용일 거라는 짐작과는 달리 뺑소니법의
아들과 살인자의 딸의 상처와 치유에 관한 조금은 더 깊은 의미와 내용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뭐, 생각해 보면 인생이라는 것도 바로 다음에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또 어떤 거지 같은 사건이 날 자빠뜨릴지 모르는 거다. 온갖 방어
방법을 열나게 연구해도 인생이란 놈은 언제나 나보다 세 수는 앞 서 있다. (본문 9p)
<<치타 소녀과 좀비 소년>>은 좀비 소년인 태범과 치타 소녀 수리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진행되는 구성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태범의 버려진 공사장에서 한 남자에게 흠씬 맞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태범은 상대방이 가진 전 재산을 받고 10분간 맞아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노숙자의 전 재산 6,900원을 받은 태범은 엠피스리 건전지를 사고, 햄버거를 사 먹은 후 수리라는 여자애가 사는
집 앞에 도착합니다. 태범이 수리를 찾아오게 된 건 태범이네 집을 파탄 낸 새끼의 가족이 얼마나 잘 사는지 궁금해서였지요. 하지만 이 가족도
결딴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마누라는 아주 오래전에 암으로 죽었고, 그 새끼는 예상대로 감방에서 썩고 있었고, 무남독녀인 딸 수리는 고모 집에
얹혀사는 처지였어요. 오늘로 열댓 번 조금 넘게 수리네 집을 찾은 태범은 오늘은 자신의 면상을 보여주며 정체를 말하고 죽을 때까지 쫓아다니면서
자신이 망가진 모습을 보여 주며 괴롭힐 계획이었습니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다'라는 딱 한마디만 해 줄 작정이었지요. 현데 생각지도 못하게
수리가 밖으로 나왔고 그 뒤를 따라가던 태범은 수리가 걸어가면서 차를 못으로 긁거나 타이어에 구멍을 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태범이
수리를 잡아세우는 순간 수리는 바닥에 쓰러졌고 병원에 데리고 간 태범은 손목부터 팔꿈치 아래까지 길게 이어진 몇 개의 상처와 나무다리 위로
못으로 찧고 그은 자국을 보게 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읽어갈수록 궁금증이 더해집니다. 2년 전 7월 12일, 그날 이후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사건이 있었다고 태범은
말하지만 도대체 어떤 사건인지 태범은 좀처럼 말을 열지 않네요. 사건이후로 엄마는 태범을 알지 못했고 태범은 죽어도 때리지 않기, 술따위 마시지
않기 그리고 빌어먹을 집에 집착하지 않기라는 세 가지 원칙을 세운 뒤 집을 나온 후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태범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존재,
자신을 포함한 서울역 노숙자들을 좀비라고 부릅니다. 태범은 궁금한 마음에 병원을 찾아갔다가 수리와 다시 대면하게 되고 자신이 파란 집 생존자라고
밝힙니다. 그 말을 들은 수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지요.
차를 긁은 죄로 수리는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마라톤 완주를 약속하고 치타 다리를 후원받게 됩니다. 치타 다리는 달릴 때 착용하는
의족으로 치타 플레스 풋, 줄여서 치타 풋이라고 하지요. 태범을 찾은 수리는 태범이 하는 행동의 이유가 아주 조금이라 해도 자신 때문인 건
싫으니 제대로 살라고 말합니다. 태범은 들러붙으라는 수리의 말을 곱씹다가 파란 집으로 가보게 되고 여전히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의 주변을
맴돌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2년 전의 사건에 대한 비밀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너무도 참담한 상황인지라 노숙을 하는 것으로, 자해를 하는
것으로 자신을 향해, 세상을 향해 복수하는 두 아이의 심정이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서로 만나서는 안 될 관계일지도 모르지만, 서로 닮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두 아이는 어느새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게 되고 지난 과거와 상처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막 과거의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건 없다. 그저 당장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들을 조금씩 해 나가면서 잃어 버렸던 삶을 되찾고 채워 나가는 게 최선일 것이다. 그런 다음에 평범하게…… 살고 싶다. 다른
사람들처럼. (본문 214p)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2년 전 사건으로 상처로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두 아이는 이제 마주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앞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지독하게 아프고 끔찍하게 슬픈 오늘을 견디면서 이들은 달렸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치유가 무엇인지, 용서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태범이 집을 나와 노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도
사실처럼 그려졌을 뿐 아니라,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진 두 아이의 심리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비극과 절망은 평범하기만 한
생활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맙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도 달라지게 되지요. 이 책에서는 그 비극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치유의 과정이 그려져 있지요.
누구에게나 절망은 찾아오게 됩니다. 맞바람이 거세게 분다면 바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바람과 하나가 되어 뛰어야하지요. 태범이
말합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만약 우리에게 맞바람이 거세게 부는 비일상적인 일이 닥친다면, 태범과 수리처럼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죽어라 달려보는 것도 좋을 듯 싶네요. 그렇다면 어느 순간 어두운 터널에서 어느 새 빠져나오게 되지 않을까요? <<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은 다양한 소재를 통해 청소년 문학의 폭을 더욱 넓혀준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이미지출처: '치타 소녀와 좀비 소년' 표지에서 발췌)